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1.
「어머님! 저 윤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국이와 함께 어머님 속 많이 태웠죠. 수업 빼 먹은 것은 물론이고 나쁜 애들과 어울리면서 사고도 많이 쳐서 어머님을 학교로 많이 불려오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참 후회막급입니다. 지금에서야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너무 늦지는 않았죠? ㅋ 지금은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제가 어머님을 처음으로 뵌 것은 국이를 따라 어머님 집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니 벌써 4년이 다 되어 가네요. 고등학교 3년 내내 어머님 집에서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저를 따듯하게 보살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마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는 어머님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고백하지만 전 어머님이 정말 좋습니다. 이전에는 어머님이 제 어머니였으면 하고 바랐지만 지금은 오히려 제 어머니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다른 것은 지금 생각 안 하렵니다. 제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요. 다음 주 휴가 나가면 제일 먼저 어머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어머님과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싶어요. 제 부탁 들어주실 거죠?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다음 주가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 어머님을 뼛속 깊이까지 사랑하는 윤-」
그녀는 아들 친구한테 온 편지를 찬찬히 훑어보고 있다. 귀엽다는 듯, 사랑스럽다는 듯, 아니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듯 복잡하며 야릇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녀는 이혼하고 아들을 혼자 키워냈다. 어릴 때의 트라우마인지 타고난 천성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을 무척 좋아했다. 무슨 보호소도 아닌데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다. 아들친구며 조카와 그 친구며 자신의 친구까지 말 그대로 오는 사람 안 막는다는 주의였다. ‘사람 사는 집인데 사람이 많아야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녀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는 지독히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항상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서 언젠간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는 여자다. 어떤 사람인들 극과 극의 성격이나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 않겠냐마는 그녀는 심했다. 양립할 수 없는 극과 극의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그래서 언제나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불행했다. 진짜 문제는 그 불행의 근원을 알면서도 자신이 끊임없이 그것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쩌면 이 불행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윤이 올 때가 됐다. 화장대에서 얼굴을 고치고 있는 그녀는 문득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내가 윤이를 만나면 안 되는 걸까…’ ‘아니, 그도 이제 성인인데 만나도 상관없겠지…’ 곧바로 긍정적인 생각을 해버리는 그녀, 화장을 마무리한다.
“어머니 더 예뻐지셨어요. 어머닐 누가 40대 중반이라 하겠어요.”
“그러니? 고마워. 그래, 군대 적응 잘 하고 있지? 몸은 괜찮아?”
“네, 어머니. 어머니가 걱정해주시고 잘 키워주신 덕분이에요. 저 지금 배고파요. 밥 사주 세요.”
“그래, 뭐 먹고 싶어?”
“어머니가 사주시는 밥이면 뭐든지 좋습니다.”
그녀는 뷔페에 그를 데리고 간다. 그는 그녀에게 팔짱을 슬쩍 낀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남겨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처음엔 그의 팔짱을 빼보지만 그가 재차 팔짱을 끼자 못 이기는 척 그냥 넘어간다. 그는 그녀의 이런 행동을 미리 예상했다는 듯 싱글벙글 얼굴엔 웃음꽃을 띠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둘은 마치 연인사이라도 된 듯 따스한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 그녀는 시간을 즐기고 있으며 젊음을 놀이하고 있다. 마치 지난 날 자신의 불행했던 2,30대를 보상하듯 그녀는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상황이 만들어지는 대로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놀 수 있을 때,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놀아보자는 생각을 어릴 땐 왜 못했는지 그녀는 현재를, 이 시간을 소중하게 놀이하고 있다. 그 이외의 것들은 의식 밖으로 밀어버렸다.
둘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 널찍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어머니, 우리 영화놀이 해요.”
“영화놀이? 그게 뭐야?”
“광식이 동생 광탠가, 광태 동생 광식인가… 그 영화 보셨죠? 어머니가 먼저 제 뺨을 때리세요.”
“그래. 이리 와. 근데 너… 나 책임 안 진다.”
