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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닝 Jul 09. 2023

4월 홍콩 지하철 노숙기

지금 생각하면 미친 건가 싶다.

혼자 해외여행의 시작


성인이 될 때까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사실 여행을 그다지 많이 가보 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일하기 바쁘셨다. 그렇다가 내가 활달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모나진 않았지만 대문자 I라는 성격 탓에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가본 곳은 내 고향 인천과 옆동네 서울, 아버지 고향인 강원도가 전부였다. 아, 면접 보려고 울산이랑 대구를 가 보긴 했다. 


20살 때 동네에서 친한 친구끼리 처음으로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내 인생 첫 비행기이자, 첫 해외 여행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도 안 가본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다니고 에세이 책까지 발간할 줄 몰랐다. 당시의 좋은 추억은 내가 여행을 다니게 만든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와이파이도 없이 고베를 헤매다 친구를 만난 썰이 내 에세이 첫 장에 떡하니 박혀 있으니 아마도 이때부터 고생하기를 좋아했는 지도 모르겠다. 


내 첫 에세이: 당신을 추억하고, 위로합니다

재수를 끝내고 1학년 여름방학, 우연히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일본 영화를 봤다. 평소에도 새드 엔딩 로맨스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일본영화에 대한 나의 편견을 처참히 깨 주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강렬한 생각을 남겼다. '꼭 이 영화 촬영지를 찾아가야 돼!' 그 길로 나는 영화 촬영지인 교토행 비행기표를 끊고 삼 일간 모든 루트를 정비한 뒤 혼자서 교토로 떠났다. 이때 영화에 미쳐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이 나에게 혼자 여행의 묘미를 알려준 것 같다. 내 혼자 여행 썰을 들려주면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와, 진짜 재밌어 보이긴 하는데 나는 못 하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 여행의 스릴을 더욱 어필하지만 속으론 생각한다. '나도 그때 뭔 생각으로 혼자 갔는지 모르겠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포스터. 스포 없이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살인적인 일정


지금은 몸이 못 따라오지 못하지만,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내 여행일정은 매우 살인적이었다. 내 일정을 따라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혼자 여행을 다닌 것도 있다. 원래는 마카오 3박 4일 일정이었다. 홍콩은 너무 비쌌다. 하지만 내 모토가 '여길 언제 또 와보겠어?'이기에 중간에 홍콩을 끼워 넣었다. 마카오 in&out인 상황에서 홍콩 1박이 추가되니 미친 경로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첫날은 공항에 새벽에 도착해 공항에서 노숙을 했다. 가난한 대학생은 그런 식으로 돈을 아꼈다. 


다음날 아침 6시경, '니하오' 소리에 눈을 떠보니 공항 청소부 아저씨가 나를 깨웠다. 민폐니까 일어나라는 건 아니었고 마친 내 위쪽에서 공사를 하고 있으니 다른 데로 피신하라는 거였다.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Oh, hello?'라고 아침 인사를 건넸지만 비몽사몽이었던 나는 꾸벅 인사하며 sorry란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침 6시경 공항을 나서면서 나는 경악했다. 4월의 마카오는 습도 98%라는 경이로운 날씨로 나를 맞아줬다. 체크인 시각은 오후 2시. 나는 땀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를 계속 내뿜으며 캐리어를 들고 마카오 돌바닥을 돌아다녔다. 마카오는 옛 유적지가 모여있는 마카오 반도와 호텔, 카지노가 모여 있는 타이파섬으로 나눠져 있다. 나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바쁘게 돌아다닌 끝에 체크인 전에 웬만한 구경은 다 했다. 체크인 후 배터리 충전도 할 겸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열심히 아경을 보러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체력은 대체 어디서 나왔나 싶다.


마카오 공항에서 노숙하고 난 뒤의 모습. 눈이 풀려있다.


가는 날이 장날 1


여행을 가면 나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해 자정쯤 끝난다. 다음날 아침 일찍 페리를 타고 홍콩으로 떠났다. 첫 일정은 홍콩 트램투어였다. 한 가지 말해두자면 나는 길치다. 정말 지독한 길치인 게 구글지도가 없다면 아예 길을 못 찾는다. 이때는 구글 지도마저 정확한 위치를 찍어주지 못해 트램을 눈앞에 두고 20여분을 왔다 갔다 하였다. '이러다 놓치는 거 아니야?' 할 때쯤 트램을 탑승했다. 하지만 홍콩의 날씨는 나를 그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홍콩 시내를 더 잘 보기 위해 오픈되어 있는 2층에 있었다. 우비를 입고 있긴 했지만 우비정도로 막기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도 체념하고 젖은 채로 구경하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홍콩 일대가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더니 번개와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구의 태양 스위치라도 끈 마냥 한 치 앞도 보기가 힘들었고 5분쯤 지났나? 다시 해가 비췄다. 


