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민족문학론과 그 방법론 연구
민족문학론 연구
-연도별 민족문학론과 그 방법론 연구-
목차
Ⅰ. 서론
Ⅱ. 민족문학(론)의 역사와 개념
1. 민족문학의 역사 2. 민족문학의 개념 및 패러다임
Ⅲ. 연대별 민족문학론
1. 식민지시대와 해방기 민족문학론 2. 1970년대 민족문학론
3. 1980년대 민족문학론 4. 1990년대(이후) 민족문학론
Ⅳ. 민족문학론의 정신 및 방법론
1. 리얼리즘론 2. 민중문학론
3. 농민문학론 4. 노동문학론
5. 제 3세계문학론
Ⅴ. 결론
Ⅰ. 서론
문학연구는 언제나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그 세계관 속에 당대 사회의 역사관과 실천, 그리고 생산관계의 변화까지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민족문학론 연구는 바로 이런 현실적 과제와 요구에 부응하는 일종의 보고서인 셈이다. 1989년과 1990년 초,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가 붕괴하여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세계적인 정치 이념의 대결구도가 끝나고 87년 6ㆍ10항쟁으로 민주화가 실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70ㆍ80년대에 만개했던 민족문학론은 위기에 처했다. 민족문학론의 위기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자본주의체제의 전일적 지배, 남한 독점자본주의의 강화,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 및 포스트모더니즘적 대중문화의 확산이라는 외적 요인과 함께 민족문학진영 내부의 동요도 한 몫을 했다. 80년대 민족문학을 활성화시켰던 몇몇 비평가들이 90년대 접어들어 소위 ‘반성론’을 제출하면서 일종의 패배주의의 투항주의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 ‘민족’을 둘러싼 담론의 지형도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 ‘민족문제’에 대한 논의를 극단적으로 부정하자는 것과,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 문제를 새롭게 정교한 시각으로 인식하자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민족문제 자체를 탈각시키려는 그 심층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 중심부의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 초국적 기업을 매개로 한 초국적 자본의 유연성을 종래의 물리적 힘(정치적ㆍ군사적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식민화화기 위해 그 걸림돌로 작용되는 민족국가의 민족문제를 소거하려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현재 경제적ㆍ문화적 식민화가 촉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막강한 정보력과 자본을 가진 선진국은 타국(후진국)의 경제와 문화를 후진국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교묘히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있는 민족문제를 다각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강구하여 자본주의를 위반ㆍ전복시킬 수 있는 계기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렇듯 민족문제는 아무리 탈민족을 전략화하는 담론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해결 과제이다. 특히 아직도 분단체제의 모순을 안고 있는 우리의 특수한 현실에서 탈민족, 탈국가적 새로운 정체성을 지구화 논의와 연결한다면 이러한 지구화는 우리의 현실을 잃게 하는 최면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민족문학론의 위기는 민족문학론의 폐기가 아닌 보존과 폐기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민족문학론의 갱신을 도모하게 한다.
민족문학론에 대한 논의는 일제시대부터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해방 후 80년대까지 끊임없이 평자들에 의해 전개되었으나 그 중에서 특히 70년대 백낙청에 의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주로 잡지사나 평단에서 논쟁을 하며 벌인 것이어서 자기 논리에 스스로 모순을 보이기도 하고, 그 주장들의 정리가 쉽지 않다. 학술적 가치로 인정될 만한 민족문학론에 대한 최초 연구는 최유찬의 『1950년대 비평연구』가 있고, 전기철의 『해방 후 실존주의 문학의 수용양상과 한국문학비평의 모색』이 있다. 그 이후 의미 있는 연구는 최원식의 『민족문학론의 반성과 전망』이 있다. 이 논문은 각 시대별 문학논의를 구체적이고도 세심히 분석하고 있어 선구적 성과를 이루었다. 염무웅은 『5ㆍ60년대 남한문학의 민족문학적 위치』에서 5ㆍ60년대 문학적 상황을 당시의 문단적 풍토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김명인의 『시민문학론에서 민족해방문학론까지』는 민족문학적 관점에서 70ㆍ80년대의 민족문학논의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으며, 조남현의 『순수ㆍ참여논쟁』과 유중하의 『민족문학논쟁』은 60년대 순수참여논쟁과 80년대 민족문학주체논쟁에 대한 개괄이다. 이 밖에도 박대호, 윤병노, 문병란, 김용락, 백하현의 연구가 있다. 비교적 최근의 학위 논문으로는 하정일의 「해방기 민족문학론 연구」가 있고 김용락, 한수영, 고명철의 학위논문이 있다.
본 연구는 년대별 민족문학론을 쟁점위주로 살펴보고 민족문학론의 방법론인 리얼리즘, 민중문학, 농민문학, 노동문학, 제 3세계 문학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민족문학(론)의 역사와 개념
1. 민족문학의 역사
세계문학사를 볼 때, 민족문학이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형성되고 정치적으로는 근대 민족국가가 수립되기 시작하는 시대의 문학이념이다. 세계문학사상 근대 민족문학의 등장은 14세기를 전후한 르네상스기에 이루어진다. 유럽의 르네상스기는 봉건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스페인, 영국 등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기반으로 이 시기에는 신흥 부르주아계급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출현하게 된다. 상공업을 통해 상당한 자본을 축적한 신흥 부르주아에게 봉건체제는 보다 효율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농민세력과 연합하여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한 봉건세력에게 대항하면서 봉건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에 효과적인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을 주도했다.
문학예술상의 르네상스운동은 바로 신흥 부르주아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반봉건투쟁에 영향을 받아 나타나게 된다. 르네상스운동은 14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5세기 중엽이후 유럽 전역으로 파급되면서 지배적인 문예경향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인문주의’로 표상되는 르네상스이념이 인간성의 옹호, 현실생활에 대한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태도, 자유와 개성의 강조 등을 내세운 것은 바로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이념을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기의 문학은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반봉건투쟁에 부응하여 인간성, 시민적 자유, 개성 등을 새로운 시대의 덕목으로 내세우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민주변혁에 대한 열망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르네상스기의 문학이 근본적으로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연대성을 구현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와 함께 르네상스기의 작가들이 자기 나라 고유의 민족어를 계발하여 창작에 적극 반영한 점도 근대민족문학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근대적 의미의 민족형성에 있어 민족어의 확립이란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가 리얼리즘의 문제이다. 르네상스기의 문학거장들인 보카치오, 라블레,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등은 리얼리스트들인데, 바로 르네상스문학의 발전은 리얼리즘의 의해 주도된 것이다. 이들은 중세 기독교문학의 신비주의와 초월주의를 거부하고 현실생활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기초로 작품을 썼다. 또한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과거의 유형성과 도식성을 극복하고 인물의 생생한 개성을 성격화함으로써 작품의 현실성을 강화시키려 노력하였다. 또한 이들은 민족어의 계발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인물의 성격화가 현실감을 지니려면 당대의 사람들의 생활언어를 활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르네상스문학의 거장들은 이른바 ‘현실충실성’의 원칙에 기초한 예술적 현실반영의 원리를 철저히 따름으로써 근대 리얼리즘문학의 고전을 생산해 내었던 것이다. 물론 이의 밑바닥에는 자연과학의 급속한 발달에 따른 중세적 신비주의의 약화라든가 부르주아계급의 현실주의적 가치관의 강한 영향 등의 역사적 요인이 깔려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당시 민중의 생활에 대한 작가들의 휴머니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관심과 애정 역시 리얼리즘적 작품창작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민중의 실제 생활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관심과 애정은 역으로 현실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식을 더욱 강화시켰던 것이다.
서구 근대 민족문학의 형성과정은 단지 서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적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성장, 신흥 부르주아계급이 주도한 민중의 반봉건투쟁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운동, 부르주아를 계급적 기반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민주주의적이고 민중연대적이며 민족적인 근대 민족문화의 탄생, 문학적 리얼리즘의 대두와 발전 등은 민족문화의 성립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현상인 것이다. 우리 민족문학 역시 자본주의적 관계의 형성ㆍ발전과 함께 등장한 신흥 부르주아계급과 중세 봉건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여 근대 민족국가를 수립하려는 민중의 반봉건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에 나라의 주권이 흔들리고 외국자본의 침투로 민족경제와 부르주아계급의 성장이 저해되고 있던 국내외의 특수한 상황은 우리 민족문학의 형성과정에도 반영되어 서구의 ‘고전적 경로’와는 구별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반봉건의 과제와 함께 우리의 민족문학은 반외세(반제)의 과제까지 떠맡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 외세의 정치적 경제적 침략으로 자주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빼앗기고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길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사의 성격에서 기인된 결과이다. 우리 근대 민족문학의 기점을 19세기말, 특히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개항 이후로 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민족문학은 서구의 근대문학과는 달리 반봉건과 반외세를 양대 이념적 과제로 삼는 특수성을 보여준다.
우리 민족문학의 또 다른 특수성은 제국주의세력과 매판적 봉건세력의 결탁으로 고전적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차단당함에 따라 국내 부르주아계급의 성장이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점이다. 민족 부르주아의 이러한 미약한 성장은 종속적 자본주의의 길을 걸은 제 3세계 저개발국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결과 민족자본에 기초한 민족경제의 형성과 성장이 불가능해지며, 그것은 다시 민족 부르주아의 자생적 성장에 심각한 질곡으로 작용하게 된다. 종속적 자본주의화로 인한 이러한 악순환 과정은 궁극적으로 민족 부르주아의 동요를 낳게 되어 이들 중의 상당수는 제국주의 외세와 타협함으로써 자신의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민족 부르주아의 상당수가 이처럼 개량화의 길을 걸음에 따라 그들을 계급적 기초로 하는 근대 민족문학 역시 초기부터 개량주의적인 경향성을 일정하게 노정하게 된다. 그에 따라 부르주아계급이 민중의 대표역할을 했던 서구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에는 민족문학의 초창기부터 부르주아와 기층 민중 사이에 일정한 모순관계가 나타나게 된다. 그 결과 자주적 근대화와 민족문학의 발전에서 민중세력이 갖는 의미와 비중은 그만큼 커져 1919년 3ㆍ1운동을 기점으로 민족문학운동의 이념적 주도권이 점차 민중진영으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1923년 이후 신경향파문학과 프로문학의 급속한 대두와 세력 확장은 그러한 문학사적 변화의 반영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이 시기로 오면서 한글문학이 점차 민족문학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한문문학으로 상징되는 중세적 보편주의가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문에서 한글로의 전환이 단순히 문자의 변모라는 차원을 넘어서 민족문학의 성립에 있어 핵심적인 조건의 하나라는 점을 말해준다.
