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여행
1.
나는 여관을 빠져나왔다. 어두운 아둑시니가 물러가고 눈부신 햇살이 내 앞의 시야를 가렸을 뿐 나는 별 동요 없이 쭉 뻗어진 길 위에 내 발걸음을 올려놓았다. 무섭지 않았을까, 두렵지 않았을까, 불안하지 않았을까, 분명 이 모든 감정이 나를 휘감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척 했다. 정확히 말하면 태연함과 태연한 척함 그 중간쯤에 있었을 것이다. 삶이 언제나 그렇듯.
한참을 무작정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니 눈앞에 경찰서가 보였다. 무의식이 나를 경찰서로 이끌었는지, 무의식을 가장한 의식이 죄의식을 발동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제부터 의식을 위장한 무의식의 세계로 나를 맞추어야 한다.
나는 경찰서 들머리에서 잠시도 망설임 없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았다. 많은 의자와 책상들, 그 위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 부류는 자신이 무슨 제왕이라도 되는 듯, 선생님이라도 되는 듯,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윽박지르듯, 타이르듯 노려보고 있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음부터 사탄의 자식인 양 사악한 것 같은 눈빛으로 제 자신을 끝없이 낮추고 있었다.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고압적 자세로 호통 치는 사람들의 자리는 아닐진대 그럼, 원죄를 안고 태어난 듯 죄스러워하는 사람의 자리란 말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 한 채 나는 원죄의 운명으로 죄값을 치러야 하는가. 기억에도 없는 태초의 죄, 그저 맛있는 줄 알고 따먹은 그 사과 하나가 세월을 건너뛰어 오늘 나를 벌하는 것일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그래 아주 오래전 소화된 사과가 분뇨가 되어 화석으로 변한 지금, 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생각을 바꿔 여기가 행복한 에덴의 동산이라고 믿어버리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 경찰 한 명이 피의자 한 명을 수갑에 묶은 채 밖으로 밀치고 있었다. 그는 경찰에 떠밀리는 순간 범죄자가 되어 내 어깨를 툭 쳤다. ‘너도 범죄자야 임마, 난 다 알고 있어.’라고 하는 듯했다. 순간 나는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 듯 정신이 멍했다. 나는 일견으로 경찰서 안을 둘러보았으나 내가 않을 자리는 전혀 없었다.
그때 형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를 톺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누굴 면회하러 오셨나요?”
“네? 아, 예. 제가 경찰서를 잘못 찾아왔나 봅니다.”
나는 재빨리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나에게 면죄부라도 주는 듯 여전히 하늘은 아름답게 푸르렀다. 이 푸른 하늘 아래서 그녀와 나는 무엇을 했으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갑자기 나는 전에 없던 불안을 느꼈다. 이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러나 아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믿기지 않을 평안함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최초의 어머니의 자궁처럼 지금 내 눈 앞의 세상은 너무나 안락하였다.
나는 곧장 집으로 왔다. 집이라 할 수 없는 십일 평 원룸이다. 그것도 어머니가 전세로 사준 것이다. 아무도 없고, 그래서 나를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안락하면서도 적막한 곳, 이곳이 우리 집, 아니, 나의 원룸이다. 이 원룸 안에 가만히 있으면 참으로 평온하고 포근하다. 고요하고 거룩하다. 마치 최초의 생명이라는 것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며 잘 자라기만을 바랐던 존재, 모두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었던 존재로 되돌아 간 듯했다. 어머니가 사 준 이 둥그런 원룸은 어머니의 자궁마냥 내 최초의 보금자리이다. 그 누구도 나를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 힘없이 뿜어져 나오는 나의 숨소리는 그때 그 공간에서 새어나왔던, 마냥 신기해하며 어루만져 주던 생명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아니다. 그저 한심한 한 젊은이의 맥 빠진 소리요,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가는 한 폐인의 힘겨운 아우성일 뿐이다.
