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투명하고 명징한 ‘영도’의 바그너

마렉 야놉스키

by 정작가


인터뷰어가 바라보았던 지휘자 마렉 야놉스키는 바그너에 대한 열정의 화신으로 기억된다.


한순간도 그의 이데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혹독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리허설을 지켜보는 내내, 바그너에 대한 그의 헌신과 완벽주의가 무한선율과 함께 오롯이 전해졌다.


이 장의 첫 질문은 오페라 지휘를 중단한 지 18년이 된 마렉 야놉스키가 콘서트 형식으로만 오페라를 연주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답을 들어보면 그가 왜 정통 오페라 지휘를 중단하고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위주로 지휘를 하게 되었는지 명징하게 드러난다. 그가 초창기 오페라를 지휘했을 때만 해도 오페라에서 연출과 무대 장치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그런 것들이 음악을 잠식해 들어왔고, 종국에는 오케스트라가 ‘화려한 무대 장치나 파격을 일삼는 연출을 따라가야 하는 가수들을 그저 반주하는 역할에, 연출가의 미장센을 빛내주는 조연에 머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콘서트 형식에 적합한 오페라들을 계속 지휘하며 오페라와 완전히 멀어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마렉 야놉스키는 오페라 지휘를 통해 음악적인 가치 실현을 꾀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 오페라의 연극적 측면이 강해지는 조류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의 주(主)는 ‘음악’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인식에 뒤따르지 못하는 오페라의 몰락에 더 이상 극장의 전막 공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차선책으로 마렉 야놉스키는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를 선택했고, 이를 통해 자기만의 철저한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음악적 원칙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의 음악적 원칙은 음악을 섬기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연주를 하면서 ‘쓸데없는 치장을 하지 않고 음악의 골격을 충분히 드러낸 연주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주다’라고 하는 그의 연주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 바그너의 관능을 전달하겠다면서 지휘자의 자의적 해석으로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살집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음악의 기본은 원작자의 의도에 맞춰 ‘악보에 존재하는 음표들과 악상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정작 이런 기본을 제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음악의 뼈대는 안 보이고 비곗덩어리 운운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휘자가 되겠다는 결정적인 동기나 순간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열아홉 살 무렵에는 내가 남에게 지시하는 것과 그런 위치에 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면서 자신을 따르도록 이끄는 직분이 흔치 않은데, 지휘자야말로 그런 직분 중 하나’라고 추켜세운다.


‘지휘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유명한 지휘자가 될 걸로 예상했는가’라는 질문에는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스스로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오케스트라 빌더’라 일컫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마렉 야놉스키는 정확한 소리를 갖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영감이 아니라 수공업자의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울리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평생 음악을 섬길 수 있어서 행복한 지휘자라고 스스로 평하는 마렉 야놉스키는 ‘음악을 통해 동서독이 화합을 이루는 경험도 했다’고 밝힌다.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음악을 충실히 섬긴 지휘자’로 남길 바라는 그의 바람이 지휘자로서 운명이 다할 때까지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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