2. 민족문학의 개념 및 민족문학의 패러다임
민족문학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민족문학의 개념규정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다시 민족(주의)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민족주의는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의 산물로 나타났다. 이 민족주의는 하나의 정신상태이며, 이것은 인간의 머리와 가슴을 새로운 사상과 감정으로 채우고 그로 하여금 자기의 의식을 조직된 활동의 행위로 바꾸도록 하는 하나의 이념이자 관념의 힘이다. 또한 민족주의는 이중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국내적으로 그것은 민족내부의 모든 동료성원들과 생생한 공감을 가지나, 국제적으로는 민족의 범위밖에 있는 동료인간들에 대해 무관심이나 불신, 증오를 나타낸다. 민족주의는 어느 특정한 역사단계에서 지적, 사회적 요인의 성장의 산물이다. 그러나 하나의 민족(nationality)을 이룬 다는 감정은 근대 민족주의 발생 이전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은 최소 500동안 민족이라는 정신 내지 형태상의 공동체라는 감정의 민족(주의)은 존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근대에 와서 민족을 구성하고 형성하는 것은 핏줄의 외침이 아니라 이념의 힘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결국 민족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는 민족을 형성하는 ‘공동의지’인 셈이다. 그러나 통념상으로 지금까지 민족은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받아들여진 두 개의 허구적인 개념에 의해 절대적인 것으로 격상되어 왔다. 그 하나는 혈통이나 인종이 민족의 기초가 되고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며 불변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요, 다른 하나는 민족정신 내지 민족혼이라는 것이 민족과 모든 민족적 현상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셈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민족의 발생과 그 역할을 실질적으로는 전혀 설명해주지 못하고 우리들을 역사 이전의 신화적인 사이비 실체로 인도할 뿐이다.
민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을 절대적인 것, 선험적인 객체, 모든 정치적ㆍ 문화적 생활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민족이란 사회적ㆍ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다. 민족은 역사의 살아 있는 힘의 산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변동하는 것이며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 마디로 민족은 근대의 산물로서, 기독교 세계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르네상스 시기 개인주의 시대정신이 민족이라는 집단의 차원에 투영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 때 제국주의에 대항하면서 그리고 분단과 독재시절 민중과의 연대성을 꾀하며 민주주의를 논하는 가운데 민족문학론을 펼쳐나갔다.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은 문학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론이 보여줄 수 있는 원형적인 패러다임을 거의 다 제시하고 있다. 우선 역사적으로 문학이 민족단위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상정한다. 일종의 발전담론으로서 현재 상태가 불만족스러운 수준이어서 그것을 더 발전시켜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한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문학의 일국적 발전을 꾀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민족문학론은 민족을 주체화하고자 한다. 민족문학론은 국수주의를 경계할 뿐만 아니라 민족내부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논리를 편다. 거기에 이용 혹은 동원된 것이 코민테른의 인민전선전술이다. 노동자, 농민, 소시민 등 인민이 바로 민족이 되고, 봉건지주나 매판자본가는 민족에서 배제되며, 매판적이지 않은 민족자본가는 그때그때 달랐다. 결국 민족문학론이 개별 인민이든 계급 차원의 노동자, 농민이든 이들을 ‘민족’이라는 주체로 호명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계급적 차이를 넘어 민족 단위의 주체화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더 일반화하면, 일단은 ‘민족’단위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한 다음 역사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단계론적 사유가 민족문학론에는 불가피하게 부착되어 있다.
세 번째로 민족문학론은 문학과 사회적 실천과제의 결합을 강조하며 나아가 그 과제가 절박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위기론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해방 직후 그 과제는 대개 일제 잔재의 청산, 봉건 잔재의 청산에다 더러 ‘신래(新來)한 외국자본주의의 배격’을 결합해 우리나라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는 것으로 제시되었으며, 1970ㆍ80년대에는 위기에 빠진 민족의 주체적 생존의 해결과 분단체제의 극복, 혹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이나 ‘민족민주혁명’ 등이 되었다.
네 번째로 민족 문학론은 어쨌든 특수성을 강조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보편성과의 결합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세계문학과의 연관을 강조하는 것인데,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 역시 ‘전세계 진보적 문학과의 연대’를 강령에 포함했으며, 70년대 민족문학론도 ‘제 3세계 문학론’을 곁들였다. 하지만 우리의 특수한 민족문학이 어떻게 보편적 세계문학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 매개에 대한 사유는 부족했다. 하지만 해방 직후의 좌파 민족문학론이 세계문학에 대해 다소 의타적이었던 반면 70년대 민족문학론은 적어도 의타적이지는 않다. 제국주의가 초래하는 모순에 함께 맞서는 제 3세계문학과의 연대를 꾀했으며 더 나아가 민족문학이 오히려 서구문학보다 세계사적으로 더 선진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Ⅲ. 년대별 민족문학론
1. 해방기 민족문학론(식민지 민족문학론 포함)
해방기 민족문학론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다. 해방이 되면서 각 정치 세력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이념적 지향에 걸맞은 국가체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조직적 실천을 벌여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각 정치세력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연대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했다. 당시의 대립은 크게 제국주의 외세, 대지주, 매판 부르주아 등이 결탁한 반민중적 보수세력과 노동자, 농민, 진보적 소부르주아와 지식인 등이 연대한 민주적ㆍ민중적인 진보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었다. 해방기 민족문학론은 바로 후자의 문학이념적 반영이었다. 요컨대 당시의 민족문학론은 민주주의 민족국가 건설의 열망과 지향에 부응하여 나온 산물이었다. 단 1919년 이후 민중들의 목표는 단순한 민주주의 근대 민족국가가 아니라 민중적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민족국가이었고, 그런 이념이 문학에 반영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대 문학론과의 비평사적 연속성이다. 모든 문학론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전대의 이론적 성과가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해방직후 민족문학론의 비평사적 연속성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이 30년대 후반의 리얼리즘론이다. 30년대 후반 리얼리즘론은 전시기 프로문학론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면서 그것의 교조주의적이고 비반영론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30년대 후반 리얼리즘론의 심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의 수용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은 엥겔스와 레닌의 반영론과 리얼리즘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한 전대의 사회학적 미학관을 극복하기 위한 창작방법론이다. 이는 예술적 실천과 예술방법의 고유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불러일으켜 리얼리즘의 일반원리에 대한 이해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우리의 경우에도 안막이 소개한 후 임화의 주도하에 예술적 반영론에 기초한 리얼리즘론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며, 30년대 후반에 와서 이러한 노력이 이론적 결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민족문학권의 형성이다. 이에 있어서도 임화의 이론적 모색은 선구적이다. 임화는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근대문학사를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그의 리얼리즘론에도 반영되어 리얼리즘 일반론에 기초한 ‘본격소설론’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셋째, 일제의 군국주의적 파시즘화에 따른 객관정세의 악화이다. 31년의 만주사변 이후 군국주의적 파시즘화의 길로 급속히 들어선 일제는 경제공황으로 인한 독점자본의 위기를 새로운 식민지의 획득을 통해 해결하려 했고, 그에 따라 조선을 중국침략을 위한 군사적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국내의 모든 민족운동을 극도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객관정세의 악화는 37년의 중일전쟁 이후 보다 심화되는데, 그 여파가 문학에까지 미쳐 민족문학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민족문학진영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구카프출신의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진영의 단결을 위한 전략과 방도를 여러 측면에서 모색했다. 그 결과 문학론도 프로문학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교조적으로 주장하던 것에서 벗어나 프로문학 이외의 민족문학세력까지 아우르는 좀 더 유연하고 포괄적인 구도를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독자적인 특질보다 리얼리즘 일반원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 리얼리즘론이 본격적으로 탐구되기도 하고, 프로문학 이외의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문학세력들을 포섭하기 위한 문예정책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는 36년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채택된 반파시즘 인민전선론이 일정하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해방기 민족문학론은 해방 문학의 건설을 둘러싸고 <문학가동맹(약칭 문맹)>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문총)> 사이의 토론이 전개되었던 시기의 산물이었다. <문맹>은 1946년 제 1회 <전국문학자대회>의 회의록으로 출간된 『건설기의 조선 문학』에서 비평ㆍ소설ㆍ희곡ㆍ농민문학ㆍ아동문학 등 문학의 각 분야에 관한 방향 모색은 물론, 세계문학과의 연대 문제, 전통 문제, 국어 재건 문제, 계몽을 통한 대중화 문제, 신인육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토론되고 있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글이 임화의 「조선 민족문학 건설의 기본 과제에 대한 일반 보고」인데, 여기에서 그는 계급 문학론을 거부하고 민족문학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과 민족의 완전해방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이 해결해야 할 최대의 역사적 과제라고 밝힘으로써 <조선어와 조선문학, 조선의 산천과 조선 민족이 받은 수난의 역사>에 다가서려 하였다. 즉 임화의 해방문학 건설의 방향은 민족 문학의 수립에 있었다.
