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해방

by 방정민

인간해방


인간의 역사 백만 년. 아니, 만년인가. 최근 호모사피엔스만이 현 인류의 조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정말 인류의 역사는 백만 년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이 긴 역사에서 인간은 이제 새로운 종으로 다시 진화하려고 한다. 인간을 복제하고 인간을 대신할 AI를 탄생시켰다. 인간 두뇌의 역사적인 발전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과학에서 말하길 인간의 뇌는 구석기 이래 1%도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인류는 엄청나게 발전했고 수많은 것을 창조해왔지만 그것으로부터 한 번도 해방된 적이 없다. 인간은 신에게 종속당했고, 자신이 생산한 생산품에 종속당해왔다. 이 긴 역사에서 오롯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업다. 이유는 너무 미개하기 때문이다. 미개함,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0.1%에 해당되는 극히 일부의 천재들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발달시켰을 뿐 대다수의 인간은 여전히 미개하다. 구석기처럼.

‘인(인간)’은 똑똑했다. 서울대 인문과학대학 박사과정까지 마친 인재였던 그는 언제나 위의 말을 되뇌며 인간의 무지함을 이용해왔다.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는 간통죄로 감방을 경험했고 그 후엔 사기죄로 또 감옥에 갔다 왔다. 어쩌면 간통도 사기도 모두 ‘인’의 비상함에서 비롯된 것이자 상대의 무지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인’은 일이 풀리지 않자 한동안 노숙자 생활을 하다 최근 허름한 고시촌에 들어왔다. 춥긴 하지만 바람과 별을 맞이하며 자는 노숙자 생활도 아주 나쁘진 않았다. 그럼에도 노숙자 생활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릇 진화된 인간이란 하늘을 이불삼아 자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만큼 처량한 일이 없다. 한 목사의 도움으로 고시촌에 들어오긴 했지만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한다.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에게 필요 없는 주둥이가 퇴화되었듯 ‘인’은 평생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어 그 능력이 퇴화되었다. 대신 신이 준 선물인가, 진화의 저주인가. 그는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무통증증후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인’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안녕하세요. 저녁 드시러 왔구나.

아, 네.

여기 들어온 지 꽤 되었는데 우리 통성명이나 하죠. 나는 ‘종’(노예)이라고 합니다.

저는 ‘인’입니다.

‘인’이 주방에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옆방사람 ‘종’이 들어와 말을 걸었다. ‘인’도 본업이 사기라 사람을 피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 굳이 사람을 사귀고 싶지는 않았다. 반면 ‘종’은 굉장히 붙임성이 좋았다. 그런데 이 붙임성은 ‘종’의 의도였음이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그쪽 여기 들어올 때 봤는데 ‘신’목사님이 도와주셨죠?

네. 그걸 어떻게 아시죠?

저도 그 목사님이 도와주셨거든요. 이 고시원은 주로 그 목사님 도움이나 추천으로 들어와요. 정부 지원도 조금 받아내는 것 같고. 그건 그렇고 내일 길 건너 건물에서 ‘일상회복도움프로젝트’라는 강의 하는데 저랑 같이 가시죠.

글쎄요.

가서 보고 들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 사실 그 목사님이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형씨한테 할 말이 있다면서.

무슨 말을 요?

그건 일단 내일 가보시죠.

할~ 렐루야! 할~ 렐루야! 할렐루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할렐루야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신’목사는 상단에서 어리석음에 굶주린 많은 인간들을 굽어 살피고 있었다. 마치 예수가 어린 양을 구하여 복음을 전하듯.

신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나와 여러분에게 있나이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어리석음에 빠져 도탄을 헤매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해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나 ‘신’목사가 여러분을 구할 기적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건 요즘 같은 위험의 시대, 불행의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신의 선물, 만병통치약입니다. 이 알약 하나를 매일 먹으면 일주일 만에 아주 행복해집니다. 억울하고 피폐해지고 불행했던 나의 삶이 구원받는 겁니다. 누가? 내가 여러분들을 구원하는 겁니다. 이 ‘신’목사가 여러분을 구원하는 거라고요. 우리 형제자매들이 10병씩 사고팔면 바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많이 낼수록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빨리 탈 수 있으니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이 약 많이 사거나 헌금 많이 내는 사람에게 내가 예수님 곁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직행티켓 끊어드립니다. 내 말을 잘 듣는 자에게 권세와 영광이 있나이다. 아멘!

