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단 두 권의 철학서로 서구 철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진 그는 일찍이 칸트처럼 칩거와 은거 생활을 한 ‘차가운’ 철학자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언어 실천을 테마로 하는 그의 후기 언어관은 그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메마른 논리실증주의와는 달리 ‘뜨거운’ 것이었다.
-언어게임: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마라
전통 철학에서는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고, 철학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해답을 발견했고 또 계속 발견해 가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 우리의 ‘철학적 상식’에서는 그런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철학적 과제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에 답을 구하려 하지 않는 철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심지어 그런 질문이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주로 논리실증주의 또는 분석철학이라고 부르는 계열의 철학자들이다. 그들이 선구자로 여기며 추종하는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그 뜻을 알아보자.
언어는 세계의 그림
비트겐슈타인의 그 말에 동의하든 안 하든 간에 그에 따르자면 먼저 해결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는 문제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구분이 언어에 내재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철학적 작업에서 최대의 주제는 바로 언어가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30년 간격을 두고 출판된 두 권의 철학 저서(『논리철학 논고』, 『철학 탐구』)에서 서로 상당히 다른 두 가지 언어관을 제시하고 있다.
전기에 그는 언어를 실재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보았다. 그가 그림이라고 할 때 그것은 낱말이 아니라 문장을 말한다. 새나 시냇물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새가 난다’, ‘시냇물이 흐른다’ 등의 ‘사실’을 세계로 보고 이것을 언어가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논리실증주의 철학자인 러셀의 제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은 스승의 논리 원자론을 받아들여 모든 명제들을 요소 명제로 분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자의 성질이 물질의 성질을 정하듯이, 요소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에 따라 그 명제가 세계에 대한 올바른 그림이냐, 그릇된 그림이냐가 정해진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그는 오늘날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T(True)와 F(False)로 이루어진 진리표를 고안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일상 언어가 세계에 대한 충실한 그림이 되지 못할뿐더러 참된 논리적 구조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혼돈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진리함수적 논리 구조를 갖춘 이상언어만이 세계를 참되게 기술할 수 있으며, 여기에 가장 가까운 언어는 자연과학의 언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무엇인가? 일상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상적인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언어의 유일한 기능은 어떤 대상을 지시 혹은 서술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한 언어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일치한다.’
이런 입장은 상당한 장점이 있다. 실재 세계를 보지 않고 언어 구조만 살펴보더라도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세대쯤 지나서 그는 자신의 입장에 문제점이 있다고 여기고 철학계에 돌아오게 된다.
의미를 묻지 말고 사용을 물어라
완벽하다고 믿었던 전기의 언어관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문제를 느끼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일상 언어에서 나왔다. 어떤 사실을 지칭하고 있는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 될 수 있지만, 형용어나 생활 속에서 흔히 말하는 이야기들 중 사실을 나타내는 게 아닌 말들은 세계의 그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
일상 언어에서는 똑같은 언어가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으므로 엄격한 논리적 규칙을 적용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언어의 의미를 나타내 주는 것은 언어의 쓰임새다. 언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곧 언어의 용법을 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점을 ‘놀이’에 비유해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언어를 안다는 것은 곧 그런 규칙과 용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는 ‘언어에 관해서 알려거든 의미를 묻지 말고 사용을 물어라’고 말한다.
침묵의 의미
비트겐슈타인은 그림에서 게임으로의 극적인 전환을 보여 주면서 전기에 자신이 취했던 입장을 부정했고, 그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처신이기도 했다.
그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시대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그런 잘못된 물음을 제기할 만큼 병들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말에 대해, 그가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전통 철학의 문제들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커다란 난제를 해결했지만 다시 커다란 난제를 우리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