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를 정리한 나의 영화!
영화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거울이 되었다. 영화는 내 상처를 치유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 인생은 상처의 연속! 알알이 박히는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털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녹아낼 수 있을까.
- <박하사탕>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내 방에서 자고 있던 대학친구들을 깨워 어제 약속했던 해인사 행을 재촉했다.
대충 씻고 나가기 직전에 그의 법명을 알아내기 위해 ○○○ 선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다. 하지만
“해인사에 가지 마라. 가더라도 만날 수 없다.” 다소 화나고 짜증석인 대답을 들었을 뿐 그의 법명을 우린 알아낼 수가 없었다.
96년 우리학교 다른 과를 멀쩡히 다니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사회마저도 홀대하는, 일명 돈 안 되는 철학과로 전과해 온 그 선배는 당시만 해도 연극무대에서 활약하던 연극인이었다.
나에게 그 선배는 왠지 기인 아닌 기인 같아 보였고, 기인을 싫어하는 나의 체질적 한계 때문에 나와 그 선배는 처음엔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같이 스터디도 하고 같이 여행도 가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졸업, 나의 졸업, 그 후론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멍한 소식! 그가 출가(出家)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삶의 무게가 그다지도 무거웠단 말인가. 그날 우리는 결국 해인사로 가지 못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리고 아무 버스에 올라 한참을 가다 발길이 닿는 곳에 내려 바 로 이 영화 <박하사탕>을 봤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무서운 내 미래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마음조차 무거웠고, 한 친구는 훌쩍 훌쩍 눈물까지 훔쳤다. 스님이 된 ○○○ 선배, 농부시인을 꿈꾸는 밀양 농사꾼 ○○○, 시험 준비하는 나와 내 후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
이 영화는 우리 인생을 담아 놓은 듯 더러워진 손, 더러워진 영혼, 울부짖는 우리 인생을 세월의 기차 속으로 실어 보내고 있었다.
◆ ‘인생은 아름다워!’ ‘정말?’ …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해야지.
- <인생은 아름다워>
설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고시원 한 칸 남짓한 내 방에서 책 냄새에 취해있었다. 밖에는 아직 매서운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웅웅거렸고 나는 그 바람을 맞기 위해 고시원 정문을 열어젖혔다. 그 때 내 앞으로 떨어지는 편지 한 통.
‘From 부산에서 ○○○, To 방정민 선생님!’ 얼른 편지를 주워 내 방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1년 몇 개월 만에 받아보는 어린 소녀의 편지…
별 내용은 없었지만 내 처지가 처량해서였을까, 난 마치 내가 어린 학생이라도 된 것 마냥 그녀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97년 5월에 한 교생실습, 내가 맡은 반 학생도 아니었는데, 어린 그녀는 나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더니 실습이 끝난 지금까지 이렇게 편지를 보내온다. 그 편지 속에서 그녀는 아직까지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듣기 민망한 호칭을 써 가며 자기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으며 또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있다.
중3을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니 더욱 힘들다며, 그러나 나름대로 재미있다며 말하는 어린 소녀, 그 소녀에게 나는 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라고 추천했다.
나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어우러짐, 슬픔과 기쁨과 아름다움의 어우러짐,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라고 마음을 담아 적어 보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 스스로에게 던진 삶의 위안이었다.
◆ 사랑은, 첫사랑은 왜 항상 어긋나기만 하는 걸까…
- <타이타닉>
1년 만에 그녀와 재회했다. 아니 헤어진 적이 없으니 재회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1년에 두세 번 정도 데이트 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그녀와 나의 만남! 나는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지 않았고 그녀 또한 말없이 나의 데이트에 응해주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넘지 않았다.
