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있는 힘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든다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송길영

by 함상원


우리는 오랫동안 '정답'이 있는 세계를 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면 칭찬받았고, 회사에서는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면 월급이 나왔으며,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헌신하면 노후가 보장된다고 믿었죠. 하지만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는 이 믿음이 유효기간이 다한 통조림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를 지탱하던 낡은 기둥들이 하나둘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성실함'에 대한 신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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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근면함과 순응성은 이제 진화 과정에서 덜 중요해집니다… 묵묵한 인내와 지구력보다 없던 개념을 생각해내는 엉뚱함이 주목받는 식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습니다. 야근을 훈장처럼 여기던 지난날의 제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AI가 답이 있는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버리는 세상에서,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AI에게 대체되기 딱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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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섬뜩한 비유를 던집니다. 바로 '대비마마'입니다.

"왕이 어려서 대비마마가 수렴청정을 하면 그 대비마마가 실권을 갖게 됩니다. 내가 소비 주체라도 AI의 트레이닝이 더 우수해지면, AI가 상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일종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생각하기도 전에 검색부터 하고, 이제는 AI에게 요약까지 맡기는 제 모습이, 왕좌에 앉아 있지만 실권은 다 뺏긴 어린 왕과 다를 바 없어 보였거든요.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력화" 되는 이 시대에, 제가 AI의 주인이 되려면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AI도 풀지 못할 '질문을 던지는 엉뚱함'을 길러야 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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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회사 밖,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책은 우리가 믿던 '나이의 권위'마저 해체해 버립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이다 …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멋진 사람이 나이가 든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혀를 차던 어른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작가는 그것이 나이 대접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매너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동시대화'의 실패라고 꼬집습니다.

"사회적 매너는 수시로 업데이트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배우는 게 맞습니다."이 문장 앞에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이 듦을 벼슬로 여기지 않겠다고. 내 취향이 존중받길 원한다면, 할머니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룰을 배우는 '현행화'된 인간이 되겠다고요.


결국 '핵개인'이 된다는 건,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더 주체적으로 서는 과정이었습니다.

"돌봄의 끝은 자립이고, 자립의 끝은 ‘내가 나의 삶을 잘 사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회사라는 간판, 나이라는 권위에 기대지 않고, 쪼개지고 쪼개져 가장 단단한 핵(Core)만 남은 개인.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산뜻한 관계,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대등해지는" 건강한 긴장감을 가진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시대의 예보는 이미 '비'를 가리키고 있으며, 남들이 씌워주는 우산은 이제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젖을 각오를 하고 빗속으로 뛰어드는 사람, 그 엉뚱하고 독립적인 '핵개인'에게만 보이는 무지개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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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를 사유하게 하는 문장이나, 참고할 내용이 있는곳은 귀퉁이를 접거나 포스트잇을 붙힙니다. 이 책은 거의 3분의2를 접은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였습니다.

나머지 시리즈 "호명사회", "경량문명의 탄생"도 기대가 됩니다.




이제 막 핵개인으로의 독립을 꿈꾸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첫째, 당신은 성실하게 답을 찾는 '모범생'입니까,

아니면 AI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져 판을 흔드는 '괴짜'입니까?


둘째, 당신의 효도는 가족을 위한 희생입니까,

아니면 훗날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는 '자립'입니까?


셋째, 당신은 나이 듦을 훈장으로 여기며 멈춰 서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도 새로운 매너를 배우며 시대를 호흡하는 '현행화'된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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