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쾨르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프랑스의 사회학자. 주체와 실천의 지평이 부족한 기존의 구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구조주의 내에 주체를 집어넣으려 했다. 주체와 구조를 잇는 매개 고리로서 그가 제안한 ‘아비투튀스’라는 개념은 결정론적 구조와 의지론적 주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아비튀스: 매개라는 이름의 줄타기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튀스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집단의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소부르주아지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프롤레타리아보다도 별반 나을 게 없으면서도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스스로 하층계급과 구분지으려는 적극적인 욕구를 지닌다. 즉, 과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 영화와 재즈에 대한 교양을 쌓으려는 적극적인 욕구를 소부르지아지의 커다란 특징으로 규정짓는다.
구주주의의 빈 틈 메우기
구조주의는 단순한 이론의 범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이자 사상체계였으며, 이론들의 배후에서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메타이론이었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특정한 부문에서의 새로운 발견 정도가 아니라 학문과 상상의 뿌리를 흔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측면에서 구조는 현상에 대한 심층구조의 의미(의미론적 의미)만이 아니라 각 부문 이론에 대한 심층이론의 의미(메타이론적 의미)도 지닌다.
구조주의의 가장 큰 공헌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데카르트적 관점을 폐기처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워진 중심에 심층적 구조를 갖다놓든, 언어나 무의식을 갖다놓든 구조주의는 인간을 배제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예 인간을 인식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객관적 구조의 개념이 물신화되고 만다. 인간을 배제하고 보니 구조라는 것이 근본과 기원이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구조주의의 두 가지 결함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인간 활동 즉, 실천적 요소가 사라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생성과 시간의 문제 즉, 역사성의 요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구조주의의 이러한 지나친 객관성, 몰역사성, 정태성을 시정하기 위해 인간을 개입시킨다. 그것이 아비튀스다.
인간과 구조의 재결합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구조 역시 인간행위의 결과물이다. 부르디외는 구조와 인간행위의 닮음 즉, 사회구조와 인간의 정신구조가 연계되어 있으며 서로 유사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얼핏 융의 집단 무의식을 연상케하는 주장이기도 한데 융과는 달리 양자를 연결하는 아비튀스라는 매개 고리가 있다.
아비튀스란 인간 행위를 생산하는 체계를 가리킨다. 인간의 행위는 그 주체의 자의적인 결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모종의 심층 구조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아비튀스에 의해 선택되고 행해진다. (만일 누군가 햄버거를 먹기 위해 맥도날드에 간다면 거기에는 최소한 세 개의 매개 고리가 있다. 즉,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구, 곳곳에 체인점을 가진 맥도날드의 광범위한 마케팅, 그리고 햄버거를 간이식사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경험과 자세 등이다. 이 중 세 번째의 매개고리가 아비튀스라 할 수 있다)
아비튀스는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경직된 구조와, 경험의 수준에서 벌어지는 인간행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특정한 인간행위의 동기는 그 인간 집단의 성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인데 비슷한 성장환경을 지닌 사회계급의 성원들 간에는 그 계급 고유의 아비튀스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비튀스는 계급 각 성원의 개인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지만 동시에 그 개인의 내면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은 아비튀스를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의식적을 운용한다. 이렇게 개인의 일상적 행위 및 실천을 구조화하여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가인과 구조의 역할을 매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비튀스는 개인의 행위 결정에 무의식적으로 관여하지만, 구체적인 행위 자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한 계급의 아비튀스를 안다고 해서 그 계급 성원의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결정론적인 구조주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단지 경제적 자본 및 문화적 자본의 통계적 규칙성에 의해 대체적인 성향을 유추할 뿐이다.
‘자본’만이 자본이 아니다.
아비튀스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 문화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사유재산, 그 중에서도 생산수단의 소유에 따라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구분했지만 부르디외는 그러한 경제적 측면만이 아닌 문화적 측면까지 고려해서 계급을 구분한다. 부르디외는 문화적 자본은 상속되는 것이라 주장하면서(가정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각 계급의 성원들은 경제적 조건, 문화적 환경, 교육정도, 직업과 소득, 기호와 취미 등이 통계적으로 규칙성을 보인다고 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게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그람시와 같다)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각기 다른 아비튀스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시켜 각기 자신의 행위를 수행할 뿐이다. 부르디외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는 것은 이러한 애매성 때문이다. 즉, 형상학적 주관주의와 구조주의적 객관주의 사이에 아비튀스라는 장치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지만 탈현대로 접어들면서 구조와 주체 사이의 이러한 매개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베르그송, 서양 형이상학의 새로운 탄생
1. 베르그송의 철학사적 성찰
서양 철학사를 개괄하면 그리스-로마의 고대 철학, 그리스도교의 성행하에 진행된 중세 스콜라 철학, 인간의 자각에서 시작하는 근대 철학이 있고, 그 다음 19세기에 다양한 갈래의 철학들이 등장한다.
베르그송은 고대 철학이 불변의 원리를 근거로 정태적 형이상학을 전개하였고, 스콜라 철학이 불변의 원리와 종교의 결합에 머물렀으며, 근대 철학은 물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하여 법칙을 찾고 그 인식의 틀을 구성하려고 했다고 보는 한 편, 자신은 변화하면서 운동하는 실재성에 근거를 두고 경험에 근거한 새로운 철학을 시도하였다. 그는 이에 대한 검증과 정확성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19세기의 새로운 실증적 자료를 검토하였고 그 자료를 새로이 등장한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에서 가져오면서 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실재성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바꾸었다.
베르그송 이전에 고대 철학에서의 ‘실재(성)’이란 플라톤의 이데아(idea)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eidos)처럼 불변하며 불가분의 존재로서 모든 현상의 모델(또는 원본)이 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중세 스콜라철학에서는 이런 의미를 이어받아 천상의 존재를 실체로 파악하고 현실을 가상으로 여기는 관점을 그대로 전승하였다. 근대 철학자들은 이런 실체(실재성)가 순수 관념이나 정의에 의해 설정된 개념에만 존재하기보다는 사유 존재와 대상 존재 둘 다에 있다는 관점에 이른다.
이런 생각은 대상을 조작하는 방식에 유리하고, 또한 근대의 기술과 산업화에 추동력으로 작용한 점도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로 인간성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배제되고 지배와 피지배, 절대선과 소외 등에 따른 불안과 비관이 가득 찼다.
베르그송은 19세기에 팽배한 염세주의와 실재의 도달 불가능성에 대한 소외로부터 인간성의 실재성을 밝히고, 인간이 생성과 발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난관과 고통을 해소하며 살아왔는가를 긍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2. 19세기를 넘어서며 - 새로운 형이상학의 발생
베르그송이 그의 첫 저술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에 관한 시론』의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대부분의 철학은 언어 및 그 시대의 상식, 사회적 전통에 매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조건을 넘어서 철학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베르그송도 정지와 부동성에 대한 고대 철학의 반성, 인식론에 대한 근대 철학의 반성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자신의 철학적 대안을 마련하였다.
고대 철학에서 학문의 발생 초기에 만물의 근원적 성질을 다루고자 했지만 그것은 존재의 불변의 원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베르그송은 이 원리가 정의상 그 자체적으로 성립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즉 고대 형이상학의 원리는 결국 논리와 순수 수학에서만 정립되는 구성물일 뿐이다.
