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잡아야 한다
장흥 읍내. 우시장에서 멀지 않은 뒷골목,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바닥엔 마른 피가 얼룩져 있었고, 지붕 위엔 까치 한 마리가 조용히 울었다.
“김상진이 또 나타났답니다. 이번엔 왜경 셋을 때려눕히고, 조합장을 협박했다네요.”
그 말을 전한 이는 노파였다.
그 옆에서 콩나물을 씻던 여인은 입을 틀어막으며 웃었다.
“속이 다 시원하구먼.”
그 이름은 이미 신화였다.
두 눈으로 본 자는 없지만, 백 명이 말하고 천 명이 믿었다.
아이들은 골목마다 돌을 던지며 김상진 놀이를 했고,
노인들은 장독대 옆에서 ‘그가 진짜라면…’으로 시작하는 희망을 말하곤 했다.
전남 경찰부 소속 형사 순형은 달라진 민심의 움직임을 체감했다.
보고서에는 ‘민중 선동자’라 쓰였지만, 현장에선 ‘의로운 자’라 불렸다.
상부는 명을 내렸다.
“김상진을 반드시 검거하라. 그것이 자네의 진급길이다.”
그는 누구보다 '질서'와 '승진'을 원했지만,
민중 속에서 퍼지는 김상진의 이름이
어느 순간 '적'이 아닌 ‘대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를 더 괴롭힌 것은 영재의 말이었다.
“보성 산 중턱. 토벌대가 가기엔 늦고, 네가 혼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이건 함정이냐?”
영재는 웃었다.
“순형아, 우린 다 서로의 함정이야.”
영재는 김상진을 ‘팔아’ 순형을 상부에 끌어올리고,
자신은 그 공으로 경찰과 밀착하려 했다.
친일도, 민족도 아닌, 오직 자신의 안전과 입지가 기준이었다.
그날 밤, 순형은 오래도록 취했다.
달빛은 아무 말 없이 창을 타고 흘렀다.
그는 손바닥 안의 은가락지를 꺼내어 책상에 올려뒀다.
그건 하루코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것.
“사람의 마음도, 조국도, 이렇게 반지처럼 꼭 맞는 날이 올까.”
다음 날 새벽, 순형은 단 한 사람만을 데리고 보성으로 떠났다.
겨울 이른 기운이 골짜기를 감쌌고, 참나무 가지에는 밤새 내린 서리가 붙어 있었다.
“김상진을 보았다”는 이가 사는 오두막.
그 안엔 허리가 굽은 사내가 있었다.
그는 순형을 보자 이마를 조아렸다.
“경사 나리… 그는 진짜요.
저희 딸내미, 먹을 것도 못 먹고 있었는데
쌀 두 됫박을 놓고 갔어요. 말 한 마디도 없이.”
“무장투쟁하는 자가 왜 자비를 베풀지?”
“그게 진짜지요. 총을 들었어도, 사람 냄새가 나더이다.”
순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영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았나? 감정이 판단을 흐릴 때가 있어.
너는 잡아야 해, 순형아. 그래야 살아.”
순형은 문득 그를 돌아봤다.
“그래. 살아야겠지.
하지만…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하지?”
#작가의 말
‘김상진,
존재보다 더 강한 영향력’
이시대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순형입니다.
출세의 갈림길에서 그는 김상진을 좇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건 자신 안의 두려움, 욕망, 그리고 어쩌면 사라진 신념입니다.
전설은 때때로 허상입니다.
그러나 그 허상이, 실제보다 더 강하게 마음을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질문합니다.
“진짜는 누군가?
총을 든 자인가?
그를 쫓는 자인가?
아니면 그 소문을 기다리는 민중인가?”
김상진은 결국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 상징 앞에서 인물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삶의 기준을 다시 되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