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에 탄 소녀>
세상은, 사회는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도전과 희망이 되는 곳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절망과 분노로 가득찬 공간이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돈이 최고인, 학벌이 최고인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몇 년 전 ‘갑질’이라는 단어가 영국의 옥스퍼드사전에 오를 정도니 할 말이 더 필요할까. 50이 넘은 나도 영화의 20살 주인공처럼 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서 못할 뿐이다. 이런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 대한민국에서 나 뿐일까.
혜영(김혜윤)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20살 여자다. 그 불만과 분노는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혜영은 폭행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아직 형법의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겨우 교도소행을 면한다. 중국집 사장인 아버지(박혁권)는 빚에 허덕이다 딸 혜영에게까지 돈을 빌린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남의 차를 훔쳐 타다 사고를 내고 뇌사에 빠진다. 피해자들은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한다. 집까지 날리게 되고 아버지 빚까지 갚아야 할 처지가 된 혜영은 아버지가 왜 남의 차를 훔쳐 운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피해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혼자 거칠게 알아낸다. 그리고 절벽 끝까지 몰리게 된 혜영은 불도저를 몰고 세상을 박아버린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박이웅 감독은 적지 않은 나이라서 그런지 우직하게 영화를 몰아붙인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세상을 향한 분노와 절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그래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 작품에서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방식을 택한 감독의 의도가 좋았다. 세상이, 사회가 얼마나 나를, 우리를 절벽 끝으로 몰고 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주인공의 태도나 행동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가 예의가 없다. 상대에 대한,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영화다. 주인공인 혜영은 어른들한테도 막무가내로 반말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혜영의 아버지도 자식들을 지켜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능을 넘어 무책임하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만든 것은 결국 돈 있고 백 있는 사람들의 욕심이었다. 중국집 건물 주인(정치인)은 권리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아버지 본진을 속인 것이다. 본진이 몬 차에 치인 사람들은 일방적 피해자라며 혜영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한다. 자신들의 책임도 반이지만 그것을 속인다. 또한 혜영은 그만 둔 학교 친구에게 폭행을 하거나 당하는 처지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에서 제정신을 갖고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불평등과 속임수, 불친절로 가득 찬 세상에서 혜영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도 따뜻한 마음으로 친절하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주인공 혜영처럼 분노와 절망을 안고 불도저로 이 더러운 세상을 밀어버려야 할까. 조금만 배려해주고 살짝 손을 내밀어주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텐데 세상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들의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죽음으로 내몬다. 속인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런 세상에 대해 감독은 소리친다. 불도저로 확 밀어버리라고. 그래서 영화 보면 속이 후련하다. 나이와 상관없다. 이 대한민국은 20대 젊은이들에게만 불친절한 것이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권력이 있건 돈이 있건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떠민다, 죽음으로. 죽지 않고 이렇게 얌전하게 살고 있는 내가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하긴 전 세대에 걸쳐 자살률이 세계 최고이니 언젠가는 나에게도 해당될 말인가!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여서 투박함이나 디테일이 부족한 부분은 있다. 깊은 울림도 조금은 부족하다. 역으로 그래서 좋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말미 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다음 작품에서 더욱 긴밀하게 풀어내길 바란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김혜윤의 거친 연기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