여기서 임화의 ‘인민과 인민문학’의 개념에 대해서 그 논의를 살펴보면, 먼저 임화는 ‘인민에 의한 인민의 문학수립’을 주장했다. 그는 당대의 과제가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건설에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역설하면서 현 시기가 정치에 혁명의 시기이듯 문화에서도 혁명의 시기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그러한 문화혁명의 담당자는 가장 혁명적 계급인 노동자 농민과 중간층의 진보적 시민일 것을 덧붙인다. 임화는 일본 제국주의적 문화지배의 영향과 봉건적 잔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이 혁명의 주체는 물론 문화건설의 기초가 될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인민이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곧 문화혁명의 담당자는 가장 혁명적 계급인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농민과 중간층의 진보적 시민으로 형성된 통일전선에 기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일제 문화지배와 봉건잔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적 임무와 함께 우리 문화의 기초를 인민 속에 확립해야 할 건설적 임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임화는 인민을 주체로 하는 인민의 문학을 강조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 것은 부패한 시민문화의 청산이다. 그는 시민문화가 진보적이고 건강한 요소를 상실하여 불건강하고 퇴영적인 독소로 된 것은 부패한 시민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임화가 강조하고 있는 인민은 국민, 민족, 민중이란 말과 대비해서 “노동자, 농민, 기타 중간층이나 지식계급층 등을 포섭하는 의미에 있어 이 말 가운데는 피착취의 사회계급을 토대로 한다는 일층 농후한 사회계급적인 요소가 더 많은 개념”이었다. 그러나 임화가 생각하고 있는 민족문학의 이념과 그 주체에 대한 인식의 밑바탕에는 일차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은 혁명의 시기뿐만 아니라 혁명이 승리한 후에도 그 혁명성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인민의 영도자로 민족의 형성자로 민족과 국가와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그 인민의 영도세력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이념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이 건설될 민족문학의 이념적 토대는 민족의 이념이기보다 인민의 이념, 즉 보다 더 많은 노동자 계급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이념이 진실로 민족적인 것이라는 임화의 신념은 곧 노동자계급의 이념이 인민들의 반제국주의적, 반봉건적 결합의 유대이며 민족적 결합의 중심이 됨으로써 민족의 이념이 되는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즉 임화의 요지는 근대적인 의미의 독자적인 민족문화의 수립이라는 식민지시대 이래의 문화적 목표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민적 민주주의 민족문학은 노동자계급의 선도성을 중심으로 농민, 인테리, 도시소시민의 광범한 통일전선에 의해 수행되는 반제ㆍ 반봉건의 민주주의 변혁과제를 그 내용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인민적 민주주의의 실천내용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주요산업국유화, 기타 언론ㆍ 출판ㆍ 집회ㆍ 결사ㆍ 신앙ㆍ 태업ㆍ 인격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며, 인민적 민주주의 민족문학은 이러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정치ㆍ 경제를 반영하는 문학임을 명시한다. 결국 임화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수립해야 할 문학이 노동자계급의 이념을 기초로 한 전인민의 문학, 전민족의 문학이지 결코 한 계급의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화를 중심으로 한 민족문학론을 타협주의의 산물이요, 이 타협주의야말로 비계급성의 근원이 된다고 비판하면서 한효는 정치운동과는 다른 예술운동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효는 “우리는 지금 과거의 여하한 경우, 여하한 시대에 있어서보다 진정함 맑스주의 예술이론의 확립과 더불어 우리 예술운동의 질적 앙양을 기하지 않으면 아니 될 시기에 도달하였다”고 전제하고, 당시의 예술운동의 방향을 비판하고 있다. 한효가 제기하고 있는 논지의 출발은 예술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계급이나 당파를 초월할 수 없으며 동시에 당파성을 초월한 이데올로기도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예술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현실에 대한 태도 즉 계급의식의 형태인 동시에 그 행동의 형태임으로, 그것은 우리의 주체적인 예술운동과 계급의식의 형태로서의 예술의 본질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당시에 제기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예술 건설과 관련하여 한효의 이른 바 진보적 리얼리즘은 새로운 창작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문학작품의 가치를 현실의 모방반영의 정확성과 그 모방반영의 전형성이라는 두 가지의 통일에 의하여 규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 복잡한 현실 가운데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현실을 정확히 그 전형성에 있어서 그려내면 낼수록 그 작품은 위대한 작품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가장 진보적인 현실인식과 가장 진보된 표현기술의 변증법적 통일이 진보적 리얼리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관념적인 행동 슬로건으로 치우쳐 있던 당시의 프롤레타리아 예술전선 논의에 창작방법을 제시한 것은 그 내용의 체계성은 그만두고라도 매우 진일보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우파의 민족 문학론과 구별되는 일에 열중하다가 좌파적 편향이 강화된 <문맹>의 초기 민족문학론은 민족적 모순의 인식에 보다 철저하고자 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교조주의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대중적 기반을 스스로 축소시켜버렸다. 이 같은 경향은 1948년에 들어서서 더욱 강화되었는데, <인민적 민주주의 민족문학 건설을 위하여>란 부제를 단 청량산인(淸凉山人)의 「민족 문학론」(『문학』7호, 1948.4.)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 글에서 그는 우파의 민족문학론을 격렬히 비판하는 한편 계급 문학론의 입장에서 <문맹>의 민족문학론을 비판하는 구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도 비판하고 있으니 당시 <문맹>은 좌우 양면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특히 좌익 내부의 공격 속에서 <문맹>은 계급 문학론을 몰역사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여 민족문학론도 더욱 첨예화하였다.
일단 <문맹>에 흡수되었던 계급 문학론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 것은 열세에 있었던 우익이 점점 강화되는 것에 대해 좌익이 초조하게 생각한 결과인데, 좌우 투쟁의 격화 속에서 통일 전선을 결성하려 했던 <문맹>의 활동이 실패할 운명에 처했고 국제적 환경도 악화되었다. 1948년 말 트루만이 미국 대통령에 재선되면서 미국은 반공 정책을 분명히 했고 소련도 자신의 블록을 강화하여 이른바 동서 냉전의 시대가 개시되었다. 더구나 중국 혁명이 성공하는 1949년을 고비로 아시아 정세도 극도로 경직되기 시작했으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지주였던 국민당 정권의 붕괴로 미국은 일본을 반소 반공 정책의 보루로 삼게 됨에 따라 일본의 민주화를 추진하던 맥아더 사령부의 점령 정책도 반전하여 일본 독점자본의 부활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반파시즘 연합의 붕괴는 미소 양군에 분할 점령된 한국에 극히 불리하게 작용하여 통일정부 수립에 대한 민족적 열망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분단시대는 개시되고 말았다. 이러한 내외 여건의 악화로 계급 문학론을 흡수했던 <문맹>이 오히려 좌경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들의 민족문학론도 드디어 해소되어 버린 것이다.
<문총>의 민족문학론은, <문총>을 구성하는 <전국문필가협회>(약칭 문필협)과 <청년문학가협회>(약칭 청문협)의 주장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순수문학론을 내세우는 <청문협>의 민족문학론 살펴보면, 김동리는 「민족 문학과 경향 문학」(『백민』, 1947.9.)에서 경향문학에 대립하는 민족문학은 순수 문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가 자신의 순수 문학을 이른바 예술지상주의와 구별하여 ‘본격 문학’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은 민족시의 수립을 위해서 순수시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조지훈이 1946년에 발표한 어느 글에서 자신의 순수시론이 서구의 예술지상주의나 <화조풍월(花鳥風月)을 노래하는 무사상적>인 식민지 시대의 순수시와 구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김동리는 본격 문학(=순수 문학=민족문학)의 근본적 지향인 좌우의 대립을 넘어선 제 3세계관의 창조를 주장하고 있다.
순수문학론을 근간으로 관념적 경향이 강했던 <청문협>의 민족문학론에 대해서 <문필협>의 민족문학론은 현실주의적 경향이 보다 강했다. 회장에 정인보, 명예 회원에 김규식, 조소앙, 안재홍 등, 그리고 준비 위원에 손진태, 조윤제가 참가했고, 조직의 주동적 역할을 했던 김광섭이 해방을 옥중에서 맞이한 유일한 시인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고 <문필협>의 민족주의적 정열이 남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주주의 민족문화 건설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한 <문필협>은 초기의 <문맹>과 일정한 제휴가 가능할 정도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필협>에 관계한 김규식과 안재홍의 합작 노력은 실패하고 <문맹>은 좌익화되었다. 민족을 가장 핵심적 가치로 인정하는 <문필협>의 민족문학론은 계급적 경향이 노정된 <문맹>의 순수문학론을 함께 비판함으로서 우익적 성격 안에서도 민족주의 과제에 보다 충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필협>의 민족문학론은 뒤로 가면서 구체성도 점점 엷어지고 민족정신을 강조하는 등의 추상화 경향이 드러나면서 이론적 심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우익의 승리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해방기 민족문학론의 양식은 창작방법론으로 진보적 리얼리즘과 혁명적 로멘티시즘이 있고, 실천론으로 대중화론과 구국문학론이 있다. 창작방법론은 <문맹>에서 주장한 민족문학론의 구체화 작업이었고 실천론은 <문맹>의 문인들이 대거 월북하게 되고 2ㆍ7구국투쟁을 중심으로 일어나 우익의 구국문학운동의 일환이었다. 진보적 리얼리즘은 앞서도 조금 설명했듯 안효와 김남천의 논의에서 발전하였다. 창작방법이 필요한 이유는 ‘비평의 과오로부터 작가와 작품을 지키고 작가의 생활내용을 충실히 하고 사상내용을 풍부히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해방직후 조선의 역사적 단계가 진보적 민주주의 수립을 위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창작방법으로서 진보적 리얼리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보적 리얼리즘은 당시의 변혁단계인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단계에 상응하는 창작방법으로서, ‘제국주의적 문화잔재와 봉건적 질곡에 항쟁하고 민족의 해방, 국가의 완전독립, 토지 문제의 평민적 해결’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조선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전 인민대중의 힘찬 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민족의 적들의 야수와 같은 반동의 정체를 폭로하고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과 고귀한 인간 정신을 고양함으로써 인민의 승리와 함께 빛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혁명적 로멘티시즘은 ‘실현가능한 현실보다도 나은 미래를 묘사함으로써 현실을 변혁하려는 희망을 표현한 로멘티시즘이다. 또한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강렬한 사상적 지향으로 새 것을 적극 지지하며 새생활을 창조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영웅적인 투쟁과 혁명적 열정 등의 묘사를 하는 문학창작방법이다. 즉 혁명적 로멘티시즘이란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혁명적 영웅주의를 칭송하고 혁명적 투사나 건설자를 찬미하고 사회발전의 올바른 법칙에 의거한 올바른 미래를 발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영웅적인 주인공은 ’민족의 거대한 꿈과 영웅적 정신을 구비한 인물이다. 민족의 거대한 꿈은 일제잔재와 봉건잔재 및 국수주의를 완전히 소탕하고 토지문제가 해결된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완성이라는 역사적 방향성을 의미했고, 영웅적 정신은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할 기본적인 성격과 계급적 전형론에 입각한 인민대중의 모범적 행위의 표출이었다.
