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결코 예찬할 수 없는

by 방정민

자살, 결코 예찬할 수 없는


살고 싶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삶에 대한 공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섰다. 삶에 대한 의지 상실, 즉 죽음에 대한 예찬이 늘어나고 있었고 죽음 그 너머에 대한, 아니 삶 이전의 죽음에 대한 과학이 믿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 너무 무료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 부조리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상실해서.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랴. 누구의 잘못이든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살면 살수록 죽을 수밖에 없는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꾸 죽음의 절벽 아래로 밀어내고 있었다. 누구였을까.

세상 모든 것이 어쩌면 경계에 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도 치매와 정상 그 경계에 있다. 미루고 미루다 거금을 들여 뇌 MRI를 찍었는데 담당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치매와 정상 그 경계에 있다고. 치매를 판정받기 위해서는 뇌 MRI 사진을 한번만 찍는 게 아니었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위해서 한 번, 혈관성 치매를 확인하기 위해서 또 한 번 그렇게 이틀에 걸쳐 두 번 뇌사진을 찍고 알츠하이머, 혈관성 모두 치매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간단한 약 처방이 전부였다. 이 정도 진단을 받으려고 이틀에 걸쳐 그 돈을 쓰다니 돈과 시간이 아까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전과 다르게 정상적인 대화가 점점 힘들어졌다. 어쩔 땐 멀쩡하게 대화를 할 수 있지만 또 어떨 땐 고집과 우기기가 너무 심해 대화가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깔끔하고 공중 도덕관념이 뛰어났던 어머니가 지금은 완전 딴 사람이 되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잘 흘리고 흘린 음식을 줍지도 않는다. 바닥을 닦지도 않는다. 거기다 길거리에 작은 쓰레기 하나 버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혹 누가 버리는 것을 보면 나무라던 어머니가 이제 스스로 휴지를 버리곤 한다. 이 정도 휴지는 버려도 된다면서.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새삼스럽기보다 약간 무섭다. 그리고 서글프다. 이런 본인의 모습을 어머니는 알고 있어서 그런지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말한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인생 그만 살고 싶다고 한다. 치매를 빙자한 자살에 대한 동경인지 삶이 진정 진절머리 나 성격이 변한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분명 삶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죽음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이승이라는 살아온 많은 날들과 저승이라는 살아갈 적지 않은 날들의 그 경계에서 두 눈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의 처연함이, 세월의 무상함이 어머니를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중년이 된 나도 부지불식간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모든 건 돈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파트를 팔고 삼십 년이 넘은 허름한 빌라로 이사 온 것도, 내가 원룸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것도 다 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못난 아들 공부시키느라, 그것도 돈 안 되는 인문학 박사공부를 시키느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이사 왔고, 나는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버는 이 시대 불가촉천민 인문학 대학강사로 월세 낼 돈도 못 벌어 결국 원룸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사는 빌라로 이사 왔다. 아니, 정확히는 능력부족으로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늙은 캥거루족이 되었다. 그나마 천만다행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긴 매달 나오는 연금 팔십만 원 덕분에 어머니와 나 둘은 겨우 죽지 않고 살고는 있다. 이것도 모두 돈 때문이다. 돈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이런 상황, 못난 아들과 대면하고 싶지 않아 어머니는 치매와 정상 그 경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강의가 없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그날도 강의가 없어 늦은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한 후 마루 같지 않은 마루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를 살짝 보는데(참고로 워낙 좁은 빌라라 나와 어머니의 동선이 독립적이지 않아 웬만한 곳에서 어머니를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작은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동안 화분 하나를 보더니 화분의 꽃줄기를 뚝 꺾어버리는 것이다. 꽃을 죽인 것이다. 나는 순간 놀라 어머니께 따지듯 물었다.

엄마, 왜 꽃을 죽여요?

죽은 꽃이야.

죽은 꽃이라뇨. 살아 있었는데.

나처럼 늙어서 곧 죽을 꽃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아 있는 생물을…

모든 것은 죽어. 죽음이 근원이야. 삶은 의미 없고. 사람이든 꽃이든 가야할 때 가야 세상이 돌아가는 거야.


따르르릉!

어, 오랜만이네. 할 말 있다는 문자는 뭐야? 무슨 일 있어?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당신도 참 딱하다. 내 사정 다 알면서. 내가 돈이 어디 있어. 거기다 최근 엄마가 치매증상이 있어 없는 돈 MRI 찍는다고 다 썼어… 근데 어디에 쓰려고?

