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외르지 루카치(Gyorgy Lukacs. 1885~1971)
헝가리의 철학자. 누구보다도 마르크스의 사상에 충실하고자 했으면서도 경직된 소비에트 관제 이데올로기로부터 비정통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그는 철학과 정치, 사상과 실천을 통일하고자 했던 근대적 사상가의 마지막 전형이었다.
-계급의식: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급의 출현
계급은 인간 집단에 속하지만 어떤 심리로 설명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결집된 인간 집단이다. 그러나 루카치는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같다고 해서 한 계급이 반드시 행동을 함께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이해관계는 행동 통일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충분조건은 바로 계급의식이다.
인류 역사의 가장 특수한 단계, 자본주의
원시 공동체 사회 이래 인류 역사에서 계급이 없었던 적은 없다. 고대 로마의 노예제도나 인도의 카스트, 중세 영주와 농노 등은 모두 계급이었다. 로마의 노예들은 주로 로마가 대외 전쟁을 통해 얻은 전쟁 포로들이었으며, 인도의 카스트나 중세의 영주와 농노는 철저한 신분제의 산물이므로 정치적인 구분이었다. 따라서 각 계급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그 계급에 속하게 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로잡히거나 출생 신분이 그렇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계급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다르다. 자본주의는 중세의 봉건제를 붕괴시키면서 태어난 사회제도다. 자본주의 덕분에 농민들은 신분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토지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해방과 구원은 또 다른 문제, 어쩌면 봉건제 사회에서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낳았다. 토지에서 쫓겨나 도시로 간 농민들은 신분상으로는 자유로워졌으나 당장 생계의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이 돈을 얻기 위해 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되었으며 노동자 계급을 이루었다. 따라서 농민들이 노동자 계급이 된 것은 스스로 원한 것이기도 하고 원치 않은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루카치는 자본주의를 이전까지의 인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특수한 사회제도라고 말한다. 자분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사회 전체를 경제적으로 통합한 제도인 것이다.
역사적 총체성의 담지자
자본주의가 낳은 또 다른 계급,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가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제도 자체를 의문시한다. 왜냐하면 몰역사적인 부르주아지와는 달리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적 총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경제적 토대를 분명하게 아는 최초의 계급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인류 역사를 고정불변의 역사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는 사회 제도의 기원을 찾을 수 없으며 찾는 것조차 무의미해진다고 루카치는 보았다.
루카치는 자본주의에서 처음으로 경제적·계급적 이해관계가 역사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계급적 이해관계와 계급의식을 일치시키는 존재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다. 부르주아지의 계급의식에서는 허구적인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이 강조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적 총체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의 전체, 곧 그 기원과 종말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운명까지도 의식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결국 생산과정에서의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며, 인류 사회의 그 다음 단계는 무계급 사회가 될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꿈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자연을 이해할 때는 인간이라는 주체가 자연이라는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지만, 사회와 역사를 이해할 때는 그러한 주관과 객관의 분리가 옳지 않다. 사회·역사적 현실에서 주관과 객관은 근원적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이것이 루카치가 말하는 총체성의 철학적 측면이다.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객관적 조건과 계급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인을 한 몸에 구현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급인 동시에, 철학적으로 보면 주관과 객관의 전통적인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급이 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이 단순히 피지배 계급만의 해방에만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의 해방을 가져오리라고 했던 마르크스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과 통한다. 그런 점에서 루카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다. 루카치의 사상은 인간 해방이라는 이념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런 논리의 최종 목적지가 ‘유토피아’라는 점은 인류의 미제(未題)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