근대 철학은 일반적으로 이 원리 자체는 이미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원리와 그에 걸맞은 대상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다루었다.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있다. 합리론의 특징은 분석적으로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부터 전개하는 것이고, 경험론의 특징은 인간의 지식이 빈 종이 위에 조금씩 첨가하듯이 축적되는 것으로 여기는 데 있다. 이에 반해 칸트(1724~1804)는 수학의 완전하고 정합적인 지식이 물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식의 완전성과 통일성을 주장한다. 이 세 부류의 담론이 말하는 정체성은 고대 철학의 동일성의 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하면 동일성의 원리를 전제로 삼는다는 것을 미리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제기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이미 보편수학의 완전성이 여러 정합적 담론들 중 하나일 뿐이며, 다른 정합적 담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물리학에서 물체에 대한 형상이나 개념의 논의가 크기와 무게에서 정합성을 가질지라도 그 결합과 용해에서는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고, 그 귀결에도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학적 담론은 논리적-수학적 결합과 다른 구조의 결합이 있다는 것을 새로이 제시한다.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은 힘과 운동의 문제에서 에너지와 열의 관심으로 나아가게 했다. 생물학의 발전은 새로운 철학을 낳게 될 것이다. 화학의 결합과 달리 유기화하는 생명체에는 생명의 고유한 새로운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클로드 베르나르(1813~1878)는 생명의 원리는 논리의 원리와 본성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생명이란 어떤 조작과 실험도 다시 반복할 수 없는 불가역성이며, 개체로서 불가분 통일성이다. 그래서 생명 있는 물체를 한순간에 원리나 지시에 따라 창조된 것으로 여기는 관점과 달리,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 진화론의 담론도 나온다.
사회의 구성은 개인들의 집합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구조와 구성은 서로 다를 수 있어 원리에 매인 정태적 사회와 달리 새로운 사회의 구성은 동태적 사회학이 나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심리학이 나오고 실험심리학, 형태심리학, 정신병리학, 인지심리학 등의 담론이 전개된다.
이렇게 보아 19세기는 전반적으로 전환의 세기였다. 베르그송은 이런 시대적 한계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서의 심리학·생물학·공동체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정초하고자 노력한 철학자이다.
그의 형이상학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철학 담론과 차이를 갖는다. 서구의 전통에서 보아 형이상학의 주요 과제는 인간의 자유와 신에 관한 사유이다. 창조적 신이 먼저 세계를 만들고 나서 인간을 만든다. 신이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도 부여받은 능력을 잘 발휘하면 자유롭다고 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그것이 경험에 의한 담론이 아니라 논리에 의한 담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 편, 베르그송은 자아로서 인격을 지닌 인간이란 존재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구별에 입각해 대상에 대한 주체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과 달라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아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가 표출하여 생기는 다양한 담론을 밝히려 한다.
결국 베르그송은 철학사에서 주요 문제 제기를 검토하여 수렴하면서, 각 시대의 철학이 각각의 정합성에 의한 담론의 형식일 뿐이라고 여기고, 새로운 형이상학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3. 베르그송 사상에서 인간 본성의 세 가지 측면
베르그송은 인간 본성을 탐구한 철학자이다. 그는 『정신적 에너지』(1919)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다. 그 말의 의도는 태어나서 생활하고 다음을 가늠하는 인격에 대한 탐구이다.
베르그송 사상을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심리 존재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이 존재는 변화하며 연속적이고 비가역적 존재이다. 순수 지속이며, 변화를 지속하고 현재 속에 과거를 보존하면서 성립하는 실재이다. 이 실재가 곧 의식이며, ‘대양(大洋)’에 비유된다. 의식이라고도 부르는 이 심리적 존재가 존재론의 근원이다. 이 존재는 플로티노스처럼 은유적으로 태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스피노자처럼 자연, 즉 신(神)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베르그송은 물체의 총체인 우주도 비가역적이고 지속한다고 한다. 우리는 우주 전체의 변화를 단번에 알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의 의식의 내부를 성찰하면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실재 존재는 의식 존재이다. 이것이 생명 있는 실재의 존재론적 의미이다.
둘째는 발전 자아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존재의 현전은 시간 지속에서 생성과 진화 과정을 통하여 드러난다. 베르그송은 기억과 생명을 공연적(公延的)으로 간주하고, 대의식(la Conscience)에서 출발한다. 대의식은 자신에 의한 자기생산의 과정을 걷는다. 우주 발생론과 맞먹을 진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인식의 두 방식, 즉 지성과 직관이 나온다. 모든 생명체의 본능은 신체 자체의 무의식적 인식이며, 지성은 사물을 대상화하고 물체를 도구적으로 측정하는 인식이다. 인간에게서는 지성이 중심으로 보이고 본능은 지성의 인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긴다.
세 번째는 실천적 자아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진화의 한쪽 극한에 있는 인간이 왜 원만한 인류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는 자기생존을 위해 사회 형성에서의 금기를 만들었으며, 사회에서는 생명의 보존과 관습의 유지를 위해 공동체의 이념을 닫힌 신앙(미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식이 발전하면서 두 개의 방해 요인을 뚫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상으로 보아 인간 본성의 세 가지 측면은 세 가지 위상적 지위, 즉 심리 자아, 발생 자아, 실천 자아로 성립한다. 이 세 측면의 역량은 인간에게 작용하는 초오적 기능이나 섭리가 아니라, 인간 속에 함께 내재하는 어떤 것이다. 인간 본성의 세 측면은 특별한 인격에게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기대할 수 있다.이것을 인격성이라 부르든 본성의 권능으로 부르든 생성 원리라 부르든 간에 인간 본성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베르그송의 사유를 따라가 보면, 그는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철학의 정확성을 위한 새로운 문제 제기의 틀로서 ‘세 가지 측면’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 대한 올바른 규명으로 ‘진솔한 인격성의 형성’, ‘인간의 행복한 삶’, ‘인류애의 실현’을 추구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4. 베르그송 철학의 평가와 계승
베르그송은 20세기의 인류가 완숙한 장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년기 성향을 계속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아직도 인간은 정태적 종교의 구복신앙에 머물러 자기부정과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양도(소외)하며 나약한 존재로 취급한다. 베르그송은 우주 발생론의 측면에서 보아, 생명체가 얼마나 많은 장애물과 위험을 극복하였는지를 성찰하면서 인간이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 경험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미래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 사상의 전반적인 도식은 프랑스 제3공화정에서 철학 교육체계와 나란히 나아갔다. 프랑스 철학 교육의 개론서들은 19세기 말 마지막 10여 년에 성립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의식, 기억, 지각…), 논리학(언어논리, 수리논리, 물체논리, 생명논리, 심리논리…), 도덕론(사회, 노동, 국가, 폭력, 자유…)으로 이루어졌다. 이 체계와 베르그송의 철학적 방향은 일치하며, 또한 이 학설이 성립하는 근원에 그의 형이상학적 시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에서 베르그송의 지위는 심리학적 견해에 머물지 않으며, 프랑스 철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베르그송에게는 직계 제자도 없고 뚜렷한 계승자가 없다고 한다. 제자가 없는 것은 베르그송이 강단(대학 소속) 철학자가 아니라 콩트처럼 제자 없이 일반인에게만 강의하는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였다는 특수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에게는 르 루아, 장켈레비치, 들뢰즈와 같은 그를 옹호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 중에서 들뢰즈는 『베르그송주의』(1966)를 썼으며,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의 ‘이미지 이론’을 영화에 적용한 두 작품(『영화 1: 운동-이미지』(1983)와 『영화 2: 운동-이미지』(1985)) 때문에 베르그송의 계승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형상의 원본도 없고 지지점도 없다고 하더라도, 내재성 질료 자체가 문제 해결을 하려고 형성 중에 있고 우리는 이 형성 중인 질료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돈된 듯이 보이는 형성 중인 질료를 베르그송의 철학을 이어가는 들뢰즈는 카오스모스(chaosmos)라고 부른다. 이것은 혼재의 생성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가 창출된다는 의미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 형성 중인 실재성에 뿌리박고 있는 인간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인간 본성에서 나온 고등 양식의 발현에 있을 것이다.
