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아니고.
생떽쥐베리 作 어린 왕자는 작품 자체의 담백한 감동도 대단하지만, 읽을 때마다 와 닿는 감동의 얼굴이 다르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곤 한다. 십분 동의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린왕자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또 내일 다른 느낌.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다른 건 몰라도 햄릿이 왠지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리란 상상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닌 모양이다. 오랜 시간 존경의 의미를 가지고 재해석되고 오마주 된 창작물에서 햄릿은 대부분 잘생겼다. 젊고 수려한 청년의 왕자다. 그 훈훈한 이가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모성애를 자극하는데 어느 누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내 관심 역시 한껏 부풀었었다. 그러나 관심은 관심이고, 햄릿이란 인물을 훌륭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솔직한 말로 단 한 번도 그의 인간성이 '봐줄 만하다'라고 느껴본 적 조차 없었다.
인생이 너무 힘들 때, 햄릿의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곱씹으며 갖은 궁상을 떨어온 내 역사 또한 유구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방황은 중2병 어린애의 징징거림으로 귀결시킬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햄릿은 항상 고구마 답답이에 가까웠다. 물론 그의 비극이 너무 거세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으리란 동정의 시선까지는 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햄릿의 시선에서는 삼촌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자리인 왕위도 빼앗은 데다가 어머니까지 얻었는데, 어머니는 지조도 없이 시동생에게 홀딱 넘어간 셈 아닌가. 햄릿 가정의 비극사를 평가 절하할 마음은 없지만, 이후 그의 행보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나름 노림수가 있어 미친 척을 하고 연극 <쥐덫>을 준비했다. 그래 좋다 이거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저지른 멍청한 짓들은 어찌 해석해야 할까. 왕으로 승격한 숙부를 그렇게 증오하면서 화풀이는 엄한 데다 하질 않나, 아무것도 모르는 오필리어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미치게 하질 않나, (물론 이 대목이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필리어의 약한 멘탈이 크게 작용하긴 했다. 부모가 죽는다고 모두 미쳐 실족사하지는 않으니까) 본인의 고통만 알아달라며 주변을 괴롭히는 모습은 이중적이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또,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는 이 시대 여자들은 도대체가 자립이라는 걸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급기야 미치거나 급사하는 둥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는데, 햄릿은 이러나저러나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분명히 있음에도 그냥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얘는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고통스러워하고 울부짖는 일 밖에 없는 것일까?
(덧붙여 햄릿의 입장에서 쓰인 서사이기에 거트루드 여왕이나 오필리어가 어떤 인과를 가지고 그리 행동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자립심은 없어 보인다. 물론 16세기 작품인 점과, 그녀들 개인적인 심적 고통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게 모든 것을 면죄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적어도 햄릿이 갈등하며 아등바등한다는 사실만큼은 공감하고 나 역시 가슴 아팠다. 그러나 철없이 방황하는 어린애로 보이는 것 또한 솔직한 심정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그와 같은 인간형이 얼마나 만연해 있길래 '햄릿형 인물'로 분류되며 이후 수많은 문학과 창작물에서, (나아가 현실에서조차) 비슷한 얼간이들의 대표 격을 맡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건, 나 역시 햄릿형 인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망할.
결과적으로 극의 등장인물이 전원 비극적으로 숨이 끊어지는 폭력적 엔딩은 막장의 종지부다. 어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훌륭한 작품과 막장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짚신의 양쪽처럼 함께한다는 사실에 늘 기겁하곤 한다. 그리고 나아가 늘 생각한다. '비극'이라는 단어를 누가 여기다 붙였을까. 아니지, '비극'이란 단어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때문에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엉뚱깽뚱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