이제 출발하나 싶었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5분 동안 쏟아진 비바람에 나무가 꺾여 트램줄을 누르고 있었다. 트램은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깃줄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위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갈 수가 없게 된 거다. 승무원은 다음날 탑승해도 된다고 안내했지만 나에겐 내일이 없었다. 결국 나와 다른 서양인까지 둘이서 한참을 기다려 트램투어를 완주했다.


비 내리는 홍콩 거리. 나무가 걸린 장면은 아쉽게도 안 찍었다ㅠㅠ


가는 날이 장날 2


비에 쫄딱 젖고 배라도 채우러 팀호완에 들렸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철저하게 짜면서도 대충 다니는 성격이다. 특히 음식에 대한 욕심은 없어서 알아보지 않는 편인데 이때도 직전에 블로그 서치 끝에 유명한 집에 갔었다. 블로그에서 추천해 준 bbq 포크를 시키고 중국어를 알아보지를 못해 1번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이게 큰 실수였다. 난 당연히 베스트 메뉴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밥에 양념 된 닭발과 돼지 내장(?)이 올려져 있는 메뉴가 나왔다. 비린내 때문에 한 입 먹고 포기했는데 나중에 홍콩 친구에게 물어보니 홍콩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메뉴라고 했다. 베스트 메뉴는 맞았던 거다...


체크인을 하고 돌아다니다 배터리가 바닥나 핸드폰이 꺼졌다. 한국에서는 쉽게 주변 가게에 충전을 부탁할 수 있지만 외국은 어렵다. 길거리 버스킹을 위해 악기를 전원코드에 연결하고 있는 여성분을 만났다. 충전을 부탁하니 30분에 꽤 큰 돈을 불렀다. 나는 구글 지도에서 가는 방법만 검색하면 돼서 10분만 충전을 부탁했다. 간신히 충전을 하고 구글 지도에 목적지를 검색한 뒤 택시를 탔다. 근데 알고보니 페리를 타면 더 빠르고 싸게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로 갈 수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이 페리 탑승지 바로 앞이었다...


구룡반도는 숙소가 있는 장소기도 했고 레이저쇼를 보기 위한 야간 보트 탑승지기도 했다. 핸드폰은 10분밖에 충전하지 않아 다시 꺼진 상태였다. 구룡반도에서 내린 뒤 탑승지를 찾기 위해 현지인에게 묻고 다녔지만 아무도 몰랐다. 어차피 핸드폰도 꺼진 상태에서 예약 확인서를 못 보여주지만 어떻게든 말해 볼 생각에 계속 탑승지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트램과 달리 보트 탑승지를 끝내 찾지 못했고 나는 그냥 사람 사이에 껴서 레이져 쇼를 봤다. 이쯤 되면 가는 날이 장날인 건지 내가 스스로 어려움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팀호완에서 먹은 닭발 올라간 밥. 비린 맛이 너무 났다.


숙소를 나가라고요?


레이저 쇼를 보고 주변 호텔에서 핸드폰을 충전한 후 택시를 타고 숙소에 왔다. 근데 사람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싸함을 아는가? 숙소에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오자마자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들어가자 방에서 떠들고 있던 여대생 무리가 황급히 문을 닫았다.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여니 2층 침대 1층에는 한 여자가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는 눈이 아주 똥그래졌다. 숙소는 작은 거실과 방 세 개로 이루어진 일반 가정집이었다. 나는 거실에 앉아 에어비앤비로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은 메시지를 보지 않았다. 10분쯤 지났을까? 방에서 여대생 한 명이 나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했는데 집주인이 연락을 안 받고 여기서 여성전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대생은 여성 전용 에어비앤비가 맞으며 자신이 대신 연락을 해주겠다 말했다. 다행히 여대생이 연락하자 집주인은 내 메시지에 답을 해줬다. 내가 있는 곳은 여성전용 도미토리가 맞고 홈페이지에 적혀 있다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옆에 여성 전용이라고 쓰여있긴 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 맞지만 확인하지 않은 집주인의 잘못도 있다고 따졌다. 결국 대화 끝에 나는 최대한 숙소에서 빨리 나가고 집주인은 환불해 주기로 합의했다. 나도 이곳에서 더 이상 변태 취급을 받기 싫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숙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하루종인 비를 맞고 돌아다녔더니 너무 찝찝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씻어도 되냐 물었고 그는 씻고 바로 나가라 했다. 나는 갈아입을 옷만 꺼내 대충 씻고 욕실을 나왔다. 그때 씻으려 준비 중인 한 여성과 마주쳤는데 '네가 왜 여기에 있어?'라는 표정과 함께 경멸하는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그대로 짐을 들고 숙소에서 나왔다.