가다머와 리쾨르, 20세기 해석학의 정초(반성택 글)
1. 가다머의 해석학
1) 전쟁직후의 하이데거
1960년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이 출간된 후, 전 세계에서 찬사가 쏟아졌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해석학이고자 했던 가다머에게 해석학적 철학의 성격을 돌아보아야 한은 계기가 주어지는데, 바로 해석학의 대표자였던 하이데거의 나치즘 연루였다. 근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던 이들 중에서 당시 대표적 사상가였던 하이데거가 이 근대적 질서의 최대 모순 덩어리인 인종적 제국주의에 어떠한 형태로든 또 다시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존재론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자신의 나치 참여 논란으로 또 다시 결과적으로 해석학 및 철학의 쓸모없음을 곱씹게 만든다. 해석학이 “민족사적 독단론”을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하버마스의 비판은 히틀러 시대 하이데거의 행적 덕분에도 유효하다.
2) 해석학의 순환 구조와 해석학 진리
가다머는 하이데거 철학을 1949년경부터 수술대에 올려놓고 그 결과인 『진리와 방법』을 10년 뒤에 내놓는다. 여기에 나타난 가다머의 외양만으로만 보면 철저히 하이데거적이다. 존재탐구는 하이데거에서 현존재의 선이해에서 시작된다. 가다머의 해석학도 전통, 선입견에서 출발한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존재는 바로 '거기', 'Da'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따라서 현존재에게 말을 건다. 이로써 철학은 현장성도 붙잡게 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진리를 말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현존재의 그 ‘현(現)’에 있다. 하이데거의 ‘Da'는 물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실제 그곳이다. 죽음은 내가 분명 몸소 체험해야 하며 따라서 철저히 각자적으로 진행된다. 바로 이렇기에 죽음은 지나치게 평균화될 수 있는 체험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 인간은 할 말이 없다. 죽음 앞에서 나는 나의 육체적 죽음도 생각하지만 타인과의 무차별성도 느낀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현존재에는 그 현장성, 실존성에도 불구하고 ‘실존 없는 실존성’이 여전히 끼어들 수 있다. 하이데거의 현존재에는 예를 들어 여의도에서 쌀 시장 개방 반대 시위 중인 농민에게 중국이나 미국 등의 농민들 처지도 생각하며 “세상은 하나다”라는 실제로는 공허한 설득을 해대고자 하는, 이름만의 지성도 끼어들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3) 방법과 방법론
하이데거를 안타깝게 대하면서, 당사자의 목소리에 확고히 기초하는 해석학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이가 바로 가다머였다. 그는 말한다. “시간 지평에 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설명에 대한 오해가 그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사람들은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의 방법론적 의미를 견지하지 않고, 심려ㆍ죽음으로 치달음, 즉 근본적인 유한성을 통해 규정된 현존재의 이러한 실존론적 역사적 시간성을 실존 이해의 다른 가능성들 중의 하나로 취급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여기에서 시간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해 자체의 존재 방식이라는 것을 망각한다.” 시간성이 여러 가능한 실존 중 하나가 아니라, 바로 방법이라는 것이다. 시간성이라는 존재방식이 존재로 향하는 방법ㆍ길ㆍ경로이다. 현존재의 선이해는 따라서 여러 개의 길 가운데 하나인, 그러한 의미의 길에 서 있지 않다. 어느 하나의 길만을 어느 인간, 어느 집단은 실제로 갈 수 있을 뿐이다. 이념의 세계나 관람자의 세계에서는 여러 길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이나 집단에게 실제로 가능한 길은 하나뿐이다. 이를 오해할 경우 하이데거의 철학이 마치 방법론을 문제 삼는 철학으로 오해된다. 하나의 실제적 경로 이외에 마치 여러 개의 길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으로 잘못 이해된다.
경로 자체, 즉 현존재의 선이해 방식이 바로 존재 방식이다. 바로 이를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주제화한다. 방법 자체가 존재 방식인 자는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존재 방식인 방법을 관찰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을 방법론적으로 보는 사람은 여전히 관찰 중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현존재의 시간성은 존재로의 길이다. 어느 특정 현존재에게 이와 다른 길은 없다. 하이데거에서처럼 시간성이 죽음 등의 각자적 체험과도 관련하여 설명될 경우, 하이데거 존재론은 깊은 오해의 원산지로 전락한다. 하이데거의 해석학은 나와 우리의 역사성에 귀 기울이는 해석학에서 죽음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게 마련인 역사성을 붙잡고자 하는 정도의 해석학으로 변모해버린다. 여기서 역사성ㆍ현장성은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실존성을 죽음의 무차별성이 감추어버린다. 나의 역사성은 실존의 문제가 아니라 침묵이나 사색의 대상으로만 보인다. 이 허점 때문에 해석학은 자신이 잡았다고 생각한 역사성을 뜻하지 않게 놓치고 만다.
4) 세계 안에 있는 집에 살기
모국어에는 당사자와 언어 보편성이 함께 확보되어 있다. 모국어는 레비나스에 기대어 표현하자면 자는 곳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인간은 집을 짓도 그 안에서 잔다. 그리고 자는 곳에서 쓰는 말이 대개 모국어이다. 그런데 모국어는 이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이들에게만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도 하나의 언어이기에 그 안에 이성, 즉 로고스를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러기에 모국어는 언어 보편성과도 닿아 있다. 모국어는 따라서 세계 안에 있는 집에 살기에 전형적 예에 해당한다.
5) 놀이의 존재 방식
놀이는 먼저 놀이하는 사람에 독립적이다. 놀이를 의식하는 순간 놀이는 망가진다. 놀이하는 사람이 놀이하는 데에 전적으로 몰두할 때에만, 놀이함은 그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그래서 가다머는 놀이에 대하여 형성체이며 “의미를 지닌 전체로서 반복하여 표현될 수 있고 그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놀이가 그 자체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형성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놀이는 여전히 주관적 태도를 요구한다. 놀이의 원래 본질은, 놀이를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에 대한 태도에서 느끼는 긴장감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에 있다 할지라도, 놀이하는 사람은 놀이함에서조차 여전히 어떤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다. 이를 일단 ‘주관적 태도의 한 방식’이라 표현한다. 이어지는 축제의 존재 방식에 대한 논의에서 축제는 경축됨으로써만 존재한다고 밝히고 가다머는 주관의 태도란 ‘참가함’, ‘집중해 있음’에 그 성격이 놓여 있다고 본다. 이 참가, 집중 등은 모두 당사자로서 의미 지평에 참여함, 즉 사태 관련성을 의미한다.
놀이의 근원적 의미는 중간태적이다. 놀이가 중간태적이라 함은 놀이는 주관에 의존되어 있지는 않으나 주관성에서 출발함을 뜻한다. 놀이의 존재방식은 두 측면의 공속성, 즉 주관 독립성과 참여함에 있다.