혹시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텔레비전을 틀어보았다. 8시, 9시, 11시 뉴스를 방송사별로 모두 들어보았지만 그녀의 소식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한 여관방에서 아름다운 20대 여인의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경찰이나 기자들이 그녀의 죽음을 모르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며 혹 그녀가 죽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래, 그녀가 죽었다면 그냥 죽음일 뿐이야.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는 것처럼. 그녀에게 조금 미안하고 그녀만 불쌍할 따름이야. 누구나 한번쯤 겪는 것을 조금 일찍 경험한 것뿐인 게야. 만약 그녀가 살았다면 그저 다행이지. 내가 경찰서에 끌려가 수사 받을 일이 없으니 나에게도 좋은 일이고. 근데 나는 그녀가 살기를 바라는 걸까, 죽기를 바라는 걸까. 나도 사람인데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물스런 괴물! 그러나 이런 나의 감정과 상태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살아있기를 그녀 자신은 정말 바라는 걸까.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그녀이기에 죽음을 택한 것인데, 자살 여행을 택한 것인데 그것이 잘못되어 살아난다면 과연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 할까. 자살에서 실패하여 살아난 사람은 그 이전보다 더 강렬히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2.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이었다. 내가 정신과 치료를 몇 년 째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말이 치료지 의사를 만나는 시간은 5분도 안 걸린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정신과 병원에서 의사는 아주 무뚝뚝하면서 귀찮다는 듯 나에게 몇 가지를 묻고는 일주일치 약을 주곤 하였다. 고작 한다는 말이 ‘너무 집안에만 있지 말고 산책도 자주하고 가끔씩 운동을 하라.’ ‘친구도 자주 만나서 대화도 많이 나누라.’이었다. 그러면 나는 무심하게 ‘네.’ 하고 대답하고선 약을 받아서 병원을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병원을 나와 내가 사는 원룸으로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로 사십 여분 걸리는 거리인데 거의 집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내 옆자리에 예쁜 20대 여자가 앉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되짚어보니 그녀는 내가 이 버스 좌석에 처음 앉았을 때부터 줄곧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려 원룸으로 가고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던가.
“저, 안녕하세요. 사십분 동안 옆에 앉아 있었는데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눈길 한번 주시지 않네요.”
하며 나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강렬한 햇빛 때문인지,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인지 그 순간 나는 넋을 잃을 뻔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 황홀함, 아니, 황홀하다는 말로는 표현될 수 없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그 어떤 느낌이었다. 수려함, 다소곳함, 함초롬한,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담백한 청순함은 갈 길 잃어 방황하는 내 존재의 편안한 쉼터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을 했다.
“예? 절 아시나요? 죄송하지만 전 그 쪽이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네. 이해해요. 아직 절 소개하지 않았으니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정식으로 절 소개하죠. 저는 존재 도우미예요. 처음 들어보셨겠지만 님 같이 이 시대와 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디서 오셨나요?”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네. 지금은 조금 혼란스러우시겠지만 곧 이해하실 거예요. 님이 지금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과 방황을 제가 조금 도와 드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특히 님께서 겪고 있는 외로움과 쓸쓸함, 고독, 그리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감각을 잃은 존재불감증을 제가 님과 같이 생활하고 대화하면서 치유해 나갈 거예요. 물론 매일은 아니구요, 병원에 오시는 날, 치료가 끝난 이후로 밤 12시까지 님과 함께 생활할 거예요. 같이 말 친구도 하면서. 일종의 호스피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 조금 이해하셨나요?”
“예? 그럼 병원에서 보내신 건가요?”
“그건 비밀입니다. 당장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쳐요.”
농담을 곁들이며 살짝 웃는 그녀의 모습은 약간의 경계심이 있던 나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버렸다.
그녀는 나를 따라 나의 보금자리인 원룸으로 들어왔다. 안락하기는 했으나 한 쪽 모퉁이가 잘려진 것처럼 뭔가 허전했던 원룸, 편안하기는 했으나 정체모를 불안과 외로움에 치를 떨어야 했던 곳, 이곳이 단아하고 청초하기까지 한 자그마한 한 여인의 존재로 꿈틀꿈틀 제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의 존재는 충만함, 더없는 충일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다소곳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혼자 살아요? 아늑하긴 한데 쓸쓸하고 심심하겠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혼자라는 게 더 편해요. 문득문득 외로움이 나의 목을 죄여올 때가 있죠. 그럴 땐 여행을 떠나요. 혼자 떠나는 죽음 여행! 아무도 없는 절대 고독의 바다에 서서 삼키고 뿜어내는 저 하얀 외로움의 찌꺼기를 바라보며 풍덩 빠져요. 그러면 내가 죽는 다는 것에, 죽을 수도 있다는 무서움에 경악을 해요. 그러고 나면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얻죠.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좋겠지, 라고 생각하며.”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거죠?”