아니, 됐어. 혹시나 해서 전화해봤어.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인지 알아야 내가 빌리든지 훔치든지 마련해서 주지.

합의금이 필요해서.

무슨 합의금?

애가 오토바이 사고를 냈는데 우리 애 과실이 커서.

무슨 사고를 어떻게 냈기에… 어휴! 내가 애 확실히 통제 못할 것 같으면 니가 애로부터 독립하라고 했지. 그게 모두 사는 길이라고 … 휴, 말을 말자.

돈 줄 수 있어, 없어?

합의금이 얼만데?

삼백.

나는 끝내 그녀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줄 돈도 없었지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만을 위해서면 어떡하든 돈을 마련해 주었겠지만 그녀의 아들을 위해서는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사고뭉치였다. 내 시각에서 보면. 공부도 싫어하면서 대학에는 왜 가려고 하는지. 요즘 대학 나와 봐야, 그것도 지방의 사립대학 나와 봐야 아무짝에 쓸모없다. 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인문학 박사학위를 가지고도 교수는커녕 강사자리도 없다. 인문학이 특히 그렇기는 하지만 반드시 인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지방의 사립대학이 없어진다는 말이 나온 지도 벌써 수년이 넘었다. 그녀의 아들도 문과체질이라 한 지방사립대 인문학과에 들어갔는데(요즘 지방 사립대학은 전교 꼴찌해도 수시로 입학할 수 있다), 대학 들어가서도 공부는 안 하고 양아치 같은 짓만 골라서 하더니 또 오토바이 사고를 낸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오토바이 사고를 내 내가 굉장히 혼낸 적이 있다. 그때는 백여만 원 정도의 합의금이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때의 세 배라니 어이가 없다. 정신 못 차리는 놈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정신 못 차린다.

사실 그녀와 헤어진 것도 몇 년 전의 오토바이 사고 건이 큰 이유였다. 그렇게 타지 말라고 했는데 아이는 나와 그녀의 말도 안 듣고 계속 오토바이를 탔다. 물론 누적된 갈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겠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아이뿐만 아니라 그녀와 크게 다투었고, 급기야 대학 문제로 폭발해 갈라섰다. 공부에, 대학에 뜻이 없으면 굳이 대학 갈 필요 없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돈 잘 벌며 살 수 있다고 했더니, 그녀는 내 자식이 아니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며 나를 오해했고 끝내 나와 대판 싸웠다. 내 친자식이라도 공부에 뜻이 없으면 대학에 안 보낼 거라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내 자식 네 자식 하면서 이렇게 싸울 바에야 같이 살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그녀의 아들은 무뚝뚝하고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나도 그에게 살갑지 않았고 엄했다. 내 시각에서는 그랬지만 그의 시각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나의 자식도 키우기 힘든 세상 남의 자식 키우기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도 돈 못 버는 의붓아버지라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튼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아들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했고 결국 그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렇게 대학에 가서도 그는 툭하면 결석했고 아주 가끔 강의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의 습관대로 엎드려 잤다. 요즘 대학은 고등학교처럼 학생이 대놓고 엎드려 자도 아무 소리 안 한다. 심지어 게임을 해도 그 누구도 아무 말 안 한다. 나처럼 야단쳤다가는 강사가 큰 곤욕을 당한다. 한 번 나에게 야단맞은 학생이 강의 중 문을 꽝 닫고 나가서는 학과장에게 일러바쳤고 학과장은 학장에게 일러바치고 결국 학장에게 불려간 나는 야단맞고 그 학기 말에 잘렸다. 몇 년 전 그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번 학기도 불안하다. 느낌이 그렇다. 학생이 갑이고 정의인 게 대학현실이다.

전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직장도 좋지 않고 돈도 못 버는 나에게 끝까지 관심을 보이는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내가 만난 여자는 모두 남자의 돈을 밝혔다. 여자는 나이 들면 철저히 현실적인 존재가 된다. 특히 결혼 즈음의 여자는 남자의 돈만 밝히는 동물로 변해간다. 최소한 내 경험은 그랬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수도 없이 맞선과 소개팅을 봤지만 나와 결혼하겠다는 여자는 없었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결혼했다. 그녀도 아마 애 딸린 유부녀에 가난한 처지가 아니었으면 나와 결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 둘은 그렇게 만났고 헤어졌다. 그런데 꼭 사랑은 현실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비슷한 처지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칸트의 윤리대로,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현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대한 경지를 달성할 수도 있었다. 나와 그녀가 그 위대함을 실천했다.