6) 놀이의 총체적 전환: 연극
놀이는 관객에게 말 그대로 잘 보인다는 게 문제다. 사실 놀이는 함께 놀이하지 않고 관람하는 사람에 의해 가장 본래적으로 경험되며, 의미된 그대로 표현된다. 관람하는 사람에게서 놀이는 말하자면 그 이념성으로 고양된다. 즉 놀이의 본래 구성요소라 볼 수 없는 관객이 놀이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또한 이념적으로 파악할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극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연극은 관객을 위해 존재하며, 이 점에서 관객은 다만 방법상의 우위를 지닌다.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연기자와 관객의 구별이 지양된다. 놀이가 연극이 되어버릴 때, 놀이 그 자체에는 일종의 총체적인 전화이 일어난다. 찬 자체가 뿌리채 바뀌어 방관자의 진리가 당사자의 진리를 대신한다. 관찰하는 자가 실존하는 자를 밀어내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총체적인 변화이다. 이의 원인은 관객과 무관한 놀이가 관객 의존적인 연극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방법의 도입에 있다. 방법이 관객의 진리인 이념적 통일성을 진리로 자리 잡게 한다. 가다머 이외의 철학에서도 ‘유명한 방법이 곧 진리’다 라는 정리가 이 대목에서 어울린다. 이로써 그의 책 제목도 분명한 뜻을 갖는다. 이방인을 당사자로 세우는 방법을 채택할 경우, 이념적 통일성이 놀이하는 사람의 실제 참여 즉 실존성을 대신한다. 이념성이 실존성을 대체한다. 인간에게 두 측면의 공속성, 즉 주관 독립성과 주관의 참가라는 둘의 공속성에 있다. 여기에 토대하여 인간은 자신에게 가능한 완전한 존재로 간다. 이 완전한 존재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방법의 적용과 더불어 이념적 통일성이라는 또 다른 완전한 존재로 바꿔치기 될 수 있다. 진리는 방법에 의존적이다. 인간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길은 실존적 방법이다. 이 유일한 방법을 놓칠 경우 진리 문제는 길을 헤맨다.
7) 보신탕 문제
한국인과 서구인은 전통이 다르다. 가다머 말로는 방법, 경로가 다르다. 가다머 해석학에서는 보신탕 문화가 원래 없는 지평에 서서 보신탕 문화를 비판할 길은 없다. 역사가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에 속해 있는 것이다. 만일 저 길을 가고자 한다면, 관객이 당사자로 바뀌는 총체적 전환이 보신탕 문제를 두고 나타난다.
인간에게는 살아온 길이 있다. 역사와 전통 속의 인간이 또한 자신의 역사를 포함한 전체 세계의 진행 방향에 대한 판단 및 주장도 한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고 통일적 세계의 모습에 대한 주장도 한다. 이는 바로 이성의 목소리다. 인간의 모든 삶에는 이렇듯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미래 지향성이 함께 작동한다. 그리고 전통과 이성이라는 이 둘은 서로 현실 속에 얽혀 있어 구체적 삶을 이루며 대립하고 있다. 전통과 이성은 상호 작용한다. 지속적으로 생동하는 전통 작용과 역사적 연구 작용은 하나의 작용 통일을 이루는데, 이것을 분석하면 그 속에 늘 상호 작용의 그물 조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전통과 이성의 상호 의존 관계를 가다머는 ‘영향사적 얽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충돌 중이다. 과거보자 한국 사람들은 보신탕에 훨씬 덜 익숙하다. 바로 이러한 방식의 변화를 가다머 해석학은 해법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가다머는 전통과 이성이 추상적으로 대립하는 사고 유형을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에서 구한다. 근대 계몽주의는 가다머가 표현한 대로 ‘이성이 모든 권위의 최종적인 원천’이고자 하여 모든 것을 이성의 법정에서 심판‘한다. 정당성의 원천이 최종적으로 이성에 놓여 있기에 비이성적 요소나 선입견이 뒤섞여 있는 전통은 비판의 대상이다. 계몽주의는 이성에 의하여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 신화와 선입견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추구한다. 이에 반하여 낭만주의는 이성에 대한 이러한 과도한 믿음에 반발하여 등장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이성의 자리에 감정, 환상, 체험, 동경 등을 앉혔다. 계몽주의에 반대하여 등장한 낭만주의는 계몽주의가 갖는 이성을 통한 신화의 극복을 뒤집어서 신화적인 원시 시대의 탁월한 지혜를 존중한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모두 이성과 신화는 추상적으로 대립한다. 낭만주의와 계몽주의는 각각 전통의 비이성적 성격 노정과 전통의 상실이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전통에 대한 계몽주의적 비판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의 전통 복권도 전통의 진정한 역사적인 존재에 미치지 못한다. 전통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등장 원인은 바로 전통과 이성의 대립에 있지 않고 대립의 추상적 성격에 있다. 이에 역사적 해석학은 역사와 역사에 대한 지식들, 전통과 이성 사이에 놓여있는 추상적인 대립의 해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가다머는 말한다.
8) 내부 망명에서 벗어나서
언어로만, 단어로만 진리를 말하고 따라서 논리가 역사의식을 대신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그 인간과 사회의 허전함을 치료하고자 하는 철학적 흐름이 현대 해석학이다. 가다머의 치료는 말과 단어가 행해지는 현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말하는 당사자가 처한 현장성을 주목하면서 이루어진다.
해석학적 진리에 놓인 이러한 현장성, 실존성이 분명히 잡히지 않은 채 해석학적 진리를 보고자 하는 이는 『덕의 상실』에서 매킨타이어의 말로 ‘내부 망명 상태’에 빠진다. 덕의 상실 곳곳에서 실천지 개념을 분석하는 매킨타이어는 나라를 배신할 것인가 아니면 친구를 배신할 것인가와 같은 대립을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은 내부 망명 상태에 있다고 본다. 실천지 개념을 구체적 삶의 지평을 놓지 않고서 조망하게 되면 그 개념은 우리의 이해에서 빠져나간다. 마찬가지로 해석학을 당사자의 실존성 없이 논하는 해석학적 지성은 내부 망명에 놓인다.
2. 리쾨르와 원죄 해석
1) 기독교 성서의 실존적 해석
해석학은 가다머를 거치며 해석학적 인식의 핵심에 이방인의 역사성이 아니라 당사자의 실존성을 앉힌다. 이러한 귀결을 해석학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해석학다운 과제였던 기독교 성서 해석에 다시금 적용하고자 한 인물이 『해석의 갈등』(1969)의 저자 리쾨르이다. 해석학의 문제는 리쾨르에게 구체적으로 성서 해석, 특히 원죄 문제를 뜻한다. 이는 성서해석에 현상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접맥이다. 적용될 방법이 실존하는 나의 길뿐이기 때문이다. 현상학은 인간 개체나 결사체가 각각 실제로 가는 그 유일한 길들을 밝아서 진리에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이러지 않을 때 인간의 진리는 설령 확보된다 하더라고 고향 상실, 생황세계 망각에 빠진다. 성서 해석과 실존성의 접맥, 즉 실존적 성서 해석이 리쾨르의 과제이다. 이에 따라 진리의 개념과 방법의 개념을 떼어놓는 위험이 사라질 수 있다. 현상학 방법에 접맥된 성서 해석, 특히 원죄 해석이 이루어지게 되면, 원죄는 하나의 개념이나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나온 상징의 문제로 드러난다.
