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영화 제목은 ‘목격자’이지만 ‘구경꾼’, 내지 ‘방관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구경꾼으로서 우리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비판하는 영화는 꽤 있었다. 적극적인 참여자, 협력자로서가 아니라 구경꾼으로서 내 일이 아니면 방관하고 마는 이기적인 존재 이것 자체가 어쩌면 최고의 공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도 한국인 제 1의 주거지인 아파트를 대상으로 방관자효과를 실험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를 보여주며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상훈(이성민)은 이제 겨우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하였다. 축하하는 회사 동료들과 회식 하고 집에 들어가 거실에서 쉬고 있는데, 살려달라는 한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아파트 앞, 마당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살인범이 상훈집을 올려보자 겁이 나 얼른 거실의 불을 끈다. 다음날 형사(김상호)가 와서 수사하지만 무섭다고,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그 누구도 협조하지 않는다. 상훈을 비롯한 목격자 세 명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가운데 살인범(곽시양)은 목격자를 차례로 죽인다. 자신의 가족이 이제 위험하자 상훈은 죽음을 무릅쓰고 범인과 대결을 시작한다.
영화는 범죄영화이자 공포영화의 성격도 있는데, 무섭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웃긴다. 여러 장면에서 웃는 관객도 꽤 있었다. 공포의 성격이 있는 범죄ㆍ스릴러 영화지만 아주 무섭지도 않고 아주 공포스럽지도 않은 이유가 뭘까? 바로 감독이 전형적인 범죄스릴러 영화로 만들지 않아서 그렇다. ‘당신만 용기 내면 돼!’ ‘당신만 결정하면 돼!’ 라고 형사 김상호가 부르짖듯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구경꾼이 아니었는가?’ ‘당신은 방관자가 아닌가?’라고. 그렇다보니 다분히 비판적이고, 실험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어떤 실험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영화다. 보고 부끄러워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남의 일이라고 타인의 일에, 타인의 고통에 나 몰라라하는 우리의 방관자적인 이기심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아주 끔찍하고 무섭기보다 웃픈 장면이 많았다. 씁쓸하고 부끄러운 장면… 그렇다보니 조금은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는 장면도 더러 있고 밀도가 떨어지는 장면도 있었다. 가령, 형사는 여전히 무능하고 범인은 아무 이유도 없이 수십 명을 죽이는 사이코패스고, 고발하려고 하는 여성과 그 남편 또한 너무나 무기력하고, 주인공 이성민은 결국 산사태를 넘어서는 초능력자가 되어 범인과 대결하여 이기는 장면 등등.
요즘 아파트 엘리베이트를 타려고 할 때 여성이 있으면 먼저 가라고 하고 타지 않는다.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아니면 괜히 내가 움츠려든다. 쓸데없이 범인 취급당하고 쉽지 않아서이다. 요즘 남자는 존재 자체가 범죄자인 시대다. 참, 어찌 하여 이런 시대가 되었는가! 누구의 잘못인지, 어떻게 해야 이런 불신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현실이 정말 웃픈 일이다. 이 이기적인 시대 공동체의 복원은 실현가능한가?
감독은 ‘그래도 구경꾼ㆍ방관자가 될래?’라고 묻고 있지만, 솔직히 참여자, 고발자가 되기엔 이 현실이 녹녹치 않다. 그저 한탄하고 부끄러워할 수 있을 뿐인 것을…
영화 마지막에 이성민은 범죄가 일어난 자리에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지만 여전히 아파트 주민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이성민의 허탈한 얼굴이란… 정말 끔찍한 장면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 진짜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