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위기와 한국문학의 새로운 대응
1. 1930년대 후반: 순환의 끝, 새로운 시작
일제 말기는 한국의 근대문학사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기이다. 이때가 근대문학의 한 순환과정이 끝나는 시기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1905년부터 30년대 중반까지의 근대문학은 크게 보아 계몽의 전통이라는 계보로 묶을 수 있다. 조선의 전근대성을 혁파하고 근대성을 구현하려는 계몽의 기획이 근대문학의 중심을 이루었다. 30년대 후반으로 가면 계몽의 전통은 일제 파시즘의 강화라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다. 카프의 프로문학운동은 계몽 기획이 가장 급진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35년 카프의 강제 해체는 계몽 기획이 일제 파시즘의 억압에 의해 전면적 파국에 빠졌다.
일제 말기는 문학 내적으로 보자면 이때는 자기반성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자기반성은 근대문학의 한 순환과정이 좌절한 데 따른 반응일 뿐 아니라 근대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30년대 후반, 특히 1937년을 전후해 대다수 문인들은 근대문학이 결정적인 벽에 부닥쳤음에 동의한다. 위기 해결의 대안으로 휴머니즘론, 지성론, 모럴론, 본격소설론, 생활문학론, 풍속소설론, 가족사 연대기 소설론 등 숱한 주장들이 제시되었다.
한국문학을 조망할 때 넘어서야 할 두 편향이 있다. 하나는 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의 시각으로 이 시기를 바라보면, 일제 말기는 순응이냐 저항이냐의 두 극단으로 대립하는 시기다. 물론 그 대립이란 지극히 비대칭적인 대립, 즉 절대 다수의 순응과 극소수의 저항으로 구성된 대립이다. 이 시기를 흔히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 시기는 순응과 저항, 협력과 일탈이 뒤섞인 혼종의 공간이다. 그런데 혼종의 결과는 대체로 ‘포섭’으로 귀착되는 경향이 강하다. 해체론적 후기식민론 역시 결과론적으로는 민족주의와 비슷하게 암흑기론에 기울어 있다.
민족주의와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이 일제 말기를 규정하는 문제에서 결과적으로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까닭은 양자가 공히 식민주의를 자기 완결적이고 견고한 담론/체제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저항이 엄청난 용기와 결단을 요하는 행위가 되고,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의 관점에서는 저항이 식민주의의 권역 내부에서 한없이 맴도는 덧없는 일이 된다. 양자는 식민주의를 전능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생각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 결과 민족주의는 대항 헤게모니 이외의 저항을 인정하기 않으며,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은 저항이란 식민주의의 허위의식에 넘어갔다는 점에서 순응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고,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에서 모든 저항은 항상 순응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은 이론적으로 모순이 있다. 식민주의를 자기 완결적이면서 비자족적인, 견고하면서 나약한 담론/체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민주의의 비자족성은 식민주의가 피식민 타자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그로 인해 식민주의 내부에서는 식민 주체와 피식민 주체가 끊임없이 길항하는 분열상이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식민주의의 균열과 동요는 구조적이다. 식민주의의 양가성은 피식민 주체와의 피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 낳은 구조적 결과이며, 이 양가성은 다시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산출하고 탈식민 주체를 형성시키는 기반이 된다.
일제 말기 한국문학은 대체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경계로 세 단계로 나뉜다.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조선을 총동원체제로 재편한 후 태평양전쟁에 즈음해서는 그것을 제도적으로 강제화한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문학은 식민주의에 급속히 포섭되는 반면 탈식민 저항은 극도로 간접화된다. 일제 말기의 문학은 식민주의의 나약하고 비자족적인 틈을 거점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을 수행했다. 총동원체제라는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그 저항은 대단히 은밀하고 간접화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극히 교묘하고 전략적이기도 했다.
