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겁이 아주 많았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구름사다리를 넘거나 철봉에서 손 떼고 매달리기 같은 놀이를 성공한 적이 한 번 없다. 놀이동산 롤러코스터는 대학생이 돼서야 겨우 성공했다. 1학년 때 친구들과 에버랜드에 놀러 갔었는데, 그들은 함께 안 타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기서 얘들에게 죽나 타서 죽나 어떻게든 죽는 건 마찬가지다 싶어 줄을 섰고, 안전벨트를 맸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살았다. 사십 평생 유일한 롤러코스터 경험이다. 나는 어디서 무얼 하든지 간에 머릿속에는 분명 여기서 굴러 떨어져 온몸이 박살 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아주 어릴 때 높은 곳에서 여러 번 굴러 떨어진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무의식에 새겨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3층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시골 할머니가 계시던 한옥의 작은 창에서 죽담이라 한다는 높은 돌계단 같은 곳을 찍고 마당으로, 2톤 트럭의 지붕 위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혼자 놀러 다니기 시작하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1년에 1번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던 경험이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을까. 아버지는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사람들에게 나에 대하여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애,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목숨이 아홉 개쯤 있는 워리어스의 리더나 신의 뜻으로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처럼 스스로를 신성화하는 대신, 하도 죽을 뻔한 적이 많으니 양치기 소년처럼 나는 언제든지 죽어도 사람들이 놀라거나 울지 않겠다는, 꽤나 염세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떨어지고 죽는 상상을 계속 했다.
아파트에서, 한강 다리에서, 육교에서 놀이기구에서, 내 시야에 높이의 개념이 들어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떨어지는 것부터 생각했다. 머리부터 떨어질 경우, 다리부터 떨어질 경우, 날다람쥐처럼 배치기로 떨어질 경우, 온몸의 뼈가 박살 나겠다, 아프겠지, 아니야 그전에 심장이 멎으면 고통을 모를 거야, 물속으로 떨어지면 폐에 물이 들어간다던데 얼마나 아플까.
며칠 전부터 자전거를 타고있다. 나는 자전거를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다. 일고여덟 살 때 오빠가 가르쳐준다기에 함께 나갔는데 그는 동네 친구들이 모여 야구하는 것을 보더니 날 두고 그 편으로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자전거를 타야 했고, 어쩌다 보니 성공했다. 보조바퀴를 뗀 어린이용 두 발 자전거였다. 그 뒤로 나는 세상에 '난 자전거 탈 줄 알아.'라고 말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최근에 알고 보니 이런 자전거를 탄다고 하는 것은 뭐랄까, 좀... 우습... 다는 평을 받는달까. 안장에 앉은 채 양발이 바닥에 낙낙하게 닿고 어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핸들을 잡고 세상 한가한 자세로 앉아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면 내 남편 같은 사람이 '쟨 뭐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런. 바이엘을 치면서 피아니스트가 꿈이라고 말하는 어린이에게 박수를 쳐줘야 할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한. 자라나는 꿈나무를 짓밟을 의도는 없지만 그렇다고 여섯 살짜리도 아닌 마흔 넘은 아줌마를 멋지다고 칭찬하며 시간을 보내기는 귀찮은.
내가 타기 시작한 자전거는 5년 정도 된 하이브리드 자전거이다. 안장의 높이를 최대로 낮추고 앉아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20인치 자전거를 타는 나를 못 견디고 저 멀리 달려가던 남편이 타던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자기 것도 그래 봤자 아저씨 자전거라고 비웃었다. 남편의 자전거를 타보겠다 결심한 뒤로 알고 보니 하이브리드 자전거란 산악용과 로드의 기능을 결합한 자전거란다. 이런 것을 타야 먼 길을 오래 달리거나 경사로도 조금 더 쉽게 올라갈 수 있단다. 당연히 내 것에 비해 바퀴도 크고 안장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자전거의 안장에 앉으면 짧은 내 두 다리가 대롱대롱 매달리고 얇은 바퀴는 흔들흔들 한없이 불안하다. 자전거 위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기 딱 좋겠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탈 때마다 체인에 내 종아리가 빨려 들어간다던가 시멘트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내 위에 자전거가 덮치는 상상을 하느라 바쁘다. 혹은 달려오는 자동차가 자전거 위에 있는 나를 밀치고 깔고 뭉개는 상상도 한다. 피는 얼마나 날까, 몇 바늘 꿰매야 할까, 뼈가 깨지지 않을까.