2) 구조주의, 정신분석 및 현상학과의 대화
리쾨르가 이해하는 구조주의는 ‘이해하는 데 있어 관계의 역사가 없다’이다. 의미에 실린 의도를 찾아 해석이라는 역사 행위(그 자체가 계속되는 전통 속에서)로 그것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부호를 알아내 여러 가지 차원의 사회 현실(씨족 조직, 동물과 식물의 목록과 분류, 신화, 예술 따위)속에 서로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음을 확인하려고 한다. 따라서 리쾨르의 구조주의는 몰역사적이고 이미 구성되어 멈추고 닫혀버린, 말하자면 죽은 몸뚱이를 탐구할 때 잘 적용된다. 이런 종류의 비판은 구조주의적 인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기본 토대에 대한 비판이다. 구조주의적 지성 앞에 하나의 대상이나 연구 주제는 잠재 상태로 있어서, 즉 함축되어 있어서 실제적이지 않기에, 저런 지성은 당사자와 이방인의 상이한 평가를 담아낼 수 없다. 바로 여기에 구조주의에 대한 리쾨르 비판의 핵심이 있다.
리쾨르의 해석학이 도달할 곳은 당사자의 맥락이다. 예를 들어 안중근의 행위를 놓고 구조주의는 한민족의 일정한 행동 유형 속에서 그 행위의 원천을 구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중동 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을 대하며 그들의 구조화된 세계관에서 테러의 원인을 구하고자 할 때도 등장한다. 정신분석학은 안중근의 행위를 인간 모든 행동은 무의식에서 연원한다고 할 것이고, 리쾨르의 시각에서 그 행위는 안중근이라는 개인의 결단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 행동을 의거로 보는 이유는 당사자로서의 역사 경험이나 역사 의식에 있다. 이는 당사자의 역사 지평이 문제인 것이다. 리쾨르는 세 가지 사상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를 얻어낸다.
3) 원죄는 개념이 아니라 상징이다
구조주의와의 비판적 대화 결과, 원죄는 구조적 관찰의 문제가 아니어서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원죄는 모든 신화를 하나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정신분석학적 탐구에 적합한 주제도 아니다. 오히여 원죄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신화들이 해석에 들어올 때 의미 그대로 보인다. 나아가 원죄는 나의 독립적 체험의 문제가 아니어서 나의 신앙 체험으로 확인되는 그러한 것도 아니다. 원죄는 구조적 해석, 획일적 해석 및 직접적 신앙 체험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원죄는 리쾨르에게 상징이다.
개념적 시각으로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원죄가 그렇다고 아담 신화에 의존하여 제대로 드러나는가? 원죄론은 어떤 신화를 두고 생각해낸 것이며, 곧 아담 신화에 대한 생각이다. 아담 신화는 이스라엘의 죄의 고백을 말하는 것이다. 리쾨르는 원죄는 하나의 신화에만 기초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아담 신화 안의 갈등에 주목한다. 신화들의 갈등이 아담 신화 하나에 모두 들어 있다. 리쾨르에 따르면 아담 신화에는 악의 또 다른 측면을 말하는 뱀도 있다. 다른 상징이 등장하는 것이다. 최초의 사람으로서 아담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앞서고 뱀은 아담보다 앞선다. 따라서 죄는 여러 신화들을 배경으로, 즉 다양한 상징으로 성립한 것이다. 원죄는 아담 신화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시각으로 원죄는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4) 상징의 해석학
원죄는 상징이다. 그것도 여러 신화들의 상징 체계와 관련하여 주어져 있다. 리쾨르는 상징을 드러내는, 즉 상징을 이해하는 세 단계를 말한다. 첫째는 상징을 통해 이해하는, 즉 상징 전체를 통해서 상징을 이해하는 단순한 현상학의 단계이며, 여기서는 상징 속에 들어가 이해하지 못하고 상징들을 비교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원죄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즉 상징의 힘을 얻으려면 멀리서 방관하는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해의 둘째 단계가 상징 속으로 나를 끼워 넣고 해석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믿으려면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해하려면 믿어야 한다는 순환성이 나타난다. 비교하지 않고 당사자의 삶 속으로 들어간 나는 이해와 두 번째 단계에서 순환성에 빠지며, 이를 논리적 모순이라 비판해대는 근대에서 이해의 길조차 상실한다. 상징성을 밝히는 세 번째 단계는 상징으로부터 생각하는 단계이다. 상징으로부터 생각한다 함은 다음과 같은 태도이다. ‘상징의 본래 깊이를 존중할 것이며 그래서 상징이 우리를 이끌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생각이 책임지고 자유롭게 의미를 이끌어내고 이룩한다.’ 그는 이를 이어서 ‘창조적 해석’이라 칭한다. 즉 리쾨르에 따르면 원죄 해석은 상징에 매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에 달려 있다.
이해에 두 가지 문턱이 있다.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인 ‘의미’가 있고, 독자가 그것을 자기 실존 속에서 받아들이는 ‘의미’가 있다. 이해와 해석에서 리쾨르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자기 것으로 삼는 실존 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텍스트의 객관성이다. 역으로 보면 실존적으로 자기 것을 삼지 않으면 텍스트가 하는 말은 살아 있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해석 이론의 과제는 객관성과 실존성이라는 이 두 가지 계기를 하나의 과정에 통합하는 것이다.
5) 리쾨르 해석학의 설득력
가다머 해석학이 기여한 핵심은 현존재의 실존이 바로 존재로의 경로, 즉 방법이라는 하이데거 철학의 주장이 오해되지 않도록 한 것에 있다. 가다머 덕분에 방법 자체가 실존성이라는 점을 알았다. 나아가 방법이 진리라 보는 가다머는 언어 보편성으로 곧바로 향하기 보다는 모국어에 관심을 쏟으며, 지구촌으로서의 세계보다는 이 안에 짓고 살 집으로 가고자 한다. 그는 통일성의 의미를 현장성을 통해 보고자 한다. 현장성으로 본 통일성만이 실존하는 인간에게 가능할 뿐이다. 성서 해석에 적용된 리쾨르 해석학의 설득력은 지금의 시대가 하나로 가는 실제적 사건인 상징이 필요한 시점인지, 아니면 의미 있는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각자에게는 하나일 테지만 모두에게는 결국 다양할 경로의 확보가 요구되는 시점인지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3. 근대성 비판, 그 이후
거의 모든 사상은 이 하나의 세상이 보여주는 다양성이나 혼돈을 어떻게 하나로 모을까를 고민한다. 문제는 통일성을 두고 강제되는 통일성이라고 비판하고 난 이후이며, 니체가 강제로 하나로 향하는 세계를 해체한 이후이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인간의 행동이 선의지라는 통일성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동물적 충동에 의한다고 근대를 고발한 이후이다.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선이해로 도달하려는 그곳도 근대 이후이다. 그런데 하이데거가 죽음에서 각자성을 끌어내는 그만큼이나, 그래서 너와 나의 존재 선이해가 죽음 앞에 평준화되어버리기 쉬운 그만큼이나 하이데거에게 근대성은 가까이 있다. 존재를 선이해하는 인간 현존재가 죽음에서 각자성을 확보하는 그만큼, 하이데거 존재론은 실제 선이해에 기반하려는 경향보다 죽음 앞에 모두 평등하고 공평하게 서 있는 그 의미로 달려간다.