2. 자기성찰과 저항의 내향화
일제 말기 한설야 문학은 생활을 통한 이념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는 파시즘의 대두로 조성된 근대의 위기를 인정하되, 생활을 거점으로 주체를 재정립하고 지배체제와 맞서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시기 한설야의 문제의식이 가장 예리하게 드러난 작품으로는 「이녕」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서사적 긴장은 이념과 생활의 길항에서 비롯된다. 한편에는 이념이 있다. 주인공은 그 이념을 지키기 위해 소극성과 방관이라는 처신을 택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저항의 한 방편이다. 다른 한편에는 생활이 있다. 생활은 소극성과 방관을 불허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이념의 세계에서는 저항의 한 방식인 소극성과 방관이 생활의 세계에서는 무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녕」은 양자의 긴장으로 짜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후반 근대의 위기 속에서 한설야는 생활로의 복귀를 통한 이념 성찰이라는 새로운 대응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양자택일적 이분법을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한설야는 「이녕」에서 생활을 주인공에게 맡김으로써 생활에 대한 적극성이야말로 이념적 실천의 참다운 출발점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 따라서 「이녕」은 ‘의지의 지성화’라는 프로문학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녕」이 프로문학의 새로운 대응 논리를 대표한다면, 저항적 민족주의의 자기성찰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는 이태준의 「토끼 이야기」를 들 수 있다. 「토끼 이야기」는 전형적인 자기확인의 서사이다. 일제의 파시즘화가 절정으로 치닫는 1930년대 말이 되면 한국 근대문학의 주요 축을 이루어왔던 계몽의 전통은 결정적인 벽에 부닥친다. 이때 이태준이 택한 길은 계몽의 내면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태준의 자기확인은 ‘내가 옳다’를 거듭 확인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 바탕하고 있다. 요컨대 자기반성을 통한 자기확인, 이것이 일제 말기 이태준 문학의 요체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토끼 이야기」는 시대와 생활을 유비적으로 병렬시키면서 시대의 변화, 곧 일제의 파시즘화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다시 말해 식민주의가 외적인 것인 동시에 내적인 것이라는 자각을 이면의 주제로 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토끼 이야기」는 내부 식민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자의식을 보여주는 문제작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다.
신진문인들 가운데 식민 파시즘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선 작가는 단연 김정한이라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신진 작가들이 탈근대를 구실로 현실도피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 계몽의 전통을 견지하고 있는 김정한의 문학세계는 이채롭다. 전면적 저항이 불가능해진 일제 말기에 김정한은 새로운 문학적 저항의 길을 모색하거니와 그 중요한 성과가 「낙일홍」이다. 「낙일홍」은 내선일체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은밀하게 풍자한다. 헤게모니적 지배란 항상 억압과 함께 동의를 필수 기제로 삼는다.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라는 내선일체론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내선일체론이 진정한 동의를 얻어내려면 일본의 양보, 곧 조선인에 대한 민족적 차별의 폐지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식민지배의 궁극적 목적인 일본 헤게모니가 불가피하게 훼손당한다. 이것이 내선일체론의 양가성이다. 따라서 「낙일홍」은 내선일체 이데올로기의 이러한 양가성을 겨냥하고 있다. 내선일체와 민족차별은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에 「낙일홍」은 내선일체 이데올로기의 나약한 측면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민족차별의 실상을 경험하면서 재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다. 재모는 학교를 그만둘 것인가 갈고지 간이학교로 갈 것인가를 두고 번민에 휩싸인다. 그 과정에서 재모가 후자를 선택하는 까닭은 교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자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낙일홍」은 한편으로는 식민주의의 나약한 측면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확인을 통한 저항의 내향화를 꾀하고 있는 작품이다. 총동원체제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대안적 저항이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때 식민주의 내부의 균열을 추궁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함으로써 저항의 내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은 탈식민 저항의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낙일홍」에서 우리는 그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3. 탈식민 저항의 세 유형
일제 말기는 식민 파시즘의 창궐고, 임화의 말을 빌리면 ‘지성’이 ‘사실’에 태패한 근대의 위기국면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문학은 급속히 환멸과 냉소에 젖어들었고, 뒤이어 전향과 협력이 속출했다. 이 시기를 흔히 암흑기라 부르는 것도 그래서일 터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달라진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면서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하려는 문학작품 또한 적지 않았다.