이러니 자전거 위에 폴짝 뛰어 올라가 중심을 잡는다 한들, 다시 폴짝 뛰어내려 착지를 한다 한들, 주행 중 속도를 내기는커녕 항시 브레이크를 잡고 세월아 네월아 흐느적흐느적 어어어 무서워 흑흑흑 내리고 싶어 엉엉엉 난 어떻게 해야 해 징징징... 특히 멈췄다가 다시 출발해야 하는 횡단보도만 보이면 저 멀리서도 뒷골이 쭈뼛거릴 정도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이렇게 높은 자전거를 타보니 주변 사람들의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말 갓 보조바퀴를 뗀 어린이의 자전거나 카카오 자전거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보통 타는 대부분의 자전거는 전부 핸들과 안장이 수평을 이룰 만큼 높이 위치해 있었고, 타는 이가 섰을 때 골반 혹은 허리쯤에 안장이 위치했다. 하긴 그런 자세여야 속도에서 오는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허리를 숙이고 자전거를 계속 빠른 속도로 탈 수 있겠다. 그래도 붙들고 묻고 싶다.
"안 무섭나요?"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자전거를 익숙하게 타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딸을 학원에 데려다주거나 서점이나 백화점이 있는 시내까지 편하게 긴장하지 않고 다니고 싶다. 그러다 날 좋은 아침이면 친정이나 시댁도, 친구 집도 한두 시간쯤 자전거로 달려갈 것이다. 50살이 됐을 때 결혼 20주년을 기념하여 7번 국도를 자전거로 달릴 정도의 실력과 체력이 되길 바란다, 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내가 50살에 7번 국도를 달릴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까 무서워도 타야 해."
남편은 그렇게 자전거가 타고 싶으면 우선 겁을 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래 봤자 자전거이고, 다쳐봤자 피부 좀 찢어지거나 멍드는 정도일 텐데 왜 그렇게 겁을 내고 긴장을 하냐 묻는다. 누가 보면 행글라이더나 번지점프라도 도전하는 줄 알겠단다. 자전거를 타다가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 하니, 운전하다가 죽을 확률이 자전거 타다 죽을 확률보다 훨씬 더 높을 텐데, 자동차는 높이가 없고 자전거는 높으니까, 높은 자전거가 더 멋있다고 낮은 건 진짜 얼마나 웃긴데.
나의 무의식에 멋짐을 세뇌시키기 위해 인스타에서 자전거를 검색해봤다. 코로나로 실내 운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자전거가 대유행이라더니, 정말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기똥차게 좋고 머릿결마저 우아한 젊은 아가씨들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높이에 안장이 위치한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린단다. 아침에도 밤에도 한강도 남산도 가리지 않고 달린단다. 멋있다. 멋있고 무섭다. 그래도 재미는, 있다.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아주 잠깐씩 무섭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그때 순간적으로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밤에 자려고 누우면 빨리 내일이 와서 또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음 날 자전거 앞에 서기만 해도, 이 높은 바퀴 위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무서워서 부들부들.
누가 도전이 아름답다 했던가.
나는 그저 겁나고 무섭다. 넘어질까 봐, 다칠까 봐, 아플까 봐 하기 싫다. 웬만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40년을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더니, 자전거 타는 것이 겁나는 것보다 못 타는 사람인 채로 흘러가버린 시간이 더 무서워졌다. 진퇴양난이다. 말로만 떠들어도 됐던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겨야 할 시간이 다다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다. 그래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늘도 자전거에 올라가 본다.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어렸을 때 이미 여러 번 생사의 고비를 넘어 본 경험 상 자전거를 탄다고 죽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