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뱅크

by 방정민

타임뱅크

1.

저벅저벅 ‘타임뱅크’ 정문에 병진이 들어섰다. CCTV가 그를 노려본다. 보이지 않는 정문 어디의 스피커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문을 들어서면 시간을 팔지 않고선 나가지 못합니다.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단호한 소리는 질문이 아니라 거의 협박에 가깝다.

“네.”

병진의 대답을 짧고 힘이 없었다.

온갖 하층의 잉여인간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팔기 위해 모이는 곳, 이곳은 ‘타임뱅크’다. 자신들의 시간을 팔고 돈을 사는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자 기다란 길이 일자로 뻗어 있다. 대리석 바닥에 화살표가 나타나고 정문에서 말하던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화살표를 따라 걸으시면 됩니다.”

병진은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길은 일자로 뻗어있는 것이 아니라 S자로 굽어져 있었다. 참, 이상한 길이라 생각했다. 얼핏 고급 호텔 복도 같기도 하고 또는 마약소굴 같기도 한 긴 복도를 몇 분 걸었을까, 드디어 도착했다. 또 다시 자동문이 열리고 말끔한 웨이터가 병진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병진님과의 거래를 안내하고 성사시킬 A입니다.”

“AI로봇이세요?”

“네.”

“친절한 대답이군요. 완전 사람 같습니다.”

AI로봇 웨이터가 안내한 자리에 병진은 앉았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웨이터가 근엄하게 물었다.

“빤한 질문은 생략하죠. 수백 번은 더 생각하고 왔으니까요.”

“그럼, 몇 년짜리 시간을 파시겠습니까?”

“10년이요.”

AI가 뒤에 있는 시간사자에게 잠시 레이저로 물어보더니 계약서를 건네며 말했다.

“1억입니다. 계약서 읽어보시고 사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기 계좌번호 입력하세요. 바로 입금될 겁니다.”

AI의 말은 단호하고 탁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진은 단번에 그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하였다. 그러자 AI가 말을 이었다.

“의자에 엉덩이를 기대세요. 놀라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진의 의자가 뒤로 젖혀졌다. 병진의 머리 위에 최첨단 헬멧이 쓰이고 캡슐이 병진의 몸을 감쌌다. 헬멧 아래위로 엄청난 회로들의 빛이 오가더니 병진은 이내 잠들어버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병진은 깨어났다. 약간의 두통 증세가 있을 뿐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병진님의 시간 10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대가로 돈 1억을 계좌로 넣어드렸습니다. 휴대폰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맞습니다.”

“그럼, 오셨던 길로 나가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진은 어리둥절했다. 뭐가 이리 간단한지. 이전보다 그 절차가 더 간단해져 마음이 이상했다.

‘내 수명이 이렇게 또 10년 줄어든 거야? 10년 줄어든 수명에 고작 1억이라니…’

병진의 하소연 뒤에서 시간사자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컨트롤하고 있었다.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병진은 그 이상한 곳을 빠져나왔다. 그는 우선 급한 사채 빚 5천만 원부터 갚았다. 아무리 절약해도 월 평균 150만원의 대학 시간강사 월급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원룸 월세와 각종 공과금, 교통비, 생활비, 석ㆍ박사과정 학자금대출금에 심지어 교수들 책 나오면 몇 권씩 사줘야 하고 행사하면 행사비 찬조금 등을 내고나면 빚을 지지 않고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그 빚이 누적되어 5천만 원이 넘었고 이자까지 합쳐 9천만 원이 된 것이다. 그렇게 충성을 바쳤지만 전임 자리는커녕 문자 한 통으로 그를 내몰았다.

