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민란의 시대>
국가(나라)의 주인은 누구일까? 고위관료(정치인)나 임금(대통령)일까, 아니면 백성(국민)일까… 이 물음은 국가가 생긴 이래 줄곧 이어져 온 의구심이자 민초들의 불만사항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백성은 억압받고 고통 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하기 힘든데 관료들이나 임금은 민초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호위호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청산하고 뒤집을 수 있을까? 국가의 진정한 주인인 백성이 대접받고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사회가 오기는 올까… 민주주의가 도래한지 300년이 지났지만(우리나라는 70년) 여전히 국민은 고통당하며 미래 없이 힘들게 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 반면 정치인들(또는 재벌들)이나 대통령은 항상 국민들 위에 군림하며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세월호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사법체계가 무너진다며 세월호참사의 유가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법을 제정하려하지 않는다. 세월호대책위한테 수사권과 공소권을 주면 정말 나라가 무너질까? 아닐 것이다. 가진 자들이 자기 권력을 내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 양반관료들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 후속지원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도 포기하면서 재벌들 배만 불려 나라 전체의 성장만 이룩하면 좋은 거란다. 서민들은 하루 하루 연명하기 힘들고 소비할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는 것인데 소비진작을 위한답시고 부동산 규제나 풀어 돈 많은 사람들 배를 채우려 하고 있다. 참 바뀌는 게 없는 것이 사회고 역사인 것 같다. 확 세상, 뒤집어 버리고 싶다. 언제쯤 개벽이 올까… 그래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라고 신채호 선생은 말한 것이다.
영화 <군도>는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독은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적절한 코미디와 80년대식 해설(내레이션이라는 표현보다 해설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과 만화책에서 써먹던 장을 나눠 각각 제목을 붙였다. 한 마디로 감독이 주장한대로 액션활극이라는 단순한 액션오락물로 영화를 만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구성이 더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오게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작품성을 떨어뜨려 관객을 모으는데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중 가장 민란이 빈번했던 철종 때 지리산 의적단 추설이 있다. 정신적 지주 땡추(이경영), 실질적 대장 대호(이성민), 행동대장 천보(마동석), 전략가 태기(조진웅) 등이 활약을 펼친다. 백정 돌무치(하정우)는 전라도 탐관오리 조윤(강동원)의 계략에 휘말려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살아난 돌무치는 이 사건으로 추설에 들어가 도치가 되고 가족의 복수를 다짐한다. 의적단 추설은 전라도 지역의 탐관오리들을 하나씩 제거하던 중 최고의 탐관오리인 조윤을 제거하기로 한다. 그러나 조윤의 검술솜씨가 뛰어나고 그의 세력이 만만찮아 쉽지 않다. 조직의 운명을 건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영화는 계속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라고 외친다. 뭉쳐서 탐관오리(정치인)와 싸우자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이 되는 길이 서로 뭉쳐 위정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만큼 당한 고통이 크고 울분이 심하다는 것이다. 백성들끼리 한 마음이 되어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다 같이 잘 사는 대동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같은 외침이 클수록 아이러니하게 현실은 그 외침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더욱 뭉치자고 하는데 정작 백성은, 국민은 다 같이 뭉치지 않는다. 배신자가 있게 마련이고 이기적 마음으로 흩어지는 백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동사회는 영원히 이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심도 있는 주제를 감독은 코믹하게, 다소 만화적으로, 단순한 액션물로 영화를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전작을 보면 그렇지 않는데 말이다. 영화의 메시지와 구조(구도)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없이 가볍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후한 점수를 받지는 못할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은 비슷한, 또는 같은 그릇에 담아야 어울린다. 그래야 더 빛난다. 주제를 담은 그릇(틀)에 의문이 드는 영화다.
더러운 땅에 하얀 연꽃이 피어나는 것은 신의 뜻인가, 연꽃의 의지인가… 영화는 조윤 강동원의 입을 빌려 말한다. 자신이 탐관오리가 된 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운명인지를 묻고 있으나 실상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은 힘을 함께 모으는 백성의 의지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라질 것 같으나 사라지지 않고 무너질 것 같으나 무너지지 않고 꺾어질 것 같으나 꺾이지 않는 풀처럼 이 나라의 민초들은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모두가 다 같이 잘 사는 대동사회를 이룩할 때까지 달릴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결국 조윤을 죽이는 사람으로 주인공인 하정우가 아닌 엑스트라에 가까운 군중(김성균)을 택했다. 그리고 서부극의 마지막처럼 조윤과의 투쟁에서 살아남은 민초(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인 셈)들이 말을 달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다.
강동원의 서늘하면서 악의적인 슬픈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다. 또한 액션이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고, 무엇보다 연기자들의 연기호흡이 빛나는 영화다.
‘나는 백성인가, 도적인가! 우리는 도적인가, 백성인가!’ 이런 질문을 끝으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