<문맹>과 <문련>(조선문화단체총연맹)의 중앙조직이 정비된 이후 문화운동은 조직적 체계를 완성하였고, 문화운동의 기본방향과 조직활동의 기본 노선도 정리되었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의 문제가 등장하였고 바로 이러한 실천의 문제는 대중화 운동으로서 현실화 되었다. 문학 대중화의 과제는 문학운동의 조직적 과제와 함께 제기되었던 문제였고 문학의 대중화 운동을 해결하고자 모색했던 것이 문학서클 운동이었다. 문학서클은 대중의 문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학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대중자신의 조직체이자 대중의 계몽과 조직적 연락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함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물론 문학서클운동이 <문맹>의 일치된 견해와 실천 방법으로 구체화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학의 대중성 확보와 정치적 상황의 악화를 타개하고자 했던 노력은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1946년 5월 제 2차 미소공위 결렬 이후 정치적 상황의 악화와 좌익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을 만회하기 위한 실천활동으로서 구국문학론이 전개되었다. 김영석은 ‘민족문학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저지하려는 공세와 침해로부터 구출하고 옹호해야 하는 문화위기’ 속에서 문학운동이 구국투쟁의 일환으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창조적 작업의 자유와 민족문화의 옹호를 위한 투쟁을 위하여 조직을 정비해야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이나 노력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확실시 되면서 남한의 좌익 문학 내지 문화운동은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은 20년대보다 훨씬 성숙한 이론적 골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통일된 민족문학론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더구나 분단이 고착되고 문단이 반쪽이 나게 됨으로써, 통일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민족사적 요구에 대응하여, 20년대의 국민문학론과 계급문학론을 동시에 극복하는 이론으로서 요구되었던 50년대 민족문학론은 분단 시대의 어두운 터널 속에 스스로 소멸해 버렸으니, 우리 문학이 냉전시대의 깊은 잠 속에서 깨어나는 데는 무려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2. 1970년대 민족문학론
70년대 민족문학론은 60년대 말 순수ㆍ참여논쟁 및 리얼리즘 논쟁에 뒤이어 나오는데, 그 시작은 『월간문학』 1970년 10월 호에 민족문학론 특집이 나가면서이다. 여기서 민족문학론을 긍정하는 김상일, 문덕수와 민족문학에 반대하는 김현, 이형기의 논쟁이 있었으나 큰 의미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 이후 민족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김지하의 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단초는 백낙청에서 찾을 수 있다. 백낙청은 「시민문학론」(1969)에서 순수와 참여를 넘어선 시민사회를 전망하는데, 이것은 곧 김지하의 ‘민중’인식과 연결된다. 또한 백낙청 자신의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하여」란 글에서 민족문학을 본격적으로 전망한다.
먼저 백낙청은 「시민문학론」에서 서구의 시민혁명을 통찰하면서 진정한 시민문학이 어떠해야 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문학작품이 시민문학으로써 적합한지를 분석하고 있다. 그가 민족문학 대신에 굳이 시민문학을 주장한 것은 ‘시민정신’에 기반한 문학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시민정신은 프랑스대혁명의 정신, 즉 자유ㆍ평등ㆍ우애의 정신과 동의어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터인데, 한국 사회에서의 동학-3ㆍ1운동-4ㆍ19혁명에서 그 가능성이 실험되었다고 그는 진단한다. 하지만 이 실험들이 실패한 실험이었다는데 한국문학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시민혁명의 실패는 결국 진정한 시민정신이 구현된 문학의 빈곤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문학의 과제가 시민정신을 구현하고 시민혁명에 이바지할 진정한 시민문학의 건설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러면서 한용운, 이상화, 김소월, 이육사 등을 시민시인으로 말하며 그 성과를 평가한다. 그러나 시민문학론이 60년대 한국문학 풍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민족적 특수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한국적 시민혁명의 특수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배려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이유는 우리 민족문학의 전통에 대한 소양 부족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 근대문학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는 대목이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민중적 시각의 부족이다. 동학과 구한말 의병활동과 삼일운동의 민중 속에서의 연속성을 거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강조점은 민중 주체성보다는 시민의식의 빈곤 쪽에 주어져 있다.
또한 백낙청은 「민족문학 개념 정립을 위하여」에서 시민문학에 이어 우리나라의 입장에 맞게 민족문학을 찾고 그 개념을 정립하고자 시도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진정한 민족문학이 어떠한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는데, 민족문학의 이념으로써 반식민, 반봉건을 내세운다. 그래서 반봉건, 반식민에 해당하는 문학을 곧 민족문학으로 보는데, 이는 해방직후 민족문학의 이념과 맥을 같이 한다. 우선 민족문학을 “민족문학으로 주체가 되는 민족이 우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 민족으로서 가능한 온갖 문학 활동 가운데서 특히 그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이 요구하는 문학을 민족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구별시킬 필요가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민족문학에 대한 최초의 주체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민족문학이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이라는 말은 구체적인 민족 현실이라는 민족적 특수성으로부터 문학의 이념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민문학론이 보여주던 보편주의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백낙청이 민족적 위기극복의 주체로 민중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민중관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그가 이상적 민중을 상정하고 그것을 일반대중에게 강요하는 ‘이상주의적 민중관’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그는 “민중이 만들어온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에 따른 겸허한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그래서 “민중의 앞날을 설계하는 일도 어디까지나 실재하는 대중의 기본적인 욕구를 긍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된다”고 본다. 이런 민중관은 80년대 급진적 민족문학론의 관념적 민중관과 확연히 구별되거니와 지금의 시점에서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김지하는 김수영의 시를 “현실 모순의 육신으로 파악된 소시민성을 치열하게 고발함에 의하여 참된 시민성의 개화를 열망한 하나의 뜨거운 진보에의 정열”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김수영이 민중으로 살지 않았음을 아쉬워한다. 김지하는 민중에 대한 개념을 소박하게 세우면서, “소시민은 다수라 하더라도 거대한 민중속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소시민성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 또한 김지하는 조선시대 풍자와 해학의 문학을 우리 전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직은 민족문학을 “본래 민족문학이란 민족을 위한 문학이라는 대전제 위에 서는 문학이다. 따라서 그 지향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순수문학과 다른 것이다. 순수문학의 목표는 문학 이외에 달리 없다. 그러나 민족문학은 그 부수적인 목표를 민족의 편에 두는 문학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는 20년대 국민문학을 “정작 그들의 활동을 전개하는 자리에서 명실상부하는 민족문학을 수립하기에는 이르지 못했다.”라고 평가한다. 국민문학이 시조의 부흥을 주장한 것에 대해 “민족문학이 반드시 한 민족의 전래적인 언어, 형식을 흡수하는 데서만 수립, 전개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민족문학의 폐쇄성을 경계하며 올바른 민족문학은 국민문학파에 의해 수립되지는 못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민족문학을 “민족을 끝없는 활력소라고 해석하는 문학, 그것을 통해 자양을 공급받으며 끝없는 항해를 보장받을 수 있는 문학”으로 보고자 한다.
임헌영은 20년대 이후 문학사를 살펴보면서, 20년대 카프문학에 대항하기 위한 개념으로 국민문학이 쓰여 왔고, 그들을 민족문학이라 일컬었다고 본다. 또한 ‘내셔날(national)’이란 말이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긍정적인 의미로 ‘민족’이란 의미로 번역되기보다는 일본이 통치하기에 알맞은 말로 바뀌는데 아시아에서만 ‘국민’이란 말로 번역되고 있다고 보았다. 민족의 핵심이 누구냐에 따라 민족문학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달라지는데, 우리 근대문학에서는 연암의 <허생전>을 민족=민중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민족의식의 발상이 된 문학으로 보았다.
70년대 민족문학론에서 민족문학에 대하 부정적인 인식은 김현을 통해 드러난다. 김현은 2~30년대 민족문학에 대해 그 단점을 지적하며 오히려 ‘한국문학’이란 용어가 객관적인 용어이니까 적합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민족문학이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질 수 있기에 그로부터 야기되는 민족문학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김현의 언급에서 주목할 부분은 민족문학의 ‘권력지향적 특성’이 내포하는 부정적 측면이다. 김현의 이러한 비판은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직후에 이르는 문학사의 과정을 검토하는 가운데 도출된 것으로, 민족문학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은 민족문학이 자칫하면 국가의 통치권력의 이데올로기에 흡수됨으로써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을 묘파해낸 것이다. 그의 민족문학은 ‘한국문학’이란 가치중립적 성격을 띤 문학으로 바뀌어야 할 비평의 탐구대상에 불과한 뿐이지, 자칫하면 자민족중심주의 혹은 국수주의란 편협한 민족주의에 의해 과도한 가치를 지닌 문학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김현은 민족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을 동일 개념으로 파악하는데,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민중이 자신이 처한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이겨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민족문학이고 이러한 문학이 모여 진정한 세계문학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한다. 각 나라에서 그 민중이 처한 상황을 잘 형상화한 작품이 당연히 민족문학이고 곧 세계문학이다. 특정한 세계문학이 있는 것이 아님을 간과한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우리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민족주의적인 말이 아니라 ‘가장 일본적인 것도 세계적인 것’이고 ‘가장 미국적인 것도 세계적인 것’일 때, 즉 각 나라의 문화가 모두 존중 받는 다양성의 세계, 다가치의 세계가 진정 세계적이라는 말이다.
신경림은 김지하의 글에서처럼 소시민성에 대한 경계를 나타낸다. “엄격한 의미에 있어 소시민은 민중은 한 구성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소시민 의식은 본질적으로 반민중적인 것인바, 그것은 소시민 의식에는 참다운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이라며, 진정한 민중에 대한 자극을 식민지시대에서부터 70년대까지, 시에서는 김수영과 신동엽을 들고 있다. 또한 김정한 소설의 예를 들어 높은 수준의 비평정신과 사회의식을 지닌 점을 극찬한다. 신경림은 그 문학적 성과가 높다는 것만으로 민족문학으로 치부하지 않는데, 채만식을 민중 밖에 서 있은 작가로, 이무영을 지식인이 가진 관념으로서, 김동리와 서정주를 관념의 유희로, 최인훈을 자의식의 과잉, 사변의 한계로 파악한다. 또한 황석영의 「객지」도 생산과 노동의 문제가 등장하지만 개인주의적 히로이즘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천이두는 우선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를 먼저 나타내고, 민족문학을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애국투쟁의 문학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다고 보면서, 사회적 기능만을 강조한 문학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민족문학의 의미를 “민족문학의 고유성 내지 개성이 세계문학적 일반성 내지 보편성과의 긴밀한 상호 관련 아래서 파악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기괴한 지방색을 일방적으로 과시하려는 것이 될 것이며, 결국 민족 문학의 문제를 폐쇄적인 지방주의의 테두리 안에 한정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 지적한다.
