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인문학, 그림책 마을탐방
3부. 작은 일탈, 색다른 일상- 그림책 마을 탐방과 찾아가는 인문학
1) 그림책 마을 탐방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90년대 이후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벌어져 상위 1%가 하위 99%를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일반 서민이 이 사회의, 나라의 주인이라는 제도인데 자본주의는 자본의 논리를 우선으로 하다보니 국가의 주인인 서민을 쫓아내는 제도다. 즉, 재개발의 경우 분담금을 내지 못하는 원주민은 쫓겨난다. 그래서 재개발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서민은 강제로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까지 받는다. 그러다 자신이 평생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부산에서 ‘물만골’이라는 곳이 그렇다. 물만골 달동네 아래로는 50층짜리 신식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자본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위계 지우지며 공존하는 참 희한한 괴물이다.
부산 물만골 달동네까지 재개발붐이 일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쫓겨날 위기에 놓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봉사와 연대로 겨우 지켜냈다고 한다. 지금은 생태마을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그곳에 뜻있는 사람들의 십시일반 도움으로 ‘인문학연구소 공감’이 탄생했다. 물만골 생태마을에서 ‘인문학연구소 공감’이 첫 문을 열었다.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가 있어 그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감상과 이 마을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영화 ‘1번가의 기적’>
※ 시놉: 재개발의 임무를 띠고 에쿠스를 끌며 폼나게 1번가에 나타난 건달 필제(임창정)는 피도 눈물도 없이 마을 사람들을 밀어내려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강제로 철거동의서를 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아이에 막히고 여자 복서 명란(하지원)과 마을 사람들에게 막힌다. 명란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정두홍)와 동생을 돌보면서도 동양 챔피언 복서가 되기 위해 꿈을 다해 노력한다. 필제는 처음 의도와 다르게 명란과 마을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다.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마을에 변기를 설치하고 수돗물을 나오게 하고 인터넷을 설치한다. 그러자 아이들에게 슈퍼맨으로 통하게 된다.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야단을 맞고서야 뒤늦게 필제는 강제동의서를 받으려 하지만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 동화된 필제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동네를 지키려 한다. 명란과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고 꿈을 이룰 수 있을까.
※ 영화의 장점과 특징:
윤제균 감독 영화는 대부분 코미디다. 감독의 모든 영화에서 코믹적인 부분이 있거나 또는 감독 스스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다. <1번가의 기적> 또한 당연히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포복절도하는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빙그레 웃게 하면서 의미와 감동을 주고자 한 의도가 역력하다. 이 영화는 부분적으로 조폭 코미디, 철거민을 다루는 사회문제 영화, 권투를 다루는 스포츠 영화이기도 하다. 즉 여러 요소를 결합해 우리 삶에 대해, 사람의 웃음과 울음과 고통과 슬픔과 기쁨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게 하는 영화다. 그래서 쉽게 낙관할 수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삶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런 메시지를 위해 감독은 영화 곳곳에 패러디(패러디는 포스트모더니즘(상호텍스트성, 탈중심주의)의 한 요소로 ‘모방’하는 것이다. 적대감과 친밀감을 그 특징으로 한다)를 장치한다. <분노의 주먹>, <목포는 항구다>, 이동통신 광고 등을 패러디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패러디를 통해 통찰을 준다. 두 아이가 암에 걸린 할아버지께 드리려고 먹지 않은 토마토로 부자 아이들에게 맞을 때, 거기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가슴 먹먹한 슬픔이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 슬픔을 유쾌하게 풀어버린다.
영화는 달동네 철거를 다룬 영화지만 어둡지 않다. 아이들의 소박함, 자판기 남자(이훈)와 가난한 여인(강예원)의 따뜻한 사랑, 아버지를 위하는 명란의 깊은 마음,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아이의 꿈이 그러하다. 철거 깡패의 힘에 부쳐 결국 죽거나 쫓겨나는 내용이지만 그 슬픔과 아픔 안에 삶의 진한 페이소스가 깊이 녹아있다. 그것이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은 판타지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 캐릭터 분배도 아주 성공적이다. 캐릭터 분배를 성공적으로 함으로써 영화 주제를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은 진짜 거기에 사는 아이들 같다.
※ 영화의 단점:
그러나 영화는 너무나 진부하고 전형적이다. 전반은 웃음, 후반은 감동이라는 공식 그대로 간다. 이 말은 판자촌 철거민의 현실을 내밀하게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달시 파켓은 진부한 영화는 웃음과 감동을 위해 화면과 갈등을 조작하고 과장한다고 했다. 이 영화가 그렇다. 플롯이 전형적이고 캐릭터 또한 진부하고 전형적이다. 과장된 어법이자 동화적이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토마토 장면과 노인 암 장면과 꼬마의 글라이더 장면, 1번가 놀이동산 장면 등이 그렇다. 억지 웃음과 감동을 주려고 작정한 것이다. 그러니 신파일 수밖에 없다. 어떤 평론가는 “영화가 행하는 폭력”이라고까지 말했다. “뭉클, 따뜻, 감동 ⇔ 교훈, 신파, 억지” 어떻게 봐야 할까?
※ 영화란 무엇인가? 리얼리즘 문학에 대하여※
‘K 컬처’가 세계 대세다. 이럴 때 한국(K) 휴머니즘 영화란 무엇인가? 오락영화란? 재미만 있고 억지 웃음과 감동만 주면 그만인가?