그녀는 그의 뺨을 세차게 내리친다. 설마 이렇게 세게 때릴까 했던지 윤은 순간 멍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바로 들면서 그녀를 힘차게 끌어안는다. 곧바로 그녀의 입술을 훔친다. 농익은 그녀는 처음에 얼굴을 살짝 돌린다. 윤이 재차 입술을 훔치자 그녀는 그보다 더욱 힘차게 윤의 입술 속으로 그녀의 혀를 집어넣는다. 그녀의 혀는 치명적이었다. 윤의 혀를 찌르기도 하고 말기도 하면서 꿀꺽 꿀꺽 삼켰다. 동시에 그녀의 손은 빳빳하게 발기한 윤의 성기를 어루만졌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세차게 마치 무를 뽑아내듯 그의 성기를 뽑아냈다. ‘아, 아’ 윤도 일찍부터 여자 경험을 해보았지만 지금 그녀의 입술과 손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쾌락의 비명을 지르며 그의 놀이가 아닌 그녀의 놀이에 맥없이 당했다. 그의 입에서 바로 내려온 그녀의 입술과 혀는 윤의 성기를 향해 돌진하였고 그러자 윤은 황홀하면서 당황한 기색을 나타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세차게 그의 성기를 그녀의 입속에서 가지고 놀았고 윤은 끊임없이 ‘아, 아’ 표현할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그녀가 거행하는 놀이의 향락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그녀 또래의 남자에서 볼 수 없는 아들 뻘의 싱싱한 성기는 그녀에게 형언할 수 없는 젊음을 안겨주었다. 윤의 성기와 몸에 그녀는 미쳐버렸다.
그녀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며 그녀가 지닌 유혹의 향기를 윤의 온 몸에 뿌렸고 동시에 그녀의 혀는 뱀의 혀처럼 독을 뿜어내며 윤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윤의 젊음을 빨아마셨고 윤은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길수록 진짜 성인이 되는 것 같았다. 엄마의 몸을 빌려 그는 거듭 성인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진짜 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사랑은 이런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랑. 둘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다. 둘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국이한테는 이 일을 비밀로 할 것을 약속했다.
그녀의 일상은 바쁘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나가는 모임만 해도 십여 가지가 되고 그 외 하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람이 싫다며 혼자 있고 싶다던 그녀는 그녀의 말과는 반대로 사람 속에 파묻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고 있다. 지도교수가 소개해준 지금의 계약직 임시 교수직이 끝나면 아무도 없는 곳, 지중해로 떠날 것이라고 나한테 말하곤 했다. 사람이 없는 곳, 아무도 자기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던 그녀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사람 속에서 살고 있다. 모임을 줄이라는 나의 제안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 그녀, 그녀는 또 다른 관계를 굶주린 늑대마냥 쫓고 있다.
2.
“언제 오셨어요?”
“귀국하자마자 당신한테 연락하는 거야.”
“선생님도 참…”
“여전히 지중해는 아름답죠?”
“그럼. 검푸른 바다가 하얗게 변하다 빨갛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멍하니 넋을 놓게 되지.”
“히히, 그런 바다가 어디 있어요? 진짜 바다가 그렇게 변해요?”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의 바다라고나 할까… 하하하.”
“선생님 유머는 여전하시네요.”
“보고 싶었어. 지중해는 정말 아름다워서 한국에 오고 싶지 않지만 당신이 있는 한국이라 안 올 수가 없어.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 해도 당신만큼 아름답지는 않아.”
“저도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많이 기다렸어요.”
“여기 생활 언제 정리된다고 했지?”
“아마 1~2년만 기다리면 되실 거예요.”
“1,2년이라… 그 시간이 나에겐 무척이나 긴 시간이겠군. 시간이 허락하려나.”
그녀는 지중해에서 온 노신사를 만나고 있다. 한때 한국의 인기작가 반열에서 꽤나 활동했다던 김은 지금은 지중해에서 농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왜 한국을 완전히 떠났는지 작품활동은 왜 하지 않는지 알 길이 없다. 김이 정확히 누군지 그녀는 끝내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봐도 그와 관련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소설을 쓰고 있는 그녀는 등단하기 전 어떤 작가모임에서 우연히 김과 만나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녀를 본 김은 처음부터 그녀를 마음에 두었고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마침 그녀도 등단할 기회를 잡고 있던 때라 그의 연락이 반가웠다고 했다.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져서인지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때 마침 전남편과 이혼 말이 오고가던 때라 그를 만난 계기로 망설임 없이 이혼을 해버렸다.
그녀에겐 묘한 매력이 있다. 처음 보면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다. 예쁜 얼굴도 한 몫 하겠지만 몇 마디 말을 하다보면 친절하고 상냥한 그녀에게 빠져버린다. 상대에 무관심하고 도도한 ‘차도녀’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그녀는 천생 여자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며칠 아니 몇 달 만나보면 전형적인 한국의 이미지와는 또 상반된 면을 가지고 있어 놀라게 된다.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라면 전통적으로 한국의 남자에겐 인기가 있겠지만 재미가 없고 고리타분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생각에 뒤통수를 때린다.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말도 곧잘 할 뿐 아니라 톡톡 튀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개그 소재를 이용하여 말을 하기도 하고 유행어를 하나씩 썩어가며 말을 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몰아넣기도 한다. 거기다가 의외로 미니스커트와 깊게 파인 윗옷을 즐겨 입어 뭇 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한 마디로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일명 ‘베이글녀’였다.
