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신은 왜 침묵하는가?

2026년 첫 책,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by 함상원

2025년부터 늘 마음의 숙제였던 '독서 습관 만들기'를 위해, 올해는 '우기부기'님의 독서 자료화 방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여기에 나만의 특별한 루틴을 하나 더했다. 완독 후 바로 책을 덮은 뒤 AI(Gemini)와 나누는 심층 토론이다.


나의 감상을 이야기하면 AI가 예리한 질문을 되돌려주고, 그 대화 속에서 혼자 읽을 땐 미처 닿지 못했던 생각의 지평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읽고, 치열하게 대화하고, 기록하는 이 과정을 통해 올 한 해 내면을 단단히 다져보고자 한다.




2026년의 첫 독서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택했다.


신의 침묵과 인간의 고통, 그리고 배교. 묵직한 주제이지만, 내가 만든 AI 독서 파트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진정한 믿음'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의 핵심은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는 패배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는 왜 기치지로를 미워하는가?"라는 인간 본연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 사유의 기록을 이곳에 남긴다.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기독교 금지령이 내려진 일본.


존경하던 스승 페레이라 신부가 고문 끝에 배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진상을 확인하고 끊어진 선교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두 명의 청년 사제 로드리고와 가르페는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잠입한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상상했던 영광스러운 순교의 현장이 아니었다.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죽어가는 신도들의 비명, 그리고 그 참혹한 고통 앞에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신의 침묵'뿐이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배교를 강요하는 이노우에, 그리고 끊임없이 배신을 일삼는 길잡이 기치지로 사이에서 고뇌한다. 결국 그는 신도들을 살리기 위해 성화(후미에)를 밟아야 하는 잔혹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이 책은 단순한 종교 소설이 아니다. 신념과 현실, 강함과 약함, 그리고 인간 구원의 본질을 파고드는 처절한 심리 기록이다.



KakaoTalk_20260102_010328160_01.jpg 『침묵』, 엔도 슈사쿠, 홍성사


1. 성화를 밟는 발의 통증, 그것은 '사랑'이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 로드리고 신부는 신도들을 구하기 위해 성화를 밟는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명백한 배교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신앙의 패배'가 아닌 '신앙의 완성'으로 읽었다.

가톨릭의 교리와 법도를 지키는 '형식적 순교'는 어쩌면 자신의 영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로드리고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사제로서의 영혼)을 버림으로써,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구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내면에서 들려온 이 목소리는 교리를 넘어선 원론적인 자비였다. 로드리고는 교회를 배반하는 것이 두려웠을 뿐, 예수를 배반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가장 비참한 배교자로 추락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의 삶을 재현한 것이다.



2. 우리는 모두 '기치지로'다.

소설에는 끊임없이 배신하고 도망치면서도, 끈질기게 용서를 구하러 오는 '기치지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가 혐오스러웠지만, 대화를 나누며 그가 다름 아닌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기치지로는 '수치심' 그 자체다. 신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체면을 차릴 수 없는 발가벗겨진 인간의 본성.

고통과 공포 앞에서는 신념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싶은 생존 본능.

우리는 영웅인 척하지만, 사실 내면에는 모두 기치지로가 살고 있다. 로드리고 신부가 마지막에 그를 받아들인 것은, 강한 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수치심을 무릅쓰고 매달리는 비겁한 자들도 품는 것이 진짜 종교임을 보여준다.



3. 신은 해결사가 아니라 '동반자'다.

로드리고는 절규했다. "왜 신은 고통 앞에서 침묵하십니까?" 하지만 그 침묵은 '부재(不在)'가 아니었다. 신은 번개를 내려 고통을 없애주는 '해결사'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신앙의 보상이 '문제 해결'이라면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것이다. 신은 '동반자'다.

내가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럽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그 진흙탕 속에 함께 뒹굴며 "나도 아프다"라고 말해주는 존재. 신앙이란 고통을 면제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2026년, 나는 나의 약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성화를 밟는 아픔을 간직한 채, 침묵 속에서 동행하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려 한다.



자료화 독서 정리 요약


1. 핵심 사유

약함의 미학: 강한 신념보다 귀한 것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정직한 태도다. (기치지로의 재발견)

사랑의 역설: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형식,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그 본질(사랑)을 지키는 길이다. (로드리고의 선택)

동반자로서의 신: 신의 침묵은 외면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가장 깊은 공감이자 '함께 아파함'이다.


2. 삶의 적용

타인의 비겁함이나 약한 모습을 볼 때, 섣불리 비난하기보다 "나라도 저 상황에선 그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해하기.

형식이나 체면 때문에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늘 경계하기.


3. 기억할 문장

"밟아라.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