하이데거의 근대 비판은 근대를 넘어서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근대적 통일성으로의 길이 열려 있다. 근대를 비판하며 도달한 근대 이후가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근대적일 수 있다. 그의 실존은 나의 실존이 아니다. 군인이 아닌 나의 병영 체험은 군대 체험이 아니다. 그런데 이 모두를 실존으로 처리하고 군대 체험으로 처리하는 순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자 하는 학문이 군대라는 현실을 병영 체험 식으로도 대할 수 있는 이론적 허술함을 보여준다.
근대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철학은 당사자의 의미 지평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는 시간적으로는 현대라는 지금도 이루기 힘든 일이다. 당사자의 삶의 문제를 보다 넓은 관점으로 보려는 인간의 소질적 경향은 이 순간에도 등장하여 저 당사자의 문제를 밀어내어 버린다. 대한민국의 마이카 문화가 도로를 더 건설해야 하는 지점에 있는지 아니면 기존의 도심 고가도로를 허무는 수준까지 왔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환경 복원에 근거하여 청계천을 되살릴 때 발휘되지 않는다. 복원된 청계천에는 그 길을 이용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이다.
콩트와 실증주의 인식론의 기초(이지훈)
에밀 시오랑은 프랑스인은 반형이상향적 성향을 띤다고 말하는데 프랑스적 성향을 대표하는 철학자는 오귀스트 콩트이다. 자연과학과 관련된 인식론으로 콩트의 실증철학을 살펴보자. 실증철학의 전기는 사회철학을 가리킨다. 실증주의는 인식론일 뿐만 아니라 과학을 통한 정치학이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철학과 정치학으로 이루어진다는 선언을 『실증정치체계』에서 나타내고 있다. 사회철학의 관점에서 실증주의는 긍정적이며 건설하는 사상이다. 신학, 형이상학, 실증철학의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실증주의는 신학의 허구를 공격했고 낡은 사회질서의 토대를 해체시켰다. 형이상학은 비판적이고 파괴적이며 무정부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이며 그 절정은 계몽주의에 있었다. 핵심이 구체제의 전복에 있다고 보고 부정론이라고 했다. 실증철학이 맡은 소명을 건설이라고 했으며 실증철학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건설을 생각했다.
1.실증주의는 상대주의다
실증주의는 일종의 실학이다. 현실과 사실을 존중한다. 우주의 근원이나 기원을 탐구하지 않으며 초월존재가 계시하는 절대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추구한다. 현실적인 예측능력을 제공하는 학문체계니 실학이지만 과학주의는 아니다. 실증주의가 과학주의보다는 상대주의에 가깝다는 명제이다.
콩트는 실증성의 뜻을 다섯 가지로 말한다. 현실성, 유용성, 확실성과 정확성, 유기적 상대성을 강조했다. 실증주의에서 먼 과학주의는 첫째, 과학이론이 모두 ‘경험적 명제’로 구성된다는 입장. 둘째, 자연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주장은 아무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증주의는 과학주의가 아니다. 과학에 관한 한 실증주의는 차라리 상대주의이다. 과학 지식을 절대 진리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회의주의는 아니다. 절대 진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한 영역에서 통하는 지식을 전체로 확대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역 상대주의’에서 콩트는 관찰을 중요시한다.
전통 철학에서는 대개 과학이론이 경험 사실의 축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입장을 경험주의와 연결하며, 후자에 반대하는 입장을 합리주의와 연결했다. 이 틀에서 보면 콩트는 이중적이다. 과학에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화해시키려 했다. 두 입장 각각의 긍정성을 인정하되 각각의 한계를 논의한다. 한편으로 그는 소박한 경험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특정한 이론의 맥락과 무관한 경험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론 의존적”이지 않은 순수 관찰이란 없다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물론 경험 ‘사실’을 존중한다. 그리고 사실의 형이상학적 ‘원인’에 관한 논의를 배제한다. 최초 우주의 탄생이나 생명의 기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우주론 적 또는 신학적 기원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실증주의이다. 반면에 콩트는 ‘사실’ 자체가 과학이론을 구성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실제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들의 ‘연관’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들의 연관을 ‘법칙’이라고 한다면, 법칙들을 체계화할 때 비로소 과학 ‘이론’이 구성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가설과 이론의 구성 능력을 강조하는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속적 연결’이자 ‘일반적 사실’의 표현인 ‘일반 법칙들을 따른다. 실증주의는 극단적인 경험주의가 아니다. ‘유추를 통한 확장’이나 ‘추리’, 분류, 범주화 같은 ‘추상적 토대’를 적극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현상들에 관한 법칙’의 연구로 바꾼다고 했다. 주의할 것은 ‘법칙’이다 실증주의라면 대개 ‘현상’들로만 추구한다고 보기 쉽지만, 사실은 언제나 현상과 연관과 법칙에 주목한다. 과학에 관한 선험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험에 앞서 구성된 논리 체계가 그 자체로 과학적 타당성을 얻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통일과학의 이념이란 세계를 “하나의 단일한 과학이론 체계로 설명”한다는 이념을 가리킨다. 고유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성립하는 어떤 단일한 과학언어, 즉 단일한 인식 대상과 방법을 통한 단일한 세계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개별 과학의 고유 영역과 한계를 존중하는 상대주의이다.
첫째는 인식 자체의 상대성이다. 과학 지식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순수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일시적으로 검증된 가설들의 연결이다. 최소한 일정 범위 안에서는 객관적인 지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는 회의주의가 아니다. 지식의 실증성에 바탕을 둔 영역 상대주의일 뿐이다.
개별과학의 각기 고유한 법칙들은 서로 완전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모든 과학에 적용되는 공통 언어도 없으며,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단일 법칙도 없다. 대신 언어의 다수성과 상대성이 있다. 이것을 과학에서 다원주의라고 볼 수도 있다. 이 관점은 과거 신학이나 형이상학처럼 하나의 전일적 총체로서의 세계를 유일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관점과 다르다. 나아가 극단적인 관념론이 추구하는 통일과학의 이념과도 다르다. 콩트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법칙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으며, (그것을 시도하는)모든 종합은 주관적”이라고 말이다
콩트는 과학에서 수학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볼 때 과학은 ‘추상’적인 동시에 논리적 추론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추상성이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개별 경험과 거리가 있다는 측면이며, 논리적 추론성이란 그 이론의 전개와 구성이 연관된 원리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측면을 가리킨다. 그런데 두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학문이 수학이다
과학들은 자기 체계를 구성하면서 수학의 방식을 따른다. 물론 과학은 수학 내용 자체를 따르지는 않는다. 과학이 수학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수학의 핵심적 성격(추상, 논리성)을 따른다는 뜻이다. 베이컨은 일찍이 수학을 ‘과학의 시녀’라고 했는데, 그것은 오해이다. 바슐라르의 인식론에서도 계승 발전된다. 수학은 특정한 언어가 아니다. “모든 과학 언어들의 언어”이다. 개별 과학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콩트는 과학을 분류한다. 다만 ‘의존’의 성격은 논리적 ‘함축’‧‘연역’‧‘환원’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역학을 정역학과 동역학으로 나눈다. 동역학의 발생은 정역학에 의존한다. 정역학은 동역학의 발생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동역학의 대상은 정역학보다 특수하다. 물체가 운동하는 원인‧결과를 다룬다. 보편성이 떨어지는 동시에 한층 더 구체적이다
동역학은 정역학에게 의존한다. 운동의 이해는 정지의 물리적 의미를 깊고 풍성하게 하도록 해준다. 동역학은 정역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뒤에 나온 동역학의 내용은 훨씬 복합적이다. 정지와 운동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불연속성을 가정한다. 실증철학의 생물학은 생물의 역사를 생명 단위들의 ‘불연속적 계열’로 이해한다. 하부를 토대로 상부구조를 환원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증주의는 과학을 허구(fiction)와 고안(artifice)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즉 과학의 실체가 ‘합리적인 허구’로서의 가설 또는 인공(인위)적 고안물위에 세워져 있다고 본다. 그는 심지어 과학의 본질을 문학적 상상력에 견주기도 한다. 즉 추상성이나 상상력의 개입을 말한다. 과학은 ‘논리적 고안물’(artifice logique)이 된다. 실험의 성격이다. 실험은 이론적 단순화와 구체적인 현상들의 복합성 사이를 매개해준다.