‘이번 학기로 계약을 종료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진은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 대충 짐작하였다. 대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엄청나게 늘어나는 강사 수, 거기다 학생들의 갑질, 아니 굽실굽실하지 못한 그의 성격 탓에 터질 것이 터져버린 것이다. 요즘 대학은 학생들의 갑질 천국이다. 소위 명문대가 아니면 대학생이 대학생이 아니다. 출석만 부르고 나면 엎드려 자는 학생이 반, 카톡 등 휴대폰 만지는 애가 3분의 1, 떠드는 녀석이 5분의 1… 강의하는 반 정원 50명 중 강의 듣는 학생은 5명 안팎이다. 고등학교의 연장이다. 병진의 성격 상 이런 학생들을 놔둘 리 만무하다. 떠드는 학생, 자는 학생, 다른 짓 하는 학생을 야단치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꽝 닫고 나가버린다. 그러면 강의 끝나고 학교처장이나 학과장이 병진을 호출한다. 학생이 과 교수에게 일러바치고 과 교수는 학과장이나 학교처장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있더니 드디어 잘린 것이다. 학생 수도 줄어드는 데다 학생유치도 힘든 지방 사립대학에선 완전 학생이 갑이다. 이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이게 무슨 대학이라고… 좆까! 나간다 나가! 이 따위 쓰레기장에서 나도 강의하기 싫다고!’

속으로 큰소리는 쳤지만 한 달에 150받는 월급이라도 있어야 입에 풀칠 할 텐데 병진은 솔직히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타임뱅크’로 이끌었던 것이다. 병진에게 시간은 하늘이 준 소중한 그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소중한 것 이상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팔고 돈을 살 수 있으니까. 병진에게 시간은 그런 것이다.


2.


“다해야, 가자.”

“네, 아빠. 비너스 예방센터 먼저 가실 거죠?”

“그럼. 거기 갔다가 타임뱅크로 갈 거야.”

“김 비서. 회장님 출타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아침 일찍 만수와 다해는 외출 준비 중이다. 만수는 분기에 한 번 딸 다해와 외출하는 곳이 있다. ‘비너스 예방센터’에 가서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 이제 병도 예방을 넘어 미리 진단하여 그 병을 막고 퇴치한다. 올 병을 미리 진단하고 예방 치료하는 의료의 시대다. 완벽한 의료시스템과 과학기술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은 어마어마한 돈을 필요로 한다. ‘비너스 예방센터’는 국내 최고의 병 예방센터다. 말이 예방이지 미래 질병퇴치소다. 국내 최고 기업 회장인 만수는 한 번 갈 때마다 여기서 100억 이상 쏟아 붓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만수의 행차에 꼭 회사 상무이자 그의 딸인 다해가 수행하고 있다.

오전에 ‘비너스 예방센터’에서 볼일을 마친 만수와 다해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타임뱅크’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병진이 갔을 때는 AI가 맞이하더니 이번에는 시간사자가 직접 문 앞에서 만수와 다해를 맞이한다. 병진이 갔을 때와는 다른 통로로 만수를 안내한다.

“어떤가? 좋은 시간이 나왔는가?”

“네, 하나 나왔습니다만…”

“그런데?”

“…”

“왜 말을 못하나?”

“상무님과 연관된 거라…”

“무슨 말이야? 상세히 말해 보게.”

“시간은 좋은데, 상무님 대학 선배 남자의 시간입니다.”

시간사자는 다해를 힐끔 쳐다본다.

“뭐라고요? 누구에요?”

다해는 놀라 소리쳤다.

“이병진.”

“네? 아니, 그가 또 시간을 팔았다고요?”

“그 놈은 수명이 200이라도 되는 거야? 안 그럼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거야. 시간 아까워 할 줄 알아야지. 다른 사람 시간 없어?”

만수는 병진을 아는 듯했다.

“그나마 제일 질 좋은 시간입니다. 시간 잘못 샀다가는 회장님께 화가 미칠 수 있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럼 그 놈 시간으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다해는 속으로 외쳤다. ‘아버지가 어떻게 선배를 알지?’ 그러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감히 아버지에게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거나 아버지의 뜻을 배반하면 아무리 딸이라도 내쳐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왕일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왕 그 자체였다. 어쩌면 신일지도 모른다.