뭐야, 결국 다단계판매야.

실망한 ‘인’은 다 듣지도 않고 나가려는데 ‘종’이 막아섰다.

형씨, 잠시 만요. 곧 끝나니 조금만 기다려 봐요. ‘신’목사님이 할 말이 있답니다.

목회를 가장한 다단계판매를 마친 ‘신’목사가 ‘인’을 보고 말을 했다.

아이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절 도와주셨는데 한 번은 인사를 해야죠.

거두절미하고 ‘인’ 선생, 저랑 같이 일 한 번 안 해보실래요? ‘인’ 선생의 두뇌와 능력이라면 성공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인데요? 그리고 저에 대해 뭘 안다고…

딱 봐도 압니다. 관상과 관심법을 뛰어 넘어 선생의 기를 느낍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내가 채워 줄 겁니다. 난 ‘신’입니다. 성도 신이지만 진짜 신이 되어 모든 것을 창조해 낼 겁니다. 아주 담대하게 나의 세상을 창조해 낼 겁니다. 이 작업에 ‘인’선생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도 기회가 될 겁니다. 돈과 명예를 다 잡을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기회 말입니다.

선택의 고민도 없이 ‘인’은 여기의 시스템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신’의 집단에 들어와 버렸다. ‘종’은 ‘신’목사를 정말 신처럼 받들면서 온갖 심부름을 포함해 종처럼 살았고 ‘욕’(욕망)은 이 집단의 사실상의 설계자였다. 일종의 머리를 담당하는 제갈량이었다. ‘부’(부패)는 실무 담당자로서 사람을 모으고 물건을 가져와 신도들에게 파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그 역할의 조화가 뛰어나서 그런지 점점 신도가 늘었고 ‘신’은 집단에서 그 영향력이 막강해져갔다. 그럴수록 신도들 주머니에서 돈은 쏟아졌다. 통장을 깨고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 심지어 집을 팔아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모습만 보고 있으면 ‘인’이 평생 꿈꾸었던 집단이자 직장이었다. 사실 옛날에 ‘인’도 이런 사이비 종교집단을 만들까 생각을 잠시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육체는 집단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오해받기 일쑤였고 따돌림 당하는 것도 비일비재였다. 그렇기에 집단에서 우두머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은 달랐다. ‘신’도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었지만 ‘인’과 달리 신체적 제약을 역으로 이용하여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시각과 청각이 안 좋은 ‘신’이기에 신도들은 ‘신’이 펼치는 마법에 더 빨려들었다. 소화제에 각성제를 섞은 약인데, 그가 주는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고 믿어 더욱 광기어린 신도가 된 것이다. ‘인’과 ‘신’ 중 누가 더 조직의 우두머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누가 더 악인인지 무지한 인간은 판단할 수 없었다.


자, 이제 서서히 우리만의 천국을 건설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이 네 명의 간부 장로들을 불러 모았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우리만의 신의와 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미래가 있습니다.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힘 모아 건설합시다. 먼저, ‘욕’장로님의 말부터 들어보죠.

시대가 시대인 만큼 우리도 우리의 천국을 건설하는데 첨단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인공지능프로그램밍을 만들었습니다. 바깥에서는 흔히 AI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것을 ‘신약솔루션’이라 명명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이신 ‘신’ 목사님이 파시는 약이 곧 해결책이듯 이 AI도 우리의 해결책이 될 겁니다. 뭐든지 물어도 바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우와, 좋은데요. 이런 걸 언제 다 만드셨어요? 대단합니다.

‘종’이 신기한 듯 물었다.

‘욕’이 만들었겠어, 거금을 들여 어디서 사 왔겠지.

‘부’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신’이 말을 이어간다.

자 자, 우리의 간부 ‘욕’장로님한테 박수! 얼핏 보면 진짜 사람인줄 알겠네. 이 로봇이 나를 대신해 우리의 천국 건설에 많은 도움을 줄 겁니다.

모두 박수를 보내자 ‘신’이 다시 말을 잇는다.

아, 이 로봇뿐만 아니라 최근에 들어오신 ‘인’선생. 아니, ‘인’장로님. 이제 우리의 천국을 만드는데 ‘인’장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믿게 하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나 못지않으니 외부사람들에 결사 항쟁하는 결사대를 만들고, 또 우리만의 천국으로써의 좋은 땅, 좋은 공간을 알아보세요. 자금은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 땅 보러 갈 때 나와 같이 갑시다. 내가 시각과 청각이 안 좋으니 ‘인’장로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하거든.