천문학은 수학과 관찰에 의존하며, 생물학은 관찰과 분류, 비교 연구를 더 많이 이용한다. 그럼에도 실험은 과학 연구의 중요한 양상을 보여주는데, 특히 인위적 환경(조건)을 창출해낸다는 특징을 가진다. 실험은 주어진 여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관찰)의 가능성 자체를 적극적으로 유도해낸다. 그럼으로써 현상들의 관계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실험이 조성하는 환경의 인위성, 방법의 선택성, 정확도의 다양성 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험이 지니는 이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측면들을 생각할 때 과학은 허구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역사적’인 관점이다. 문화라는 말은 사회(집단)적이라는 말이며 역사적이라는 말은 변화한다는 말이다. 실증철학에서 과학의 객관성은 ‘주관성’ 자체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임의적인 ‘자의성’에 대립한다. 그 정당성을 ‘상호주관성’에 의해 보장받으려 한다. 실증철학은 상대주의와 객관성을 공존시키려 한다
첫째, 실증주의가 볼때 과학 연구의 평가는 집단적인 주체, 즉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연구내용을 평가하는 집단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절대적인 객관성이 아니라 상대(근접)적 객관성을 목표로 삼는다. 과학 연구의 주체 또한 집체적이다. 집단적 정신, 집단적 주체이다 천체라는 것은 다만 집단적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다.
지식의 역사성이 곧 개방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실증철학 강의」는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일관된 철학을 통해 전체 지식에게 질서를 주는 사전이다. 철학과 과학의 관계는 쌍방향이다. 콩트는 과학의 검토로부터 철학 원리들을 얻어낸다. 다른 한편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을 분류하며 그 역사적 발전에 질서를 부여한다. 과학들 간의 비환원성(고유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상호 발생 관계를 정립한다.
과학의 진보가 집단적 코기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문화 역사성의 원칙 등이다. 인식론이다. 과학의 내용과 역사를 재구성하고 이해하며, 과학 자체를 문화 역사적인 범주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콩트는 인식의 추상적인 발생 근거 자체보다는 말 그대로 인간의 앎, 즉 지식의 성립 근거를 있는 그대로 탐구하며, 그것도 과학 활동에 직면하여 과학 인식의 원리를 이끌어내려 한다. 그리하여 콩트에 의해 철학의 토대는 인식론이며, 인식론은 오직 과학의 성찰을 통해 구성될 수 있으며, 과학의 역사에 관한 성찰이라는 전통이 세워지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사실을 존중하는 실학사상이되 상대주의라고 했다. 과학과 인간 가치의 관계를 재배치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사회학을 보라. 고유한 대상은 지적인 정신이 아니라 정서적인 마음이다. 이 논증의 토대가 바로 과학사의 이해이다.
‘마음’의 고유성은 오직 사회학만이 다룰 수 있되, 이런 ‘독점’이 사회학에서만 일어나는 배타성이 아니라 과학 일반의 현상임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마음’으로 대표되는 인간 가치의 위상을 여타 과학 전체가 통합되는 구조 속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 활동의 의미론적 조정 작업이다. 인간의 지식은 조화롭게 체계화된다. 콩트의 인식론은 깊은 자취를 남겼다. 철학을 과학 활동과의 관련 속에서 구성하는 프랑스 철학의 중요한 특색이 됐다. 철학의 주장이 과학의 성과와 모순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정한다. 그리고 또 하나 문학적 역사적 함축이 있는데, 특히 화학 지식의 역사성과 관련된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다. 역사성이 곧 개방성과 통한다면, 우리는 과학 정신을 성찰함으로써 인류 정신을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즉 과학 정신으로부터 인간 이성 전체를 변혁하고 재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실증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프랑스 인식론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실증철학에서 과학의 진보는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가령 기하학의 발전은 거의 동일한 틀 속에서 지식을 축적해온 결과로서 이해되었다. 이 관점은 후에 심각한 비판을 받는데 그 비판의 대표로서 우리는 바슐라르의 인식론을 생각할 수 있다.
이성 실현에서 이성 비판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중심으로(문성훈)
오늘날 사회비판이론의 대명사로 통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된 사회연구소(Institute für Sozialforschung)에 기원한다. 학문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속해있고 지적으로도 다양한 성향을 지닌 이론가들이 1923년 이후 70여 년 간 세대를 거듭하며 하나의 학파로 묶일 수 있는 것은, 이 학파의 특성이 기존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적 사회를 제시한다는 사회비판이념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모델과 관련한 패러다임의 3세대를 걸친 변화를 개괄할 것이다.
1. ‘이성 실현’에서 ‘이성 비판’으로
호르크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193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 사회비판 이론을 주도했던 인식관점은 이성실현이라는 규범적 목표였다. 개인의 욕구가 서로 대립되지 않고 함께 충족되는 사회를 이성의 실현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사회를 자유의 실현으로 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초기 프랑크푸루트학파는 인간의 자유활동을 가로막는 사회적 지배구조와 이로 말미암은 사회적 불평등을 사회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자유의 개념은 칸트의 도덕적 자유개념을 사회이론적으로 해체하고 헤겔의 역사 철학적 자유개념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얻어진다.
