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의 문 앞에서
1934년 여름, 완도경찰서 순사는 하루 종일 땀에 절어 있었다.
무더위보다 더 짜증 나는 건, 진급 심사였다.
"결정적인 건이 있어야 합니다. 무장 항일분자 한 놈만 잡으면, 말단은 벗어납니다."
서장 책상에 놓인 ‘상급지시’에는 김상진 체포령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순형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서류철을 덮었다.
“그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김상진… 그 사람, 내 옛 스승입니다.”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았다.
“그래서 더 잡아야죠. 나를 증명하려면, 그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편, 순천 상공조합의 사무원 영재는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회계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밖에선 상인들이 헐값에 물건을 넘기고, 안에선 일본인 감독관이 “조선 상인은 약하다”고 웃었다.
영재는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도, 속으로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날 저녁, 순형이 조용히 찾아왔다.
“영재야. 나 혼자선 김상진을 잡을 수 없어.”
영재는 침묵했다. 창밖에서 장터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넌 그 사람을 알아? 민족학교 시절에 우릴 가르쳤던 김상진 말이야.”
“알지.” 영재는 천천히 대답했다. “내겐… 영웅이었다.”
“… 지금도?”
순형은 노려보듯 물었다.
영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젠 세상이 바뀌었지. 그리고… 내 영웅은 현실에 없다.”
순형은 숨을 고르더니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를 끌어낼 수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두 사람의 눈빛이 짧게 스쳤다. 서로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다.
며칠 뒤, 영재는 산속 은신처로 향하는 밀고 정보를 조용히 경찰에 넘겼다.
"시장은 열려 있지만, 마음은 이미 닫혀 있다."
김상진은 오래된 민족학교 후배를 통해 조심스럽게 도착했지만, 숲은 이미 덫이 되어 있었다.
“순형아, 너냐.”
김상진은 멀리서 경찰의 발소리를 듣고 말했다.
그 이름을 들은 순형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네가 먼저 스승을 버렸잖아. 난, 내 길을 간다.”
그날 김상진은 숲을 빠져나갔고, 순형은 돌아오는 길에 혀를 찼다.
“또 놓쳤군.”
영재는 짧게 말했다.
“그는 생각보다 오래 버틸지도 몰라. 그게 무섭지.”
“무서운 건… 내 안의 흔들림이야.”
순형은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길게 내뿜었다.
#작가의 말
출세는 증명되어야 했고, 증명은 누군가의 추락으로 가능했습니다.
순형과 영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웠지만,
그 속엔 언제나 ‘김상진’이라는 이름이 가시처럼 걸려 있었습니다.
믿음은 죄가 되고, 스승은 표적이 되는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자기 합리화와 가책, 그 복잡한 내면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