탈식민 저항의 첫 번째 유형은 대안적 저항이다. 대안적 저항은 식민주의를 전면 거부하면서 대안 이념이나 세계상을 제시하는 유형의 저항이다. 탈식민 주체의 ‘이념적’ 위치는 식민주의 외부에 존재하며, 식민주의의 헤게모니에 맞서 대항 헤게모니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대안적 저항은 반(反)동일화형 저항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대안적 저항을 대표하는 문학으로는 민족주의와 맑스주의가 있다. 식민주의의 ‘극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저항은 가장 급진적인 탈식민 저항의 유형이다. 대안적 저항만이 식민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담론을 창출할 수 있다. 대안적 저항은 대체로 1930년대 전반기, 그러니까 중일전쟁 이전까지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내적 저항이다. 내적 저항의 이념적 주체는 식민주의의 경계, 즉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위치한다. 따라서 내적 저항은 대항 헤게모니를 추구하기 어렵다. 그 대신 일반적으로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식민주의의 비자족적이고 나약한 측면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식민주의에 맞선다. 내적 저항은 비동일화형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내적 저항이 대안적 저항에 비해 간접화되고 내향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식민주의와 타협했다거나 순응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양자의 차이는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방식’의 차이이다. 대안적 저항이 전면 거부의 방식을 취하는데 반해 내적 저항은 내부로부터의 격파, 곧 내파를 택한다. 내파는 양가성의 모순관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식민주의를 임계점으로 몰아간다. 내적 저항은 시기적으로는 중일전쟁을 전후한 1930년대 후반부터 주요한 흐름이 된다.
세 번째 유형은 혼종적 저항이다. 혼종적 저항의 ‘이념적’ 주체는 식민주의 내부에 있다. 당연히 혼종적 저항에서는 대안적 저항이나 내적 저항과 달리 식민주의와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 대신 혼종적 저항의 주체는 양가성 사이를 부유한다. 그런 만큼 순응과 저항, 협력과 일탈의 경계선 역시 흐릿하다. 혼종의 저항성 여부는 대개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어떠한 맥락에서 발화되었느냐에 따라 혼종은 저항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고 순응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혼종의 저항 효과는 식민주의의 자기 완결성에 흠집을 냄으로서 양가성을 구조화시킨다. 양가성이 식민주의와 피식민 주체의 길항작용에서 비롯된 구조적 현상일 때에만 탈식민 주체의 형성이 항상적으로 가능하다. 혼종적 저항은 특히 태평양전쟁을 전후한 194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세 유형의 저항은 어느 시기에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저항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고 저항과 협력의 유동적이고도 다층적인 경계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럴 때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복합적 면모와 탈식민적 잠재력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1940년대 ‘국민문학’
1. 친일문학, 파시즘문학, ‘국민문학’
민족주의 입장은 90년대 이전의 문학 연구에서 주류적 위치에 있었으며 임종국의 『친일문학론』(1966)으로 대표된다. 이 입장에서 보면 식민지 시기 문학의 과제는 민족어, 민족문화, 민족정신, 그러니까 민족문학의 건설과 수호에 있었고 그것의 반대편에 서 있던 문학이 일제 말기의 매국문학인 ‘친일문학’인 것이다. 이러한 문학에 대한 담론 차원의 고발과 단죄는 일제 식민지를 지탱하던 상층 조선인들을 지배계급으로 하여 세워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과도 연관되는 문제이기에 도덕적 정당성마저 띠고 있었다.