이런 그녀에게 반하지 않을 남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잘 아는지 그녀는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학교에서 그녀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여성학을 가르치는 임시직 교수다. 가부장이데올로기를 가르치며 이 세상이 얼마나 남녀불평등한지, 어떻게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왔으며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성적으로 어떻게 억압당해왔는지를 가르친다. 여성도 홀로 서야 한다면서 남성으로부터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하며 의식을 깨야함을 역설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그녀는 철저히 현실에 만족하며 현실에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있다. 여성학을 가르치는 많은 교수들이 그녀와 별반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론은 이론일 뿐 현실일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성적 매력도 능력이라며 그녀의 장점인 성적 매력을 지중해 김에게 발휘하기 시작한다.
“먼저 샤워 할 텐가?”
“같이 해요 선생님.”
둘은 식사를 마치고 김이 묵고 있는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한 두 번이 아니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의 옷 벗는 소리가 서걱서걱 힘겹게 들린다. 70이 넘은 그에게 옷은 피부처럼 보인다. 아무리 새 옷을 잘 갖춰 입어도 그의 피부와 같이 옷은 생기를 잃고 주글주글 늙어보였다. 그녀를 맞이할 만큼 힘이 없었던 탓일 것이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옷을 벗어 한 곳에 쟁여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는 데도 소리가 달랐다.
70대 중반의 그의 몸은 형편없었다. 윤기 없고 출렁이는 살덩이는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지 피부는 누렇게 떴고 거기다가 저승꽃이 군데군데 피어 마치 저승길을 앞두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그의 살덩이와 피부를 사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자신의 선호가 없었다.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이 사람이면 이 사람 대로 저 사람이면 저 사람 대로 다 좋아했다. 상황에 맞게 그녀는 모든 남자들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먼저 남자들을 유혹했는지 남자들이 먼저 자신에게 작업걸었는지는 그녀에게 의미 없었다.
“내가 많이 늙어서 추하지?”
“아뇨. 전 선생님의 윤기 없고 주글주글한 살과 피부들이 좋아요. 그만큼 이 험난한 세월을 버티며 한 세상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는 뜻이잖아요. 살들은, 몸들은 인생의 시간을 저장하는 곳이잖아요. 이런 인생을 부정하면 되나요. 그래서 선생님 같은 살들이 좋아요. 나도 곧 늙을 텐데요 뭘.”
“허허. 늙은 살, 늙은 몸의 예찬론자군. 나보다 나은 문장가네 그려.”
그녀는 그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주었다. 그의 몸에 거품비누를 듬뿍 발라 살뜰히 문지르면서 물로 씻어주었다. 마치 고급 창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듯 그녀는 그를 정성껏 사랑해주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둘은 침대에 누웠다. 먼저 그녀가 그의 위에 올라타 그를 애무해주었다. 꿀이 듬뿍 담긴 그녀의 혀로 부석부석한 그의 살과 피부를 도려냈다. 그녀의 혀가 스쳐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남았다. 도려내진 그의 피부에 피가 돌고 살이 돌고 무엇보다 젊음이 돌았다. 젊음의 흔적! 그녀의 혀는 그를 젊음으로 돌려놓았다. 아무리 주름이 좋다지만 늙음은 젊음만 못한 법이다. 늙음은 그저 초라했다, 젊음 앞에. 젊음 앞에서 늙음은 그것이 간직한 소중한 세월마저 무상함을 인식하게 할 뿐이었다. 아무리 좋게 수식해도 늙음은 늙음이었다.
“그만 하지.”
“제가 다시 해 볼게요. 선생님. 아님, 선생님이 해보세요.”
“아니, 됐네. 참 면목이 없어. 쪽 팔리는구먼. 이게 나이야. 늙음이지. 세월을 어쩌겠나.”
“선생님. 페니스 크기나 발기만이 섹스는 아니잖아요. 전 좋았어요. 정말요.”
“그렇게 위로 안 해줘도 되네. 그만 나가지.”
발기가 되지 않은 지는 꽤 되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심부전증으로 몇 년 전부터 그는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와 호텔을 간 까닭은 뭘까? 늙음과 병든 몸을 확인하기 위해서…?