그녀와 나는 이혼했지만 친구처럼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 둘이 정말 싫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아메리카스타일이라고 농담하는데 우리 둘은 서로를 진정 불쌍히 여기며 사랑을 초월해 삶을 위로해준다. 드라마, 영화에서는 사랑이 위대하고 고결한 것으로 나오지만 살아보니 정말 사랑은 별 것 없었다. 서로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서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일방적인 연민이 아니라 쌍방의 연민, 진실로 서로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진짜 사랑이었다. 그 연민이 위태로운 우리의 현실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시작이야 어떻게 되었건 현실이야 무엇이건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우리는 서로 꼭 붙잡고 있었다. 위로하며 서로 꼭 붙잡고 있지 않으면 현실은 우리를 갈라놓고 삼켜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헤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 문제다. 삶을 죽이고 나를 죽이고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꼭 붙잡고 있어도 현실은 가혹하게 우리 둘을 갈라놓고 말았다. 죽음이 다가온 것이다. 인생 가장 밑바닥에 있던 우리의 현실은, 나의 현실은 그랬다.

그녀와 한 달 이상 연락이 안 된다. 가끔 아주 바쁘면 한 달 이상 안 만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느낌이 좋지 않다. 내가 돈을 안 줘서 그런가 하고 반성하다 결국 그녀를 찾아 나섰다. 단순히 삐쳐서 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그녀가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서너 달 전 말한 것이 생각났다. 이전에 다녔던 교회의 알던 사람인데, 퇴직한 60대 후반의 사업가라고 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부인은 몇 년 전 죽었고 자식 둘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집 가사도우미를 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월 이백 만원을 줄 테니 매일 와서 청소하고 밥과 반찬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고가기 힘들 테니 자신의 집에서 자고가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절대 그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고 그녀에게 강하게 말했다. 말이 좋아 가사도우미지 그녀를 꾀려고 하는 짓이라고 했다. 나쁘게 말하면 성적 노리개가 될 수도 있고 성폭행당할 수도 있으니 절대 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때는 얼핏 들어 생각이 안 났지만 머리를 쥐어짜며 곰곰이 생각해 낸 결과 그의 아파트를 기억해냈다. 당장 그의 아파트로 달려가 거기서 반나절 가까이 기다렸다. 그녀가 나타났다.

왜 내 전화 안 받아?

그녀는 말없이 나를 외면했다. 허공을 한 번 쳐다보고 땅을 쳐다보았다.

한 달 동안 계속 이 늙은이 집에서 살았던 거야? 돈 때문에? 니가 제정신이야? 무슨 말이라도 해 봐.

아냐, 그런 거.

아니라니. 그럼 뭔 데? 그 늙은이 첩이라도 된 거니?

첩이라니? 그렇게밖에 말 못 해?

그 늙은이 아내가 죽었으니 법적으로 첩은 아니겠지.

야! 이 개짜증! 이 말 하려고 찾아왔어?

뭐? 개짜증? 내 말이 틀렸어? … 그럼 그 늙은이를 사랑이라도 하게 된 거야? 그래서 그 늙은이 집에서 살면서 빨래도 해주고 밥, 반찬, 청소도 해주면서 다리도 벌려줬냐?

야, 이 개새끼야.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녀는 내 뺨을 후려쳤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시 헤어졌다. 법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완전히 헤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헤어지려야 헤어질 수 없는 이상한 끈이 있다. 이상한 관계다. 여러 번(주로 애 때문이긴 하지만 꼭 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 사랑 아닌 사랑을 나눈다. 섹스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만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의 뜨거웠던 사이보다 더 끈끈하게 사랑을 나눈다. 외로워서 만나는 그런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전쟁 중 죽을 고비를 같이 넘겨 살아남은 피보다 진한 전우애도 아니다. 그녀와 나는 같은 처지에서 빚어진 감정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어 말없이 결말을 공유한 사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 형용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 한 명이 죽어야 헤어질 수 있는 관계다. 아니면 둘 다 죽든가.