“네. 상상이나 이 인터넷 속으로.”
나는 실없이 피식 웃고는 머슬머슬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앞으로 제가 일주일에 한번 님의 여행 파트너가 되어드릴게요. 상상이나 인터넷으로 하는 고독의 여행, 죽음의 여행이 아니라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여행, 님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 여행 파트너가 되어드릴게요.”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나에게 바투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의 온기가 내 손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적시고는 나의 뇌까지 따뜻하게 목욕시켜주었다. 족욕이나 반신욕이 아니라 뇌욕이 이렇게 달콤하고 감미로운지 몰랐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따뜻하게 해주고 얼어붙고 날카로운 나의마음을 조금씩 동그랗게 빚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번 병원 가는 것에 즐거워했고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보람되게 여겨졌고, 내 삶에 활기가 돋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의 구세주와도 같았다.
처음 그녀는 그저 수수하다는 말이 딱 맞을 만큼 옷차림새나 머리모양이 단출했다. 긴 생머리에 옷은 흰색과 파란색이 조화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와 만난 첫 날에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도 우습고 무엇보다 약간의 어색함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 때문에 그녀와의 만남이 더 기다려졌고,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은 말을 나누고 좀 더 친밀해지리라 마음먹었다.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일주일이 획하니 지나가버렸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다. 일주일만의 외출이 이렇게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나를 긴장시킬 줄은 몰랐다.
내가 가는 정신과 병동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그다지 분비지 않았다. 나는 복도에서 잠시 기다린 후 의사와 면담을 하였다. 나는 의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이 의사가 그녀를 보냈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좀 어떠세요? 일주일 동안 기분은 좋아지셨나요? 생활의 변화는 없으신가요?”
의사는 보통 때와는 다른 말을 나에게 건넸다. 이렇게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무척이나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녀를 보낸 사람이 이 의사라고 믿어버렸다.
“네. 많이 좋아지려고 합니다. 기분도 업 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참 다행이네요. 약이 이제 조금씩 듣나 봅니다. 정신질환도 뇌 호르몬 분비가 잘못 되어서 나타나는 병이니 반드시 약을 제때 복용하시구요. 다음 주 경과 지켜보고 약을 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다음 주에 오세요.”
나는 의례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보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의미로 마음을 담아 인사말을 하였는데 의사는 모른 척 시치미를 딱 때고 있었다.
이제 그녀를 만날 시간이다. 이 병원 문만 나가면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들이 들을까봐 부끄러웠다.
그녀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병원을 나오는데 그녀가 내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나를 위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숨소리를 내는 생명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살아있으되 숨을 쉬지 않는 생명체, 아니, 숨은 쉬는데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없는 생명체가 되어있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생명체, 그러나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무생물보다 못한 생명체였다. 나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였고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이제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 누구하나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이 지경까지 내몰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그녀는 기다림이라는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약간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어디 아파요?”
“아뇨.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먹고 계속 집에만 있다 보니.......”
그녀도 나와 같은 부류인가. 비슷한 상처를 안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안으로 아파하는 그런 여자란 말인가. 아니면 나의 치료를 위해 일부러 그런 척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스펀지처럼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갈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럼 내가 밥 사줄게요. 가요.”
그녀는 좋다며 흔쾌히 나를 따랐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공원을 거닐며 벤치에 앉아 교교한 공기를 마시며 이런 저런 말을 나누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일주일전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베이지 카디건이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그 위에 재킷을 입히고 아래는 잘 빠진 팬츠와 부츠까지 입혔다. 이왕 돈 쓰는 김에 미장원에까지 데려갔다. 이름도 생소한 발레리나 청순헤어로 머리를 단장했다. 그러고 나니 그녀는 완전 딴 사람 같았다. 아름답고 세련되면서도 청순하고 귀여운 맛까지 풍기는 여인으로 변신을 했다.
3.
