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매운맛

내가 맵찔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매웠다. 아주 많이.

by LYMY

이시야마 하지메作 진격의 거인은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지만 '우익'이라는 초대형 폭탄을 떨어트리며 증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입담에 오를 일이 거의 없어졌다. 작가가 우익이냐, 아니냐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이 부분을 타협하는 건 죽는 것보다 어렵기에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는건 꽤 떨떠름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가 우익이라는 사실(사실이던 아니던 논란 만으로도 몹시 불쾌하므로 험한욕을 해본다)을 잠시 내려놓고 진격의 거인만 본다면 분명 이 작품이 대중의 시선을 끌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그들은 미지의 생명체였다. 혐오스럽고, 극복이 불가능 했다. 초반부 유명한 독백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그들에게 지배 당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만 봐도 단편적이다. 인류가 개미떼처럼 한없이 티끌같아 보이는 데다가 거인에게 아등바등 하는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초반부에 몹시 힘 준듯한 캐릭터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데다가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에 '안돼!!'를 연발하면서도 계속 보게되는 스토리가 몹시 인상적. 아포칼립스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암울한 세계관이 이 열받는 스토리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극대화 시킨다. 마음 한 구석에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격의 거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디스토피아 세계관 때문이다. 인간들은 참으로 심술궂은 면이 있어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더욱 열광한다. 나는 이게 무척 두렵고 소름끼치고, 한편으로는 좀 우습다.


시원시원한 액션과 수준급 작화


시각적으로는 꽤 즐거운 편에 속한다. 거인을 퇴치하는 동안 조사병단이 입체기동장치 등을 이용한 액션을 펼치는데, 이게 꽤 완성도 높은 연출에 힘입어 어지간한 액션물보다 시원시원하고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즉, 보는 이들이 흥미를 느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단 뜻이다. 개인적으로도 원작 만화보다 액션에 집중되는 애니메이션을 더욱 선호하는 편. 거기에는 내가 명곡이라고 열광하는 1기 '홍련의 화살'과 2기 '심장을 바쳐라' 오프닝 OST 영상이 크게 한몫 했다. (관심 있다면 꼭 오프닝 영상을 봐주시기를.)


피도 눈물도 없는 리바이 병장, 진격의 거인 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인기남이다.


진격의 거인 역시 캐릭터보다 세계관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작품이다. 특히 캐릭터로 말할 것 같으면 주인공 엘렌 예거의 경우 뺨따구를 올려 붙이고 싶을 정도로 개인 기호에서 크게 벗어난 캐릭터다. 앞 뒤 없이 의협심이나 혈기만 가지고 덤벼드는 분노형, 복수형 얼간이는 참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명한 용기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오히려 똘똘한 아르민이나 걸크러시를 유발하는 미카사가 더욱 매력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준주연일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있어보인다. (암, 이야기는 엘렌 같은 얼간이가 설쳐야 전진하는 법이니까.)


감히 제법 많은 디스토피아 창작물을 접했다고 생각했다. 그중 대부분은 역겨움과 헛구역질을 동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 속 세계관은 그중에서도 꽤 매운 편이었다. 그래도 계속 들춰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봤다. 의도된 불쾌함이 계획된 안도감을 가져오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아직까지도 디스토피아는 제법 맛있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