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지휘자 정명훈에게 첫 솔로 피아노 음반 출시에 대한 물음은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명훈은 워낙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피아노 음반을 낸다는 것자체가 일종의 도전은 아니었을까?
프로페셔널에게는 의무가 우선이다. 내가 잠시 피아노로 돌아간 것은, 프로페셔널로서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사랑하기에 음악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과 같다.
다소 비유적인 표현으로 피아노 연주에 대한 소회를 피력한 정명훈을 보면, 그가 가지고 있었던 피아노에 대한 기억이 첫사랑과의 재회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아노 음반을 녹음한 과정을 묻는 질문에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적지 않은 헌신과 노력, 집중을 요한다’고 대답한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곡이라도 녹음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임을 인터뷰 처음에 밝혔던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휘자로 변신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는가?’라는 인터뷰어의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정명훈은 비록 지휘자는 소리를 직접 내지 않는 음악가라고 할지라도 지휘자만이 할 수 있는 교향곡이 오케스트라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지휘자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실황 공연에서 특별한 감동을 전해주었던 지휘자의 역할로서의 그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는 음악의 본질적인 예술성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간다.
음악은 위대한 것이고, 역사적으로 문화 전반을 통틀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예술이다. 위대한 음악은 우리의 영혼을 움직인다.
이런 음악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인터뷰어에게서도 ‘먼 곳으로 정신의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한다. 그 또한 지휘하는 순간에는 마치 몸과 영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한다.
지휘 동작이 유난히 정확하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고 묻는 질문에는 한평생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스스로 지휘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겸손해한다. 작곡자 말러에 대해 애착이 있는 것은 그가 오케스트라로 가능한 음악을 썼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예순을 넘기면 지휘를 관두겠다고 여러 번 말했던 이유가 지휘자에게 음악 이외의 역할이 부담스럽기 때문인가 하는 묻는 질문에는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을 뽑는 과정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정명훈이 지휘자로서 모든 곡을 외워서 지휘한다는 사실에 단원들이 압도된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그 엄청난 분량의 교향곡과 같은 곡들에 편성된 악보들을 외운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기본이자 누구나 공부만 하면 되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터이지만, 정작 그가 걱정하는 것은 지휘를 통해 음악의 혼에 다다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터뷰어의 질문은 음악의 사회적 역할, 음악이 지닌 보편적 가치 등으로 다소 원론적인 질문을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이런 질문의 이면에는 그가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그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거장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악은 모든 걸 초월한다. 숱한 음악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은 침묵과 고요의 순간이다. 음악이 다 잦아들어 침묵처럼 들리는 순간에도, 그 침묵 너머에는 음악이 가닿고자 하는 무엇이 있다. 침묵 속에도 음악의 혼은 여전히 깃들어 있다.
음악의 본질적인 가치인 소리의 대척점에 있는 침묵과 고요가 음악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하는 그의 인식을 보면, 과연 거장다운 음악에 대한 철학관이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