둘은 헤어졌다. 그는 볼일을 보고 다시 지중해로 돌아갈 것이고 그녀는 그녀의 일상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또 언제 연락하고 만날지 모른다. 둘의 관계는 그랬다. 아니, 그녀의 인간관계는 모두 이랬다.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되 누구로부터도 구속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왜 항상 한 사람과 진득하게 관계를 오래 유지 못하는지 그녀도 나도 몰랐다. 내가 내린 처방은 그저 상담만 하는 것뿐이었다. 책에 있는 이론과 처방은 말 그대로 이론과 처방일 뿐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아니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특별한 처방이 필요 없을 때가 많다. 그저 들어주고 이해해주면 환자 스스로 치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치유나 치료가 안 돼도 어쩔 수가 없지만 상당한 경우 실제로 치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니 치료가 필요한지 의문이 들 때도 많다. 그녀 경우도 그녀를 괜히 문제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프로이트 식으로 분석하면 어릴 때 성적 억압과 고착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고, 융의 식으로 말하면 그녀의 무의식원형을 찾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녀는 너무나도 멀쩡했고 성숙한 인간이었다. 문제는 그녀를 문제로 인식하는 우리들이며 우리 사회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없는 인간은 없으니까 상담은 계속 하기로 했다.
3.
“요즘은 어때요? 잠은 잘 주무십니까? 요즘도 둘째 아들하고 같이 자나요? 제 질문이 급하고 조금 이상하네요. 하하. 제가 너무 몰아세우죠? 그럼 먼저, 몸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몸은 괜찮다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저도 늙는지 자꾸 피곤하고 몸이 찌뿌듯해요.”
“잠은 요? 제가 처방해 준 수면제는 다 드셨어요?”
“이전보다 덜 먹지만 어제도 실은 수면제 먹고 잤어요.”
“왜요? 수면제 안 먹으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뭐… 특별한 일이라고 해야 할지… 요즘은 둘째 애 하고 자주 싸워요. 신경이 서로 조금 날카로워져 있네요.”
“무슨 일로 싸웠나요?”
“애랑 같은 침대 쓰는 건 선생님도 아시고… 한창 때라 그런지 자고 나면 발기가 되는데 숨기지도 않고 발기 된 페니스를 드러내고서 온 집을 돌아다니는 거 있죠.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막 화를 내잖아요.”
“말씀 잘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 말씀 나누고 싶었는데, 아이가 몇 살이라고 하셨죠?”
“19살이에요.”
“19살이면 부모랑 떨어져 자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요.”
“근데 저는 그런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돼요? 왜 7살 이후로는 반드시 부모랑 떨어져 자야 하는 거죠? 성적 발달이니 발달 심리니 하면서 책임감을 키우기 위해 부모와 침대를 분리해야 한다는 그런 빤한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죄송하지만 프로이트는 저도 조금 아는데 저는 프로이트 이론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아요.”
“하하. 님의 논문 저도 읽어봤습니다. 프로이트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지영 소설, 칼을 버린 여자>에 나타난 자아의 성적 발달 연구 - 프로이트의 ‘성숙한 자아’의 개념을 중심으로-」이었던가요?”
“아니, 그 논문을 읽어보셨어요? 별로 잘 쓴 논문도 아닌데…”
“제가 님에게 배워야겠던데요.”
“아니에요. 선생님도 별 말씀을…”
“그건 그렇고 왜 19살 된 아들과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죠? 어쩌다가 한 번씩이 아니라 매일 같이 잔다면서요?”
“그냥 같이 자고 싶으니까요? 아들도 저도.”
“그러면서 신체 접촉도 하고…”
“부모 자식 간인데 뭐 어때요?”
“외로워서 라고 생각은 안 하세요?”
“음, 그럴 수도 있고요.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거 아닌가요?”
“근데 아들과 왜 싸우는 거죠?”
“전 우아하고 싶은데 아들이 발기된 페니스를 만지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니까 너무 외설스럽잖아요.”
“침대에서 아들의 발기된 페니스를 만지는 건 외설스럽지 않고 집안에서 보는 건 외설스럽다, 이 말인가요?”
“네. 하하. 제 말이 조금 상식 밖이죠? 저도 남들의 의견을 알지만, 저는 상식 밖이라 생각 안 해요. 아, 그리고 발기된 아들 페니스를 애무하듯이 만지는 건 아니에요. 오해 마세요.”
……
“제가 섹스중독인가요?”
“……”
말이 없이 무엇인가 흘렀다. 흐른 것은 시간일 수도 있고 그녀와 나의 관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욕망일 수도 있다.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앞에는 너무 많다. 흐른 그 공간을 비어 둘 수가 없는 우리는 현대인들이다.
“앞에서 기다릴까요?”
“……”
시간이 또 조금 흘렀다. 나는 그녀와 모텔 침대에 있다. 그녀는 진료 시간 거의 끝날 무렵 와서 나와 상담을 하고 상담이 끝난 이후 가끔, 아주 가끔 나와 몸 대화를 나눈다.
“우리 상담은 침대 상담인가요?”