그녀를 두 번째 만난 날 저녁 내 원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옷을 사고 머리를 한 후에 우리는 원룸으로 갔다. 그녀는 신데렐라처럼 밤 12시를 넘기기 전 그녀의 집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저녁에서 밤 사이의 시간은 나에게 무척이나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그녀를 위해 부드럽고 감미로운 바이올린 연주곡을 틀어놓고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첫 번째 만남과는 달리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말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말은 오히려 그녀와 나 사이 흐르는 감정을 방해할 것 같았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에 생명의 감정, 사랑의 감정이 쏟아져 그녀와 나를 휘감았다. 서로를 느끼게 했다. 그것이 나 스스로를, 그녀 자신을 살리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내가 사준 옷을 하나 둘씩 벗기 시작했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았을 때 그녀는 내 왼손을 잡아 그녀의 오른 쪽 가슴을 만지게 했고 내 오른손을 잡아 그녀의 불두덩을 감싸게 하였다.
“느껴지나요? 난 님의 감정과 상처가 느껴져요. 이렇게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속옷은 님의 손으로 벗겨 주세요. 태초에 님의 반쪽이었던 나를 행복의 산인 에덴의 동산으로 데려가줘요. 그리고 내 속으로 들어오세요. 무서운 피투성이 세상에서 평온하고 안전한 제 자궁 속으로 들어오세요.”
그날 그녀와 나는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이전에 얼룩져서 남아있던, 그 얼룩위에 다시 덧칠되는 상처의 얼룩들이 그녀의 몸 위에서, 그녀의 자궁 안에서 모두 씻기어져갔다.
그녀는 단지 섹스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텅 빈 존재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없어도 그녀만큼은 나를 이해하고 채워주었다. 나의 비어 있는 존재의 반쪽은 처음부터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도록 맞추어져 왔을 뿐이었다. 짜 맞추어진 이해, 거짓된 이해를 강요하고 강요당하며 사는 존재로 키워져 왔을 뿐이었다. 평균적인 이해에 맞는 존재만을 강요해 왔을 뿐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은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하지만 그녀는 몸과 마음으로 나를 이해해 주었다. 그녀는 나의 분신이었으므로.
그녀와 나는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이해했고 서로의 성기를 교합하는 것으로 존재의 대화를 나누었다.
격정의 순간 우리는 결핍의 존재에서 충만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 원룸 바깥 복도에서 귀에 거슬릴 정도로 아주 강하고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직감으로 어머니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옷을 주섬주섬 집어 입고 얼른 옷장 속으로 숨었고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급하게 뛰어 온 모양인지 숨을 헐떡거렸다. 발갛게 상기 되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는 나에게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너 지금 뭐 하고 있었어? 얼른 대답 못해?”
“그냥 컴퓨터 좀......”
나는 어머니가 무섭기도 했고 급박한 상황에 기가 죽어 모기 소리로 대답했다.
“엄마가 컴퓨터 좀 그만 하라고 했어, 안했어? 너 그리고 내놔 봐.”
“뭘요?”
나를 잡을 듯이 몰아세우는 어머니의 모습에 겁이 나서 나는 어머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뭘 달라는지 몰라서 물어? 너 이제 도둑질까지 해? 어디서 엄마 가방에 손을 대! 도대체 왜 정신을 못 차리고 그래!”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수그린 채 아무 말 없이 컴퓨터 모니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더욱더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쏘아붙였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엄마 카드를 도둑질해서 어디다 썼어? 컴퓨터 도박이라도 했니? 비밀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냈어? 니가 엄마 카드 훔쳐 막 쓰고 다니면 엄마가 모를 거 같애? 엄마 핸드폰에 니가 쓴 내용 다 찍혀 나온다 말이야. 이놈아. ...... 너 왜 이러니? 응? 너 때문에 엄마가 살 수가 없다. 같이 죽자. 이놈아! 죽어!”
어머니는 내 등을 몇 대 때리더니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인지 독백인지 모를 자조 섞인 말을 내뱉으며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있었다.
어머니가 언제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냥 포근하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품이 아니다. 전쟁 같은 세상처럼 어머니도 그런 세상이 되어갔다. 동물의 세계도 아닌데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 세상에서 어머니는 먹히지 않으려고 표독스러워졌고 이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무섭게 대했다. 하긴 어머니를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아버지를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고 온갖 고생 다해가며 삼 남매를 키우셨다. 세상이 조금만 너그럽고 평화로웠다면 어머니도 그렇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강인함을 넘어선 어머니의 사나움이 어머니의 탓만은 아니다.
