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다쳤다. 정확한 부위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손바닥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첫 번째 마디를 구부릴 때는 통증이 없지만 손가락 전체를 구부릴 때는 상당히 아프다. 어제는 밤이 깊을수록 욱신거림이 심해져 몹시 우울한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고 누워 가슴 위에 손을 다소곳이 놓아보아도, 큰 대자 모양으로 누워 손바닥을 천장으로 향하게 해도, 엎드려서 가만히 내 엄지손가락을 바라보아도, 모로 누워 왼쪽 어깨부터 적당한 압박을 가한 채 지그시 눌러줘도 욱신욱신 쑤셨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손가락 통증을 검색해봤다. 조조강직, 류머티즘 관절염, 30~50대 여성, 완치 불가 어쩌고 저쩌고. 그러고 보니 한동안 검지 손가락 마디도 아팠다. 아니 그전에 복숭아가 떡애기였던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열 손가락 마디 전체가 굳어 한참 동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풀어줘야 했었다. 이게 류머티즘 관절염의 초기 증상이었을까. 초기에 관리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호소하며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는 글을 읽었다. 그래, 난 오늘 밤에 정말 우울했다. 관절염보다 나의 우울이 집안 내력일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우울하게 만드는 모든 가능성을 빨리 차단해야 한다.
귀찮더라도 내일 아침 당장 정형외과에 가봐야겠다.
매주 일요일 아침은 화분에 물을 주는 시간이다. 꽃이 많이 피거나 고사리과 화분은 5일에 한 번 주지만 이파리 식물은 1주일에 한 번, 난은 2~3주에 한 번 준다. 식물 자체가 갖고 있는 특징이나 그들을 품고 있는 흙의 성격까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는 내 생활 리듬에 식물을 맞추었다. 식물을 나에게 적응시키고 싶었다. 대신 나도 일조량과 습도, 바람 등을 느끼면서 매일 들여다본다. 요즘처럼 온도, 바람, 햇빛 모두 적당한 봄날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적당히 흙을 적실 정도의 물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어제는 못했다. 밤이 돼도 물을 주지 못하니 식물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 해 괴로웠다.
내일 아침 당장 화분에 물을 주어야한다.
일요일에 물을 못 준 이유는 자전거를 타러 나갔기 때문이었다. 아직 공원과 탄천에 사람들이 덜 붐빌 아침에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서툴고 겁이 많은 나는 자동차도 자전거도 무섭지만 무엇보다 걷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내가 그를 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9시 반경 집을 나섰다. 그리고 10시 32분에 1차, 10시 45분에 2차로 넘어졌다.
1차로 넘어진 것은 목표였던 6km지점을 턴해서 돌아오던 탄천길이었다. 탄천의 자전거 도로가 끝나고 공원길과 합류되던 지점이었는데 앞에서 산책하던 사람을 피하려고 갓길로 접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갓길은 일반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벽돌, 아니 돌덩이로 장식, 아니 대강 메꿔져 있는 바닥이었다. 자전거가 그런 길로 접어들었을 때 그렇게 통통통 튕기다가 우당탕퉁탕 넘어질 줄이야. 만화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뒤따라오던 남편도 놀랐다. 속도를 줄이고 멈추면 되지 도대체 왜 이 길로 들어왔냐 한다. MTB 자전거도 이런 길은 못 갈 것인데 하물며.
무릎과 정강이를 감싸 안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에게... 잔소리라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려 공원을 절반쯤 지나가던 중 갑자기 뒤에서 오던 남편이 잠깐 멈춰 보라 한다. 자전거를 우측 화단에 붙이고 오른발을 경계석에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불행히도 내 짧은 다리는 경계석에 닿지 못했고, 그대로 몸이 기울어 또다시 정강이를 경계석 모서리에 부딪치며 자빠졌다.
"야, 너 또 쪼인트 까였어? 아니 도대체 왜에에에에??? 거기서 왜 넘어져???"
혼비백산 정신이 나가 있는 사람에게 왜 넘어졌는지 이유를 묻다니.
도로에서 가장자리에 너무 붙어 달리면 바퀴가 무슨 틈(아스팔트와 그 테두리 사이 뭐라던데)에 끼어 넘어질 수밖에 없으니 좀 안으로 들어가서 달리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내가 딱 그 틈으로 들어가 중심을 잃고 기울더란다. 다리에 힘이 빠진 상태라 버티지 못하고 넘어진 것 같단다. 문제는 이때인지 그 전인지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다쳤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부만 까져서 피가 나는, 단순 찰과상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아파온다. 시퍼렇게 멍이 든 내 정강이나 무릎과는 비교할 수 없는 통증이다.
일단 오후에 헬맷을 사 왔다.
엄지손가락은 "잡기와 쥐기의 안정성 및 강도가 유지되고, 충분한 운동성이 있어야 하며 주변의 해로운 접촉을 인지하는 감각 따위(네이버 국어사전)"가 필수인 조직이다. 인간의 킬러앱이 엄지손가락이라는 얘기도 들은 기억이 있다. 엄지 손가락이 다른 네 손가락과 다른 방향으로 달림으로써 물건을 보다 정교하게 잡고 힘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 통증은 아침에 일어나 영양제 캡슐을 포장지에서 빼내기를 시작으로 생활하는 모든 순간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복숭아의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물병에 물을 싸주고,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감고... 절정은 유산균 봉지를 뜯는 일이었다. 이런 손으로는 길이 10cm 무게 2g 정도 되는 비닐 포장지를 고정시킬 수도, 고정된 비닐의 끝을 잡고 뜯어내는 일도 할 수 없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니 도대체 거기서 왜 넘어져??? 왜에에에??'
남편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 들린다.
일단 화분에 물을 주어야 한다. 물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오른손만 사용하여 물조리개에 물을 담으려다 보니 가득 담을 수 없어 평소보다 배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만 하루 만에 물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바가지를 들고 물을 준 순서대로 종종거리며 물 받침대에 고인 물을 빼주다가 꽃이 가득 피었던 화분 아래로 꽃잎이 잔뜩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양손을 적극 활용할 자신이 없어 진공청소기는 포기하고 대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안 아픈 손으로 꽃잎을 쓸어 모았다. 아픈 손의 손바닥을 동글게 만들어 그 안에 꽃잎들을 담았다. 검지와 엄지 손가락은 족집게처럼 먼지 같은 꽃가루까지 손바닥 바구니 안에 담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영 아무 일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청소기를 못 쓰는 대신 손이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되었다. 손 위에 소복하게 쌓인 노란 꽃들이 예쁘다. 문득 글이 쓰고 싶어 져 컴퓨터를 켰다. 글을 쓸 때는 왼손 엄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병원에 가지 말까.
검지와 엄지손가락은 떨어진 꽃잎을 줍는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