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알튀세르(1918~1990)

by 방정민

루이 알튀세르(1918~1990)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이다. 구조주의에서 많은 것을 차용했지만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으로서 투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이데올로기: 벗을 수 없는 색안경

이데올로기에는 반공이란 수식어가 어울린다. 또 엣 소련이 붕괴한 1990년까지 서구의 지배사상 가운데 하나였던 냉전이데올로기도 있다. 이데올로기란 이념, 사상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 이데올로기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뜻과 용법이 달라지는 묘한 용어다. 어떤 말뜻을 잘 모를 때 그 말의 반대말을 생각하면 명확해진다. 이데올로기의 반대말은? 과학이다.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그 반대니까 하구를 좇는 허위의식이 된다. 독특한 이데올로기론을 구사했던 알튀세르도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의 결혼


알튀세르는 묘한 사람이다. 대단히 격렬하고 정열적이다. 사상가로서 프랑스 공산당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면서 만년에는 정신병 환자로 아내를 살해하고 10년을 병원에서 지내다 삶을 마쳤다. 서구사상사에서 알튀세르의 위치는 구조주의의 맥락에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신분석학의 라캉, 언어학의 소쉬르,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와 더불어 구조주의 4인방으로 불리며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를 결합하려한 사람이다. 굳이 그가 구조주의를 이용하여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려했던 의도는 다음과 같다.

1.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험적 자료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사실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2.역사적 연구를 중시하는 역사주의를 거부한다. 역사주의는 경험적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3.환원론적 경제결정론을 거부한다.

4.마르크스를 인간주의적으로 해설하는 데 대해 거부한다. 인간이란 상징주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그것을 다만 객관적으로 상호적대적인 관계로 본다.


앞의 인간주의적 해석을 거부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알튀세르의 사상 가운데 철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주의의 배격, 즉 반 인간주의다. 반인간주의란 흔히 인간적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도덕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반인간주의는 비인간주의는 아니라는 얘기다.

전통철학에서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보았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 인식이 세계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진리인가 아닌가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구조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구조가 중심이며 개별인간행위자들은 오히려 그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진정한 주체는 이러한 지위의 점유자들이나 기능인들이 아니라 생산관계, 그리고 정치적 사회관계다. 알튀세르는 이렇게 인간을 탈중심화시키면서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구분한다.

마르크스로 돌아가자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하지만 서구사회에서는 소외이론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도 급진적 경제학자 또는 혁명운동가로 여기며 경원시 했다. 서구 학자들은 청년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를 구분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인간적인 전자의 입장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그들과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마르크스는 1845년을 기점으로 철학적 주관성으로부터 추상이론으로 극적인 전환을 했다. 알튀세르가 1845년을 기점으로 잡은 것은 마르크스가 그 해에 전례없는 과학적 발견을 이루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에게서 빌린 개념을 이용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의 극적인 변화의 두 요소를 살펴보면 기존 인간적 개념들을 과학적 개념들로 대체했고, 인간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 즉 왜곡된 관념체계로 규정했다. 이런 이유에서 1845년 이전을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시대라 부르고 그 이후를 과학시대로 구분했다. 그리고 후기의 과학적 마르크스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다. 이데올로기를 과학과 대비되는 허위의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평범한 이데올로기 개념을 가졌던 알튀세르는 나중에 상당히 다른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돌아서게 된다.


허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근대철학의 마지막 주자인 헤겔은 인식과 대상의 동질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동질성 추구에 제동을 걸고 현실적 대상과 인식의 대상을 구별하는 안목을 보였다고 알튀세르는 평가한다. 현실과 인식을 구분한다는 것은 관념론적 이원론이다. 마르크스나 알튀세르는 실재를 포기할 수 없는 유물론자이므로 사유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이 인식의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경험적 인식은 오히려 하구를 만들어낼 뿐이다. 초기의 알튀세르는 구조에 전제하지 않고 경험에 입각한 거짓된 인식을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다.

가장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면 진리는 있을까? 현실에 가까운 인식일수록 진리에 가까운 올바른 인식으로 보았다. 참된 인식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겪으면서 알튀세르는 자신의 철학적 관심을 극적으로 전환한다. 과학 이데올로기의 구분은 진리허위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생각이었다며 과학을 버리고 이데올로기 연구에 초점을 맞춘다.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도입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미 있는 것으로 기원도 역사도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보는 창문으로 모든 사고와 행위에 이미 들어와 있는 어떤 것이다.

허위의식에서 의식은 따버렸지만 허위는 그대로 가져간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변형된 관계로 보여주며, 사회적 존재라는 무의식적인 색깔에 물든 모습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을 현실로 상상하고 오인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하며 불행한 것은 아무도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판단이 오인을 빚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최루탄을 쏘아대는 전투경찰의 행동 원인은 시위하는 학생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학생들의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시 하고 넘어간 경우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허위의식에서 현실에 대한 표상으로 옮기면서 전통철학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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