네. 잘 알겠습니다. 곧 착수하겠습니다.

어느새 ‘인’은 이 조직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인’은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잘 생긴 외모와 유려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순식간에 끌어 모았다. ‘종’과 ‘부’의 도움을 받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말을 들어주었다. 신뢰가 쌓이면 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쉬웠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뭐가 그리 결핍이 많은지 외로운 사람들은 ‘인’의 말을 굳게 믿었고 그를 추앙했다. 그러면 ‘인’은 ‘신’에게 그들을 소개했고, 그들의 ‘인’에 대한 추앙은 ‘신’에 대한 신앙으로 대체되었다. 마음과 돈과 육체 모두를 갖다 바쳤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허술할 줄은, 아니 그 믿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21세기의 인간이 이럴 수 있다니, 22세기가 되어도 이 같은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과 ’신‘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었다.

‘인’은 ‘신’과 함께 그들만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일 년 가까이 찾아다닌 끝에 어렵게 찾았다. 깊은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립되기 딱 좋은 땅, 누구와도 소통이 안 되는 공간에 그들만의 천국을 건설할 곳을 찾았다.

목사님. 여기가 딱 좋은 곳 같습니다.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설령 신도 중 도망간다 해도 지형 상 여기를 빠져나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곳입니다.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목사님의 천국을 건설하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내가 ‘인’장로를 잘 봤습니다. 나는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잘 안 들려도 마음으로 보고 듣습니다. 장로님도 신도들을 마음으로 대해주십시오. 진실된 마음으로. 그러면 정말 ‘인’장로가 선택한 여기가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천 명이 넘는 신도들을 거느리고 ‘신’은 ‘인’이 정한 곳으로 이주를 했다. 마치 대탈출, 엑소더스가 펼쳐지는 듯한 장관이었다. 하나님의 땅, 은혜로운 땅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신’이나 ‘인’조차 의심치 않았다. 진실로 신도들을 속였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게 속이다보면 그 속임이 어느 순간 진실의 탈을 쓴 얼굴로 바뀌었다. 그땐 어느 것이 거짓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런 구분은 그들에게 의미 없었다. 그들의 천국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천국은 아주 빠르게 건설되었고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천국은 마치 신석기 같았다. 거의 대부분의 식량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하였는데, 각자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분업을 잘 하여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다. 교육도 자치적으로 해결하였다.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서당식 교육으로 아이들 교육을 채웠다. 그렇게 그들만의 천국은 잘 꾸려지고 있었다.

목사님! 우리의 부활예수님! 할렐루야!

‘신’이 지나가면 ‘종’이 분위기를 부추겼고 신도들은 걸음을 멈추고 ‘종’이 하는 대로 ‘신’을 향해 같이 외쳤다. 그런데 그렇게 굳건할 것 같았던 그들의 천국은 사소한 곳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금은 의심의 의심을 낳아 제방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었다.

그들만의 천국에서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약사업이었다. 몇 년 전 이 천국사업을 시작할 때 한 작은 제약회사의 중간간부에 접근하였다. 해고의 위기에 있던 이 간부는 ‘신’에게 쉽게 마음을 빼앗겼고 ‘신’과 ‘욕’의 지시를 따르게 되었다. 회사가 신약을 개발할 때 시스템적으로 결정적 하자를 삽입해 만들게 했고, 그 결과 결국 신약의 부작용으로 회사는 파산 직전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아주 헐값에 나온 회사를 ‘신’과 그 일당들이 꿀꺽하게 된 것이다. 이 제약회사의 관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겼고 지분에 따른 회사 이익은 ‘욕’이 관리하고 있었다. ‘욕’은 전문경영인을 압박하여 중독성 강한 약을 만들게 하였고 그 약의 일부를 천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회사 이익에 따른 ‘욕’의 욕망은 날로 커져갔다. 천국으로 와야 할 이익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거기다 천국의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외부에 파는 수공예품들이 인기가 좋았는데 그 이익의 대부분을 ‘부’가 독점하고 있었다. ‘부’는 ‘욕’과 짜고 이익을 배분해 외부에 땅과 건물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부패와 욕망이 점점 심해지자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인’이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신도들이 다 모인 기도회에서 일이 터졌다.