그녀가 멋쩍은 듯 피식 웃는다. 속살을 살짝 보여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 마냥 그녀는 보조개를 은근히 드러내며 나를 유혹하고 있다. 파멸의 유혹과 욕망의 정당한 발로 사이 나는 융을 따르기로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제가 자격이 없나봅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선생님. 지난주 같이 본 영화 <데인저러스 매소드>에도 나오지만 의사가 환자랑 자기도 하면서 상담하는 거죠… 융조차 환자랑 섹스를 하는 데요 뭘. 자기의 마음을 속이면 안 된다고 영화가 말하잖아요. 짧은 인생 욕망을 억누르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이 제일 와 닿아요.”
“그건 둘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사랑이 뭘까요? 선생님!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를 사랑하나요?”
“네.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어떻게요? 어떻게, 어느 정도, 왜 나를 사랑하죠?”
“간단해요. 선생님이 나를 원하니까요. 저를 좋아하니까요. 저는 저를 좋아해주는 남자가 좋아요.”
“좋아한다고 다 섹스를 하진 않잖아요.”
“섹스를 하면서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상대 남자랑 몸과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 정서적으로 마음을 나누면서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섹스중독인 거 확실히 맞죠?”
“글쎄요… 그런데 누군가, 그러니까 상대 남자가 더 다가가면 달아납니까?”
“글쎄요. 꼭 그렇지는 않은데 전 이 상태가 좋아요. 그리고 남자들도 말은 저랑 정식으로 사귀자, 결혼하자 하는데 막상 실천은 안 해요. 언젠가 어떤 남자가 날 좋다며 결혼하자고 해서 그래 결혼하자니까 결국 없던 일로 해 달라며 달아나더라고요.”
“아니, 님께서 먼저 달아났는지 물었습니다.”
“뭐, 제가 먼저 깊은 관계 원치 않는다고 말한 적이 더 많긴 해요.”
그녀는 어릴 적 특별한 트라우마가 없다. 그녀의 엄마가 엄격해서 그녀를 과잉보호한 것 외엔. 과잉보호가 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 자신도 어른이 되어 빨리 엄마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만 했을 뿐 엄마가 싫거나 엄마로 인해 고통 받은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 정도면 정상 범위의 여자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아니 정상이라서 문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정상이고 정상인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니까.
그녀는 무뇌녀 같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아무 생각 없어 모든 남자를 받아들이고 모든 남자와 관계를 맺는 여자. 그럼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 나는 무엇인가? 내 앞에서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그들과 섹스를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남자인가?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굳이 있다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비정상이라면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이때만은 나는 그녀의 담당의사가 아니고 그녀 또한 나의 환자가 아니라는 것, 이것은 확실하다.
“선생님 혀는 정말 섹시해요. 혀가 이렇게 섹시한 남자는 처음 봐요.”
“아아, 으윽!”
그녀의 혀는 내 혀를 찍어 돌리며 빨아먹는다. 그리고 내 입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내혼을 다 뺏어버린다. 어찌나 강렬한지 나는 으윽, 이라는 신음소리 외엔 그 어떤 소리도 낼 수가 없다. 드디어 나의 크고 강렬한 페니스는 그녀의 문을 열어젖힌다.
아! 아! 연신 교성만을 내뿜는 사이 우리의 관계는 최정상을 향해 달려간다.
“선생님하고의 섹스는 정말 황홀해요. 선생님 페니스가 지나가고 나서 흘린 당신의 정액이 내 안에서 마치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아요.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다른 남자한테도 이런 말을 합니까?”
“네? …”
성욕은 자아를 파괴하는 것인가? 자아를 발견하는 것인가? 이런 섹스는 인격을 무력화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인격을 창조하는 것일까? 살다보면 때론 용서받지 못할 일도 해야 하는 법이라고 융은 말했다. 그럼 나는, 나의 이 행위는 용서 받을 짓인가, 용서 받지 못할 짓인가? …
4.
“선생님! 저랑 결혼해요. 저는 선생님 보살펴드리면서 살고 싶어요. 결혼식이니 혼인신고니 이런 거 안 해도 되요. 다만 선생님 곁에서 같이 살 수 있게만 해주세요. 네?”
한 번 이혼의 경험을 한 그녀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 여자다. 현실의 결혼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면서 지중해 노신사에게는 결혼을 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노인에게. 아들 친구 또는 자식뻘 되는 남자와 섹스를 하기도 하는 그녀는 정작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남자는 늙고 힘없는 노인이라는 것이다. 늙어서 더 이상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 나이, 인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나이, 이런 나이에 맞게 쭈글쭈글한 주름과 늘어진 어깨를 가진 노인이 정말 좋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임시교수직이 끝나면 노인이 있는 지중해로 떠날 것이라 했다. 그때는 둘째 아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더 이상 한국에 미련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지중해로 훌훌 털고 떠날 것이라고 나에게 여러 번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러면서 자식뻘의 남자들과 가끔씩 섹스를 하는 그녀, 그녀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자네. 내가 불쌍한가? 아니면 젊음을 과시하는 건가? 내가 자네와 같이 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자네 때문이야. 늙음이 좋다는 자네의 말은 늙기 싫다는 항변으로 들려. 늙음이 끔찍하다는 반대급부의 말일 뿐이란 말이야. 나도 이렇게 늙은 내가 싫은데 어떻게 늙음이 좋을 수 있단 말인가. 늙음은 좋을 수 있는 기호의 문제가 아니야.”