몇 날 며칠 동안 집에서 정확히 알 수 없는 감정에 아팠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미움으로, 미움이 증오로, 증오에서 분노로 변하는 이 감정의 파노라마 속에서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또 며칠 지나니 이 분노라는 감정이 물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처럼 차가워지는 것이다. 차갑고 잔잔한 얼음 같은 분노는 회한과 낙담, 좌절과 이해 등등의 복잡한 감정과 뒤섞이더니 마침내 준비된 결심이라는 의지로 바뀌었다. 이 최종적인 결연한 의지는 그녀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한 몫을 했다.

전화 안 할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야?

잘 지내?

잘 지내겠니?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잘 지낼 수 있겠어?

만나서 얘기 좀 해.

무슨 얘기를?

일단 만나.

안 나가겠다고 말 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그녀를 본다는 것에 이상한 희열이 있었다. 기쁨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복잡 미묘하고 오묘하기까지한 이 감정은 이후에도 죽 이어졌다.

자기한테는 정말 미안해. 이런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 안할게.

지금이라도 내가 돈 해주면 거기서 나올 거야?

그럴 단계가 아니야. 그리고 애 오토바이 사고 건 보상비 때문만은 아니야. 나도 너무 지쳤어. 애 데리고 살아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안 되네. 이 나라에선 한 부모, 특히 한 부모 여성이 자녀 데리고 살아가기엔 너무 힘들어. 이런 저런 이유 들며 정부지원 거의 없어. 나도 이제 보호막이 필요해.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줘.

가사도우미 일만 하는 거 맞아?

질문을 하고도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칼로 찌를 수만 있다면 나를 찌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질문 안 할 수도 없었다.

… 대답 안 해도 되지?

그럼 왜 보자고 한 거야?

어머니는 요즘 어때? 건강은 괜찮으셔?

뜬금없이 우리 엄마는?

지난번에 어머니 치매 증상이 조금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아주 초기라 지금 당장은 걱정할 단계는 아냐. 요즘 약이 잘 나오니까 약만 잘 먹으면 진행 속도 늦추면서 정상인과 비슷하게 살 수 있대. 문제는 당신도 알겠지만 치매보다 불안증세와 불면증으로 인한 부정적 사고가 점점 심해진다는 거야. 부정적 사고가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조금 걱정이긴 해.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강한 수면제 좀 구해줄 수 있어?

수면제를 왜? 특히 강한 수면제는 병원에서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처방받기도 힘들어. 엄마도 정신과 약을 먹고 있지만 거기에 수면제는 약하게 조금 들어가 있어. 엄마가 통 잠을 못 자 수면제 강하게 처방해달라고 해도 의사가 그렇게 안 해줘. 암튼 수면제를 왜?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럼 청산가리나 농약을 구해줄 수 있어?

뭐? 미쳤어? 그런 걸 어디에 쓰려고?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뉴스 보니까 요즘 마약도 인터넷으로 구하더라고. …

그럼 니가 직접 구하지 왜 나한테 구해달라는 거야?

무섭기도 하지만 자기랑 같이 일을 도모하고 싶어서. 그래야 우리가 약속했듯 여생을 같이 하지.

그녀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잠시 한 것이라고. 원래 그녀는 타고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첫 번째 남편과 갓난아이를 차 사고로 잃고도 남은 아들과 잘 살아왔다. 가난과 온갖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인생 뭐 있냐면서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홀로 지난 십 수 년을 꿋꿋이 잘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나에게 전염이 되었을 리 없는데 인생무상이라며 갑자기 비관론자가 되어버렸다.

그녀와의 만남이 몇 주 지났다. 그녀의 말이 아직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어머니는 점점 이상해졌다. 더 사나워지고 더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지 않아 솥을 태워먹기 일쑤였고 요리를 하다 불을 낼 뻔한 경우도 잦아졌다. 큰 불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한 번은 119가 오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자괴감을 느끼며 흐느껴 우셨고 더욱 우울해했다. 그럴 때마다 수도 없이 하는 말이 있다. 인생 허무하고 부질없다면서 모든 것이 무(無), 곧 죽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인생 아무 것도 아니 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 삶의 본질이라고 입만 열면 말한다. ‘다 됐다, 금방이다. 문지방 건너면 죽음이구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부질없다.’ 이런 말을 하는 엄마의 뇌가 파괴되어간다니 이것이 인간 뇌의 미스터리가 아닐까.

딩동 딩동!

