흔들리지 않는 사람
함경남도 함흥 근교, 덕천리.
산자락에 기대 선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다.
지붕은 낮았고, 종도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울리던 찬송은
마을 어느 집보다 컸다.
그 교회에
홍종현이라 불리는 영수가 있었다.
말수가 적었고
기도할 때는 늘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는 목사보다 먼저 교회 문을 열었고
예배가 끝난 뒤 가장 늦게 불을 껐다.
신사참배가 시작되던 해,
일본 순사들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천황 폐하의 사진 앞에 절하면 된다.
종교가 아니다. 국가 의식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덕천교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계실 목사는 그날 밤
과수원 움막으로 옮겨졌다.
홍종현이 그를 숨겼다.
“목사님은 나오시면 안 됩니다.
제가 대신 나가겠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마치
논에 나가는 사람처럼
짚신을 신었다.
순사들은
교회 마루에 천황 사진을 걸어두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절하라.”
홍종현은
그림을 보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종이에 찍힌 얼굴이었다.
그는 일어섰다.
“나는
그림 앞에 절하지 않습니다.”
순사가 소리쳤다.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다!”
홍종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그림이든
우상은 우상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바닥에 부딪혔다.
이빨에서 피가 났다.
그는 감옥으로 끌려갔다.
며칠 동안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절하면 풀어주겠다.”
“가족을 보지 못해도 좋겠느냐.”
“너 하나로 교회가 살 수 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틀렸다면
오늘 밤 데려가십시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고
재판은 열렸다.
“일본 제국 헌법 제1조를 어겼다.”
사형이 선고되었다.
형장은 다음 날이었다.
일본 헌병은
그에게 집에 다녀올 시간을 주었다.
마지막 인사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그를 보고 무너졌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는 가족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릴 수 없다.”
아내는 울면서 말했다.
“그럼 같이 죽읍시다.”
그는
아이들을 기둥에 묶고
나뭇단을 끌어왔다.
불을 붙이려는 순간
이웃들이 몰려왔다.
“미쳤소!”
“불 끄시오!”
가까스로 불은 꺼졌다.
아이들은 풀려났다.
그러나 그는
다시 헌병에게 돌아갔다.
헌병은 홍종현 영수를 마당으로 끌어냈다.
눈 위에 무릎이 찍혔다.
총끝이 그의 등을 눌렀다.
“그러면 말해 보아라.”
헌병은
천황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네 말대로 이것은 그림이라서 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인 천황에게는 절할 수 있느냐?”
홍종현 영수는
입술에 묻은 피를 닦지 않았다.
눈을 들어 사진을 보았다.
“사람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이웃 어른에게도
부모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헌병이 소리쳤다.
“그러면 왜 천황에게는 하지 않느냐!”
홍 영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분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도 아니고
생명도 아닙니다.
종이에 찍힌 얼굴입니다.
나는
그림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발길질이 날아왔다.
눈 위에 다시 쓰러졌다.
헌병은 그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예수를 이렇게 믿는 자는 처음 본다.
만약 놓아주면
국민의 의무를 다하겠느냐?”
홍종현 영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우상에게는 절하지 않지만
백성의 도리는 다하겠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눈 위에 피가 번지고
숨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헌병이 손을 내렸다.
“데려가라.”
그리고
며칠 뒤
그는 풀려났다.
무죄였다.
그날
덕천교회에는
종이 한 장보다
큰 믿음이 남았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특별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정치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절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국가보다 큰 고백이었고
권력보다 무거운 선언이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은
죽음을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
경배하지 않겠다는
삶의 질서를 지킨 일입니다.
한 사람이
그림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황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를 욕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체제에 대한 반항이 되었고
양심에 대한 고백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저항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 고백 위에
순수한 개혁교회가 태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총칼 앞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형태의 신사 앞에 서 있습니다.
안전, 침묵, 타협, 편리함, 물질, 권력, 명예.....
이 글은
과거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절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