만수는 시간교체실에서 한 숨 자고 나왔다. 개운했다. 만수가 시간을 살 때는 특별 관리한다. 아프고 고통이 없다. 그 사이 병진의 시간이 만수에게 전달되었고 만수의 수명이 10년 늘었다. 그렇게 만수는 200살이 되었다.

다해는 순간 심정이 복잡했다. 10여 년 전, 강제로 보내진 해외 유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내 한 명문 사립대학으로 편입했을 때 그녀는 외톨이 왕따였다. 재벌상속녀라는 사실을 숨긴 채 국내 대학에서도 항상 혼자 다녔다. 힘겹게 대학생활을 하던 중 과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선배인 병진의 도움을 받아 과제를 해결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며 연인 아닌 연인으로 잠깐 지냈었다. 병진은 뛰어난 능력 때문에 혼자였고 다해는 출신 성분 때문에 혼자였는데, 이런 외톨이라는 공통점이 둘을 잠시 이어주었다.

이 시기에 병진은 경기 침체로 가족이 해체되었고 대학원을 다닐 수 없는 위기에 처해졌다. 그래서 돈이 필요해 시간을 팔기로 다짐하던 차, 마침 다해가 병을 앓았다. 희귀 유전질환 이었는데, 다해에게 시간을 팔아 병진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고 다해는 어렵게 나았다. 몇 년 뒤 다해가 병을 다 치료하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 병진은 지방의 한 대학 시간강사로 가 있었다. 그렇게 둘은 자연스레 멀어진 것이었다.

며칠 뒤 다해는 병진이 묵고 있는 원룸을 알아내 그를 찾았다. 원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병진이 전화를 받지 않자 원룸 바깥문 초인종을 눌렀다. 여러 번 벨이 울리고 난 후 스피커에서 병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 다해.”

“뭐? … 어, 니가 웬일이야?”

“일단 문 좀 열어주지.”

다해는 바깥 도어문을 거쳐 병진의 원룸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병진은 반가움 반, 당혹스러움 반 퉁명스럽게 툭 내뱉었다.

“‘오랜 만이야. 이게 몇 년 만이지?’ 아님, ‘잘 지냈어?’ 이렇게 인사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둘은 정말 오랜만에 한 공간에 있게 되었다.

“얼굴 좋아 보이네.”

병진이 영혼 없는 인사말로 건조하게 말을 꺼냈다. 다해는 잠시 병진의 방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전보다 더 좁아졌구나. 역시 선배답네. 잘린 사람의 방치고 술병 하나 없이 깨끗하네.”

“처음 잘린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내가 잘린 거 어떻게 알았니? 내 뒷조사한 거야?”

“선배 뒷조사를 해서 뭐하게? 뭐, 아직도 내가 선배를 좋아하는 줄 알아?”

“그렇지. 우리 둘 다 벌써 나이가 몇인데. 순수함은 벌써 사라진 나이지. 아니, 순수함 자체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지.”

“시니컬한 것도 여전하네.”

병진은 다해에게 커피를 건넸다. 커피 한 모금 마신 다해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커피 맛도 여전하군. 내가 선배 커피 맛에 반했잖아.”

“내 커피 맛이 그리워 찾아 온 것은 아닐 테고… 할 말 해.”

“성질도 여전하고… 선배는 도통 변할 줄 몰라.”

다해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냉정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선배 시간은 영원해?”

“무슨 말이야?”

“왜 자꾸 시간을 팔고 그래?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그렇게 죽고 싶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 혹 또 니가 내 시간을 샀니?”

다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병진이 계속 말했다.

“어디 또 아파? 그래도 재수 없는 내 시간을 사면 안 될 텐데.”

“내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

“뭐? 그 지체 높은 분께서 나 같은 놈 시간을 왜 샀대? 훨씬 좋은 시간 있을 텐데.”

“선배 시간이 제일 질이 좋대.”

