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신청하라고 놓아둔 평범한 메모지에, 판촉물 볼펜이었다. 조명은 언제나처럼 어두웠고, 음악은 언제나처럼 공간을 낮게 채우고 있었다. 이미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줬고 직전 술자리에서 여러 병의 술병을 비운 터라, 친구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서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친구는 선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봤다.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을.
그건 다정함이라 불러도 될 표정이었고, 아련함이라고 말해도 될 감정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인 동시에, 애써 입 밖에 내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펜 끝을 통해 그려내는 건 그의 절제이기도 했고, 그가 가진 진심의 탈루이기도 했다.
크로키가 완성될 즈음, 술자리의 나머지 사람들이 잠깐 관심을 뒀으나, 친구는 '그냥 뭐, 아무거나 그렸어'라는 말로 넘겼다. 관심은 이내 사라지고 그는 몇 개의 선을 더하고 마무리했다. 볼펜을 놓은 그는 다시 무료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