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소설 : 가가호호 사람이 산다
시작은 지난달 공원 산책길에 꽃무릇을 본 것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만발했구나, 어째 작년보다 더 많이 핀 것 같기도 하고 색이 조금 탁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느닷없이 등장한 닭 한마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꽃무릇이 피는 기간에는 사진작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데려오신 촬영용 닭으로 추정됐다. 그 틈에 끼어 이런저런 사진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와 김밥을 포장했다.
단골인 이 분식집은 두 명의 중년 여성들이 운영한다. 한 분은 절대 김밥만 마시고 다른 한 분이 계산부터 포장, 서빙, 그리고 김밥 외 다른 음식 조리까지 전부 담당하신다. 갈 때마다 나는 저 두 아주머니는 어떻게 만난 사이일까, 궁금해했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하시는데도 데면데면한 관계로 보였다. 수다는커녕 주문 메뉴처럼 꼭 필요한 말조차 쪽지로 주고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김밥 담당 아주머니가 부엌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그리고 "어? 어제 오셨던 손님이 지나가시네. 저분한테 할머니라고 부르니까 기분 나쁜 표정이셨어요. 호호..."라고 말씀하셨다. 이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2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꽃무릇과 분식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 시간이 꽤 재미있길래 아 그럼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개씩 써볼까, 생각했다. 그리고 쓰다 보니 브런치에 e북 형태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고, e북을 만들려면 10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목표를 짧은 소설 10개로 바꿨다.
나는 성격이 느긋하지 못해 일단 목표가 생기면 무조건 달리는 스타일이다. 특히 이렇게 수치상으로 뚜렷한 목표가 생기면 앞일 뒷일 다 제쳐놓고 무조건 10개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한다. 그 기간 동안 다른 그 무엇을 하기란 나에게는 무척 어렵다. 문득, 10개를 다 채울 때까지 꼼짝 안 하다가 의자에 눌어붙은 거북목 화석이 될까 겁났다.
중간중간 일부러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자전거는 아직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동 수단이라, 타면 긴장하고 머릿속은 완전히 비워지게 되어, 글쓰기에 대한 잡념을 다 버릴 수 있었다. 음악을 듣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걷기나 등산, 운전하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움직임이다. 덕분에 소재가 생각 안 나면 벌떡, 등허리가 아프면 벌떡, 우울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면 벌떡, 일어나 자전거를 탔다. 아마 자전거를 타러 다니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10개를 채우지도 못하고 거북목 화석이 되어 혼자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고지 스무 장 정도에 해당하는 글을 10개 쓰고 다시 쓰고 고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고 자전거는 250km 정도 탔다. (우왕...@_@ 방금 S헬스 기록을 보고도 못 믿겠다) 그렇게 길게 쓰고 오래 달리면서 내내 가족에 대해 생각했나 보다. 도대체 나에게 가족은 무엇이길래 나는 여전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 생각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다 썼다. 다 썼는데도 계속 붙들고 있게 될 것 같아 e북으로 발행해버렸다. 더 이상 수정이 불가능하다.
... 그래서 이 에필로그는 e북에 실리지 못하게 됐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