“제 말은… 그럼 늙음은 뭔가요? 아무튼 전 선생님이 정말 좋아요. 존경하구요. 선생님과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정말이에요.”
“자네의 그 태도가 나는 마음에 안 들어. 인생을 헛살았구먼. 내가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나와 여생을 보내고 싶단 말인가. 인생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가? 난 자네의 그 젊음이 무섭고 자네의 이율배반적인 생각과 말이 두려워. 자네의 그 생각은 오만이야. 날 무시하는 것이란 말이야. 난 조용히 혼자 갈 것이네.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 혼자 쓸쓸하지만 조용히 갈 것이야. 그러고 싶어. 도와주게. 우리 관계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끔, 아주 가끔 만나는 걸로 하지. 내가 갈 때까지 말이야.”
지중해 노신사는 지금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심부전증과 심근경색, 심장질환, 고혈압 등 합병증으로 그는 병원으로부터 1~2년 정도 남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결혼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남자들로부터, 그것도 스펙트럼이 다양한 연령의 남자들에게서 사랑해 달라고, 결혼해 달라고 청혼을 받았지만 한사코 무시하거나 거절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뻘인 남자, 그것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여자다. 정신과 의사인 나도 이런 여자는 처음 경험한다. 그녀의 진심이 어디에 있든 분명한 것은 그녀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그녀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5.
“자네가 국이라는 아들인가보군. 군대 제대한 모양이군. 근데 왜 보자고 했나?”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를 사랑했는지, 어떻게 할 건인지 이런 말 하지 않겠습니다. 저에 대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무서움 없이 자랐습니다. 편모가정에서 자라서 그런지 주먹부터, 행동부터 하고 봅니다.”
“미안하게 됐네. 근데 엄만 지금 어디 있나?”
“그건 알 거 없고 그녀가 임신한 것은 알고 있죠?”
“어. 얼마 전 들었네. 내가 엄마를 만나 해결할 것이야. 그러니까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먼저 알아야겠고 …”
“뭐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난 그 따위에는 관심 없고. 어떻게 할 겁니까? 해결은 무슨… 필요 없고… 윤을 처리해주십시오.”
“윤을 처리해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당신은 의사니까 윤 같은 놈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거 아닙니까?”
“아,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뭐요? 난 주먹이 먼저 앞선다고 했습니다. 협조 안 하시면 서로 곤란해집니다. 윤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거의 안 만나니까 처리하기 쉬울 겁니다. 단순히 정신병원에 보내는 걸로 끝내지 말고 주사 투입해서 정신이상자로 만드십시오. 이건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자 경고입니다. 내 말대로 안 하면 당신 인생 여기서 끝날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듭니다.”
“아 알았네.”
그녀의 아들 국은 그녀를 엄마로 부르지 않고 그녀라고 말했다. 제대한 그는 그녀의 사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다. 무조건 자신의 친구 윤을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처음엔 국이 엄마와 관계를 한 윤을 용서할 수 없어, 분노에 차 그렇게 해달라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국이 윤을 처리해달라고 한 말의 뜻을 정확히 안 건 이 글을 쓰기 직전이었다.
나는 국의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무서워서라기보다 내 인생이 위태해졌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윤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기는 의외로 쉬웠다. 나는 의사라는 사명감과 윤리를 완전히 버렸다. 이미 그녀와 관계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윤을 국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윤리고 뭐고 내가 먼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녀의 아들 국이 내 고민을 덜어줬을 뿐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고 행동을 취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녀를 진정 사랑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도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내가 이상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녀가 사라졌다. 노신사를 따라 정말 지중해로 갔는지 그녀는 임시직교수기간이 끝나자마자 주변을 정리하고 떠났다. 둘째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치는 즈음 그녀의 업무도 끝이 났고, - 아니 끝을 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 전남편에게 둘째아들을 보내고 나서 자신은 지중해노신사 김과 살기 위해 여기를 떠났다. 빨리 늙기 위해 지중해로 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녀에게 지중해는 희망과 황홀함, 아름다움과 젊음이 아니라 희망없음과 넉넉함, 수용과 마지막이었다. 아가씨같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중년의 여자지만 그녀는 늙고 싶다고 했다. 빨리 늙어 아무 희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그냥 해보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헛소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마사지 샵과 네일아트 샵을 일주일에 한번은 꼭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양가적인 그녀에 대해 일종의 격리현상을 보이는 퇴행이나 분리, 반동형성, 아니면 경계선장애라고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있겠지만 이런 분석이 온전히 그녀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국과 나는 어렵지 않게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간 곳은 지중해가 아니라 제주도였다. 노신사 김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치료와 요양 중이었는데, 그를 간호하고 그와 같이 살고 싶어 정말 그녀는 제주도에 갔던 것이다. 병원 뜰에서 그녀를 발견하였다. 멀찍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직 배는 불러오지 않았고 휠체어에 탄 김을 부축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어… 어떻게 … 국이랑 선생님이 같이 오셨네요?”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국은 그녀에게 엄마라는 말도 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김도 국이도 나도 딱히 무슨 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김이었다.
