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이탈리아의 철학자 사회학자로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고 공산당을 창건했다. 짧은 생애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며 집필했다.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이단취급을 받았다.
헤게모니: 혁명은 영원한 진행 중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사실 시험은 골치 아픈 것이지만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답은 이미 문제 속에 드러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개념이나 이름은 그 개념이나 이름에 상당하는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주관식 문제는 요약을 알려주고 그것을 길게 풀어쓰라는 문제나 다름없다. 5+7=12라는 간단한 방정식은 좌우항이 같음을 나타낸다. 12라는 답은 5+7이라는 문제 속에 이미 지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게 그거라는 이야기다. 시험은 연구나 탐구가 아니라 그야말로 시험 일 뿐으로 새 것이란 없다.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명제를 충실히 요약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서문>이라는 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회 질서가 붕괴하려면, 그 내부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모든 생산력이 다 발전하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 인류는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들여다보면 과제 자체는 그것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형성 과정에 있을 때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경제적 사회구성체가 늘 자연사적 발전과정을 거친다고 말한 마르크스의 지론으로서 역사발전의 법칙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칙성을 도식적으로 이해하면 역사적 결정론에 빠지게 된다. 그람시가 헤게모니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바로 그런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시민사회의 역사적 두께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에게 낭보였다. 인류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한 이상 이제 마르크스가 말한 ‘과제 해결을 위한 물적 조건’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의 법칙이 드디어 현실에서 관철되었다. 그런데 혁명에 성공한 신생국 소련은 경제난에 허덕일 뿐 사회주의 국가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 했다. 유럽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아니라 스탈린 독재라는 망령이었다.
더 큰 문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다.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도,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단계라고 규정한 레닌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망선고는 커녕 오히려 더욱 풍요를 누리며 힘이 세어진 것이다. 1929년 미국에서 경제대공황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자본주의는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번영을 거듭했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조건이 낡은 사회에서 충분히 성숙되어야만 새로운 사회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변방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유에 대해 그람시는 하나의 요인으로 해결한다. 바로 시민사회의 전통이다. 서양에서 국민의 뜻으로 쓰이는 시민이라는 계급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입장에서 시민사회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서유럽의 역사에서는 절대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시민계급이 발달했으며 각국의 정치체제를 공화정으로 변모시키는데 결정적인 주역을 담당했다.
시민사회와 대비되는 것은 국가라는 개념이다. 국가는 지배하고 시민사회는 견제한다. 서로 타협 속에서 긴장과 조화를 이루면서 전개되어온 역사다. 시민사회의 층이 두텁고 전통이 강해서 서유럽에서는 혁명전의 러시아와 같은 혹독한 전제체제를 일치감치 끝낼 수 있었다.
헤게모니와 혁명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국가는 폭력적인 지배기구다. 국가란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점철시키는 도구이며 자본가 계급의 결정을 실행하는 집행위원회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유럽의 역사에서 시민사회가 맡아온 역할을 중시한 그람시는 국가는 외곽참호일 뿐이고 그 배후에는 시민사회라는 강력한 요새와 진지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대립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국가가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국가는 헤게모니를 이용한 세련된 방식으로 사회를 지배한다. 헤게모니 역시 지배라는 뜻이지만 물리적 폭력이나 강제력을 통한 지배와는 다르다. 헤게모니는 피지배자의 동의 또는 합의에 기반을 두는 지배이며 지적 도덕적 지배인 것이다. 그렇다고 물리력을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헤게모니란 폭력을 통한 단순무식한 지배와 더불어 지적 도덕적 지배가 함께 얽힌 지배를 가리킨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피지배계급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과 협상을 함으로써 지배한다. 그럼으로써 피지배계급의 혁명을 예방하는 것이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서유럽 국가들이 그러한 헤게모니적 지배체제를 구축한 데 있다. 헤게모니를 통해 지배함으로써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은 한층 완화된다. 그람시는 이런 자본주의의 자기방어력도 일종의 혁명이라 간주하고 자본주의의 소극적 혁명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람시는 헤게모니의 개념을 국가나 지배계급만이 아니라 혁명세력에도 적용해야한다고 말한다.
혁명은 일순간에 전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새 사회를 우지끈 뚝딱 건설하는 과정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람시가 혁명을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혁명의 전개과정에서도 헤게모니는 중요할 것이다. 혁명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대항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진지전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오래 버텨야하는 장기전이라면 물리력보다는 아군의 정신무장이 더 필요할 터이다. 그래서 그람시는 혁명세력에 대한 이면교육과 정치교육을 주장한다. 그 교육을 담당할 교사가 바로 지식인(인텔리겐차)이다.
과정으로서의 혁명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어느 분야에서라도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고 전문인이 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마르크스가 묘사한 공산주의다.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서 십 리 바깥으로 나갈 필요가 없이 살다가 죽는 게 복된 삶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마르크스의 묘사는 다분히 감상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인류에게 그런 미래가 올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고정된 현실적 목표라기보다는 변화할 여지가 충분한 과정으로 이해했다고 활 수 있다. 그람시의 혁명도 그렇다. 혁명은 어찌 보면 공허하다. 혁명은 장기전이므로 대중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된다. 단기적인 혁명전략의 시대는 러시아 혁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났다. 혁명은 폭발적인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다.
스포츠 경기처럼 끝나는 시점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혁명은 언제 완성되는 것일까? 그람시는 마르크스처럼 혁명 이후의 사회를 추상적으로 꿈꾸지도 않았으며, 혁명의 준비과정이라 할만한 것을 혁명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혁명은 목적을 가정하지 않은 ‘과정으로서의 혁명’이다. 특정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문제를 꾸준히 해결해나가는 장구한 과정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어떤 사회질서가 붕괴하려면 그 내부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모든 생산력이 다 발전하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역사의 법칙성을 강조한 생각을 레닌 식으로 해석하면 급진적인 정치혁명의 정당성을 도출할 수 있겠지만 그람시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훨씬 더 긴 기다림이 필요해진다. 내일을 생각하기 이전에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을 구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