70년대 민중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었던 제 3세계, 제 3세계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즉 제 3세계문학도 억압받는 민중의 현실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와 동궤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1970년대 우리나라를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제 3세계도 2차 대전까지 제국주의에 수탈당해 왔던 민중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1970년대에도 여전히 제국주의의 수탈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동류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 3세계란 세계를 3개로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제 1세계, 제2 세계의 부자, 강자인 입장에서 서는 것이 아니라, 제 3세계 즉, 민중의 입장에 서자는 것이다.
민중의 입장에 근거한 제 3세계론은 본질적으로 세계를 하나로 보는 이론이면서도 후진국 및 피압박민족의 민족주의적 자기주장에 일단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각 국가ㆍ민족의 독립과 자주성은 어디까지나 전세계의 민중이 하나로 되는 과정의 일부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딱히 민중 자신이 집필한 문학이라는 지나치게 좁고 매우 비현실적인 의미에서의 ‘민중문학’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최대한도로 민중의 것이었고 그리하여 민중이 후원자로서나 그 문학의 주인이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그러한 ‘민중문학’이다. ‘민족문학’은 말하자면 이러한 민중문학이 우리 시대에 구체화되는 한 중요한 형태이며 민족문제가 절실한 곳에서는 바로 현단계의 민중문학 그 자체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 3세계론은 구체적인 작품소개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신식민지로서의 ‘민중’이라는 공감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되고 만다.
민족문학론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이론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이와 병행해 실제 작품 비평에까지 이른다. 70년대 초반이 주로 민족문학에 대한 성격규명과 개념 규정에 치우쳤다면, 70년대 후반은 구체적인 작품을 평가하면서 그 의의를 밝히는 시기였다. 무엇보다 70년대 민족문학론의 성과는 ‘민중’의 인식을 높였다는 것이다. 시에서 김지하의 『황토』, 소설에서는 황석영의 「객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홍길의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와 체험수기로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등이 구체적인 작품으로 거론된다. 이 작품들은 80년대 노동문학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한다.
3. 1980년대 민족문학론
1980년대 민족문학론은 1970년대 민족문학론의 문제의식을 이어받되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백낙청이 이끈 1970년대 민족문학론이 ‘지식인’의 사고에 갇혀 있었다고 비판하며 채광석ㆍ김명인ㆍ백진기 등은 ‘민중’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그들과의 일치를 더 분명히 의식하게 된다. 이 시기 백낙청은 민중문학은 민중문학운동의 문제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운동으로서의 문학은 조직에 관한 논의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중과 민중지향적 지식인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지식인 문필가의 자기 혁신을 통한 민중에의 동화를 바람직하게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80년대 민족문학론은 70년대 민족문학론이 내세운 ‘예술성’과 80년대 비평가들이 말한 ‘운동성’을 어떤 관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된다.
80년대 민족문학론은 1980년 ‘5ㆍ18광주민중항쟁’이라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으로 시작되어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중운동으로 더욱 발전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이른바 민족문학 주체논쟁이 시작된다. 먼저 채광석은 ‘민중’의 계급적 입장을 강조하며 민중적 민족문학을 제창했다. 여기에 김명인이 보다 분명하게 노동 대중이 창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런 민중의 계급적 관점에 대해 백낙청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경계했다. 홍정선은 변혁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에 의문을 나타냈으며 조정환은 문예운동의 ‘전선’과 조직문제를 놓고 백진기와 논쟁을 벌였다. 정리하면 백낙청과 홍정선ㆍ성민엽ㆍ정과리 등의 (소)시민적 민족문학론, 이재현ㆍ현준만 등의 노동(자)문학론,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강조하며 조정환이 내세운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그 발전적 형태인 노동해방문학론, 끝으로 1988년 중반 이후 백진기가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내세운 민족해방문학론 등이 80년대 민족문학론을 이끌었다.
민족문학 주체논쟁은 지식인과 ‘민중’은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또 그 ‘민중’의 내포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또한 현단계 모순의 성격을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으로 파악할 때 어느 것을 기본모순으로 보고 어느 것을 주요모순으로 보아야 하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80년대 민족문학 주체논쟁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또는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한국 사회의 성격을 밝히려고 한 사회구성체론과 그 주체로서의 계급론 그리고 그 실천으로서의 변혁론과 맞물려 운동성을 강하게 띠게 된다.
6~70년대 소시민이라 불린 계층이 80년대는 ‘중산층’ 내지 ‘신중간계층’으로 불린다. 여기서 ‘신중산층’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는 않지만 개인의식이 투철하고 역사와 현실에 무관심하며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없으면 어떠한 일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 중산층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산층도 마찬가지로 예외적인 존재로 묶을 것이 아니라 민중에 포함시켜 민중의 능동성을 되찾아야 했다. 또한 중산층의식이 허위의식임을 밝혀 민중의 피동성을 극복하고 능동성을 찾아야 했다.
민중에 대한 분석을 해 왔던 박현채는 민중의 구성원 중에서 특히 노동자계급이 지닌 진보성을 주목한다. 그는 민중의 구성원 중 ‘중산층’과 ‘중산층의식’에 대해 면밀히 고찰하면서, 중산층에 대해 구중간계급과 신중간계급이 얽혀 존재하기에 그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중간층은 ‘사회경제적인 공통성’이 없음으로 해서 ‘사회적 지위와 성격의 이중성’을 지녔고 보수적인 세력을 구성할 뿐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도 함께 지녔다고 분석한다. 민중을 분산시키는 것은 자본가에 의한 메스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대중조작이고, 중산층이 지닌 안정성은 민중이 지닌 의식에 크게 반하는 것이지만 중산층의식이 지속적이지는 않다. 중산층 의식은 빈곤에 대한 사생활에의 집착에서의 해방을 가져다주기는 하나 동시에 상대적 안정에 따른 개인주의의 철저화와 사회적 상황에의 무관심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는 현실긍정성을 강화하며 중산층이란 허위의식을 통해 민중적인 능동성을 훨씬 낮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중산층의식은 민중의 힘을 분산시킨다고 그는 주장 한다.
1980년대 민족문학론은 ‘민중’ 주체를 말하면서도 실은 이론적 선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소수의 지식인이 주도했다. 그런 만큼 역으로 ‘운동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에 대한 지식인들의 애착, 다시 말해 ‘운동’과 ‘문학’간 길항 관계가 80년대 민족문학론에 자리잡고 있었다. 80년대 내내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것은 관념적인 태도라며 비판한 백낙청의 논의가 돋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쨌든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강조되어 온 80년대 민족문학론의 특징은 첫째, 노동자ㆍ농민ㆍ도시빈민 등 민중기층계급의 생활정서와 이들의 역사의식의 형상화 작업, 둘째, 기층민중의 궁극적인 고뇌로부터의 해방이란 통일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통일론에 대한 관심이 문학에서 고조될 수박에 없었으며, 셋째, 이 두 가지를 위해서는 당연히 당대주의적 반역사성을 띤 지배층과 대립관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강조된 민족문학론은 그 내용적인 면에서 과학성이 강조되면서 현상적으로는 ‘시의 시대’로 불린 80년대 초반의 무크운동, 동인지 운동, 지역문학 운동에서 장르확산논의를 거쳐 후반기의 교육시 운동, 여성시 운동, 민족문학주체논쟁의 형식으로 흘러갔다.
80년대는 외형상 경제는 성장하였다. 하지만 민중의 소외는 전혀 극복되지는 않았다. 전체 인구의 소득은 향상되었으나 그 향상된 소득이 민중에게 평등하게 분배된 것이 아니라 일부에게 편향되어 한국의 노동자들은 절대적 궁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두드러져 민중의 삶은 현실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을 제기한 것이 바로 민중문학론이었고, 민중문학론은 70년대 민족문학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으며, 이후 민족문학 주체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80년대 민족문학론(양식)은 시 분야에서 그 구체적인 발전 양상을 보인다. 민중적 현실인식의 시는 노동현실이나 문제를 제재로 하여 노동자의 삶을 형상화하는데 국한하지 않고 왜곡된 사회구주와 현실을 개선, 극복하려고 하였다. 이는 노동자의 삶의 조건이 열악하지만 온갖 생산활동의 주역이라는 역사적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70년대 말의 체험수기나 생활글을 통해 알려진 노동자들의 육성이 80년대 들어 증폭되면서 하나의 주도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노동현실을 담아내는 가운데 기존 문학제도의 의미 자체를 문제삼는 새로운 관점으로 사고하고 변혁의 세계관을 내포함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사건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정환과 김남주의 경우, 사회ㆍ정치적 상황에 크게 관심을 두고 비인간적인 산업화의 추진에 대한 문학정신을 민족문학론 논의로 이끌고 갔고 사회적 갈등에 대한 문학적 관심을 고양시켰다. 민중을 억압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류층과 그들에 의해 형성된 모순적인 정치구조를 비판하고 나섰던 것이다. 한편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는 기존의 지식체계를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지식, 즉 노동의 시각을 통한 세계이해의 방식일 뿐 아니라 노동의 체험을 통해서 도달되는 지혜와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앞 시대의 민중적 현실인식의 시를 전위적인 위치로 세워 놓았고, 노동자가 창작주체가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시작품이 단순한 텍스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운동의 매체로까지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문학계 내부에서 뿐 아니라 사회 변혁운동 전반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시는 각기 다른 내용과 방법으로 가장 현실적인 문학적 대응 양식으로 시대에 응전하면서 민족문학을 이끌었다. 즉 민중적 현실인식의 시가 시의 중심부로 들어온 것을 비롯하여 후기산업사회의 인간소외, 물신화를 그린 도시적 감수성의 시가 그 깊이를 더하면서 80년대 민중문학으로서 민족문학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4. 1990년대(이후) 민족문학론
왜곡된 역사, 독재와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의 한 방편으로 이념성과 운동성을 지니고 논쟁을 벌인 민족문학론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가 진행되었고 무엇보다 89년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 및 동구권이 몰락하자 급격하게 와해되기에 이른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논쟁은 1996년 11월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족문학사연구소가 주최한 ‘민족문학론의 갱신을 위하여’라는 심포지엄과 1997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된 「모더니즘의 재인식」이라는 진정석의 글을 통해서이다. 진정석은 이 발제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이 놀라운 속도로 급변하고 있는 90년대의 현실을 포착하는데 실패했으며,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장하는 이념적 지표로서의 기능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 둘째, 민족문학론이 민족사의 특수한 과제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근대성이라는 인류사의 보편적 경험이 제기하는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점, 셋째, 식민지 체험과 국토분단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우리 사회는 결국 전반적인 근대화의 도정을 밝아왔다는 현실인식 등이다.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이 가지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근대성 범주를 가운데 놓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도식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이 말은 민족문학론에 있어 모더니즘을 수용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에 윤지관은 「문제는 ‘모더니즘의 수용’이 아니다」에서 진정석의 논의를 ‘서구중심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는 “진 씨의 가장 큰 잘못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서구적 범주들을 우리의 논의와 별로 구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문학이 서구와는 달리 모더니즘이라는 주도적인 현대문학의 명칭을 마다하고 리얼리즘에 천착해온 것은 모더니즘문학을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현상에 대한 한 대응으로서의 모더니즘까지 아우르는 리얼리즘이 우리 현실에서 배태되었음을 말해주며, 어떤 의미에서는 소위 미학적 근대성의 한국적 형태가 바로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확립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논의의 요체는 리얼리즘이 모더니즘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특수한 근대적 현실에서 배태되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김명환은 진정석의 논의에 대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구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보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갈리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는 거기에 민중의 땀냄새가 어떻게 배어 있으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봄으로서 그것을 비판한다.
