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by 방정민

<남영동 1985>


용서… 그것은 진정 가능한가? 화해는 또 진정 가능한가?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사회 대 사회라면 어떨까? 요즘 시민들은, 대학생들은 자기 살기 바빠, 또는 개인주의에 취해 우리 사회 최현대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민들의, 대학생들만의 문제이겠냐 마는 그래도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사회가 암흑 천치였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자! 그 암흑을 없애려 조그만 힘을, 아니 자신들의 목숨을 바친 민주세력들의 희생을 잊지는 말자,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 영화는 암흑 같았던 7,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고 김근태의원이 실제 고문을 당한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던진다. 그것이 가능한지…


이 영화의 줄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거의 실화라서가 아니라 영화는 고문 현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름만 살짝 바꿔 나온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유명했던 김종태(박원상)는 민청년에서 나와 잠시 쉬고 있는 사이 고문장으로 악명이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는다. 무슨 생각으로 쉬고 있는지 그 생각마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짜 맞추려 한다. 즉 있지도 않았던 온갖 빨갱이 혐의(월북, 간첩과 접선, 폭력기도 등등)를 씌워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진술을 받아내려 한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자 고문기술자로 악명 떨쳤던 이두한(이경영)이 투입된다. 물고문, 고춧가루 고문, 전기고문 등 악랄한 온갖 고문을 퍼붓는다. 이두한은 “세상이 바뀌면 당신이 나를 잡아 고문하라”며 김종태를 비웃는다. 하늘이 들었는지 세상은,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이뤄냈고 세월이 지나 김종태는 장관이 되고 이두한은 감방에 갇힌다. 김종태가 면화간다. 이두한은 김종태에게 무릎 꿇고 빌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과인지 의문이다. 진정성이 없는 사과에 진정한 용서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는 두 시간 내내 고문실 밖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다. 영화 막바지에서는 관객들 눈물까지 흘리게 만든다. 인간 김근태가 고문에 어쩔 수 없어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동지(혐의 없는 분들)들 이름을 대면서 괴로워하자 관객도 한숨을 쉬고 눈물까지 흘린다. 인간에게 저렇게 심한 고문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들도 인간인데…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온다. 감독은 전작(부러진 화살)에 비해 영화적 재미를 없앴다. 정직하게 승부했다. 상업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진정성에 승부를 걸었다. 불과 20여 년 전 이 땅에 인간 이하의 악마 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아는지,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로운 권리(인권)가 누구의 희생으로 이룩된 것인지 아느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복역 후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 소식이 알려지자 해임되고 종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이근안이 정말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을까? 그들도 시대의 희생자일까? 무슨 말을 해도 이근안 같은 사람은 시대의 희생자도 아니고 진정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았다. 진정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면 숨을 일이 아니라 평생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봉사활동을 하든지, 자신이 고문한 민주화사람들의 어려움을 돕든지, 불우한 사람들 도우든지 등등… 숨거나 목사를 할 일이 아니다.

역사는, 사회는 아이러니하다. 유신의 딸인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이 되려고 하니 말이다. 박근혜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잘못이 무엇인지 진정 안다면 대통령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봉사활동을 하든지, 사회운동을 하든지, 굳이 정치를 하려면 뒤에서 모범적 정치원로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아버지 박정희와 빼닮은 고집, 불통, 명령(일방)의 이미지인 그녀가 ‘아버지로 인해 상처 받은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로 그때의 잘못이 용서가 된다면 엄청난 고문으로 죽은 사람은,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의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분들이 진정 박정희와 이근안 같은 사람을 용서하려면 먼저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말 한 마디나 사과로 때울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 화해의 21세기로 나아가려면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자기반성(실천)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과와 용서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유신의 딸이 또 21세기 대통령이 되려고 하니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화는 위와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고문 현장의 생생함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고 김근태의원의 고통이 아직 내 몸을 떠나지 않는다. 진중한 울림이 있는 감동드라마다. 이런 영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공기의 소중함을 깊이 되새겼으면 한다. 고문 받은 고 김근태 역의 박원상과 고문기술자 이근안 역을 맡은 이경영의 연기가 이런 의미를 더욱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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