어느 작가가 지어낸 말이라고는 하지만, 새끼를 언덕 위로 데리고 올라가서 떨어뜨려 살아남은 새끼만 키운다는 냉철한 사자처럼 어머니도 점점 맹수가 되어갔다. 하긴 나이 서른이 되도록 사회에 적응 못하며 어머니 품만 찾는 나를 나도 이해 못하는데 어머니인들, 그 누군들 이해하겠는가! 내가 비정상인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나약한 고립 존재가 되어갔다. 알고는 있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고 어떻게 해볼 방법을 상실한 존재, 어쩔 수 없는 나, 이런 나에게 나도 짙은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을 방바닥에서 울어대던 어머니는 갑자기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바깥에서 앰뷸런스 같은 소리가 들렸다.
“차 불렀다. 너, 일주일에 한번 병원 가는 걸로는 안 되겠다. 그러니 요양원에 가서 다시 치료 받아라.”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쏟는 것 같았다. 다시 요양원에 가라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요양원에는 갈 수 없다. 말이 요양원이지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개인 감옥소나 다름 아니다. 사람이기를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곳, 최소한의 음식만이 주어질 뿐 그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도망갈 계획을 하면 할수록,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 할수록 더욱 처참해지고 비참해지는 곳으로 어머니는 나를 다시 보내려고 한다. 몇 평 되는 공간에 홀로 멍하니 있다 보면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그런 곳으로 어머니는 나를 가두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가끔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사람 같지가 않고 그런 나 자신을 포기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이런다고 크게 노여워할 일은 아니다.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머리와는 상관없이 내 몸은 요양원을 격렬히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밖으로 나가자 앰뷸런스 차를 타고 온 두 남자가 나를 막고 섰다. 건장한 두 사내는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적당한 거리가 되자 나는 한 사내를 노려보며 주먹을 휘둘렀다. 사내는 내 주먹을 피하며 다리를 나에게로 쭉 뻗었다. 사내의 다리는 내 복부를 강타했으나 세기가 강하지 않아 나는 사내의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밀었다. 그 사내는 뒤로 나뒹굴었고, 그 순간 다른 남자는 가져온 방망이로 내 머리와 몸을 마구 내리쳤다. 윽, 나는 몸을 무의식적으로 움츠렸다. 그러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두 사내가 한꺼번에 덤벼들어 나의 팔을 뒤로 꺾고 나를 차에 태웠다.
자루 같은 것으로 뒤집어 씌워진 채 내 머리에선 피가 조금 흘러내렸다. 피는 얼굴을 타고 내 입을 적셨다. 아직 따끈따끈한 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 피는 내가 살아야 할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한 사내는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남자는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 했다. 그때 나는 두발을 앞 운전수 좌석에 대고 힘껏 뻗어 반동으로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 한 남자를 밀쳤다. 그러자 그 남자는 발랑 뒤로 자빠졌고 이때를 놓칠세라 나는 머리에 씌워진 자루를 벗기고 내 피가 묻은 방망이로 남자를 마구 갈겼다. 죽으라고 때렸다. 남자는 큭, 하는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아마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차 안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운전하던 사내가 차를 멈추고 내리려 하자 나는 사내를 향해 다리를 있는 힘껏 뻗어 찼다. 사내는 내 다리를 맞아 튕겨 차 앞 유리창에 그의 얼굴을 부딪쳤다. 그 사내의 얼굴에선 피가 흘렀고, 그 피는 차창에 알 수 없는 고대문자의 형태로 죽 그어졌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나는 재빨리 차에서 빠져나와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가쁜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 숨이 턱을 넘어 나를 삼키고 쓸모없는 가벼운 내 존재까지 먹어 주기를 바랐다.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인생은 재생 불가능한 폐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4.
마땅히 갈 데가 없었다. 지친 나는 한 PC방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며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돈을 지불하고 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거기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다 돼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급한 마음에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자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나의 안부를 묻는 대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슬픈 눈으로 그러자고 짧게 대답했다.
12시가 넘었는데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가지 않았다. 자정이 되면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를 사라지게 만든 어머니의 마법이 여기 PC방에서는 통하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녀 역시 갈 곳이 없는 처지였다. 그녀와 나는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감상하고 마음을 나눴다. 짧았던 만남, 그리고 마지막이 될 그녀와의 만남은 내 생애 진정한 행복과 위안을 주며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적하고 호젓한 시골 마을로 자살 여행을 떠났다. 맑은 공기에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지상천국이 연출되었다. 우리의 자살을 반기듯 새는 연신 고운 목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죽기엔, 자살하기엔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아니, 너무 아름다워 자살하기엔 안성맞춤인지도 몰랐다.