최원식은 이 논쟁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 그는 진정한 리얼리즘이건 광의의 모더니즘이건, 어느 한쪽에 의한 다른 한쪽의 흡수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회통론’은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니라 1920, 30년대 식민지 시대의 카프 진영과 1980년대 민족문학 진영에 대한 비판과 그동안 문학사에서 배제된 모더니즘에 대한 복권적 해석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심층에 내포된 의미는 1920, 30년대 카프식 리얼리즘 대 김기림 등의 모더니즘의 대립이라는 한국적인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관행과 현상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함께 현재까지 일군 합리적인 핵심을 두루 껴안으며 근본에서 다시 출발하자는 해체론적 사유를 주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우리식 어법을 탐색하려는 의지의 반영으로도 볼 수 있다.
백낙청은 ‘민족문학론은 지금도 유효하다’라고 하며, 그는 자신이 내세운 분단 체제론이 ‘좀 더 구체성을 갖춘 것은 90년대 와서’라고 주장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의 대명사로서의 민족문학은 여전히 그 중심성을 내세움직하다. 아니, 남한의 국민문학이자 전체한민족의 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 세계문학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에 문학의 생존공간을 확보해주는 민족어 문학이자 지역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세계사적 의의가 충일한 개념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지식사회ㆍ정보화 사회가 되어도 노동은 근절될 수 없으며, 매체의 소유관계에 의한 문제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도 정작 필요한 것은 ‘각성한 노동자의 눈’이라는 것이다. 이 각성한 노동자의 눈은 근대 세계체제와 현행 세계화과정에 대한 발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입장을 뜻한다. 백낙청의 발언이 가지는 진정성은 그가 민족문학론을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탐색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전지구화,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그것과의 조응과 회통을 통해 민족문학론을 정립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은 90년대 이후 제 3세계론과 분단체제론으로 나아가는데, 제 3세계론은 민족문학의 세계문학적 보편성을 확인하는 일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민족문학이 한국에만 국한된 국지적 논리가 아니라 제 3세계의 일원으로서 그들과의 연대를 통해 제국주의적 세계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문학이념이라는 점에서 전인류적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이 제 3세계론의 기본적 문제의식인 것이다. 백낙청의 제 3세계론은 분단체제론과 상호보안적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분단체제의 극복은 제 3세계의 자기 해방의 일환일 뿐 아니라 제 3세계를 구성 부분으로 하는 세계체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 없이는 분단체제의 극복을 통해 ‘인류의 하나됨에 이바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낙청이 강조하는 세계체제론은 제 3세계론과 분단체제론의 내적 연관을 밝히려는 모색의 완결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라는 외적조건과 한국 민족주의의 위기라는 내적 조건이 상호작용하면서 민족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9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나 IMF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결국 국가 간 체제를 매개로 작동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국가 간 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존립을 가능케 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기반인 것이다. 국가 간 체제가 유지되는 한 민족문제는 사리질 수 없다는 말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실, 바로 분단이다. 분단 상태는 남한 주민들마저 제대로 살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군비 경쟁으로 인한 물질적 손실은 고스란히 남한 주민들의 몫이다. 또한 분단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옥죄는 족쇄로 기능한다. 뿐만 아니라 분단은 대미 관계의 불평등성을 온존시키는 방패막이로 작용하고 있고, 분단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이론적 모색이나 실천들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분단 극복은 최종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의미 있는 돌파구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민족문학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민족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을 정확히 구별하면서 민족문학논쟁의 의의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민족문학은 민족주의 문학과 크게 네 가지 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첫째, 민족주의 문학이 민족을 시간성을 뛰어넘은 비역사적 존재로 추상화시키는 데 비해 민족문학에서는 민족을 근대와의 역사적 연관 속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민족국가의 성립 시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관계없이 민족을 역사적 존재로 이해한다는 점이야말로 민족을 혈통ㆍ종족ㆍ정신 등으로 신비화시키는 민족주의 문학과 갈라지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민족주의 문학이 민족 내부의 차별성을 무시하는 데 비해 민족 문학은 민중의 삶에 주목한다. 민족문학이 이처럼 민중 연대성을 이념적 원리로 삼는 까닭은 민중이 해방되지 않고는 인간 해방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문학은 항상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민중의 편에 서려고 노력해 왔으며, 그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지켜 왔다. 그런 점에서 민족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의 결정적 차이는 민중 연대성을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민족주의문학이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전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데 비해 민족문학은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변혁적 관점을 견지한다. 이는 민족주의가 결국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졌다는 것 때문인데, 자본에 도움이 된다면 민족주의문학은 민족은 아랑곳없이 강대국과 결탁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족문학은 인간을 착취하고 사물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대항해 해방의 근대성을 실현하려는 문학적 실천이다. 넷째, 민족주의문학은 자민족 중심주의 경향으로 인해 약소 민족을 향하는 순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화한다. 그러나 민족문학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민족문학이 일본이나 미국에 비판적인 것은 그들이 우리와 다른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20세기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이 제 3세계와의 연대의식을 강하게 표명해온 것은 반제국주의 운동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민족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은 그 대척점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현재에도 민족문학론은 유효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Ⅳ. 민족문학론의 정신 및 방법론
1. 리얼리즘론(해방직후 리얼리즘론과 70년대 리얼리즘 논쟁)
1) 해방직후 리얼리즘론
해방직후 민족문학론은 각종 문예단체를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를 가미하여 문학에 반영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문학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 진보적 리얼리즘의 개념을 정립하고 설명한 사람은 김남천(‘문건’ 소속)이다. 그는 좌익의 창작이론인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자체 내의 커다란 계기로 하는 ‘진보적 리얼리즘’을 제시하고 과학적 유물론과 진보적 민주주의 건립을 역사적 의무로 하는 리얼리즘론을 제창하였다. 그는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을 비교하면서 ‘진보적 리얼리즘’에 의한 창작방법의 우수성을 설명한다. 그는 ‘리얼리즘은 객관적 현실을 주로 해서 주관을 그에 종속시키는 것이요 아이디얼리즘은 그 반대로 주관적 개념을 주로 해서 객관적 현실을 이에 종속시키는 것’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 선입견의 유무에 의해 판명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교를 통해 그는 리얼리즘이 아이디얼리즘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리얼리즘에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가미함으로써 진보적 리얼리즘을 도출해 낸 것이다.
한효(‘동맹’, ‘북조선예술총동맹’ 소속)는 자연주의 리얼리즘 및 심리주의 문학창작방법과의 비교를 통하여 ‘고상한 리얼리즘’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고상한’ 이라는 수식어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고상한 애국열’, ‘고상한 사상과 의식’, ‘고상한 의지 감정’, ‘근로계급의 종국적 역사적 승리에의 방향까지 철저히 민주화하며 과학적으로 고상화’하여야 함을 주장하는 데까지 이 용어를 차용하고 있다. 이것은 문학을 위시한 예술태도 그대로 적용시키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창작방법론으로 제기된 용어에서 비롯한 이 수식어가 인간과 생활, 정치와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분야를 두루 거쳐 다시 예술로 돌아 온 것이다. 한효는 안막이 ‘고상한 조선사람의 전형’으로 김일성을 지목한 것에 대해 이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대 리얼리즘의 당면 과제가 인민성 및 계급성, 당파성을 획득하는 것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 논의는 내용이 부족하다.
해방직후 리얼리즘론 중에 ‘조선적 리얼리즘’을 꼽을 수 있다. 홍효민이 제기한 이 이론은 이론상 빈약성과과 당위론이 우선된 낭만성으로 창작방벙론으로 인정하기에 많은 취약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선적 리얼리즘이 가지는 현실인식 태도와 시대정신의 반영 및 전망 제시는 한정된 범위에서나마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홍효민은 당대 조선의 당면 과제를 통일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서는 일절의 외세를 배격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두 외세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데에는 다름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반도 분단의 이유를 외세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일련의 정치적 행동은 모두 외세의존의 양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학이 정치성을 가지는 것이 바로 외세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문학의 탈정치화를 주장하게 된다. 그가 주장하는 문학의 탈정치화는 문학이 자유주의로 회귀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애매성을 띠지만 자본주의의 논리인 자유시장경제에서 차용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는 공산주의와 더불어 자본주의까지 모두 외세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것으로 파악하고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외세에 대한 비판과 자유주의로의 회귀 추구, 그 바탕에서 제창된 것이 바로 조선적 리얼리즘인 것이다.
