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26

그가 불꽃이던 시절

by 강순흠


“나는, 불이다.”
민족학교 시절 영재는 늘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던 교실에서, 그는 유독 앞서가던 아이였다.
말보다 주먹이 앞섰고, 정의보다 본능이 먼저였다.
“조선이 개돼지가 되는 꼴은 못 본다.”
이 말은 그의 신념이었다.
김상진 선배의 ‘무장투쟁론’에 그는 열광했고,
밤마다 뒷동산에서 목검을 휘두르며 독립의 꿈을 키웠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


1930년대 중반, 그는 두석과의 연락을 끊고 어느 날 갑자기 순천으로 향했다.
“돈과 권력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거리에서, 그는 그저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에서 그는 말없이 살아갔다.
“불은 너무 일찍 피우면 연기로 끝나.”
영재는 이따금 자신에게 말했다.
사상 단속을 피해 다니며,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정보를 흘리기도 했고,
어느 순간엔 침묵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침묵이, 그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가족을 지키려면 살아야 해.
살려면 말하지 말아야 해.
그러려면… 내 조국 내 민족... 내가 왜.”
그는 점점 타협했고, 그 타협은 이내 습관이 되었다.
기억에서 사라진 동지들이 꿈에 나와도, 그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눈물은 약한 자의 사치지.”
그가 붙잡은 건 생존이었고, 변명이라는 방패였다.
놓아버린 건—
자신이 믿던 조국이었다.


영재는 요즘 바빴다.
상공조합 사무원.
겉으로 보기엔 지역 청년의 자립과 농공 진흥을 돕는 ‘합법적 조합’이었다.
하지만 조합의 뒷면에는 일제의 조선 경제 장악 전략이 숨어 있었고, 영재는 그 기획에 깊이 연루돼 있었다.
“좌익 계열 인물들이 농민 사이에 슬금슬금 파고듭니다.
강연회 형식으로 민족자결 같은 말을 전파하죠.”
그는 상관 앞에서 차분히 보고했다.
“차라리 조선어 강습소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잠시 정적.
상관이 물었다.
“거기, 어딘데?”
영재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가끔, 봉강정 소식을 듣는다.
두석이 아직도 밤마다 민중에게 글을 가르치고,
새벽마다 땀 흘리며 농사를 지으며
‘사람은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는 이야기를.
그럴 때면 영재는 혼자 중얼거린다.
“참, 고집도 지독해…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가지 않는다.
죄책감과 거리, 그리고 스스로의 벽이 그를 막고 있었다.

순형은 여전히 완도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착실했고, 실적도 있었다.
하지만 출세의 길은 아직 멀었다.
“큰 건 하나 잡아야 해. 진짜 실적을.”
상사는 말했고, 순형은 알고 있었다.
“김상진— 민족학교 출신, 무장계열 독립운동가.”
그를 잡는다면 진급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주는 두려움도 컸다.
그는 그 시절을 기억했다. 민족학교, 바닷가 마당, 선배의 웃음.
그러나 이젠 그의 손에 수갑이 있었다.

그날 밤, 순형과 영재는 순천의 작은 여관 뒷마당에서 마주쳤다.
담배를 나눴다.
“김상진을 네가 쫓고 있다지?”
“응. 넌 왜 웃어?”
영재는 웃으며 답했다.
“나는... 덫을 준비하는 사람이지.”
순형이 담배를 던졌다.
“인간이 덫이 되어선 안돼.”
잠시 정적.
“하지만, 우리… 살아야 하잖아.”



#작가의 말
영재는 이상을 태우던 불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오래 타지 못합니다.
삶은 그를 꺾었고, 현실은 타협을 강요했고,
그는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가 악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는 다만, 너무 일찍 뜨거워졌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이제…
언젠가 다시 탈 날을 기다리는, 꺼지지 않은 잿불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먼저였습니다.
영재는 살아남기 위해 조용히 변했고,
순형은 자신이 옳은 길이라 믿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속였는지는,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도 물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 앞에서 떳떳한 눈빛을 가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