죽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 나의 죽음이 맑은 시냇물을 따라 막힘없이 흘러 세상 곳곳을 다니며 한 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자연에 안기고 싶다. 자연은 ‘너 왜 물이 되었니? 바람이 되었니? 왜 이리 물이 차니? 왜 이리 바람이 세니?’ 라고 묻지 않을 것이므로.
나도 사람인데 어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을 것인가! 그러나 나에게 삶이란 더욱 끔찍한 것, 삶에 대한 공포가 가족을 힘들게 하고 나를 파멸로 이끌었다. 삶에 대한 공포가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넓적한 바위위에 앉았다. 계절을 알 수 없는 따뜻한 솔바람이 그녀와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었다. 그녀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넸다.
“하늘과 땅 사이 우리 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너무 아름답고 고요하죠?” “네. 죽기엔 굉장히 좋은 배경이네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눈물도 웃음도 남기지 말고 그렇게 떠나요, 우리.”
그녀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이 깊었다. 그 깊이는 우리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인지 묻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자살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니면 언제 처음 자살 시도 하셨어요?”
나는 내 팔목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여러 줄의 자살시도의 흔적이 흉측하게 남아있는 내 팔목의 상처는 그 동안의 내 삶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대충 고등학교 때 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을 실제로 처음 실행에 옮긴 건 군대에서였다.
나는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육군단 소속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고 군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훈련이나 군영생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역시 인간관계였다. 계급과 명령만이 존재하는 사회, 그 속에서의 인간이란 너무나 나약하고 비굴한 존재였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는지 나 스스로에게 놀라며 온갖 아부와 눈치로 일 년을 넘기고 상병이 되었을 무렵, 내 밑으로 졸병이 들어왔다. 군대에서 졸병이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요 희열이요 장난감이었다.
내가 졸병 때 당했던 것의 두 배, 세 배로 내 후임병, 일명 졸따구를 괴롭혔다. 그 정도가 지나쳤던지 소대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일 차로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나는 군대란 의례 그러려니 하고 허투루 여겼다. 동기생들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더욱 졸병들을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중대장실로 불려간 나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다. 거기엔 중대장 세 명이 있었고 나에게 괴롭힘을 당한 후임병 두 명이 있었다.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고갔다. 나는 후임병을 때리거나 괴롭힌 적이 절대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TV에서 정치인들이 하던 것처럼 부인하면 없던 일로 되는 줄로만 알았다. 끝까지 부인하자 중대장끼리 소곤소곤 대더니 바로 헌병대 군기교육대로 나를 보내버렸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군기교육대 철창에서 지내던 나는 철창 안에 있던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이전에 약간 교회를 다닌 적이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의 유일한 나의 구세주는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읽고 또 읽었다. 다른 책도 좀 보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경책만 계속 읽어댔다. 그런데 군대는 무슨 이유에서였던지, 내가 성경만 읽는 다는 이유로 성경책을 치워버렸다. 그러자 나는 미치광이가 되어 날뛰었다. 주위사람들을 때리고 주위의 책들을 집어 던지는 등 부릴 수 있는 난동은 다 부렸다. 그 후 나는 독방에 갇혔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루 이틀을 보냈다. 삼 일 되던 날 나는 이상한 체험을 하였다. 키 높은 창문을 통하여 내 눈에 희미한 하얀 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예수님이 나에게 계시라도 내리듯. 매우 황홀하여 정신이 혼미한 순간이었다. 예수님이 당신을 따라오라고 한 것이었을까. 참고 견디라는 말이었을까.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은 그 빛이 내 독방 철창을 지키는 헌병대 일병에게로 들어가 점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었다.
흑, 이게 뭐란 말인가. 왜 이 빛이 저 놈에게로 들어갔을까. 이게 무슨 의미인가. 나는 뛰는 심장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아니,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간증이나 신앙체험이라는 것인가. 나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헌병이 내 눈에는 아리따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를 여자 천사로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야! 너, 위에서 내려왔지?”