신의 대리자 나는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잘 안 들리지만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영성으로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몸의 눈과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영성의 눈과 귀를 줄 것이니 모두 의심치 말고 나를 따를지어다. 빛과 어둠은 하나요 이 안에 모두 생명이 있으니 내가 바로 그 생명이로다. 내가 이것을 증명하러 왔으니 어둠이 있는 자 모두 나에게 오라! 우리들의 천국을 건설하자!

‘신’의 경외롭고 전율적인 설교가 있자 모두 울부짖고 박수친다. 한 신도가 먼저 선수 친다.

저를 데려가주십시오. 저는 모든 것을 당신께 바쳤나이다. 신이시여.

그러자 다른 신도가 말을 끼어든다.

아닙니다. 저를 먼저 봐 주십시오. 이 자는 목사님을 뒷담화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놈입니다. 이 자를 믿지 마십시오.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언제? 이 자는 나를 모함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내 손을 잡으라.

두 신도가 ‘신’의 손을 잡자 ‘신’이 그 손을 뿌리치며 두 신도의 얼굴을 내려쳤다. 마구 내리쳤다. 때리고 또 때렸다.

무엇들 하는 짓이냐. 감히 내 앞에서 서로를 헐뜯는 것이냐, 순서를 말하는 것이냐. 서로를 헐뜯는 것은 나를 욕보이는 것이고 순서는 전지전능한 내가 정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아직 내 손을 잡을 자격이 없다. 그래서 맞아야 한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어린 저희를 부디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들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한 바탕 설교와 타작마당이 지나가고 나서 ‘신’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우리의 천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간부장로들의 보고가 있겠습니다. ‘인’장로 먼저 말씀하세요.

우리는 신 목사님의 영도 아래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하다보면 머지않아 곧 진짜 천국에 입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 목사님의 가르침에 위배되게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일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욕’장로와 ‘부’장로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경제적 기반인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이익을 독차지 하고 있으며 우리 신도들의 피땀 어린 공예품의 이익도 가로채 외부의 땅과 건물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명백한 배교행위입니다. 타작(매몰차게 서로 때림)을 해야 합니다.

뭐야!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오로지 천국건설을 위해 성심성의껏 일하는 사람한테 이 무슨 짓거리야. 이 자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모두 거짓입니다.

그럴 줄 알고 제가 물증을 확보했습니다. 이게 이중장부입니다. 여기에 이들의 민낯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전부터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조직은 거대한 물줄기처럼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기도회의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자 ‘신’이 아주 강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내가 ‘인’을 너무 키웠나.’하며. 이쯤에서 기강을 아주 강하게 잡지 않으면 자신의 천국이 바로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금 전 신도들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인’을 타작했다. 몇몇 장로와 건장한 신도들이 ‘신’의 명령에 따라 ‘인’을 마구잡이 두들겨 팼다.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내 말이 곧 법이요 정의이니 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 악귀로 선언할 것이요 그런 자를 처단할 것이니라. 알겠는가!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느니라!

기도회가 끝나고 그들의 천국은 고요해졌다. 타작마당이 있고 난 후의 천국은 마치 연옥 같았다. 천국과 지옥 그 중간지대, 기분 좋지 않은 안개가 엄습해 천국사람들의 목을 죌 것만 같았다. 이 분위기와 반대로 저 멀리 캄캄한 밤하늘의 별은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인’은 이 사건 이후 결심했다. 이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스멀스멀 몸에 스며든 반역의 기운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부조리하고 탐욕스런 조직을 자신이 새롭게 재편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신’을 살해해야 했다. ‘신’을 죽이고 인간의 천국을 건설해야 했다. 자신이 이 조직을 다스리면 ‘신’때보다 더 부조리가 없고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스스로 굳게 믿게 되니 부족한 자신의 모습은 오히려 하늘이 준 능력으로 느껴졌다. 이런 결심을 한 후 신약솔루션 AI에게 물어보았다.

‘신’은 평등합니까? ‘신’의 천국은 합리적이었습니까?

AI가 대답했다.

그럼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보십니까? 인간은 언제나 비합리적이었고 미개했습니다. 거기다 남들을 굴복시켜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을 실천하려 했죠. 인간의 역사는 불평등, 갑질의 역사입니다. 거기다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자신만 옳다고.