2) 70년대 리얼리즘논쟁
문학을 하는 명분은 선이나 악을 보도록 하는데 있다. 리얼리즘은 그의 전수, 학습, 유지를 위한 구체적 수단이다. 리얼리즘은 자유의 이면이기 때문에 사회의 사상 규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리얼리즘은 자유가 원칙적으로 인정된 사회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각 개인이 저마다 가치체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공동의 문화라는 일정한 전통 양식 속에서 저마다의 개별적 가치체계를 아슬아슬 대비시킬 때 솟는 긴장감이 리얼리즘의 바탕이다. 이런 관점에서 70년대 리얼리즘 논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어령은 리얼리티를 현실과 환상의 결합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따라서 한국소설은 전혀 리얼리티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법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 김순남은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을 비판하고, 현실을 대하는 문학정신으로서의 리얼리즘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기법보다 긴급하고 절실한 것은 진리와 인간존재의 권리를 위해 절규하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대변하는 건전한 문학정신이며, 격동적 소재와 주제사상을 드러내려는 기백이라 주장한다.
③ 염무옹은 이제 19세기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한다. 당시에는 모든 개인은 그 사회에 자기를 일치시킴으로써 자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집단과 개체는 행복한 결합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이런 집단과 개인의 행복한 결합이 깨진 시대이다.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④ 리얼리즘의 본질을 사회와 인간을 보는 ‘원숙한 관점’과 이에 수반되는 ‘균형’으로 파악한 영국 비평가 윌리엄즈의 주장을 인용한다. 원숙한 관점은 개인을 무시한 전체화도 아니고 전체화를 외면한 개인주의도 아닌 ‘인격화하는 전체화’라 할 수 있다.
⑤ 1930년대 염상섭, 채만식 등의 문학적 성과를 리얼리즘적 성과로 볼 것인가 자연주의적 성과로 볼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다. 이에 김윤식은 원칙적으로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만 리얼리즘이 구현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4ㆍ19이후부터 한국에 본격적인 리얼리즘 문학이 꽃필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김현은 자유를 획득하려는 노력을 할 만한 사회계층이 형성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0년대 리얼리스트들은 자기계층을 가졌기에 4ㆍ19 이후의 리얼리스트보다 훨씬 박력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김윤식은 4ㆍ19 이전의 리얼리즘은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이라고 정리한다. 구중서는 1930년대 염상섭이나 현진건의 문학을 리얼리즘이라 보지 않고 자연주의 문학이라 규정한다. 그들이 사회와 인간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쳤고, 역사의식의 지향이나 이상주의적 요소를 작품 속에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⑥ 김현은 한국에서 리얼리즘 문학의 존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는 그것을 밀고 나갈 시민계급 혹은 중간계급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드러내는 것은 소시민적 영웅주의에 빠지거나 소시민적 패배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리얼리즘이라는 도식성을 탈피하고 상상력을 통해 시대의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⑦ 임헌영은 ‘민족적 리얼리즘’의 길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는 리얼리즘은 휴머니즘이며 리얼리즘에서는 기법보다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리얼리즘은 곧 객관적 진리를 예술미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결론한다. 객관적 인식이 만든 구상예술이 리얼리즘이며, 관념이 낳은 추상예술은 반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최일수는 오늘의 민족적 현실에서 주목할 것은 분단이며, 이를 극복하고 통일로 향하는 의지와 행동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민족적 리얼리즘은 이런 바탕 위에서 그 미학이 확립돼야 하고 또한 창작 방법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⑧ 김양수와 염무웅은 임헌영의 주장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비판한다. 또 염무웅은 30년대 염상섭의 소설을 리얼리즘인가 자연주의인가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보다 염상섭의 작품을 놓고 사안에 따라 리얼리즘이 성취된 경우와 한계를 드러낸 경우를 분석ㆍ 비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⑨ 김병걸은 리얼리즘의 수용을 적극 주장하면서 그것이 민족문학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리얼리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문제일지라고 그것이 모든 개인ㆍ사회ㆍ시대의 공통적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민족문제는 지금의 우리에게 절실한 문학 주제의 하나가 된다. 아울러 그는 문학이 소외된 민중의 삶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⑩ 원형갑은 리얼리즘에 대한 경도가 문학의 상상력을 말살시키고 문학 자체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얼리즘의 정신 속에는 문학적 창조의 근원이 되는 상상력이 살아 숨 쉴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리얼리즘론 속에서는 문학이 그 스스로의 실존성을 잃고 사회학적ㆍ경제적ㆍ정치적 요소로 환원될 것이라 비판한다. 이에 김동리도 문학을 목적의식의 도구로 만들려는 경향에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⑪ 김우종은 1920년대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 좌파의 문학, 그리고 60년대의 참여문학과 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에 우리 문단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문학의 공통점을 사회주의 문학이라 보고 비판하는 것이 오늘날 문단에서 일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비평사에서 50ㆍ60년대의 참여문학론은 리얼리즘론을 만나면서 그 논의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60ㆍ70년대의 리얼리즘론은 민족문학론을 만나면서 논의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50년대 이후의 참여문학론이 리얼리즘론과 결합하여 논의의 깊이와 구체성을 더해가면서 7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 곧 한국 현대문학비평사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다.
2. 민중문학(론)
민중문학을 논하기 이전에 민중에 대한 개념이 우선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데, 1970년대에 민중개념은 민족(문학)담론을 재구성하는 핵심용어가 된다. 박현채는 “민중이란 기본적으로 직접적 생산자이면서 사회적 생산의 결과에의 참여에는 소외된 비억압자ㆍ피수탈자ㆍ피지배자라고 규정한다” 그 개념을 “① 역사적으로 변화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개념이고, ② 변화하는 주요 모순에 대응하는 확정되지 않은 개념이며, ③ 계급ㆍ민족ㆍ시민 등 여러 개념을 포용하는 상위개념으로서, ④ 그것을 보는 위치에서 그 표현이 달라지도록 되어 있다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자본주의시대의 민중 구성을 노동자계급을 기본으로 농민ㆍ소상공업자ㆍ도시빈민ㆍ일부지식인으로 설정한다. 따라서 민중은 역사적 개념으로서 그 당대의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당연히 민중의 구성원이 달라지고 민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그 인식에는 개념의 인식차이와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민중이란 용어가 빚어내는 세계관이나 당파성, 헤게모니 등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박현채는 민중문학의 사명을 “역사적 진실을 생활하는 민중의 고뇌와 인간적 요구를 감성적인 일상적 표현에서 추구하고 역사에서 민중의 사회적 실천에의 요구에 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원래 민중문학은 인간의 삶 그 자체로 되는 직접적 생산자의 노동의 표현양식에서 출발했는데, 문학 그 자체의 발전논리에 따라 전문화와 형식화하려는 속성 때문에 민중의 소유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지향적인 문학의 과제는 민중문학을 역사에서 발굴하는, 즉 공동체문화 등의 민중문학의 맥을 찾는 것과 집단적 창작방식의 민중적 창작방법을 정착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민중과 민중문학의 대두는 우리의 근대화와 관련되는데,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따른 내적 모순의 심화, 그와 더불어 민중의식의 성장이라는 조건 속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기존 민족문학론의 틀로는 이러한 상황과 의식을 포괄하기에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채광석은 80년대 민족문학은 크게 전문 문인의 소시민적 민족문학과 기층 민중의 민중적 민족문확으로 분화되고 있다고 본다. 70년대 민족문학이 민족 자주화와 민주화를 통한 민중소외 극복의 문학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지배세력의 제도적 물리적 억압과 냉전이데올로기의 엄존, 독점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에 따른 소시민적 삶의 기반 확대, 민족운동의 자유주의적 한계에 기인하다고 진단한다. 이는 문인들의 자유주의적이고 소시민적 삶을 부추기고 강요한 요인으로, 민중지향성의 관념화와 허구화라는 민족문학의 소시민성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된다. 70년대 후반 환상적 리얼리즘 혹은 변형된 모더니즘으로 접근한 조세희의 소설 등도 이러한 경향에 머물렀다. 물론 민중 주체의 문학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박노해의 시 등에서 민중의 자기표현은 큰 위안이 되었지만 문학 역량의 부족과 현실에 대한 통일적 인식의 한계, 민중적 문학형식의 창출 미흡 등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민중적 민족문학의 건설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선언한다.
요약하면, 80년대 민중문학의 의의는 첫째, 민중이 주체가 된 능동적 성격의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민중이 주체로서 인식되지 못하였고(백낙청도 70년대까지는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파악하였다), 민중에 대한 논의 주체는 언제나 지식인 내지 소시민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통해 지식인 주체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하고, 현실의 부조리를 직접 체험한 민중들의 각성이 하나로 모이게 되자 민중 스스로의 공동 의식이 싹트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중이 주체가 된 문학을 지향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민중이 창작 주체인 만큼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 문학 장르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점에 있어서는 문학 고유의 영역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민중 스스로가 창작 주체로서의 위치에 섰을 때 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되었고, 이에 장르의 확산을 가져온 것은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 셋째, 민중문학 논의가 사회적ㆍ 정치적 현실과 더불어 그 구성원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실천적 행동으로 나타냈다는 점이다. 사회적ㆍ정치적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굴복하고, 수용하는 차원이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민중들의 노력이 잘 대변되어 있다. 넷째, 당시 학생을 포함한 대다수의 계층에서 공통된 목표의식을 가지고 민중문학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즉 소수계층의 고발적 운동이 아니라, 대다수의 민중이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고 참가했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80년 문중문학의 한계는 첫째, 민중이 주체로서의 자각은 있었지만,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민중의 개념이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적 요인으로 논의가 중단되고 말았다. 둘째, 민중이 주체가 된 문학을 선도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문학의 본질적 의미를 간과한 점이다. 문학의 민중성은 민중 자신의 창조와 전문적 작가의 창조 양쪽을 통해서 다함께 발현된다. 민중문학이냐 아니냐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 창작자가 민중이냐 아니냐에서만 구해질 수는 없다. 등장인물의 문제나, 향유자의 문제까지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했다. 셋째, 민중의 문학이라는 용어에 맞지 않게 결국 너무 과격한 운동성만을 지향하여 오히려 민중을 소외시키는 과오를 범했다. 넷째, 급진적인 논자들은 민중문학에 사회주의 문예이론이나 북한의 초기 문예이론을 어설프게 원용하여 결국 최근 북한 문학에서조차 강조하는 인간적 서정성, 예술적 감수성, 개성의 표출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 한계로 지적된다.
