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59

두 개의 길, 하나의 절벽

by 강순흠


1947년 12월,
두 번째 미소공동위원회는 끝내 결렬되었다.
소련은 남한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하라 했고,
미국은 북한의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도, 평양도
대화 대신 무기를 갈고 있었다.
“분단은 선택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두석은 달력 위에 붉게 표시된 날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승만은 전북 정읍에서 말했다.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세워야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놀랐고,
미군정도 난색을 표했지만
곧 그는 미국의 비호 아래
‘반공의 선봉’으로 자리 잡았다.


김구는 5·10 단독선거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나는 통일이 없는 독립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남북이 함께하지 않는 선거는, 진짜 독립이 아닙니다.”
김구와 조소앙, 홍명희 등
임시정부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출마를 포기했다.
그 빈자리는
친일 경력자들로 채워졌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총선거.
그러나 절반의 선거였다.
남로당은 투쟁을 선언했고,
제주는 항거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일제 시절 동척 관리, 경찰 출신,
총독부 관리였던 자들이
하나둘씩 국회로 들어섰다.
“조선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2.0이겠지.”
두석은 명부를 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1948년 7월 20일, 단독정부의 탄생
국회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8월 15일, 서울 중앙청 앞.
수많은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런데 그 아래,
박수치는 손들 중에는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던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북쪽은 김일성을 내세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두석에게는 ‘불온교육 주의’ 경고장이 붙었다.
“자네가 말하는 그 ‘민중’이란 단어,
요즘엔 의심받기 딱 좋은 말일세.”
영재는 어느새
경찰서장과 어울리며
시장 쌀값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두석이, 시대가 변했네.
태극기부터 달고, 국부를 찬양해야 살아남는 시대야.”
두석은 책상을 치우며 중얼거렸다.
“국부란 말, 그 앞에 붙은 이름이 다르다 해도
예전 총독이랑 뭐가 다른 건가…”

#작가의 말
1948년, 우리는 두 개의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길을 선택한 건 권력이었고,
그 길을 따라야 했던 건 민중이었다.
김구는 통일을 택했고,
이승만은 단독을 선택했다.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았는가.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선거를 거부하고 무대 밖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는 식민지의 그림자들이 메웠다.
그리고
그림자는 피를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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