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by 방정민

악마를 보았다


삼십 년 전 어렸을 때 난 무서웠다

이십 년 전 청년이었을 때 난 외면했다

십 년 전 중년이었을 때 난 설마 했다

현재 중년의 한 가운데서야 난 깨달았다

내가 악마라는 사실을

악마가 태어났다 그리고 버려졌다 악마라는 사실이 숨겨진 채

태생적으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계속 잃어갔다

웃음을 잃었고 울음을 잃었고 분노를 잃었고 체념을 잃었다

더 잃을 것이 없었던 나는

스스로 텅 빈 백지가 되었다

그제야 멀리했던 사람들이 나를 보아주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눈을 삐뚤게 그리고는 천사의 눈이라 말했고

어떤 이는 코를 삐뚤게 그리고는 천사의 코라 말했고

어떤 이는 입을 삐뚤게 그리고는 천사의 입이라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얼굴에 흉측하게 피를 묻히고는 천사의 얼굴이라 찬양했다

다시 태어난 나는 그렇게 뒤틀린 천사가 되었다

악마의 얼굴을 한 천사,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혼돈의 시간이 존재를 삼켰다

벗어날 수 없는 이 비겁한 악의 굴레

나는 이제 진짜 악마가 되기로 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을 것이다

웃음을 찾고 울음을 찾고 분노를 찾고 체념을 다시 찾을 것이다

거울 속에서 악마를 보았다

악마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 시 후기: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우리. 언제나 타인의 입과 귀를 무서워하면서 타인에 의해 자신을 규정당하고 있는 우리. 언제쯤 이 악마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찾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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