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28

그 이름

by 강순흠


1935년 초여름.
전남 고흥, 구룡리 뒷산 골짜기 어귀.
산짐승조차 숨죽인 밤,
정적을 깨고 총성이 울렸다.
“탕!”
이튿날, 마을 골목마다 소문이 퍼졌다.
“들었나? 김상진이 일본 헌병대 물자 수송차를 털었다더라!”
“단 한 발도 허투루 안 쐈다지. 헌병 두 명은 벌벌 떨다 무장해제했다더군.”
남도 전역을 도는 장터마다,
이름 없는 입들이 ‘그의 전설’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에 숨어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선 늘 일본 깃발이 찢어져 있더라.”
“상진 형님이 다시 돌아왔대! 진짜 사나이야!”

완도경찰서 특무과.
순형은 회의실에서 피로한 얼굴로 지도에 빨간 점을 찍고 있었다.
고흥, 장흥, 보성, 광양…
“이 자는 군대를 아는 놈이야. 정규 작전처럼 움직입니다.”
상관은 낮게 말했다.
“한 번만 잡으면, 특진은 물론, 조선총독부 상도 내려올 거다.”
순형은 고개를 들었다.
“그 이름을… 민중이 영웅처럼 부릅니다.”


며칠 후, 장흥 장터.
건장한 청년 하나가 일본 순사의 모자를 벗겨 땅에 던졌다.
“여긴 조선이다! 너희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피를 흘리며 도망친 순사는 나중에서야 말했다.
“그놈… 김상진이었어. 틀림없어!”


그날 밤, 고흥 녹동 바닷가 움막.
김상진은 수첩에 짧은 글귀를 남겼다.
“나는 이름도, 무덤도 남기지 않겠다.
대신, 백성의 기억에 불씨 하나만 남기겠다.”
한편, 경찰서로 돌아온 순형은
김상진의 무용담이 아이들 입에서 구전되는 걸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영웅은 잡히기 전까진, 늘 빛나는 법이지…”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김상진… 널 잡아야 내가 산다.”

#작가의 말
김상진의 이야기는 단지 투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시대가 만들어낸, 고통 속 희망을 품은 민중의 꿈이었습니다.
김상진은 무기를 들고 싸운 한 명의 사내였지만,
그를 떠받든 건 총이 아니라, 백성의 입과 눈물이었습니다.
그를 쫓는 순형.
그가 버린 것과, 그가 원하는 것 사이의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