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김혜진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자기 일을 업(業)으로 삼아 끈질기게 버텨온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1990년대 초 한국 출판계에 입문한 편집자 홍석주의 30년 세월을 묵묵히 따라가며, '일이 인간을 완성하는 동시에 훼손한다'는 노동의 이중성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1. 1990년대의 종이 시대와 2025년 AI의 해일 사이에서
소설은 주인공 홍석주의 삶을 통해 한국 출판산업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들을 기록한다. 도서 대여점이 급증하며 책이 '소유'에서 '여가 미디어'로 변모하던 1990년대의 풍경부터, 인공지능(AI)이 기획과 창작의 영역까지 침투한 2025년의 현실까지를 관통한다. 홍석주는 이 격변의 세월 속에서 교열자로 시작해 편집의 본질을 배우고, 구조조정의 파도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이는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할 것 같은 시대에 왜 우리가 여전히 누군가의 고요한 노동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2. '보이지 않는 노동'에 깃든 숭고한 윤리적 책임
교정·교열은 흔히 단순한 오타 찾기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소설 속 홍석주에게 이 일은 "정확한 정보를 찾아 대조하고 책의 오류를 잡아내는" 고된 과정이자, "저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책의 품질을 지키는 윤리적 책임"으로 정의된다. 작가는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가시화하며, 그것이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세상을 만나는 핵심 수단이자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임을 증명한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만든다"는 정직한 마음은, 효율성만이 지배하는 AI 시대에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숭고한 헌신이다.
3. '월급사실주의'가 포착한 우리 모두의 자화상
김혜진은 현실의 부조리에 영웅적으로 저항하는 인물 대신,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내적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월급사실주의(Salary Realism)'는 이번 소설에서 정점에 달한다. 편집 일을 통해 성장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 전체가 일에 잠식되어 가는 과정은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일이 나를 완성해가는 기쁨과 나를 소모시키는 것 같은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 역설은, 우리가 매일 아침 다시 책상 앞으로 향하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
4. 마치며: 나만의 '그것'을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
출간 두 달 만에 4쇄를 기록하며 수많은 일하는 사람의 공감을 얻은 이 소설은, AI라는 예측 불가능한 해일 속에서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순수한 노동"에 보내는 찬가다.
현재 본인이 몸 담고 있는 e-커머스와 펫 간식 출시 프로젝트 역시 이 소설의 메시지와 궤를 같이한다. 기술 만능 시대에 'AI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적 고유성'은 무엇인지, 내가 만드는 결과물에 홍석주와 같은 '윤리적 책임'을 담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좋아하는 일이 무서워지는 순간이 올지라도 "꾸역꾸역 해나가는" 매일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 고단함 끝에 오직 나만이 완성할 수 있는 '나의 것'이 남는다는 사실을 이 책은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