“뭐? 그런데 10년에 1억밖에 안 줘? 그 시간사자놈 새끼! 이제 사자까지 썩었구먼.”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전화하지. 왜 선배 시간을 자꾸 파냐고, 이 바보야.”

“죽을 용기는 없고 오래 살고 싶지 않아서 파는 건데 너한테 왜 연락하니…”

“성깔하고는…”

잠시 대화가 쉬어 갔다. 다시 그 간극을 이은 자는 다해였다.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재벌을 비판하고 아빠를 비판했어? 학술발표 때마다 재벌을 비판하더니 이게 뭐야? 재벌이 왕인 거 몰라? 대통령이나 정치인보다 재벌이 더 위인 거 몰라? 아무리 재벌 비판해봐야 사회 안 바뀌어.”

“그러게. 경제가 조금만 안 좋아지면 재벌 살려야 한다며 보수ㆍ진보, 언론 할 것 없이 온 사회가 난리니 바뀔 리가 없지. 모두 국민이 자초한 거지. 어리석은 국민들…”

“오빠가 아빠 말만 잘 듣고 재벌 비판 안했으면 우리가 잘 되었을 지도…”

“여보세요, 다해 씨. 그 비판 아니더라고 난 너랑, 아니 너희 아버지 사위로 들어갈 생각 전혀 없었거든요. 너희 아버지가 허락할 리도 만무하지만 내가 미쳤냐. … 그건 그렇고 지난 일 꺼내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다해는 병진과 사귈 때도 자기 기분 좋거나 부탁이 있을 때는 병진에게 오빠라고 했다가 그렇지 않을 때는 선배라고 했다.

“오빠에게 제안할 게 있어.”



3.


만수의 집 서재이자 집무실이다.

“어떻게 되었나?”

만수가 비서에게 근엄하게 묻고 있다.

“잘 해결될 겁니다. 돈 좀 찔러 주고 노조집행부 방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친구 그 부분에서 유능하니 잘 해낼 겁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회장님!”

“우리 회사는 노사분규 없는 완벽한 회사여야 해.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모범적인 회사로 알려져 있으니까 이미지 관리 잘하고. 그리고 연일 우리 그룹 비판하는 그 기자 놈, 어떻게 하기로 했어?”

“그 신문사 사장을 통해 압력을 넣고 있고요, 직접 그 기자를 좋게 구슬려 보려고 합니다.”

“안 되면 그 놈 시간 왕창 사버려. 그 놈이 자기 시간 팔지 않을 수 없게 상황을 만들어 봐.”

“네, 알겠습니다.”

“사람이 평등하다고, 시간이 평등하다고 외치는 그런 무지한 빨갱이 놈은 당장 저세상 보내버려야 해. 알겠나?”

“네. 완벽히 실행하겠습니다.”

“다해. 들어오라고 해.”

“네, 그럼.”

시간을 사서 사람을 살리고 죽게 하는 것도 재벌 회장의 의지대로 되니 만수는 신인 게 분명하다. 다해는 만수의 방문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다 듣고 있었다. 비서가 나오면서 다해를 슬쩍 쳐다본다. 비서가 나오자마자 바로 다해는 만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능숙하게 옷을 벗고는 엎드린 만수의 등 위로 올라가 만수의 전신을 마사지한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다해의 얼굴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그녀의 눈빛이 매섭다.

사실 다해는 만수의 친딸이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딸이지만 실은 만수의 노리개에 불과하다. 다해 어릴 적 한 고아원에서 데리고 와 만수의 노리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간을 사고 팔 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시스템을 완벽하게 하기 위한 과학의 실험대상, 즉 마루타로 사 왔지만 용케 살아남아 만수의 노리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회사 경영에 자질을 보여 형식적으로나마 상무에 앉아 있다. 지금은 거의 부작용이 없지만 이전엔 시간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실험을 했는데, 그 실험에서 기계적 오류나 부작용으로 많은 실험대상자들이 죽어나갔다. 거의 대부분 암이나 신종 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정부, 기업, 기관이나 과학자 등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모르모트처럼 실험대상자였을 때도 현재도 언제나 돈 없는 국민은 그 돈 때문에 죽어나간다. 어떤 국민은 살고 싶지도 않은데 돈 받고 시간 팔 수 있어 좋다고까지 한다. 그런 세상이다.