민족담론이 동아시아담론을 확장됨으로써 계속 저항담론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친일문학론’은 민족주의를 확장한 제 3세계주의에 입각함으로써 저항의 거점을 갱신하고자 했다. 김재용의 ‘친일문학론’(『저항과 협력』, 2004)이 그 대표로써, 그가 친일문학의 청산을 통해 보호하려는 것은 민족사적 정의가 아니라 세계사적 정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문학의 논리 자체는 긍정함으로써 친일문학을 배제하고 민족문학을 수립하려 했던 임종국과는 달리, 그는 제 3세계론에 입각해 세계사 속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논리를 비판하고 그것에 협력한 식민지인들을 비판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3세계론이 그러하듯이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민족주의를 주요 동력으로 하여 전개되기 때문에 그 역시 임종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확장된 민족주의’, 혹은 ‘동일성에 의한 재영토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제 말기 문학에 대한 완전한 새로운 시각은 『문학 속의 파시즘』(김철 외, 2001)이 제시한다. 이 입장은 ‘파시즘문학’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이 입각하고 있는 것은 탈근대론, 탈민족론(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친일문학은 그렇게 쉽사리 청산될 수 없다. 친일문학은 의식, 행위,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 구조, 신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입장에서는 친일보다는 식민주의가 부각된다. 행방 이후 대한민국의 앎과 삶의 원리가 되었던 민족주의 자체가 식민주의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입장은 앎과 문학의 명백하고 의식적인 일본 제국주의와의 근친성(친일)보다 무의식적, 구조적 근친성을 더욱 문제 삼는다. 그동안 일제와 다소 먼 거리에 있었다고 여겨졌던 이효석, 김동리, 이태준 등의 무의식이 고발대상이 된다. 이 입장은 19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가 독재정권의 폭력적 지배로부터 동의, 자발성에 근거한 관리적 지배로 이행하고 있다는 진단에 근거를 두고 있다.
‘파시즘문학’론 이후의 일제 말기 문학에 대한 연구는 ‘친일문학’이 제기했던 고정된 저항축과 ‘파시즘문학’이 제기했던 저항의 불가능성을 모두 비판하고 저항과 협력축의 복수화를 꾀한다. 이 관점은 민족주의적 저항이라는 이름하에 가려졌던 다양한 계층과 계급에 주목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젠더와 써발턴(subaltern 하위주체성)의 문제이다. 과연 여성과 하위계층에게 남성부르주아의 전유물인 민족주의적 저항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이 입장은 일제 말기의 경험을 민족사로 환원하지 않고 세계사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을 ‘친일문학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시하려 한다. 식민주의 협력행위에 대한,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책임추궁은 어떻게 가능한가?
2. ‘국민문학’의 사상
이 시기의 문학은 ‘국민문학’ 혹은 ‘국책문학’등으로 불린다. 이 시기의 문학자들은 국민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로 ‘국민문학’을 주장했다. 일본문화로의 일방적인 동화가 아니라 일본문화와 조선문화를 포괄하는 일본제국의 문학을 ‘국민문학’이라 불렀던 것이다. 최재서는 「조선문학의 현단계」에서 국민문학의 요건을 ①국제관념의 명징, ②국민의식의 앙양, ③국민사기의 진흥, ④국책에의 협력, ⑤지도적 문회이론의 수립, ⑥내선문화의 종합, ⑦국민문화의 건설로 설명한다. 여기서 ④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래형으로 기술되어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이로써 그가 주장하는 ‘국민’ 혹은 ‘국민문화’가 현재 존재하는 일본 민족, 혹은 일본 민족문화에의 동화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민족주의, 사회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로 표상되는 근대주의를 뛰어넘어 국민을 새롭게 형성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공감은 일본제국 내에서의 조선의 위치를 강조하는 담론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것은 김종한의 ‘신지방주의’론이다(「일지의 윤리」). 그의 논리의 핵심은, 일본에서 생산해내는 가치를 그대로 이어받는 존재가 아니라 중앙과는 다른 가치를 생산해내는 주체로 조선과 조선문학을 위치짓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내는 조선과 조선문학을 상상하는 조선 지식인들에게 대동아공영권은 자신을 주체로 세울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로 포착된다.
식민지문화인 조선문화까지 존중받는 다문화, 무중심의 일본제국을 상상하는 최재서의 ‘국민문학’론이나 김종한의 ‘신지방주의’론은 그 뿌리를 평행제휴론에 두고 있다. 일본제국을 주체정립의 계기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크게 평행제휴론과 동화일체론으로 구별될 수 있는데, 후자는 조선문화의 전폐를 주장했으나 이와 반대로 전자의 경우 다양한 내적 편차가 있었다. 즉 동아협동체론, 동아연맹론 등의 이념에 자극받아 조선의 자치를 주장하는 적극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내외지의 일원화를 지지하면서도 문화적 측면에서 조선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소극적인 입장도 존재했다. 그러나 평행제휴론의 공통점은 조선적인 것의 온존과 내선일체의 융합이었다.