영화는 서사구조를 가진 문학의 한 장르이자 사회의 반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 즉 허구를 통해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허구적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사회를 반영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깔깔거리며 웃는 이야기로 사회를 반영해야 하는가, 아니면 진지하게 슬픔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반영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리얼리즘 문학작품은 끊임없이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혁신하며, 우리들 삶을 새로운 시야로 포착할 수 있는 힘을 건넨다. 즉 리얼리즘 문학은 삶의 일면만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단편을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본질적 객관적 규정들을 올바른 비례관계 속에서 반영”함으로써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삶의 총체성, 내포적 총체성).
다른 말로 리얼리즘의 정신은 절망이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희망을 말한다. 기쁨보다 슬픔이 더 삶을 깊이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 <인생은 아름다워>, <설국열차>, <파리대왕> 등
한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소설은 도시빈민 노동자들의 삶을 부유한 자들의 삶과 대비하면서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들의 소망이 무엇인지, 이러한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각 세대 간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 노동의 의미와 빼앗는 자에 대한 항거, 산업화에 의해 철저히 수탈당하는 도시빈민 노동자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세계는 두 개의 대립적인 세계가 서로 공존하는 곳이라 말한다. 두 개의 대립적인 세계는 단순히 중립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으로 가치판단이 게재된 대립으로 존재한다. 난장이 가족인 ‘우리 다섯 식구의 삶’은 지옥에서의 삶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공간적인 대립을 동반한다. 개천을 경계로 깨끗한 주택가와 대비되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도시빈민촌이라는 공간으로 대립되어 주제를 더욱 강화한다. 소설 결말에서 작가는 아버지 김불이가 끝내 자살을 택하게 함으로써 아버지 세대의 현실 극복은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삶의 터전이었던 집이 헐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결국 현실을 도피하게 된다. ‘현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이 있는 죽은 땅’이기 때문에 이 ‘죽은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고자 하는 아버지 세대의 꿈은 꿈으로만 끝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절망과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반성하고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리얼리즘 문학 또는 영화의 진면목인 것이다. 허구를 잘 살리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우리의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천민자본주의인 우리 사회를 공부하고 성찰하며 서로 연대의 힘을 길러보자!
지금 이 물만골 마을에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서로 연대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것에 필요한 사상이 노자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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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 도덕경 ◎
ㆍ道可道非常道 名加名非常名(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 말할 수 있는 도는 상도(불변의 도)가 아니고,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은 상명(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ㆍ貴以賤爲本(귀이천위본), 高以下爲基(고이하위기)
→ 귀함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아래를 기본으로 삼는다.
ㆍ無名 天地之始(무명 천지지시), 有名 萬物之母(유명 만물지모)
→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요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다.
ㆍ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 계곡의 신은 죽지 아니하니 이를 일컬어 현묘한 암컷이라 한다. 현묘한 암컷의 세계는 천지의 뿌리라 부른다.
※ 노자는 도를 우주만물의 생성, 변화, 소멸을 결정하는 최고의 근본원리로 파악했다. 노자사상의 관심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인데 여기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노자의 도는 인위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부정하고 자연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를 때 세상 만물이 평온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즉 노자철학은 인간의 순박한 심성을 보존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철학 사상이다. 한 마디로 ‘무위자연사상’이라 할 수 있다.
노자의 자연관 내지 세계관은 순환론적 세계관으로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계가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한다는 사고이다. 노자에 따르면 ‘나’는 ‘나’이외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나’속에 ‘나’아닌 것이 들어 있고 ‘나’아닌 것 속에는‘나’가 들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열린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의 문제는 배타적 중심주의에 있다. 자연이나 동물보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배타적 인간중심주의와 동양 또는 황인종(혹은 흑인종)보다 서양 또는 백인종이 우월하다는 서양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결과 세상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세계를 지배하고 문명을 발달시켜왔다. 식물과 동물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필요 이상 무차별 죽어간다. 이는 곧 인간과 자연을 나누고 인간과 인간을 차별하여 식민지 쟁탈과 자연파괴, 인종말살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노자는 처음부터 탈중심주의와 일원적 세계를 강조한다. 노자의 도는 말해질 수 없으며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임을 강조한다. 유무, 고저, 장단, 선악, 미추 같은 개념은 서로 꼬여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우주의 존재 원칙이자 법칙이고 이 이름을 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개념은 노자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의 핵심 사상 무위(無爲:함이 없음)는 불위(不爲:하지 않음)가 아니다. 바로 자연의 이치가 무위, 무욕, 비움을 뜻하는 것이며 인간도 그런 자연의 이치를 따라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노자의 무는 유의 원인이 아니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이고도 존재론적인 표현인데, 무가 유를 창조한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자기 안에 유가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즉 허공의 무가 그릇과 바퀴살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릇과 바퀴살의 유용함은 그것이 비워있어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릇과 바퀴살을 만든 원인은 외부에 있는 장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무라는 것이다. 집이 집이 되는 존재론적 근거는 그 집을 생산한 목수(집이 집이 되게 한 원인이 됨)가 아니라, 그 집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허공인 것이다. 우리가 집을 영혼의 안식처로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노자는 ‘천하에 금지가 많으면 백성은 가난해지고, 법령의 조목이 많으면 도적이 많아진다’고 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이전보다 전쟁과 테러는 몇 배로 증가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면서 죽어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인구대비 재소자들 비율은 세계 최고다. 온갖 법령과 금지가 만들어 낸 결과물들인 것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근거인 무위자연 사상이 지금 왜 필요한지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