“나는 이 햇빛과 샤워를 좀 더 해야겠네. 자네는 여기서 이 멋진 남성들과 이야기를 하게. 그리고 나에게 오지 않아도 돼.”
김은 혼자 휠체어를 밀며 볕 좋은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러자 국이 말을 꺼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대신 휠체어 밀어드리죠.”
기억은 여기서 끊겼다. 장면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했다. 플래시백으로 돌려보아야 그때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김은 죽었다. 그때 국은 끌던 휠체어를 아무도 없는 내리막길에서 놓아버렸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아니었다. 휠체어에서 떨어져 약간 다쳤을 뿐인데 야윌 대로 야윈 김은 그 길로 회복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죽어가던 김이 그냥 마음을 놓고 죽었던 게 아닐까 싶다. 모두를 위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합리화해버렸다. 그리고 국이와 나는 합심하여 그녀의 배속에 든 아이를 없앴다. 그녀를 마취시켜 그녀가 잠자는 사이 아이를 없애버린 것이다. 비록 내가 정신과 의사지만 의외로 일은 쉬웠다. 그러나 그 장면은 가히 엽기적이고 막장의 최고조였다.
상상해 보라. 그녀의 아들과 의사인 내가 그녀를 마취시켜 눕히고 그녀의 자궁을 벌려 ‘테녀큘럽’이라는 집게를 그녀의 자궁에 집어넣어 태아를 죽인 것을. 태아를 죽인 후 ‘큐렛’이라는 기구로 자궁경부 주위를 정성껏 긁어주었다. 이로써 의식을 마쳤다. 그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녀의 아들과 나는 -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이 태아가 그녀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확실한 - 한 생명을 죽였다. 태아를 죽인 죄책감은 고사하고 이 부도덕하고 민망한 장면을 빨리 잊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번 잘못 들어선 길은 거침없고 끝없이 뻗어나갔다.
6.
그녀는 의외로 제정신이었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랬다. 그녀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는데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강제로 수술대에 놓인 것도, 자신의 배속에 있던 아이가 없어진 것에 대해서도, 지중해 김이 죽은 것에 대해서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뇌녀라서 그럴까 그녀는 너무나 차분했고 정상적이었다.
국은 어머니인 그녀를 여자 친구 다루듯 사랑스레 돌보았다. 힘없고 축 처진 그녀를 씻겨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몇 년 동안 하지 못한 둘만의 의식도 치렀다. 욕실 욕조에 그녀가 좋아하는 아로마 향 거품을 듬뿍 풀어 그녀와 같이 샤워를 했다. 어릴 적 많이 했었는데 군대를 포함해 지난 몇 년간 하지 못했던 의식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가슴과 배와 허벅지와 다리와 그리고 등을 오가며 그녀의 전신을 문질렀다. 그리고 쓰다듬었다. 아주 부드럽게. 어릴 적,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그에게 해주었던 그대로 그는 그녀를 어루만져주었다. 빳빳하게 발기된 그의 성기에 묻은 거품을 훅 불더니 그녀는 말했다.
“우리 국이 이제 완전 어른이구나.”
아버지가 없는 지금 국에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없다. 엄마와 자신을 때리던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다른 여자를 만나 그 여자와 새 가정을 꾸렸다. 이제 마음껏 상상계의 제약에서 벗어나 현실계에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 국은 이제 자신이 오이디푸스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국은 생각보다 치밀하고 교활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녀를 마취시켜 강제로 낙태수술한 장면을 몰래 동영상으로 찍어두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노드라마처럼 나만 등장하는 장면의 동영상을. 이 동영상을 미끼로 국은 나를 협박했다. 처음엔 집을 옮기는데 돈이 모자라니 돈을 달라고 했고, 즐겨 타던 오토바이가 지겨워졌다고 승용차를 사 달라고 했다.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니 결국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과 이 도시를 떠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것이다.