내가 묵을뻔한 숙소 모습. 이때까지는 여성 전용인지 몰랐다.


홍콩에서 노숙. 나만 해봤을 걸?


일단 숙소에서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한국이야 찜질방이든, PC 방이든 널렸으니 굳이 숙소를 잡지 않아도 시간을 보낼 곳은 많다. 그렇지만 이곳은 홍콩. 가난한 대학생에게 새벽 당일에 잠깐 잘 곳을 구할 돈은 없었다. 더군다나 호텔이 아닌 이상 새벽까지 모텔 주인이 상주하는 경우도 없었다. 나는 홍콩 치안이 안전한 지 두려움에 떨며 빨리 어디든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만 한 채 정처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지하로 가는 길에서 밝은 불빛이 나오는 걸 발견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듯 불빛을 따라 들어갔다. 알고보니 지하철이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홍콩의 지하철은 운영시간이 끝나도 문을 닫지 않았다. '여기서 자야되나?'라는 이성과 싸우며 돌아다니는데 이미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 두 분이 보였다. 알 수 없는 악취가 났고 신문과 박스로 온 몸을 보호했다. 다시 위험한 밤거리로 나설 수도 없는 상황. 나는 두 분과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누가 내 캐리어와 기념품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온 몸으로 꼭 끌어안아 새우잠 형태를 만들었다. 또 아침에 누군가 내 얼굴을 보는 게 너무 두려워 입고 있던 아우터로 얼굴을 가렸다.


노숙 직전에 찍은 사진. 놀러와서 이게 뭔 개고생인가 싶은 회한이 얼굴에 담겨 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내가 잠든 시각은 새벽 3시 반경.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우터로 얼굴을 가린 상황이라 볼 순 없었지만 지하철 첫 차를 타러 오는 사람들 같았다. 손을 움직여 만져보니 캐리어와 기념품은 모두 잘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지하철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됐다. 나는 당시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어서 아우터를 살짝 들어 짐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그대로 얼굴을 가린 채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와도 문제인 게 아직 6시도 안 된 시간이라 갈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민을 하다 근방에 있는 호텔에 들어갔다. 호텔 로비는 언제나 개방돼 있기 때문에 나는 소파에 앉아 아침 먹을 곳을 검색했다. 리셉션에 있는 직원과 벨보이가 나를 슬쩍 보기도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핸드폰만 봤다. 다행히 괜히 뭔 말이라도 걸었다가 컴플레인 걸릴까 봐 그랬는지 내가 나가는 순간까지 뭐라 하지는 않았다.


고진감래


아침을 먹으러 간 곳은 현지인에게도 유명한 곳인지 6시가 막 넘은 시간인데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어서 나는 3인 테이블에 합석할 수 있었다. 나는 콘지를 시키고 "부야오 샹차이"(고수 빼주세요.)를 외친 뒤 조용히 핸드폰으로 다음 일정을 검색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합석한 곳에 있는 분들은 한국 아주머니셨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반갑긴 했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내 옆자리 아주머니께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한국인의 정인이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져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다 소름 돋은 점이 하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어디 사는지를 묻게 되었는데 아주머니께서 내가 사는 동네에 사셨다. 시까지는 맞을 수 있어도 '동'까지 맞아서 놀랐다. 근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세분의 아들 모두가 당시 21살인 내 나이와 똑같다고 하셨다. 나는 재수를 해서 군대를 좀 늦게 갔었는데 그분들은 아들을 모두 군대 보낸 뒤 놀러 오셨다고 했다. 


외국에서 같은 고향인을 만나서 그런가? 어느새 나는 전날의 악몽을 잊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찹쌀도넛 같은 것도 시켜서 드시고 계셨는데 양이 많으니 나에게도 먹으라고 양보해 주셨다. 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내 음식값을 계산하고 나가셨다. 당시 너무 감동받아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느낀 점을 써 놓은 게 아직도 남아있다. 아주머니들 덕분인지 나는 마지막 날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고 다음 해 또다시 혼자 해외에 나갔다.


당시 먹었던 콘지죽. 아주머니들은 처음에 내가 중국인인줄 알았다 한다ㅠㅠ.

끝 마치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는 것 같다. 특히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작은 친절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아마 내 홍콩 지하철 노숙기가 노숙에서 끝이 났다면 나는 두 번 다시 혼자 해외여행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은 어려웠을지라도 끝이 온정의 손길로 끝나니 나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누군가의 순간을 행복으로 물들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그리 큰 도움이 아니더라도 그에게는 그 순간 모든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행복일 수 있다.


* 여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고마웠던 일이 있다면 같이 공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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