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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영 Sep 12. 2024

크래커 한 봉지, 나만의 보상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지 3주 하고 4일째다.

오늘따라 아이가 같이 일어나 함께 침대로 가서 눕자고 보챈다.

재워놓고 책상에 앉으면 10분 뒤 또 나를 찾아와 "엄마아아아" 하며 내 옆에 누워달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여러번 반복되다 보니 공부하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든다.


내 목표가 뭐였지?

내가 왜 일어났지?

누워서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글이나 읽을까?

오늘 하루는 아이 옆에 있어도 되겠지?

왜 자꾸 일어나는 거야, 혼자 잠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등등...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이렇게 새벽마다 공부하는데, 물론 나를 위한 거라곤 하지만 보상이 너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상!!! 와 기가 막힌 생각이다. 나에게 보상을 주자.

벌써 며칠째 공부한거야? 3주가 넘었어? 멋진 보상을 주고, 기록하고, 또 다음 보상을 기대하며 공부해볼까?

하면서 '40대를 위한 보상' (아직 40대 아님, 왜 40대로 검색했는지 모르겠음), '40대를 위한 소확행' 등을 검색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글은 공부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오늘 하루 굿데이였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엇! 보상이라는게 별거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를 위한 보상으로 이것저것 살 생각을 했던 의지가 와장창 깨졌고, 보상을 주기 위해 어디가서 쇼핑하지, 쇼핑할 시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게 쓸데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나를 위한 보상을 먹는 것으로 해왔고, 참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 왔는데,

다시 돌아보니 먹는 보상이 얼마나 무해한지 ^^ 느껴졌다.

먹는 것은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똥으로 나오지만)

먹는 것은 지금 당장 집에서 해결할 수 있고

먹는 것은 어차피 해야하는 것이니까.

또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있잖아! 유레카!


그렇게 나는 부엌찬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발꿈치를 들고 팔을 쭈욱 뻗어 닿는 곳에 놓여진 '작은 크래커 한 봉지'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아이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과자 봉지를 뜯고, 크래커 한 조각을 꺼내 아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to do list 다이어리에는 특별히 분홍색 하이라이터로 하트모양도 그려주고 '보상'이라고 적었다.

하하 나는 3주 4일째 보상을 주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뿌듯한지 모르겠다.


저렴한 크래커 한 봉지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먹은 것을 기록하고 맛을 음미하니 참 귀하고 값진 크래커가 되었다.

먹었으니 힘내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매일매일 애썼지만 당연히 3주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발전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고,

슬슬 재미도 없어지던 차에 소소한 보상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남은 하루도 나를 아껴주며 위해주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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