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나의 일상, 세상 속의 나 – 세상 읽기

♣ 나의 인생 가게

by 방정민

4부. 나의 일상, 세상 속의 나 – 세상 읽기


♣ 나의 인생 가게

평생 공부만 한 내가 가게를 하게 될지는 몰랐다. 내 가게는 그 옛날 정말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5원 짜리 동전 하나를 쥔 손을 수줍게 내밀면 내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며 10원짜리 눈깔사탕 하나 주던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이 깃든 곳도 아니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며 자식 셋ㆍ넷 키운 어느 부부의 삶의 터전이나 보람도 아니었다. 마흔 아홉까지 뒷바라지를 했건만 그래도 스스로 밥 벌어먹지 못하는 지지리도 못난 남동생이 사회 낙오자가 되어 자살할까봐 누나들이 해준 일종의 내 목숨값이었다.


욕심도 없었다. 한 달 100만원만 순이익이 나오면 죽지 않고 살 수는 있겠지 싶어 시작한 가게였다. 2019년 당시 막 유행하던 무인카페였다. 무인이니 알바생을 쓸 필요가 없어 인건비도 들지 않고 내 본업을 할 수 있어 나에게 정말 딱이었다. 하루에 한 번 청소만 해주고 재료만 채워 넣어주면 된다고 해서 시작한 가게였다. 체인점이었는데 본사에서는 최소 월 3백만 원은 벌 수 있다고 했다. 본사 말을 다 믿은 건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여기저기 알아봤다. 장소 정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몫이 좋으면 월세가 턱없이 높고 월세가 낮으면 장소가 별로였다. 특히 커피는 물장사라 장소가 중요한데 두 번이나 내가 하려고 한 장소를 본사가 거절했다. 점주가 하고자 하는 곳에 본사가 현지답사를 해 커피 하루 최소 100잔(월 300만원)을 팔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면 계약을 하고 체인점을 열어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나도 모르게 본사의 시스템을 믿게 되었고 의욕 넘치게 내 인생에 없는 가게를 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연 카페는 왕복 8차선 도로를 끼고 있고 30초 거리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바로 옆에는 지하철이 있어 장사가 잘 될 줄 알았다. 안 되어도 본사 주장의 2분의 1인 하루 50잔만 팔아도 최소 월 100만은 벌 수 있겠지 하는 욕심 없는 안도감으로 무인카페를 시작했다. 그런데 욕심 없는 내 마음조차도 현실에겐 욕심이었나 보다. 딱 한 달만 순이익이 조금 나왔고 두 달째부터 곤두박질쳤다. 하루에 커피 50잔이 안 팔리더니 개업 세 달부터는 하루 30잔, 그 후로는 하루 20잔 정도만 팔렸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가 터졌고 급기야 하루 10잔 전후 팔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다 계약 기간 5개월을 남겨두고 결국 가게를 폐업했다. 1년 7개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두 세 시간 정도 청소하며 일 했건만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빚 5천만 원과 자격지심, 그리고 우울증만 남았다. 가족들, 특히 누나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존재인가,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되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내가 뭘 그리 인생을 잘못 살았는지 인생은, 사회는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니 기회 따위는 필요 없다. 정말 먹고 살 정도의 벌이만 주면 욕심 없이 살 수 있는 나에게 사회는 그 정도도 해주지 않았다. 나름이라는 말이 패배자의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정말 나름 열심히 살았다. 다들 놀기 바쁠 때 대학 들어가자마자 선배와 교수님 따라다니며 공부에만 열중했다. 5시간만 자며 5시에 일어나 6시에 집에서 나와 7시에 학교 도서관에 제일 먼저 도착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강의 듣고 공부하며 밤 9시에 도서관에서 나왔다. 고 3도 아닌 대학생이 별보기 운동하며 공부했다. 그렇게 학사에서 석사, 박사, 그리고 다시 박사와 박사를 나왔다. 박사 수료 두 개, 박사 졸업 하나, 즉 철학ㆍ 문학ㆍ 문학치료학ㆍ 미학 이렇게 인문학 공부를 했고 쓰리(three) 박사가 되었다. 돈이 없어 유학을 가지 못한 한 때문에 나의 공부에 대한 진념은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서까지 계속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사회는 나에게 최소한의 밥벌이도 주지 않았다. 내가 못난 탓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회는 너무 냉혹했다. 인문학을 30년 평생 공부한 나에게 월 백여만 원의 벌이만 허락했다. 모든 인문학 강사의 일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인문학 전공 대학강사의 처절한 현실이다. 학생은 줄고 대학은 너무 많으니 대학 강사의 설 자리는 더욱 비좁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돈 안 되는 인문학 과목과 학과는 계속 폐강되어 갔고 그 속에서 인문학 전공 강사의 생존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사회는, 뉴스만 틀면 청년 세대들의 취업 고충만 말한다. 취업이 안 되고 좋은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것이 마치 청년만의 일인양. 나는 IMF 원년 세대다. 1997년 12월 대학 졸업 직전 IMF가 터졌고 모두가 생존에 허덕였다. 자살자도 많았다.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거나 있지도 않았던 비정규직에 취업할 수밖에 없었거나 실업이 일상이 된 시대의 원년 세대인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 대학강사는 옛날부터 비정규직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내 친구들이, 내가 이제 청년을 넘어 중년이 되었다. 한국 나이 51세(2021년 당시). 한 번도 정규직에 취업한 적이 없고 많을 때는 월 이백여만 원, 적을 때는 월 육십여만 원 겨우 벌어먹고 사는 중년인 나는 사회 루저, 낙오자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나이 50이 넘었건만 나의 힘으로 당당히 사회에 발을 딛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지만 아직 80대 중반의 노모와 누나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취업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대학 졸업하는 20대 중반에게 월 100만원 짜리 직장에 다니라고 하면 아무도 안 다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닌다. 그것도 감지덕지라며. 그렇다보니 노후는 될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80대 중반의 노모가 당신의 돈으로 당신의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내 노후 걱정으로 내 보험을 넣는다. 50대 중반의 누나들 도움으로 박사 세 개를 했는데, 그것으로도 내 밥벌이를 못해 누나들은 무인카페라는 가게를 열어주었다. 제발 이 가게로 내 밥벌이는 내가 알아서 하라고. 그런 가게였는데 2년 계약도 못 채우고 결국 망한 것이다. 내가 평생 그토록 공부하고 일한 대학강사일은 내 보금자리, 내 밥벌이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가게만큼은 나의 소중한 작은 밥벌이가 되어주길 진정 바랐다. 어릴 적 추억과 정이 깃든 장소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 일상과 누나의 도움 없는 자립의 밥벌이만, 삶의 터전만 되어 주길 바랐으나 그마저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의 생존은 처절했다.