3. ‘국민문학’의 언어
신지방주의론 혹은 평행제휴론을 통해 ‘국민문학’을 바라볼 때, 그 핵심은 역시 언어였다. 이는 조선어를 유지하면서도 일본인이 될 수 있는가. 조선어로 쓴 작품이 일본문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나타난다. ‘국민문학’이 주장하는 문화 다양성의 시금석이 언어문제가 될 터인데, 그런 점에서 언어문제는 ‘고민의 씨앗’(최재서)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민문학’의 언어는 일본어였다. 1942년 5월의 징병제 결정 이전까지 언어 사용 문제가 여전히 논란 중이었고, 그러한 논란의 타협점이 『국민문학』의 조선어 8, 일본어 4(연 12회로 발간)로 드러난 것처럼 1942년 이전까지는 여전히 조선어와 일본어가 공존하고 있었으나, 전쟁이 진전됨에 따라 통합에 대한 요구가 ‘국민문학’의 언어사용에 한계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1942년 5월 징병제 결정과 ‘국어전해운동’이전의 언어 사용을 둘러싼 논란은 1939년 중반 무렵에 벌어진 한효, 김용제, 임화의 논쟁에 그 원형이 제시되어 있다. 한효가 조선의 현실은 조선어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민족본질주의를 주장한 데 반해(①), 김용제는 국가적 보편성의 입장에서 일본어의 우수성을 주장한다(②). 임화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언어는 국경표지가 아니다”) 작가에게 가장 사용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면 그만이라고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조선어 사용을 옹호한다(③). 이 세 갈래 언어관은 1942년 무렵 일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붓을 꺾든가(①), 일본어로 내선일체와 동양주의를 찬양하는 글을 쓰든가(②), 일본어로 어떻게든 조선의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글을 쓰는 길(③)로 나뉜다. 조선어로 일본문학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라고 할 때, 붓을 꺾지 않고 창작한 ①과 ③이 ‘식민지 국민문학’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 세 번째 글쓰기를 이중어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중어 글쓰기란 식민지 본국의 언어로 글을 쓰면서도 식민지의 기억과 현실, 언어를 글 속에 새겨넣을 때에야 이중어 글쓰기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중어 글쓰기의 최대치를 보여준 작가는 김사량이었다. 그는 일본어로 조선의 현실을 재현할 경우, 일본어의 감각을 고집하면 조선의 현실이 엑조틱해지기 때문에 “조선의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모국어를 생경한 직역으로 옮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일본어를 죽여서, 그러니까 비틀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본어 비틀기가 제국주의담론의 비틀기로 드러나는 것은 김사량의 「풀 속 깊이」인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엉터리 일본어를 구사하는 군수를 통해 제국주의담론이 비틀리고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 작가들은 조선어 가나와 일본어 방언을 사용하거나 생경한 조선문화를 삽입함으로써 일본문학과는 구별되는, 일본어로 된 조선문학, 조선적 일본문학을 생산했고, 그를 통해서 일본문학의 질서에 개입하고자 했다.
4. ‘국민문학’과 민족
식민지 국민문학에서 여전히 문제적인 것은 ‘민족’의 문제이다. 많은 대립이나 고민과 고투는 ‘민족’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인정식이 “민족의 전향”을 이야기한 근거는 대동아공영권 내에서의 조선민족의 지위였다. 제국주의에 대한 협력이 민족의 포기가 아니라 민족의 재정립으로 표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채만식은 조선인의 일본국민으로의 재정립이 대동아공영권의 여타 민족을 타자화함으로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집약적 표현한 것이 ‘만주’소재문학이다.
