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리뷰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관계란… 우린 왜 이리 관계에 서툴고 사랑에 힘들어할까? 인간의 삶 전체가 어쩌면 관계(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은 현대인들은 외롭고 힘겨워한다, 사랑에 관계에 대해…
음성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가까운 미래, 대필작가 테오도르(와킨 피닉스)는 어려서부터 같이 지내왔고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와 지금 이혼 소송중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다른 사람의 편지, 그것도 감정까지 실린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다. 참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그러던 그가 진화하는 인공지능 OS(운영체제)인 그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을 시작한다. 컴퓨터나 휴대폰이 켜져 있으면 언제나 사만다와 만나 대화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성향에 맞게 프로그램된 인공지능이다. 그래서 그에게 정말 잘 맞춰준다. 아니 둘은 정말 잘 맞는 커플이다. 거기다가 감정까지 느끼고 그 감정이 스스로 진화까지 하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살아 있는 여자로 느끼기까지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빠져들어 이젠 한순간도 그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만 한정된 여자가 아니라 동시에 수 백 명의 남자와 그런 관계를 가지는 일종의 컴퓨터다. 이 사실을 안 그는…
영화는 인공지능이라는 일종의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한 남자의 깊은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운영체제는 여자의 상징물이라 해도 좋을 것이고 사람에 치이고 상처 받아서 컴퓨터나 인터넷에 빠진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라 해도 맞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왜 이렇게 관계에 서툴고 힘들어할까? 현대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문제일까…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일까… 사랑 또한 그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 이 둘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지 않을까? 사랑하게 되면 갖고 싶고 그 사람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그 사람에게 집착하고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틀어진다. 그러면 또 외롭고 고독하고 슬프다. 그래서 상처는 어쩌면 상대방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관계(의 어려움)에서 빚어지는 짙은 페이소스를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일지 모른다. 영화는 결국 남자 주인공 그가 친구와 함께 빌딩 옥상에 앉아 구슬프게 아름다운 저녁놀을 보면서 끝나는 장면을 엔딩 장면으로 처리하는데, 바로 이 장면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다.
사랑은 결핍에서 온다고 했다. 그런데 사랑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결핍이고 이 결핍을 메우고자 피나게 노력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문제는 이 결핍을 없애고자 할 때 생긴다. 이 결핍을 없애고자 하면 상대가 필요한데 이 상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이 상대와 내가 어떤 관계를 맺을까 하는 데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주체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주체가 되면 상대방은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완벽히 인정하는 관계, 그래서 주체 대 주체의 관계가 과연 가능할까? 내가 주체가 되고 상대방이 객체가 되면서 관계의 양식이 달라진다. 바로 프롬의 표현을 빌리면 존재양식이 되느냐 소유양식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로는 존재양식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 살아보면, 사랑해 보면 그렇게 되기 정말 힘들다. 상대방을 만지고 싶고 가지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상대방은 바로 객체가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모든 관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누가 객체가 되고 싶겠는가… 그래서 영화 제목이 'She'가 아니라 'Her'인 것이다.
처음부처 객체화된 그녀는 상대방에게 잘 맞춰주긴 하지만 객체라서 아이러니하게 수 십 명의 남자와 사길 수밖에 없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니까. 객체화된 존재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상대방을 찾아나서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면 단 둘이라는 관계(사랑)는 깨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진정한 의미의 정체성 확보는 하지 못한다. 가령, 자신의 얼굴이 정체성이라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타인의 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거나 거울이라는 대상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래서 더더욱 정체성 확보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 확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또는 정체성 확보를 위한답시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그 관계는 필연적으로 깨진다. 그래서 관계가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어쩌면 관계를 완벽히 하는 인간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완벽한 정체성 확보가 불가능한 존재, 그래서 더욱 타인을 찾게 되고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나와 너의 관계는 힘겨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참, 인간의 관계란…
그녀는 남자에게 맞춰주도록 프로그램화 된 컴퓨터다. 아무리 인공지능이고 진화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이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니 사랑 대 사랑이 주체 대 주체가 아니라 주체 대 객체가 되어버리면 그 관계는, 사랑은 오래 못 간다. 결말은 파국이다, 헤어짐이다. 그러면 또 상처 받고 아파하고 외로워한다. 그게 사람인 것이다. 어리석은, 관계에 서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그래서 영화는 말한다. ‘우린 다 떠나. 왜 떠나는데? 당신을 사랑할수록 내 마음 속엔 시공을 초월한 다른 공간이 있어. 넌 이해 못할 거야. 이 다른 물질계의 세계!!!’라고.
이 다른 물질계의 세계는 결국 우리 마음 속의 세계가 아닐까? 어리석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그것이 운명이라고. 인생 참 어렵고 힘들고 외롭다. 아무리 살아도, 아무리 알아도…
외로움과 허무함이 인간의 운명인 듯, 페이소스 짙은 와킨 피닉스의 연기가 참 인상적이다!!!
개인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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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의 잎처럼 내 마음도 돋아날 수 있다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는
봄나무의 잎처럼
내 마음도 돋아날 수 있다면…
저 나무의 잎들은
무슨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한 세상 살아가는데
마음이 굳이 무어 필요하냐고
푸른 미소 웃어보인다.
푸른 생명 화사한 삶, 그러나
춥고 외로운 긴 겨울을 버티느라
안이 텅 비어진 나무는
그 속을 결여로 채웠다,
결여를 품고 있다.
사람이 제일 귀하다지만
사람도 짐이다
사람이 아픔이다
내가 네가 될 수 없고
네가 내가 될 수 없는
이 결핍의 관계들
너와 나
마음 속으로
결여 하나씩 안고
우리의 관계 느슨해지자
저 푸른 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