며칠 곰곰이 생각한 후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를 죽이기로 했다. 이 이외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저지른 잘못은 낙인이 되어 나를 평생 괴롭힐 것이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그를 죽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일은 정말 쉬었다.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마음먹고 나니 일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국을 만났다.
“자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아.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있고 후임을 정하여 인수인계해야하는데 시일이 꽤 걸려. 마무리 되는 대로 자네 말대로 여길 정리하고 떠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게. 아, 이건 일종의 향수인데 엄마에게 좋은 것이니 갖다드리게.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 거야.”
나는 국이 앞에서 향수 겉봉을 뜯어 열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달했다.
“어때? 냄새 좋지?”
“그러네요. 고맙긴 합니다만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겠네요. 두 번 다시 안 봤으면 합니다. 하루 빨리 정리하고 여길 뜨세요.”
“알았네.”
향수라고 말하면서 국에게 건넨 것은 사실 독극물이었다. 콜로로포름과 샌드맨즈샌드라는 독극물을 섞어 만든 휘발성 독극물이었다. 내용물도 완전한 휘발성인데다 겉표지도 특수 재질로 만들어 공중에 날아가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완전 범죄가 가능했다. 한 시간 만에 다 날아가게 만들어 그것을 차 안에 두고 운전하면 몇 십분 안에 죽고 마는 강력 독극물이었다. 내 예상대로 국은 그날 운전 중 죽었다. 그리고 며칠 수사관들이 오고 간 후 아무 일 없이 마무리 되었다.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 일이. 그녀가 지중해로 떠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진짜 지중해로 떠났다. 혼자서 떠났다. 남색도 파란색도 아닌 그만의 색으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아름다운 바다와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하고 평안한 풍경은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가 왜 이토록 지중해로 오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천혜의 풍경 속에선 혼자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혼자라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다. 아니 혼자라야 더 아름다울 것 같은 곳이다. 그것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안락함 때문이 아니라 ‘홀로’여야 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혼자여야만이 자연의 위대한 뜻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아무도 없는 지중해 어느 바다에 풍덩 몸을 맡겼다. 인어처럼 이리저리 바다 속을 돌아다녔다. 물고기처럼 바다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바다 속이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지 몰랐다. 엄마의 뱃속처럼 정말 편안했다. 나체의 그녀가 지중해 바다 속을 헤엄칠 때의 편안함,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편안함에서 오는 안락함, 그리고 그 순수함! 이런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끔찍한 인간 세계의 일이 이 바다 속에선 떠오르지 않았다. 일부로라도 떠올리지 않았다. 억지로 모든 기억을 지워버렸다. 이 소설을 끝으로.
지중해로 떠나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만나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내가 지은 죄 때문이라도 그녀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지중해로 떠난다며 그 동안의 일을 소설로 썼는데 한 번 읽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보고 태우든지 발표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이상한 협박 같기도 하고, 무슨 의도인지 그 의도를 알기 위해 일단 그녀를 만났다.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우리는 앉았다. 햇빛이 창가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소설을 나에게 내밀었다. 한번 읽어보라고 해서 읽어보았다. 문장이나 이야기가 너무 리얼해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놀란 것은 소설 마지막 부분이었다. 이 소설 마지막엔 내가 죽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두려움과 그 반대감정인 사악함이 교차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아니, 이건… 이 부분은…”
“왜요? 선생님! 죽기 싫으세요? 소설일 뿐인데요 뭐.”
그 특유의 무표정하고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그녀는 재빨리 백에서 꺼낸 어떤 액체의 물질을 나의 얼굴에 뿌렸다. 악, 내가 소리 지르며 고통스러워하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더욱 많은 액체를 내 온 몸에 뿌려댔다. 지구상에서 가장 독한 산화독극물을 나에게 뿌렸던 것이다. 햇빛과 만나면 인체자연발화되어 사람도 타 죽고 마는 독극물이었다. 창가로 들어온 햇빛이 기다렸다는 듯 내 온 몸을 불태웠다. 나는 태어나서 그토록 크게 소리 질러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고통도 잠시 내 몸은 타서 곧 재로 변하였다. 타다 남은 육질과 뼈만 남았다. 이것까지 그녀는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독극물을 조금 남은 내 육질과 뼈에 마저 부었다. 지글지글 고약한 냄새를 내며 나는 완전 연소되었다. 이 세상의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그 흔적조차 없이 나는 타서 무(無)가 되었다.
‘잘 가세요. 선생님! 하늘, 아니면 바다에서 우리 만나요. 그 순수했던 태초의 모습으로.’
그녀가 바다 속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이후 그녀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