깊은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다. 자살충동까지 느껴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이렇게 나는 살아야 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왜 태어났는가! 온갖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건물 옥상에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찔했다. 무서웠다. 자살한 사람은 얼마나 용기가 있어 뛰어 내렸나 싶다. 그래도 바보같이 아직 죽고 싶지는 않은 것인가. 죽을 용기로 살라고 한 맹자의 말만 쓸데없이 떠오른다. 참 비겁하다. 이런 내 마음을, 상태를 아시는지 한동안 어머니한테 전화가 매일 걸려왔다. ‘그깟 가게가 무슨 소용이냐. 5천만 원 날려 먹어도 상관없다. 니는 열심히 살았다. 니 탓 아니다. 내 새끼 용기 내라.’고. 누나들도 거든다. 내 잘못 아니라고, 힘내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다 펑펑 울었다. 흙빛 가득 불타는 노을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이런 가족 덕분에 나는 살아간다. 그래도 참 못났다. 그래서 정말 힘겹다. 그러나 한 번쯤은 잘 돼서 보답해드리고 싶다. 아니 보답은 둘째 치고 내 힘으로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50이 넘어서도 갈팡질팡 이다. 도저히 보이지 않는 길, 6개월 전 폐업한 가게는 내 실패의 연속된 길이다. 이 실패가 제발 성공, 아니 삶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의 인생가게는 실패로 끝났지만 내 인생은 아직 진행중이다. 벌써 50이 넘었지만 그래도 인생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 옛날 품었던 나의 꿈과 열정, 그리고 희망… 시간이 많지 않지만 훗날 뒤돌아볼 때 ‘잘 해 왔다고, 열심히 살아 왔다고’, 지금의 아픔이 또 다른 희망으로 성숙되길 바라며 다시 한 번 힘을 내본다. ‘6개월 전 폐업한 내 생애 최초의 가게는 이런 내 시간과 공간이 되어주길…’ 억지로 이렇게 위로하며 나는 또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참 지친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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