이기영의 장편소설 『대지의 아들』과 『처녀지』, 이태준의 「농군」은 만주에서 조선인이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의 시선을 취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최재서의 「민족의 결혼」은 차이의 소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는 차이를 소멸시키려는 그의 노력과, 차이를 온존하여 그것을 차별로 전환시키는 일본인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드러나 있다.
내선일체가 민족의 소멸이 아니라 민족성의 온존으로 표상되는 것은 김사량의 소설 「빛 속으로」와 「광명」이다. 전자에서는 내선일체의 혼종성을 혼혈을 통해, 후자는 내선일체 가정을 통해 보여준다. 이효석의 「녹색탑」은 민족과 민족의 결합을 남녀문제로 치환하여 다른 민족 사이에도 같은 피가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한설야의 「대륙」은 민족협화론을 확장한 동아협동체라는 이상을 토대로 피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 그런 이상의 비현실성을 깨달은 후 「그림자」와 「피」에서는 내선일체의 불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내선일체를 둘러싼 민족의 문제는 작가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5. ‘국민문학’과 젠더
‘국민문학’이 조선 민족의 특권성을 일본제국 속에 새겨 넣으려는 시도였다면, 여성이나 민중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동원대상에 불과했다. 민중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는 노동과 일상에 대한 통제와 계몽으로 일관했고, 여성은 흔들림 없는 강한 모성으로 그려졌다.
『조광』 1943년 9월호에 실린 꽁트인 이석훈의 「어머니의 고백」, 정인택의 「불초자식」, 정비석의 「어머니의 말」은 모두 전쟁에 나간 아들을 가정에서 든든하게 후원하는 어머니를 그렸는데, 아들의 죽음에도 흔들림 없는 모성을 남성작가들이 식민지 여성에게 강요했다. 반면 여성작가들은 제국주의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서 제시한 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윤숙의 「여성도 전사다」는 여성이 안방에만 있지 말고 바깥으로 나와서 전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주장인데, 1920, 30년대 이상적 여성상이 현모양처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국민으로의 호출을 이용해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목소리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데 여성의 역할이 여전히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것이고, 그러한 여성해방적 요소도 자발적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동원된 것이라면, 진정한 여성해방담론으로 흡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정희 소설 「야국초」도 조선 민족주의를 넘어선 권력을 제국주의에서 발견하고 그것과 결탁함으로써 여성을 억누르는 남성적 민족주의를 넘어서려고 했다. 제국주의에 편승한 여성해방은 여성에게 가사와 남성으로부터 벗어난 길을 제시해줄 수도 있지만, 여성을 얽어매는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최정희는 제시한 것이다.
6. ‘국민문학’과 서발턴
‘국민’으로 호명된 서발턴은 동원의 대상이었다. 일상과 노동, 그리고 시간의 통제를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인간형이 ‘국민문학’이 지향한 ‘국민’이었다. 각종 생산소설, 개척소설이나 지원병소설은 이러한 인간개조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국민문학’은 결국 남성 지식인 문학이기도 한데 그 한계를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발턴의 자율적 질서를 보여준 소설은 최병일의 「풍경화」인데, 민중이라는 개념으로도, 국민이라는 개념으로도 묶이기 힘든 서발턴은 분명히 저항할 힘도 협력할 능력도 없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사람들은 다른 ‘국민문학’에서 묘사한, 국민으로 묶여 협력하고 동원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민족주의 사학이나, 맑스주의 사학이 말하는 저항하는 존재도 아니다.
식미지의 하위계급인 서발턴의 실천은 애국반이라는 구조를 모방하지만, 차이를 두어 모방함으로써 제국적 질서를 전유한다. 엄숙하고 진지해야 할 식민지 본국의 담론, 즉 국민의 각오나 황국신민 서사는 서발턴의 자율적 정치의 장에서는 이들에 의해 반복되면서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다. 마치 식민지 본국의 권위의 상징인 가장 신성한 책을 원주민들이 담배 싸는 종이로 전유하듯이, 조선의 식민지 주민들도 반상회를 비롯한, 식민지 본국이 마련한 국민화 기제를 자율적 공간으로 전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