어머니는 귀가 먹어 벨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나는 지나가겠지 싶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벨을 눌러 댔다. 요즘은 빌라에서도 잡상인이나 기독교인들이 벨을 누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벨을 계속 누른다는 것은 이런 경우가 아니고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터폰이 없는 관계로 누군지 알 수 없어 나는 결국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나 위층에 사는 사람인데, 뭘 계속 태우세요? 요즘 타는 냄새가 자주 나요. 그러다 진짜 불 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지난번에 119도 왔잖아요.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고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중년의 위층 아줌마는 문을 손으로 막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니, 죄송하다는 말로는 안 되고, 이러다 진짜 불나면 큰일 나는데 무슨 조치라도 해야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조심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나도 알아요. 그쪽 어머니가 치매라면서요?

네? 그걸 어떻게…

아무리 인사나 왕래 없는 각박한 세상이라도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 어머니가 뭘 자꾸 태우잖아요. 치매면 전문 요양소에 보내든가 해야지. 이러다 진짜 불나면 빌라 사는 사람들 큰일 나요. 빌라 가격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 다 마찬가지잖아요. 갈 데도 없는데 다 같이 죽는다고요. 이사를 가든지 해야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주거권은 헌법적 권리이니 아주머니가 이사 가라는 둥 함부로 말하지 말세요. 아주머니께 피해 안 가게 할 게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 아직은 치매진단 받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뇌 MRI 찍었는데 아직은 치매가 아니라고 합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나는 조금 찔렸다. 병원에서 치매가 아니라고 단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니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문제는 거짓말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나도 어머니도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바보 같은 아들 공부시키느라 아파트까지 날려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밑바닥으로 내려갈 곳이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연금으로는 어머니를 치매전문 요양소로 보낼 수가 없다. 거기다 생활비도 안 되는 내 벌이로는 이 빌라에서 나가면 곧 죽음이다. 주민센터나 구청에 도움도 요청해 봤지만 번번이 퇴짜 맞았다. 어머니와 내 생활비로는 턱도 안 되는데도 아버지가 남긴 연금이 나온다는 것이 첫째 이유고, 내가 아직 젊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로는 아무리 가격이 낮다 하더라도 집과 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일억 빌라와 구년 넘은 칠백만 원짜리 소형차를 소유하고 있을 뿐인데 소유하면 지원이 안 되었다. 그 후에 알았는데 수억이라도 전세면 지원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파트나 차 가격이 기준이 아니라 무조건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소유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국가라니 참 이해할 수 없는 선진국 천민대한민국이다.

공무원들은 덧붙였다. 취지는 이러했다. 대학강사로 돈 못 벌면 막노동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평생 인문학 공부한 나에게 막노동이라니. 아니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내 건강 상태로는 육체노동이 불가능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팠던 허리는 수술 한 번을 거쳐 지금은 거의 육체노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거기다 오년 전 무릎 수술까지 해서 지금은 말 그대로 평생 한 인문학 가르치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시간 이상 걷거나 서 있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정을 말해봤지만 공무원이라는 자들은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고는 그것은 내 사정이고, 장애인이 아닌 이상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어머니를 치매전문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지원할 수도 없고 우리를 기초생활수급자는커녕 차상위계층으로도 해 줄 수 없어 그 어떤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안 좋은 일은 연달아 터지는 것이 인생인가. 학교에서 메일로 연락이 왔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계약을 종료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잘린 것이다. 예상했다. 지지난 학기부터 툭하면 사유서를 쓰라고 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다. 50명 수업 듣는 학생 중 대다수는 내 강의평가에 관심 없고, 주로 7~8명은 강의가 좋다고 평가하고 5~6명은 안 좋다고 하는데 안 좋다고 평가하는 학생 중 2~3명은 아주 나쁘게 평을 한다. 이 아주 나쁘게 평가한 2~3건에 대해 학교에서 사유서를 쓰라고 한다. 처음에는 성심껏 사유를 쓰다가 이번 학기에는 강하게 어필했다. 이건 교권침해라고. 사유서를 또 쓰라고 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내 강의에 대해 아주 나쁘게 평가한 학생의 평을 보면 상세한 이유도 없다. 그냥 소통이 안 좋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소통이 좋은 강의라고 하는데, 이 학생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평가했는지 알 수 없다. 나를 싫어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왜 화를 내냐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나빴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자세한 상황설명이 없다. 어쨌든 학교에서는 이런 학생의 평에 대해 나보고 일일이 사유서를 쓰라는 것이다. 말이 사유서이지 일종의 반성문을 쓰라는 것 아닌가. 아마 강의하자마자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약간의 화를 낸 것 같은데 이런 이유로 강사에게 사유서를 쓰라니 이게 학교인가. 학교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아무리 학생이 갑인 세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렇지 학생에게 쩔쩔매는 학교당국이라니 이런 학교에서 더 이상 강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알바보다도 못한 월급 때문에 그만 두고 싶었는데 잘라 준 게 오히려 고마웠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월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이었지만 그것마저 없으니 당장 막막했다. 실업급여로 몇 달은 겨우 버틸 수 있겠지만 내 삶은, 어머니의 인생은 더욱 갑갑하고 막막했다. 막다른 골목 끝에 다다랐다.


