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왕이 된 남자
♣ 나의 40대를 같이 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의 1인 2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로 이병헌도 이제 정말 배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비슷한 소재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영화에서 주지훈이 왕과 거지 역할을 했는데 이 영화와도 비교가 된다. 두 영화 모두 제대로 된 왕, 즉 백성을 귀히 여기고 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왕다운 왕(정치인)이 없다는 현실 비판을 풍자적으로 그린 영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제는 익숙하고 소재는 신선하다. 익숙한 주제를 풀어내는 방법도 꽤 괜찮다. 또한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다. 군데군데 코믹스런 장면도 억지스럽지 않고 극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문제는 사건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굵직한 사건이 없다. 사건이 미약하다보니 광해와 대립하는 군신들의 역할이 미비하고 광해 편의 인물(중전 역의 한효주, 도부장 역의 김인권 등)도 살지 않는다. 광해군과 하선 역의 이병헌이 영화 러닝타임 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 이병헌의 원맨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영화다.
역모의 기운이 끊이지 않자 광해군(이병헌)은 도승지 허균(류승룡)에게 위협에 노출시킬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을 찾으라 명한다. 허균은 기생집에서 광대놀이로 왕과 대신들을 비판하며 노는 하선(이병헌)을 찾는다. 그러던 중 광해가 갑자기 쓰러지고 하선은 광해를 대신하게 된다. 광해가 쓰러진 보름 동안 하선은 꼭두각시 왕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목소리로 진짜 왕이 되고자 한다. 이 와중에 반대파에게 신분을 들키게 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영화 전반부는 왕이 된 하선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그러더니 왕이 된 하선이 궁에서 왕 노릇하는 에피소드들이 또 길게 이어진다. 다행한 것은 이 에피소드들이 그다지 지겹지 않고 삼천포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해와 대립하는 반대파들이 일으키는 사건이 없어 영화는 조금 싱겁다. 반대파들의 사건이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는다. 즉 굵직한 사건이 영화에는 없다. 뒤집어 보면 영화의 초점이 광해와 반대파와의 대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궁에서의 큰 사건을 처음부터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영화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제대로 된 왕(대통령, 정치인)을 바란다는 주제, 이 하나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다른 것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이 어떻게 작용할지 의문이다. 큰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겹지 않게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끌고 가는 것을 보면 감독의 역량이 괜찮다 싶다.
백성(서민, 민중) 개개인의 인권과 목숨을 중히 여기는 왕, 사대주의보다 내 나라 백성이 훨씬 소중하다는 왕, 우리는 그런 왕을 꿈꾼다. 광해를 대신하는 하선은 자신이 왕의 자리에 있는 동안 백성의 아픔과 노곤함을 해결하려 한다. 불법적이고 가혹한 세금에 고통을 당하는 백성과 억울하게 빚을 진 백성을 구원하고, 사대주의(현실이라는 명목 아래)에 젖어 제 나라 백성을 사지(명나라 전쟁에 2만 군사를 파견하려함)로 몰려는 대신들을 향해 하선은 소리 높여 꾸짖는다. 이는 현실 정치의 풍자다. 대기업은 지난 5년 사이 몇 배나 더 자기 배를 불렸는데 서민은 더욱 가난해지는(그래서 빚을 지게 되고 사채를 쓰게 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회)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국가 차원의 성장도 못하고 서민은 죽음으로 내몰면서 오로지 재벌들 배만 불린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제 국민을 하늘처럼 받드는 대통령(정치인)은 언제 나타날까? 자신들의 배보다, 재벌들의 배보다 서민들의 배에 더 관심을 가지며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정치(실천)하는 대통령은 꿈으로만 꿀 수 있는 건지… 이런 하선의 모습에 도승지도 도부장도, 중전도 그가 거짓 왕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를 인정한다. 도부장과 사월이는 그를 위해 목숨도 바친다. 급기야 영화 끝에서 도승지 허균은 도망가는 하선에게 절을 한다. 우리의 진정한 왕은 당신이라며.
이병헌 외의 인물들(도승지 제외), 특히 반대 인물들이 살아나지 않았고 큰 사건들이 거의 없어 조금은 아쉽지만 조그마한 에피소들 들의 연속으로 소소한 재미와 주제를 잘 전달한 영화다. 중간 중간 코믹한 부분도 맛깔스럽다. 이병헌의 1인 2역도 좋다. 주제 전달을 큰 사건으로 엮어갔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뻔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이런 주제를 지나치게 코믹으로 전달해 실패한 영화다. 이 영화처럼 코믹은 적절하게 사용해야 영화도 살리고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