재대 후 복학하자마자 학교에서 본 후배인 그녀는 정말 선녀처럼 보였고 흡사 천사였다. 첫 눈에 내 심장을 멎게 한 그녀, 하지만 내 마음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더 이상 그녀에게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완벽했던 그녀, 태어나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 적 없고 싸워 본 적도 없으며 화낼 줄도 모르고 모든 이에게 다정다감한 그녀…
뭇 남성들에게 데이트 신청이라는 화살의 목표였던 그녀였기에 감히 내 여자로 만들 수 없었으며, 아니 만들기 싫었으며 그녀 또한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녀에게 졸업 후 지난 1년간의 힘들었던 경험을 들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재학 시절 꼭꼭 눌러놓았던 그녀에 대한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우리 영화 보러 갈까? 타이타닉!”
“그래요. 두 번이나 봤지만…”
그녀는 기꺼이 응했지만 두 번이나 봤다는 말에 나는 차마 그 영화를 보러갈 수 없었다. 서울 상경 전 날 저녁 나는 그녀를 잠시 불러냈다. 그녀의 집 앞 차안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준비한 타이타닉 그림을 선물로 줬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인 입맞춤을 했고, 그녀를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떠나보냈다.
◆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눌러온 악마가 살고 있다.
- <파리대왕>
대학 마지막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꿈을 안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나에게 예쁜 여학생 후배가 다가왔다. 그리고 과에서 마련한 ‘영화상영회’에 같이 가자며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나는 마지 못하는 척하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녀와 내가 영화를 상영하는 교실로 들어서려고 하자 우락부락한 남학생 후배와 예쁜 여학생이 문 앞에 서서 어울리지 않는 코맹맹이 소리로 “선배님! 선배님!”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와 지갑에서 꺼낸 파란 배추 잎 몇 장을 건네주고 나는 VIP석에 앉았다. 하지만 그렇게 반 강제로 본 영화 <파리대왕>은 돈 몇 만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나를 감동시켰다.
‘인간의 본질과 속성을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대학원의 부조리한 구조로 꼬여버린 나의 진로문제, 한 친구와의 삐걱거리는 우정, 교생실습 동안 알게 된 한 여자와의 짧았던 만남 속에 새겨진 상처…’
이런 저런 문제로 아파하고 있던 나에게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의미, 아니 나에 대한 의미를 조금씩 진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가끔은 우연하고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이처럼 새로운 각성을 주기도 하는가 보다.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닌가! 무엇이 인간의, 나의 악마적 본성을 들추어내는가! 인간이란 참…’
◆ 가족이란? 가족이 있음으로써 내 인생이 존재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 <와호장룡>
추석을 앞두고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기차 차창 사이로 쏟아지는 초가을의 햇살, 아직 더운 기가 남아 있는 따사로운 햇살이 갑자기 감사하게 느껴진다. 눈물이 고일 정도다.
고향집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났다. 형이 집을 사는 문제로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였고, 형이 돌아 간 후에도 아버지는 계속 분을 이기지 못하셨다. 집도 고향도 더 이상 그렇게 편친 않다. 하기야 나이 서른에 언제까지 가족들에게 의지하며 그들이 내 안식처이기만을 바라겠는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긴 하지만, 또 어느 순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짐이 되고 마는 존재… 가족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상경하는 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고 한참을 헤매다 영화 <와호장룡>을 봤다. 영화 후반부에서 양자경은 장쯔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너 자신에게 진실해라.’고
순간 멍, 하였다. 낯설지 않은 대사였다. 대학 졸업 즈음 유학과 고시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해준 말씀이었다. 뜨거운 뭔가가 가슴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극장을 나와 형 집으로 갔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집 문제로 걱정하며 형수님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나는 차마 울고 있는 형수님에게 위안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다만 조용히 이 영화 음반을 건넸다.
아무 것도 해 준 것 없는 형에게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별 불만 없이 잘 살아가는, 나보다 어린 형수님! 그리고 조카들! 그 모두가 나의 가족이었다.
상처를 상처로 생각지 않고 아픔을 아픔으로 남기지 않게 됐으면… 나는 그 순간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그때 내가 내민 음반은 그 꿈을 담은 작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