칸트의 자유개념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인 동시에 욕망과 충동에 지배받는 자연적 존재로 이중화시키고 있는데 이성법칙을 우위에 둠으로써 충동을 억제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이중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현상으로서 인간의 소유욕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노력을 흡사 자연법칙처럼 간주하게 되는데 이러한 노력이 시장경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동시에 보편적인 이익 실현과 합치되는 듯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연적이며 통제 불가능한 교환과정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시장교환체제는 맹목적 경쟁에 의하므로 충동을 억제하는 이성법칙을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대다수의 갈등으로 귀결된다. 더구나 소수 자본가를 제외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이익이 부정되는 상황에서 보편적 이익의 실현을 절대화한다는 것은 일반 대중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고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칸트의 자율성 개념을 반박하면서 193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내세운 것은, 개별적 이익의 실현이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정의관, 즉 헤겔의 역사관을 마르크스식으로 해석한 원칙을 세운다. 즉, 개인적 삶은 인륜적 가치를 내면화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존이라는 생존욕구의 실현이며, 정의로운 사회 역시 인륜적 가치가 보편화된 사회질서가 아니라 개인의 생존욕구 실현이 동시에 타인의 생존욕구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규정한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정의로운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여 사회적 생산체제를 형성하지만 노동자는 노동력 상품으로 취급됨으로써 자본가로부터 착취되고 생산이윤은 자본가에 의해 독점된다. 그러나 자본의 사적 소유가 철폐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와 함께 공동생산체계를 형성하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성과에 따라 분배’받음으로써 개별적 충족이 곧 공동체의 충족이 되는 생산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관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급속한 반전을 맞는다. 1930년대의 이론 주도적 관심은 전쟁으로 인해 사회 변혁 자체의 비관주의로 이어지면서 미국의 국가독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통제력을 재인식하게 만들고, 소련의 스탈린 체제는 대안적 사회에 대한 절망으로 결론지어졌으며 독일 나치즘의 폭력은 인류의문명화 과정 자체의 회의를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회의론적 관점은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된 <계몽의 변증법>에서 현대적 야만을 초래한 ‘계몽’의 역설을 추적함으로써 이성의 실현을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배의 실현으로 간주하게 되고 이를 비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즉, 계몽의 추동력이 되는 이성이란 인지적-도구적 사고 능력을 말하며, 계몽이란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인간의 행동과 사회조직이 자연 지배를 위해 합리화되는 과정인데,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러한 합리화의 과정이 안겨준 역설과 결과 즉, 자연 지배를 목적으로 실현되는 인간의 이성이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을 지배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구적-인지적 이성 법칙에 따라 자연 지배를 추진하는 사회적 노동 분업 체계가 개개인의 본질로 이해됨으로써 이성에 의한 인간의 지배는 완성되고 이러한 이성지배에 의해 생산성 향상이 최대 목표가 된다. 이런 점에서 국가 독점 자본주의든 스탈린 체제하의 사회주의든 사회적 통제조직이 거시주체로서 모든 사회 구성원을 단순한 기능적 인자로 취급하고 목표달성의 도구로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은 비록 현대 사회의 야만성을 폭로는 하고 있지만 대안을 전제하고 있지 못하고 비관주의로만 바지고 만다.
2. ‘이성비판’에서 ‘의사소통 이성’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세대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성과 지배의 통일을 폭로한 <계몽의 변증법>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한다. 즉, 하버마스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와는 달리 이성데 대한 전면 부정이 아니라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근거한 대안적 이성 개념을 제시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공동의 행위를 결정하기 위해 타인과 소통하며 이 과정에서 근거를 대기 위해 자신의 언어적 진술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이러한 타당성 주장은 보다 나은 논증을 통해 비판되거나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에 기반한 의사소통의 참여자들은 공동의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관철되는 행위 원칙, 즉 보다 나은 근거 제시를 통한 합의 형성이라는 일반적인 언어 사용 원칙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으로 규정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기보존과 자연지배라는 목적을 위해 사용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란 인간을 합목적적 지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이성이 작동하는 공간은 근본적으로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다. 이에 반해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언어적 상호작용 관계에서 발휘된다는 점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아니라 주체와 주체의 관계가 된다. 즉, 언어적 상호작용은 그 참여자가 서로 화자와 청자의 역할을 번갈아 수행하며 모두를 주체화시켜 합의를 형성아고 공동의 행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적-도구적 이성에 기반을 둔 계몽의 역설을 극복하고 대안적 이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상호주체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 작용하는 이성의 실현이 인간 스스로 자유의 주체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푸랑크푸르트학파는 자유 실현을 이성 실현과 동일시하는 칸트적 전통에 서 있었지만 칸트와는 달리 도덕적 행위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보았다. 자유란, 보편적 이익이라는 미명하에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이익을 억압하는 부르주아적 도덕이 아니라 개별적 이익의 실현이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함께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의식이다. 따라서 칸트의 자유관은 비록 그것이 이성의 실현을 말하지만 개인의 자기 억압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자유를 이성법칙에 대한 복종과 동일시하는 역설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는 이성에 의한 인간 지배 현상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의사소통적 이성에 근거를 둔 하버마스의 자율성 개념은 여전히 자유의 실현을 이성의 실현으로 보는 칸트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칸트와는 달리 자유가 개인의 자기억압으로 변하는 역설을 극복할 뿐 아니라 사회정의의 원칙도 재구성하게 된다.
3. ‘의사소통 관계’에서 ‘상호인정 관계’로
하버마스가 대안적 이성과 이에 근거한 사회상을 제시해 사회비판의 규범적 토대를 마련하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은 사회변혁을 추동하는 실제적인 동력을 설정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이성적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언어적 상호작용 배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집단들의 갈등과 저항이 고도로 이성화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인 호네트는 ‘인정’과 ‘무시’의 개념을 통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불의에 대한 경험과 분노를 사회적 저항과 연결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을 등장시킨다.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타인의 인정을 누적적으로 경험할 때 긍정의식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시당한 경험이 누적되면 열등감에 빠지면서 자아실현에 대한 기대나 바람을 갖기가 힘들다. 인정과 무시의 개념이 사회비판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은 개인 간의 대면적 공간에서 형성된 개별적 인정관계를 사회적 인정관계로 일반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회는 어떤 인간형이 정상적이고 가치 있으며 어떤 인간형이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기준이 있고 이에 따라 구성원들은 사회적 인정과 무시의 질서에 구속된다는 것이다.
호네트가 주장하는 사회적 인정관계는 하버마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비판 패러다임이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사회적 의사결정의 일반적 원칙으로 제도화되었을 때 사회구성원들은 서로 합리적 의사소통 관계를 맺음으로써 아무런 억압 없이 합의하고 행동을 통일해 공동위 규범과 질서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적 질서가 얼마나 개인 간의 합의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참여하는가에 의해 정당성이 평가된다. 이에 반해 사회적 인정관계에서 문제되는 것은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하는가이다. 즉, 특정한 인간형이 절대화됨으로써 여타의 인간형은 무시되고 이 때문에 각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이 억압받거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갖지 못하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인정관계는 서로 다른 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개인으로 공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은 합리적 의사소통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진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의 투쟁을 통해 인정관계의 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타인 속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인식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의 대체 불가능한 정체성에 대한 더 많은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완전한 개인들로 공존하게 된다.
호네트의 상호인정 관계에 의하면, 사회변혁이란 점차 수준을 높여가는 인간의 정체성 요구를 사회적 인정관계 안에 포괄하기 위해 인정의 대상과 내용을 확장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980년대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이루었던 소수 민족, 여성, 외국인 노동자, 동성연애자 등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된 집단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사회적 투쟁에 나서면서 논의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4. 결론
193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70여 년 동안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시대적 변화에 맞춰 세 차례의 사회비판 패러다임의 전환을 감행함으로써 사회적 억압과 해방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사회를 비판함에 있어 도구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생산력과 생산 수준에 상응하는 생산관계를 그 핵심대상으로 삼았다.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결정하고 다시 생산관계가 하부구조로서의 정치 및 문화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일원론적 전제였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 현상을 비판하고 나섰다. 도구적 합리성에 근거한 체제와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의한 생활세계라는 이원론적 입장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호네트는 상호적 인정관계에 주목한다. 즉, 체제나 생활세계로 환원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인정질서라는 새로운 사회적 차원을 전제로 한다. 정리하자면 사회비판이론은 사회적 생산양식을 대상으로 했다가 사회정의 원칙에 주안점을 두었다가 지금은 구성원의 자아실현이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원적 사회비판이 어떤 공통의 사회관과,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공통의 규범적 토대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각각의 패러다임은 하나의 통일적 체계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생산체제, 생활세계, 인정질서를 통합할 수 있는 사회관관과 이를 근거로 사회비판을 할 만한 규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