‘타임뱅크’에 시간사자와 다해, 병진이 있다. 다해가 급히 둘을 모은 듯하다.

“시간사자님! 제 부탁 제발 들어주세요. 사자님도 이 더럽고 불평등한 세상에 일말의 책임이 있잖아요. 좋은 일 하면 저세상에 다시 갈 수도 있고요. 그리고 선배도 생각 있지? 동의하니까 여기 왔겠지. 그치?”

듣고 있던 두 명 중 시간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인간사에 개입하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했을 뿐 불평등한 이승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방관한 책임도 크지 않나요? 사자님이 그러셨잖아요. 전생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방관한 죄로 저승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고. 그런데 염라대왕이 사자님에게 기회를 주신 거라면서요. 착한 일을 하면 환생시켜주신다며 이승으로 보냈다고 하셨잖아요. 이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수 회장이 처참하게 죽는 것을 공개하고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요.”

“그러면 다해 너는 어떻게 되는데?”

듣고만 있던 병진이 끼어들었다.

“나야, 뭐… 아무렇게 되어도 상관없어.”

“왜 니가 아무렇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거니? 니 인생은 어쩌고? 너도 인간답게 살아봐야 할 거 아냐. 니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선배가 나를 버린 후 내 인생 따위는 없어, 사라졌어. … 아니, 처음부터 내 인생 따위는 없었어.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 실험대상자로 선발돼 우여곡절 끝에 겨우 살아남았지만 늙은 노인의 노리개로 살고 있을 뿐이야. 거기다 선배까지… 비참한 인생에 미래는 없어. 복수하고 깨끗이 갈 거야. 그게 내 인생이자 내 인생목표야. 시간은 늘 내 편이 아니었어. 이번에 반드시 시간을 내 것으로 사용하고 말거야. 내 시간에게도 복수하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 내가 널 버린 게 아니야, 다해야. 변명은 않겠지만, 당시 난 널 지켜줄 만한 힘도 없었고 널 떠나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어. 내 시간이 그나마 좋다고 사자님이 말해서 너에게 판 거야. 그러면 니가 병에서 나을 수 있다고 해서.”

듣고 있던 시간사자가 미안한 듯 말을 꺼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지 않습니다. 아니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전생에서 시간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현세에 질적으로 다른 시간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 시간이나마 잘 사용하면 더 좋은 세상으로 환생하게 되지요. 병진님의 시간은 질적으로 아주 좋아 다해님의 병을 낫게 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해님에게 팔라고 한 겁니다.”

사자의 말을 듣고 있던 병진이 날카로운 인문학적 비판을 한다.

“시간이 평등하든 평등하지 않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자님은 귀인의 질 좋은 시간을 사서 팔아서는 안 되는 사람, 즉 만수 회장 같은 쓰레기에게 판 것이 문젭니다. 만수 회장은 200살이 넘었고 어쩌면 영원히 살지도 모릅니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불평등을 조장하고 고착화한 책임에서 피할 수 없어요, 사자님은. 누구에게 시간은 행복이었지만 누구에게 시간은 불행을 넘어 비참함 그 자체였다고요. 이 나라에서 시간은 처음부터 불평등한 것입니다. 그 불평등을 아무리 만회해보려고 해도 안 돼요, 혼자의 힘으론. 이런 문제에 사자님이 작은 힘을 보탠 것이고요. 다해 말대로 방관자로서의 책임도 막중합니다. 방관자가 얼마나 이 사회를 어둠의 지옥으로 몰고 가는지 정말 모릅니까?”