나는 예상했는가. 지금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오래 살기를 바랐는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했지만 건강하지 않으니 오래 살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 비확신 속에 어머니가 삶을 스스로 마감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 복잡한 감정에 나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슬퍼했다. 이 슬픔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인지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에서 오는 슬픔인지도 분명치 않아 더 슬펐다.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는 불을 내고 돌아가셨다. 119가 빨리 와서 불을 끄는 바람에 집은 별로 타지 않았다. 다른 집으로 번지지도 않았다. 화재로 인한 연기흡입, 즉 질식사가 공식 사망원인이다. 유서도 나오지 않았고 치매가 인정되어 화재 고의성도 소실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딱 하나 든 종합보험에서 보험금이 나왔다. 무려 삼천 만원이나 되었다. 이 보험금을 노리고 어머니가 일부러 불을 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치매 때문에 불이 나서 불쌍하게 돌아가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돌아가신 어머니만 알 것이다. 불쌍한 아들 하나 살리려고 이런 계획을 모의하고 실행했을까. 그와 상관없이 정말 삶이 무료하고 의미 없어 죽음을 선택했을까. 정말 아들인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인 것인가. 아니면 무료하지 않고 의미 있는 저 너머의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는가.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과 내 삶이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예상이 드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쨌든 어머니의 사망은 내 삶에 많은 의문과 철학을 던졌다. 돈 삼천 만원으로 내가 영원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남은 내 삶의 막막함보다 이 의문에 대한 막막함이 내 목을 더 조였다.

못난 아들을 믿지 못한 어머니는 당신의 죽음을 잘 대비하고 떠났다. 십 수 년 전에 어머니가 가입하고 매달 회비를 낸 상조회사에서 나와 최소의 비용으로 장례를 마쳤다. 쓸쓸한 장례를 마치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멍하니 집에서 칩거하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지막하게 깔린 우울한 목소리였다.

어머니 장례는 잘 치렀어? 못 가서 미안해.

이혼한 전처가 오기는 그렇지. 괜찮아.

나 자기 집 앞이야. 문 좀 열어줄래?

살짝 놀란 나는 무심한 듯 문을 열었다. 조심스레 들어온 그녀는 거의 흙빛 얼굴을 띠었다.

얼굴빛이 왜 그래? 나보다 더 안 좋네.

그 보다 자기는 앞으로 어떡할 거야?

그건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

자기는 학교에서도 짤렸고 허리와 무릎이 안 좋아 육체노동도 못하잖아. 인문학 강의 자리도 거의 없다며.

이번에 화재사망 보험금이 나왔어. 당분간 그걸로 살면 돼.

얼마나?

왜? 너 줄까? … 지난번에 대답 못 들었는데 왜 그 집에서 사는 거야? 순전히 돈 때문이야? 아니면 진짜 그 늙은 장로를 사랑하기라도 하는 거야? 그 늙은이가 가진 돈 때문이면 내가 그 장로 죽여줄까? 그래서 지난번에 청산가리 말 한 거 아냐?

이 나이에 또 누군가를, 특히 남자를 사랑할 수 있겠어? 내 인생에서 남자를 사랑한 건 자기가 마지막이야. 물론 그 남자에 대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는 감정은 있지만. …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진짜 이유는 내 삶을 그 집에서 끝내기 위해서야.