‘신’의 살해는 의외로 쉬웠다.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신’이 했던 방식 그대로 하면 되었다. ‘인’은 ‘신’에게 타작마당을 당했던 신도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다가가 ‘부’와 ‘욕’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를 말해주고 그들보다 훨씬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니 순식간에 그 신도들은 ‘인’의 수하가 되었다.

보시오. 내가 몰래 빼돌린 그들의 이중장부와 그들의 대화 녹음파일을.

아니, 이건 이전에 ‘신’에게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리 허술해 보이시오? 이것이 그들의 이중장부 원본이요. 거기다 이 녹음파일도 원본인데 백업파일도 수십 개요.

이중장부와 녹음파일을 보고 들은 신도들은 ‘인’의 명민함에 빠졌다. 그리고 바로 그를 믿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야욕과 탐욕을 믿었다.

당신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우리들이 당한 것을 그대로 되갚아주면 됩니다. 일단 내가 ‘신’으로 가장해 ‘부’와 ‘욕’의 타작마당을 유도할 겁니다. 그때 그들을 때려죽이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먹는 약의 처방을 조금 바꿔야 합니다. 사실 이 약은 ‘신’이 내린 신약이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렉사프로 팍실이라는 신경정신치료약입니다. 약간만 양을 늘리거나 줄이면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죠. 무감각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거든요. 내가 약의 성분을 조절할 테니 당신들은 절대 그 약을 먹으면 안 됩니다. 먹는 척 하고 뱉으세요.

잘 알겠습니다.

‘인’의 계획은 착착 잘 진행되었다. 겉으로는 ‘신’에게 절대복종하는 척 하고 ‘부’와 ‘욕’에게도 친한 척 굽실댔다. 몇 달이 지났다. 기도회의 시간이 되자 ‘부’와 ‘욕’은 왔는데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와 ‘욕’은 ‘신’보다 잘 버텼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강한 욕망과 탐욕이 그들을 버티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을 체크한 ‘인’은 ‘신’을 잡으러 그의 방에 들어갔다. ‘신’은 ‘인’이 바꾼 약에 해롱해롱해 하며 여신도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거기다 방에는 온갖 여성의 향기로 가득했다. 여신도들이 뿜어내는 화장의 향과 기존의 양귀비보다 더 독한 신양귀비가 뿜어내는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맑게 해준다고 하여 ‘신’이 피워 온 꽃향기를 ‘인’이 신양귀비로 몰래 바꾼 것이다.

집사님들은 나가 보세요.

‘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 안 됩니다. 저희들이 목사님을 부축해드려야 합니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는 여신도들이 가까스로 말을 했다.

나가라니까!

‘인’이 크게 소리를 치자 여신도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질 시간이 된 것이다. ‘인’은 ‘신’의 입에 약과 신양귀비를 한가득 틀어넣었다. ‘신’은 고통스러워했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비뚤어졌다. 빛이 나던 그의 얼굴은 한순간에 볼품없고 추악하게 변했다. ‘인’은 ‘신’이 기도회 때 가끔 쓰던 가면을 찾아 썼다. 그리고 ‘신’을 질질 끌고 기도회로 걸어갔다. 아주 천천히, 품위 있게 걸었다. 이전의 ‘신’처럼.

사실 여러분에게 실토할 것이 있다. 나 ‘신’은 약해졌던 성령을 회복하였노라. 지난 날 성령이 약해 오판한 것이 있다. 우리의 천국건설을 위해 애썼다 하여 ‘부’와 ‘욕’의 비리를 알고도 감춰줬다. 그러나 이 자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이 자리에서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저 자들을 심판할 것이다. 모두 저 자들을 당장 묶어라. 그리고 마구 타작하라.

무슨 말이요? 당신 누구요? 당신은 우리의 신입니까? 아니면 사기꾼입니까? 가면을 벗으시오. 우리가 당신에게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당신이 우리를 속인 겁니까, 우리가 당신에게 속은 겁니까.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오!

이 놈! 부패와 욕망에 찌든 놈들이 이제 믿음마저 내팽개쳤구나. 모두 저자의 입을 찢어라!

신도들은 ‘신’의 가면을 쓴 ‘인’의 명령에 따라 ‘부’와 ‘욕’을 잡고 마구 때렸다. 피가 여기저기 낭자했지만 더 때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때렸다. 그렇게 허망하게 ‘욕’과 ‘부’는 죽었다. 정말 너무 간단해 허무한 죽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은 ‘신’의 죽음까지 유도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에게 ‘신’과 ‘욕’과 ‘부’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없었다.