처음엔 그 헌병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천사 맞지? 예수님이 보낸 예쁜 천사 아냐? 나, 예수님한테 데려가줘. 빨리 여기서 나가게 해줘.”
그러자 헌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이 미친 놈, 조용히 있어. 이 주 후면 나갈 수 있을 테니.”
이런 그의 말이 당시 내 귀엔 이 주 후에 예수님에게로 날 데려간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무지 기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주체할 수 없이 기뻤던 나는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화들짝 놀란 그는 나를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나는 때가 되어 사랑에 목말라 발광하는 짐승처럼 옷을 벗고 바지를 내려 빳빳하게 커진 내 성기를 그에게 보이며 자위를 하였다. 거추장스러운 옷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지 나는 하루빨리 에덴동산 때의 알몸으로 예수님 곁으로 가고 싶었다. 또한 더욱 발광하여 허리띠 버클로 내 손목을 긋고 파는 자해까지 하였다.
이 모든 일이 감시 카메라에 찍혔고 그 장면을 본 장교들은 나를 군대 정신과로 보냈다. 거기 의사는 계급이 대위로 여자였다.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푸근하고 인자해 보였다. 그녀가 몇 마디 묻고 나는 차분하게 제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 의사는 ‘이렇게 멀쩡한 애를 정신병자로 몰다니.’ 라고 속삭였다.
그랬다. 내가 미쳤는지 군대나 사회가 미쳤는지 사람들이 미쳤는지, 모두가 자기는 아니라며, 자기는 지극히 정상이라며 자기기준으로 상대방을 미치광이로 단정하고 있었다. 저 위에 계신다는 예수님이 보면 우리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을. 아니, 당시 나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고, 최소한 그들이 짜놓은 판에 적응 못하는 미치광이였음에 틀림없었다. 그 이후로도 적응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군대 정신과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나는 바로 의과사 제대를 했다. 몇 달을 쉰 후 복학하여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겨우 겨우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러나 나의 이런 군대 경력은 입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그나마 취직한 회사마다 4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힘든 공장일이나 막노동 일은 더욱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만 무심히 흘러갔고 나는 철저한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갔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해질녘의 이내가 너무나도 은은하게 아름다워 애잔한 느낌마저 들었다. 해거름도 우리의 죽음을 예찬해 주고 있는 듯했다. 이제 드디어 예수님 곁으로 갈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그 곳에 여관을 만들고 그녀와 함께 여관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죽기엔 춥고 안 돼 보여 영혼마저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이기도 했고, 왠지 안에서 죽어야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와 나는 내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시안화칼륨, 일명 청산가리를 물이 든 컵에 녹여 같이 마셨다. 죽음은 의외로 간단하고 담담했다. 청산가리가 목을 타고 내려와 위를 적실 때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이 요동을 쳤다. 아팠다. 나의 이 아픔이 부디 나만의 아픔으로 끝나길 간절히 빌었다. 굽이굽이 지나온 길 위에 또렷이 남아있는 상처, 그 상처위에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무게가 고독을 더하며 나에게 낙인이 되었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내 목을 죄는 늪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이 될까봐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다. 그저 난 용기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두 번 다시 인간의 탈을 한 동물의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언제나 먹히는 초식동물일 테니까. 그것이 좋으니까. 좋은 그것이 내 운명이니까.
그러나 의식이 조금 남아있을 때 갑작스레 나는 나를 살렸다. 나의 죽음으로 나를 살려 나약한 비겁자, 무능한 낙오자라는 말을 조금은 피하고 싶은 내 생의 마지막 용기이자 삶에 대한 미련이었다.
나는 청산가리가 들어간 물을 입에 넣고 삼키지 않았다. 그녀가 물을 마시고 쓰러지는 것을 본 순간 나는 겁이 나서 물을 뱉었다. 그리고 여관을 뛰쳐나왔다. 잘 가요 그녀! 미안해요, 나의 영원한 아름다운 그녀!
쇄골이 툭 튀어나오고 강단이 있어 보이는 형사 같은 두 남자가 PC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나는 PC방 의자에 앉아 살며시, 그리고 아주 고요히 눈을 감았다. 숨이 더 이상 쉬어지지 않았다. 고통이 없었다. 정말 편안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눈부시게 찬란했다. 모든 생명들이 깨어나는 아침이 된 모양이다. 힘든 하루여, 세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