“저는 인간사에 개입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놈의 개입! 개입할 때는 개입해야죠. 처음부터 불평등한데 개입해서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불평등한 세상에선 착하고 윤리 지키며 살 수가 없는데 무엇으로 저승에서 판단하여 죄를 논한답니까? 개입을 전혀 안 하려면 염라대왕과 사자가 무슨 자격으로 무엇을 토대로 우리를 단죄한답니까?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허무하게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고요.”

“개입하면 만사가 다 해결됩니까? 평등해진다고 확신합니까?”

“확신은 못해도 당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니까 개입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저승에 가세요. 저승에서 불평등한 세상을 바라만 보세요. 언제 귀인을 만나 환생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더러운 세상에서. 개입하지 않으려면 염라대왕도 당신도 존재할 진짜 이유가 없어요. 저승과 이승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관된 세상이니까요.”

병진의 날카롭고 매서운 비판에 시간사자는 반박할 말을 잃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사자는 무엇을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해가 비장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말한다.

“내 시간 30년을 선배가 사고 그 시간을 다시 회장님께 팔면 돼요.”

“무슨 말이야? 왜 내가 니 시간을 사야 하고 그 시간을 회장이 또 사야 한다는 거야? 또 그렇게 30년씩이나 시간을 팔면 너는 어떡해?”

다해는 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블라우스 한쪽까지 벗고 어깨를 드러내었다. 시간사자와 병진은 순간 움칫하더니 다해의 어깨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병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깨가 왜 그래?”

다해의 어깨는 부패해가는 동물의 시체처럼 살이 곪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살 위로 이상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죽은 생명을 살리는 신비의 빛 마냥 푸르르 다해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다해의 인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알 수 있겠지? 실험 부작용으로 생긴 이 병으로 어차피 난 오래 못 살아. 다만 회장님이 날 치료하겠다고는 해. 물론 그 치료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영생을 위한 것이지만. 다들 알겠지만 시간을 판 사람에게 병이 있으면 그 병까지 시간을 산 사람에게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내 시간을 선배가 사고 24시간 안에 회장님께 팔면 내 병은 회장님께 바로 전이될 거야. 그러니까 선배는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만약에 24시간이 넘으면 내 병이 선배 몸에 안착되니 반드시 시간 엄수해야 해. 할 수 있겠어?”

병진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으나 망설여졌다. 다해가 마음에 걸렸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으로서의 애틋함을 넘어 인간적으로 안쓰러웠다.

“하긴 해야 하는데… 아니, 안 돼. 니가 죽겠다는 거 아냐…”

“이 몸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걱정하지 마.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내 운명이야. 내가 이 날만을 기다리며 살았다면 믿겠어? 우리가 이 일 반드시 해야 해.”

마지막으로 다해는 사자에게 한 번 더 당부의 말로 각인시킨다.

“사자님의 역할이 커요. 회장님을 잘 꾀어 반드시 시간 안에 이 일을 해야만 합니다.”

“… …”

사자는 말없는 대답으로 대답했다.

4.


“자, 빨리 시작하세요.”

다해의 비장하고 다급한 목소리다. 다해와 병진, 시간사자가 다시 만나 인생 최대의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시간사자가 만수 회장을 잘 꾀여 내일 오전 회장이 ‘타임뱅크’에 오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 저녁 무사히 시간 이동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두 분은 자리에 누우세요.”

사자의 말이 끝나자 다해와 병진은 나란히 누웠다. 각자의 캡슐이 두 사람을 껴안았고 머리 위로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헬멧이 둘을 움켜쥐었다. 캡슐에서 캡슐로 회선 하나가 둘을 이어주고 있다.

“그럼 시작합니다. 이전과 달리 조금 아플 겁니다.”

“아아아!”

“으으으!”

두 사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고함을 있는 힘껏 질렀다. 고통도 사랑도 둘은 함께 나누었다. 이것이 비록 끝일지라도.