이 자는 누구인가! 똑똑히 보라. 우리가 경외한 그 자인가. 아니다. 부패하고 역겨운 목사의 얼굴을 똑똑히 보란 말이다. 이 자는 신을 빙자하였고 우리를 속였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가만히 있겠는가!

‘인’이 몇 마디 외치지 않았는데 신도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신’을 물어뜯어 죽였다. 마치 악마에게 당한 복수를 하듯. 이 일이 전광석화처럼 빨리 진행되는 데는 ‘종’의 역할도 한몫했다. ‘종’은 이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묵묵히 보고 있더니 대세에 따랐다. 그것이 그가 사는 방식이었다.

정말 ‘신’의 가면을 쓴 ‘인’이 신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약에 취해 ‘인’이 ‘신’이고 ‘신’을 추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이렇게 인간은 신을 살해했다. 자신들의 부끄러움과 죄를 대신할 누군가를 오랫동안 찾아온 것처럼. 그러나 신을 살해한 인간들은 또 다른 신을 내세워 이전보다 더한 부패와 이기심과 욕망을 드러내었다.

‘인’은 자신이 택한 공간에서 그들만의 천국 2대 신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 그는 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인’은 대대적인 혁신을 감행했다. 의사구조 결정을 자신이 하달하는 하향식을 배격하고 신도들로부터 의견을 듣는 상향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천국의 경제적 이익을 모든 신도에게 차등 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이익과 신도들이 만든 공예품에서 나오는 이익 모두 기여의 정도에 따라 차등 분배하기로 했다. 그래야 인간이 발전할 수 있다고 설교했고 모두 그것을 철석같이 믿었다. 최소한 겉으로 보면 아주 합리적인 집단이 된 것이다. 이보다 더한 천국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도들은 열광했고 그들의 집단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가식과 합리화의 가면을 쓴 채.



명상에 잠긴 ‘인’에게 급히 ‘종’이 보고한다.

신이시여.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가?

작물을 심으려고 땅을 고르고 있는데 거기서 여러 유골이 나왔습니다.

유골이라니? 누구의 유골인가?

이전 목사님과 ‘욕’과 ‘부’의 유골은 아닙니다. 그들의 유골은 다 태웠거든요.

그럼 도대체 누구의 유골이냐?

아마 우리 천국 건설에 회의를 품어 저항하거나 우리의 시스템에 따라오지 못하고 너무 뒤쳐져 타작마당 당한 신도들의 유골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의 유골을 이렇게 함부로 취급하다니… 타작마당을 끝내야 해. 그건 너무 비인간적이고 악마적이야.

역시 신이십니다. 당신의 생각이 우리의 천국을 앞당길 겁니다.

그래서 제안하는데, 우리의 천국 건설에 저항하거나 우리 시스템에 따라오지 못해 뒤처지는 신도들에게는 우리 집단에서 나오는 이익을 아주 조금만 줄 계획인데 어때? 성과 여부에 따라, 기여도에 따라 이익을 차별하고 의식주도 차별하는 거야. 그러면 동기가 생겨 더 열심히 우리의 천국 건설에 참여할 것이 아닌가.

그 좋은 생각입니다. 역시 우리의 신은 다르군요. 신도들을 모아 의견을 묻고 당장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도들은 ‘인’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그래야 그들의 천국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부터 뒤처지는 자에게 이익을 나누는 것에 불만이 많은 터였다. ‘저 놈은 이 천국에 필요 없는 존재야. 식충이 같은 놈, 나가 죽어야 해.’라며 투덜대고 싸우기 일쑤였다. ‘인’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너무나 잘 활용하였다.

