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헤에서 만난, 완벽과 순수의 음악

필립 헤레베헤

by 정작가


이번 인터뷰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으로 유럽 순회공연 중인 필립 헤레베헤라는 지휘자와의 만남을 기록한 것이다. 벨기에 브뤼헤에서 만난 그에게 인터뷰어의 첫 질문은 정신과 전문의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어떻게 지휘자가 되었는지 하는 것이었다. 그의 답변을 보면, 모친이 상당 수준의 피아니스트였음을 알 수 있고, 종교적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가톨릭 학교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는 일과에 노출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영향으로 일찌감치 합창단에 속해 활동을 시작했던 필립 헤레베헤는 비교적 어린 나이인 열두 살부터 합창단 지휘를 맡을 만큼 음악적으로 커다란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보다는 지휘에 매력을 느꼈던 유년 시절의 필립 헤레베헤는 주변 환경이 음악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심취할 수 있었지만 전업 음악가로서 길을 걷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그는 의대에 들어가 공부를 했지만 막상 그 길이 자기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던 듯하다. 이미 음악원에도 다녔던 상태였던 필립 헤레베헤는 이곳저곳 연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의사 일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음악이 내 삶에서 부재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의 진술을 들어 보면, 음악은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를 음악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고, 이런 계기를 통해 지휘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는 모든 음악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헨델이나 라모와 같은 작곡가의 작품은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이는 음악적 취향에 따른 호불호의 영향인 듯하다. 그런 반면, 슈만이나 브람스, 브루크너, 베베른 역시 좋아하는 작곡들로서 이들의 작품은 도전해 볼만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정신과 전문의 경험이 음악 활동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의 짧았던 의사 경험을 빗대어 음악의 가치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의사라는 직업이 육체와 관련된 세계라고 한다면 음악은 ‘높고 숭고한 정신들이 존재하는 추상의 세계’로 그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이전 응급실에서 겪었던 생과 사를 다투는 긴박감, 그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과 무력감, 불안과 고통을 통해 느꼈던 감정의 편린들이 악곡 해석을 통해 다시 환기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가졌던 의사라는 직업과 그나마 단편적으로 연관되었던 음악과의 기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능이 있는 가수를 발굴하는 작업 과정을 묻는 질문에서 필립 헤레베헤는 유럽의 청중이 비교적 예순 살이 넘는 연령층에 비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클래식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당신의 인생에 음악이 아닌 다른 것이 있는지, 다시 태어나도 지휘자가 될 건지 하는 질문에는 음악가가 아니라면 작가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음악을 아는 것만 해도 부족한 인생일지 모르지만 지휘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일종의 CEO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위치에서는 음악만 알아서는 곤란하다고도 한다. 이런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작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문성을 가진 예술인의 삶이 과연 유한한 생을 바쳐도 좋을 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실제로 어떤 예술이건 간에 그 분야의 최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백 년도 안 되는 유한한 생을 한두 가지 일에 몰두하다가 사라지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근시안적인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은하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예술인들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과 명성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그런 분야 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복무해야 하는 것인지, 한 인생을 갈아 넣더라도 세상을 위해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 하는 것이 유의미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필립 헤레베헤 또한 의사와 지휘자로서 살아왔지만 대부분 음악가로서 인생을 살았던 부분이 큰 것을 보면, 한 인간이 살았던 환경의 영향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떤 한 분야의 예술에 종속되기보다는 다양한 예술에 대한 경험을 통해 소양을 다져가고 이를 통해 보다 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틔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의 운명이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문명의 일부 중 한두 가지에 종속되어 그 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수많은 새로운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가야 할 숙명도 있는 것일 테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예술적 성취를 향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아예 예술이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중에서 무엇을 택하든 상관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유로운 인간의 영혼이 한두 가지 업에 종속되어 좀 더 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전문가라는 틀에 얽매여 한 생을 흘려보낸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은 예술을 향유하는 존재일까, 예술에 종속된 존재일까. 이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던져보고픈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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