다음 날, 만수 회장이 ‘타임뱅크’에 도착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타임뱅크’에서 시간사자가 만수 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회장의 옆에는 언제나 그랬듯 다해가 있다. 다해와 사자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결연해 보였다.

“그래, 시간추출법을 완성했다고?”

“네. 비너스 예방센터에서의 ‘질병 완전 예방퇴치방법’을 여기서도 적용해 아주 좋은 시간을 추출해내었습니다. 시간의 질이 워낙 좋아 이 시간을 사시면 회장님의 수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에너지가 정말 뛰어나 인생에 빛이 될 겁니다.”

“아, 그래? 그 정도야? 그런데 말이야, 그 놈의 시간을 사야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말이야.”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남자의 시간이 워낙 좋은 데다 이번에 시간추출법으로 더욱 엑기스만 뽑았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 그럼 빨리 시작하지.”

만수가 의자에 누웠다. 이전처럼 자고나면 개운한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아아, 으으윽!”

만수의 고통은 심했고 길었다. 한참을 고통에 시달린 만수는 캡슐에서 나와 거울을 보았다. 너무 놀라 기겁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만수의 온 몸에 푹 곪고 삭은 암 덩어리가 퍼져 있다. 금방이라도 그 섞은 암덩어리가 터져 만수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것만 같았다. 피까지 토했다. 죽음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말기 암 환자 그 자체였다.

“아… 아… 아!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만수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통증에 시달렸다. 온 몸이 자신이 토해 낸 피로 물들여졌다. 사자 대신 옆에서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던 다해가 말을 꺼냈다.

“회장님! 회장님은 곧 죽을 거예요.”

“뭐? 니가 한 짓이야? 이 년이… 키워준 은혜를 이렇게 갚다니.”

“키워줘? 당신이 나를 키워줬다고? 이 천하에 더러운 노인네. 당신에게 여자는, 나는 한낱 노리개에 불과했지. 어쩜 세상이 당신의 노리개였는지도 모르겠군. 그래, 200년을 사니 좋아? 얼마나 더 사려고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여? 이제 제발 없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저세상으로 가. 빨리!”

보다 못한 사자가 말을 잇는다.

“당신의 탐욕은 이승을 더럽혔고 저세상까지 그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승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나의 일이긴 하나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개입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 포기하고 저세상 가서 죄를 달게 받으시오! 당신의 소원대로 영원히 죽지 않으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오.”

만수의 몸은 도저히 볼 수 없는 흉측한 몰골로 변해갔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탐욕의 끝은 추함을 넘어 역겨움으로 변질되었다. 토할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해가 사자에게 말을 꺼냈다.

“이 모습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리겠어요. 그런데 사자님. 근데 왜 이리 빨리 병이 진행되죠? 이상한데요.”

사자는 다해에게 미안한 듯 측은한 얼굴빛으로 어렵게 말을 꺼낸다.

“사실, 병진님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다해님께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어제 시간 교환 시 다해님의 병만 병진님의 시간으로 이전된 겁니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암이 급속도로 진행된 겁니다. 병진님도 아마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빨리 병진님의 원룸에 가 보십시오.”

다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병진이 죽다니. 급히 병진의 원룸으로 달려갔다. 원룸이 열려 있었다. 병진은 없었고 책상에 덩그러니 쪽지만 남겨져 있었다.

‘다해야. 너를 만나 잠시나마 행복했어. 용기가 없어 너를 끝까지 사랑하지 못해 미안했어. 너는 만수 회장이 죽으면 그 회사와 세상에서 할 일이 있어. 너도 한 번은 사람답게 살아봐야지. 가난한 사람들, 서민들을 위해 니가 할 일이 분명 있을 거야. 이 세상에 희망이라는 것이 아직 있음을 증명해 보여줘. 이 더러운 세상에서 시간이 그나마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줘. 니 존재가 그런 존재가 될 거야. 그리고 좋은 남자 만나 사랑 제대로 하고 살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이 세상에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

‘안 돼, 오빠! 으윽!’

다해는 울부짖었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휑하니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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