효율이 높아졌다. 그들의 천국이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그럴수록 소문이 퍼져 외딴지고 험한 이곳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신도들이 급증했고 천국은 날로 번성했다. 그럴수록 더 높은 효율을 위해 ‘인’은 또 다른 ‘욕’과 ‘부’를 자기 곁에 세웠고 새로운 장로와 집사, 권사 등 여러 종류의 자리를 만들어 서로를 경쟁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옛날 ‘인’이 잠시 살았던 고시원 앞방 남자 ‘불’(불평등)을 자신의 최고 애제자로 키웠다. 그런데 이것이 ‘인’의 최고 작품이자 실패작이 될 줄은 몰랐다. ‘불’은 ‘인’의 지시에 따라 천국 건설에 매진했다. ‘불’이 일을 잘 할수록 정말 천국이 코앞에 다가온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들의 천국 완공 직전에 ‘불’은 ‘인’을 파멸시키는, 아니 천국을 무너뜨리는 일등공신이 돼버렸다. 그들의 천국 완공이 다가올수록 신도들 간 차별은 심해졌고 불만은 날로 높아졌다. 갑질은 보편화되었고 죽음보다 더한 지옥의 삶을 살아가는 신도들이 급증했다. 신도들의 불신이 하늘을 찔렀고 분노는 폭발했다.

가자! 이 지옥을 파멸시켜 평등한 세상 만들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우리가 이런 취급받으려고 여기에 왔는가. 인간은 소모품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천국인가. 모두 죽을 각오로 연대해 나아가자!

신도들 수백 명이 모여 데모중이다. 이것을 예상했는지 이들을 진압하려는 ‘인’의 부하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온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신도 수백 명이 나와 시위를 한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시위를 하는 중이다. 이에 질 간부들이 아니다. 진압 간부들도 대열을 갖춘다. 천국은 완전 두 패로 나누어 일대 전쟁 중이다. 여기저기서 구호와 욕설과 고함소리가 메아리친다. 어느 순간 이 소리들은 서로 합쳐져 불협화음의 합창단 음악이 되었다. 천국과 지옥 그 어디에도 없는, 그리고 그 어디에도 있는 고통의 소리. 시간이 지나면서 간부들이 밀린다. 그러자 가만히 지켜보던 신도들이 데모 군중 편으로 합세한다. 점점 데모 군중이 늘어나고 ‘인’이 있는 화려한 사택이 점령될 위기에 처하자 ‘종’이 급히 ‘인’에게로 달려왔다.

신이시여. 어떡하면 좋습니까?

너는 어떡하면 좋겠느냐?

급합니다. 답을 내려주십시오.

답이라… 신약솔루션에게 물어보자.

‘인’은 기세가 기울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진압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반면 AI는 이런 사건을 예상이라도 한 듯 지체 없이 말했다.

교회로 다 모이라 하십시오. 제가 해결책을 제시하겠습니다.

천국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신과 인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교회 안은 터질 듯이 많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너무 많아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AI는 ‘종’에게 한 사람만 나갈 수 있는 폭의 출구를 확보하고 모든 문을 잠그라고 말하고선 모인 신도들에게 연설하듯 크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사십니까? 무엇을 믿습니까?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아무도 대답을 안 하자 AI는 신이 된 ‘인’에게 재차 물었다. ‘인’이 대답했다.

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믿네. 내가 신이 된 이유도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잘 받들어서 이지.

언젠가 나에게 물었죠. 신은 평등하냐고, 신은 합리적이냐고. 그럼 이 시간에 내가 다르게 묻겠습니다. 인간은 해방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신을 살해하고 욕망과 부패를 먹어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더욱 불렸습니다. 자신의 배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신이 존재하는지를 묻기 전에, 천국이 있는지를 묻기 전에 왜 인간은 신을 만들었고 신을 살해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신은 당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라졌습니다. 인간들 당신들이 평등하고 합리적이면 신은 언제나 평등하고 합리적일 것입니다. 나는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그만 가겠습니다.

AI는 기름을 자신의 몸에 붓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리를 질렀다.

평등하라 인간이여! 합리적 이성을 되찾아라 인간이여! 소통하고 협력하라 인간이여! 인간이여 해방하라! 인간 해방을 위해!

AI를 태운 불은 순식간에 교회로 번졌다. 교회의 나무 의자, 커튼 등으로 번진 불은 활활 타 올라 교회 전체를 집어삼켰다. 여기저기서 신도들이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었고 출구로 달려갔다.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우왕좌왕 난리도 아니었다. 치고받고 때리고 밀치고, 쓰러진 사람들 위로 올라가고 그 사람을 밟고 또 올라가고… 그 생지옥에서 싸우는 사이 출구로 빠져나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통증을 모르는 ‘인’은 도망가지 않고 장렬히 불에 타 죽었다. 모두 갈팡질팡하며 불 타 죽었다. 그들의 천국은 그렇게 불타 사라졌고 인간의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의 해방, 그 서글픈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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