놀란 나는 다그치듯 급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장로님은 간암 말기야. 서너 달 남았다고 했는데 두 달 지나서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죽기 전에 나랑 한 번 살아보고 싶다네. 옛날부터 교회에서 날 보며 좋아했대. 내가 이상형이래. 아내가 죽었고 자신도 곧 죽으니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죽고 싶대. 그런데 장로님 아들이 죽으면 죽었지 그 꼴은 절대 못 본대. 그래서 장로님과 대판 싸워서 지금 아들하고도 연락 안 해.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인 양 술술 말하는 그녀의 말이 무미건조하다. 그녀의 흙빛 얼굴에도 감정이 없다.

어쨌든 당신에 대한 그 장로의 감정과 별개로 당신은 돈 때문에 그 집에 들어가 그 남자 노리개로 사는 거 아냐.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이 맞으면.

맞아. 결국 돈 때문이지. 돈 때문에 그 집에 들어간 것은 맞지만 그 장로에 대한 내 감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불쌍함! 측은지심! 나이가 드니 왜 모든 사람이 다 불쌍하게 느껴지는지 몰라. 물론 우리가 이혼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만나는 감정과 내가 그 장로님을 불쌍히 여기는 감정은 달라. 사랑이 밑바탕이 된 연민과 단순히 인간 보편 감정에 대한 연민은 완전히 다르더라고. 그 장로님과는 아무리 섹스해도 전혀 황홀하지가 않아. 느낌이 없어. 오히려 장로님한테 미안하게 장로님과 섹스할 때 황홀했던 자기와의 섹스가 떠올라. 그러니까 장로님이 더 불쌍하게 느껴져.

니가 무슨 성녀니, 막달레나야? 내 앞에서 이런 말 하는 이유가 뭐야? 내 질투심 유발해서 뭐 하려고?

미안해 자기야. 성녀, 질투심? 히히. 이런 말은 이제 의미 없어. … 그 장로가 죽고 나면 나도 따라 가려고. 약도 준비해 놨어. 삶이 너무 너저분해서 더 이상 살기 싫어. 내가 죽으면 내 앞으로 꽤 많은 돈이 떨어질 거야. 아니 벌써 내 통장에 장로가 준 천 만원 있어. 그러니 내가 죽으면 내 아들 좀 부탁해. 자기도 쓸 만큼 쓰고. 그 말 하려고 왔어. 미안해 자기야. 정말 미안해.

내가 니 아들을 어떻게 케어 해. … 같이 죽을까? 이전의 당신 말대로 엄마 정신과 약 중 강한 성분의 수면제만 골라 놨어. 나도 살기 싫은데 같이 죽자. 아니, 살기 위해 죽자. 영원히 살 우리의 사랑을 위해 한날한시 같이 죽는 거야. 죽음이 있어 삶이 의미 있다는 사고는 사람만이 한다잖아. 그래서 자살이 고귀할 수도 있는 거고. 같이 죽어야 누가 먼저 그리워하고 누가 더 그리워하는 게 없지. 남겨진 사람의 삶과 떠난 사람의 심정이라는 말도 무의미하게 되고.

결국 죽음, 자살의 의미를 완전히 알 수 없다. 삶은 더 알 수 없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죽이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그녀를 죽인 것인가. 그녀가 나를 죽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를, 그녀가 그녀를 죽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두를 살린 것인가. 분명한 것은 현재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미 없는 삶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하기 위해 삶 이전의 삶인 무생물이 되기로 했다.

인간과 연어의 DNA 95%가 같다고 한다. 미물인 연어와 자살의 의미를 아는 인간의 DNA가 거의 일치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과학에 의하면 무생물의 원자배열이 정상이라고 한다. 정상인 무생물의 원자배열에서 돌연변이가 생겨 미물의 생명체가 되고 또 돌연변이가 생겨 인간이라는 고등 생명체가 되었다고 하니 놀랍고 신기하다. 그리고 너무 다행스럽다. 그녀와 내가 죽어 돌연변이 이전의 원래 상태인 무생물로 돌아간다니 안심이다. 자살에 대한 죄의식이 사라지고 죽음에 대한 불안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대전환이다.

그녀와 나는 자살하기 전 119로 전화를 했다. 우리 시체를 거둬가 달라고. 그러나 119 직원은 그런 동네는 없다고 한다. 두 번 세 번 말했지만 그런 동네는 없다고 한다. 장난치지 말라고 한다. 대체 그녀와 나는 어느 동네, 어느 사회에서 산 것일까. 시간과 공간이 멈춰졌다. 그녀와 나는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닌 게 되었다. 진정한 삶을 찾은 것인가. 죽음 이전의 삶! 그러나 결코 예찬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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