3. 농민문학(론)
1970년대 농민문학론은 민족문학론과 함께 심화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에 대응한 실천적 문예담론으로서, 그 출발과 형성과정에서부터 매우 긴밀한 소통양상을 보였다. 관념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던 민족문학 논쟁이 한계에 이르자 구체적인 실체를 필요로 했는데, 당시 농촌의 피폐화와 해체의 현장은 사회모순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는 장이었다. 70년대 근대화에 의해 농촌의 파괴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농민과 농촌은 가장 중요한 문학적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즉 근대화 곧 공업화의 기반으로써 농촌 현실은 ‘내부 식민지(internal colony)’의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농촌이 내외적인 질곡으로 그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 널리 공유되었다.
농민문학론은 1930년 초 프로문학에 의해 제기되어 안함광과 백철의 논쟁이 있었고, 당시의 농민문학론이 주로 사회주의적 사상에 입각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적극적 주입을 통하여 토지혁명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면 70년대 농민문학론은 ‘도식주의적 사회관에서 탈피하고 농촌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데서 시작된 것이며 특히 문학을 그 같은 정치적 목적의식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1970년대 농민문학론은 당대 현실에 대한 문학적 인식의 기반과 지향점은 크게 세 가지로 파악된다. 첫째, 객관 현실에 대한 사회ㆍ역사 인식의 심화를 바탕으로 한 문학적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역사 변혁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인식하고 문학을 통해 ‘민중성’을 제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근대 역사적 객관현실의 제 모순을 극복하여 새로운 근대를 지향해 나가고자 했다는 점이다. 즉 70년대 농민문학론이 지향했던 바는 농민들과 밀착된 문학, 즉 농민들이 이해하기 쉽고 사랑할 수 있는 문학, 농민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농민문학을 창출해낼 수 있는 문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향점은 지식인과 농민의 실제 삶과 안목의 차이, 농민과 문학과의 거리 등 현실적 한계에 의해 실천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농촌 문제의 해결책 제시에는 소극적이었고 원칙적이고 당위적인 운동론의 관점에 휩쓸려 농민문학론이 가져야 할 고유한 위상과 영역이 묻혀버린 것은 오히려 부분운동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이유로도 작용한 점은 한계로 남는다. 그럼에도 농민문학론은 민족문학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농촌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보성은 당시 민족문학의 지향성과 동일선상에 놓여있었다. 따라서 농민문학론은 80년대 민족문학운동의 중심적 담론을 형성하여 변혁운동의 예민한 지표로 작용하였다.
4. 노동문학(론)
노동문학(Arbeiterliteratur)이란 독일어의 ‘노동자(Arbeiter)'와 ‘문학(literatur)'이라는, 역사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합성어인데 정확히 옮기자면, ‘노동자문학’이 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가 자신의 문제를 표현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문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적인 노동문학은 조직화된 노동운동과 관련을 맺으면서 노동자에 의해,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와 노동세계, 그리고 인간의 모든 체험세계를 다룬 문학을 뜻한다.
이재현은 “노동(자)문학은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의 문학”이라며, “노동문학이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민중 주체의 민주주의 변혁을 지도하고 주도하는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 삼아서 노동자 계급의 현실 또는 진보적 노동운동의 현실을 제재로 하는 문학이다”라고 하였다. 노동자의 계급 확대의 필요성을 “인간의 삶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이므로, 먹기 위해 하는 ‘일’인 노동의 구조와 현실을 다루는 노동(자)문학은 민중문학, 아니 문학 그 자체와 바꿔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즉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다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된다는 것이다.
80년대 한국의 노동문학은 현장 노동자들의 글쓰기와 지식인 작가들의 글쓰기라는 두 가지의 흐름이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단일한 흐름으로 합류하면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19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 대 투쟁의 효과이자 산물이었다. 막연한 민중이 아닌 구체적이고 계급성을 띤 노동자들의 글쓰기가 공식 문단의 주변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문학 활동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부터였고, 억압당해온 노동자들의 느낌과 목소리가 충격적으로 표출된 것은 198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백무산의 「지옥선」 시 연작에서였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는 80년대 초반의 ‘공동체문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발전하였고, 문학의 생산과 수용에서 소외되지 않은 새로운 소통 형식의 가능성까지도 점칠 수 있게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운동의 부문운동인 문화운동의 한 형태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80년대 중반에 시작된 본격적인 노동문학은 한편으로는 이전의 민족문학(론)적 성과를,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할 수 있었다.
80년대 노동문학은 작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현장성을, 자본가와의 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투쟁성을, 민중연대성과 계급성을 갖추도록, 혹은 남북한 민중의 연합이라는 민족적 관점으로 그 전형을 창조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리고 전형의 창조를 통한 객관적 진리의 재현을 위해서는 작품에 당파성이 구현되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가가 노동자계급 당파성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문학의 문학성이 문제되고 계급문학론의 특유의 폐해가 거론되기도 하였다. 이에 반발해 계급적 관점에 기초한 새로운 미학 기준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노동문학론의 과제는 노동자에 대한 관념을 구체적인 인간의 전체성 속에서 통합해낼 수 있는 논리의 창출에 있다. 즉 노동문학의 정당성은 구체적인 작품성과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것이다.
5. 제 3세계 문학(론)
1970년대 후반 제 3세계론은 민족문학론의 심화과정에서 제기되었다. 제 3세계론은 서구 선진국에 의해 (신)식민화된 아시아ㆍ아프리카ㆍ아메리카 내부 민족들의 활로를 제 3세계라는 공동 범주의 차원에서 고민하자는 논의였다.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이 ‘각종의 언어ㆍ문화ㆍ인종ㆍ종교로 이루어진 바벨탑’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국제적 사회정의ㆍ인권ㆍ비폭력ㆍ공동선 등을 함께 추구하자는 모색이었다. 이 논쟁은 민중문학론에서 민중의 개념을 정립하는 가운데, 민중을 제 3세계민중까지 포함하자고 주장하면서 논의되었다. 이처럼 제 3세계문학론은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약소민족의 자기 해방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들의 문학이 식민지 쟁탈로 왜곡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고 따라서 오히려 세계문학을 선도할 수 있다는 자부심의 근거가 되었다. 다시 말해 제 3세계론은 민족문학론이 안고 있었던 민족주의적 속성을 적절히 견제하며 민족문학의 이론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제 3세계론은 자기 민족을 배타적으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 후진국 및 피압박 민족이 대부분인 제 3세계 ‘민중’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고자 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세계를 하나로 보면서도 후진국 및 피압박 민족의 해방운동과 자기주장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각 민족의 독립과 자주성은 어디까지나 전 세계의 ‘민중’이 하나로 되는 과정의 일부이며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우리와 민족문학은 처음부터 민중문학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우리와 제 3세계 ‘민중’과의 연대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제 3세계론이 필요로 한 것은, 그것이 한 민족(국가)의 해방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에 의해 왜곡된 전 세계와 인간의 자기 갱신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제 3세계론의 선구적 이론가 파농이 경계한 것도 바로 식민주의 극복이 결과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즉 제 3세계론은 현재 전 세계에 진행 중인 ‘탈식민화’과정의 일환이었다. 분명 대타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족주의 문학론의 한계와 비교하면 문화적 다양성을 노정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탈식민주의적 견해로 평가할 수 있다.
내재적 모순을 함유하고 있었던 민족문학론을 감안할 때,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제 3세계론은 민중 논의와의 접합점을 통해 이상적인 탈식민주의 담론을 형성해 내고 있다. 진정한 식민 문화 청산이 ‘대타적 흉내내기’가 아닌 ‘문화적 다양성’의 모색과 ‘혼성성’의 탈배제적 포용에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코 외부의 지배를 거부하며 또한 그들처럼 지배하려고도 하지 않아야 하는 진정한 수준의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획득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민중론에 힘입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Ⅴ. 결론
민족문학론은 과거의 유물로 취급받을 수 있으나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현재 경제적ㆍ 문화적 식민화가 촉진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다. 냉전의 해체와 자본의 전지구화에서 무슨 민족(문학)이냐고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북핵위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민족적인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직도 유효하며, 한미 FTA의 예가 말해주듯 국가간의 통상 문제는 자본의 전지구화시대에도 국가적인 단위 체계의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들은 탈냉전과 자본의 전지구화 시대가 결코 민족이나 국가의 차원을 떠나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민족문학론의 위기에 직면한 현재 민족문학론의 모든 것을 폐기할 게 아니라 보존과 폐기의 변증법적 관계를 거치면서 민족문학론의 갱신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최근의 민족문학론의 갱신에 대한 논의는 근대성 문제와 함께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족문학론에 대한 논의는 일제시대부터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해방 후 80년대까지 끊임없이 평자들에 의해 전개되었으나 그 중에서 특히 70년대 백낙청에 의해 활발히 전개된 바 있다. 해방 직후 민족문학론은 20년대의 국민문학론과 계급문학론을 동시에 극복하는 이론으로서 요구되었지만 통일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민족사적 요구에 응하지 못했다. 70년대 민족문학론은 민중문학론, 제 3세계론, 농민문학론과 함께 논의되어 독재에 저항하는 주체세력으로서 민중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였으며, 80년대 민족문학론은 지식인위주에서 탈피하여 민중의 주체세력으로 노동자를 언급하며 노동문학론을 전개하였다. 90년대 민족문학론은 그동안의 민족문학론을 반성하며 세계화 시대 앞으로 어떻게 민족문학론을 형성해 나가야할지를 논의하였다.
민족문학론의 정신과 그 방법론으로 리얼리즘, 민중문학, 농민문학, 노동문학, 제 3세계론을 함께 살펴보았는데, 무엇보다 민족문학론의 세계에 대한 진보성과 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되새기고 새롭게 갈고 닦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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