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프리즘과 개방성

파스칼 뒤사팽

by 정작가

당신에게 작곡이란 무엇인가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파스칼 뒤사팽은 대답한다.


내 감정을 음악에 투영시켜 악보로 남기는 매우 개인적인 작업이다.


작곡가인 파스칼 뒤사팽에게 작곡은 ‘음악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치환된다. 이렇게 자신을 정의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소통하고 누군가의 가장 깊은 심연에 가닿고 싶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답이다. 이전부터 음악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좋은 연주자로서의 재능은 없었다고 술회하는 파스칼 뒤사팽은 언젠가 바레즈의 음악을 듣고, 본인 또한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런 작곡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존경하고픈 인물로는 베토벤, 드뷔시, 리게티, 세빌리우스와 같은 이들이었지만 비평가들은 곧잘 계승자를 거론하며, 예술가의 고독성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틀에 가둬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비록 존경하는 예술가들이 있기는 할터이지만 그의 아류가 아닌 독보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선 곡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비운다. 악상을 전개해 가는 동안 나는 철저히 혼자다. 악보를 앞에 두고 세계와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창작적인 기질은 예술가로서 고독한 존재를 투영한다.

인터뷰어는 통영국제음악제에 상주 작곡가로 초청된 것을 언급하면서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기억을 묻는다. 일제 식민지 치하와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고초를 겪었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그 유명세에 비해 국내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에게 ‘윤이상의 등장은 음악계의 필요와도 맞물리는 지점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면, 그와 인연 이전에 윤이상은 거목으로서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한 선도자였음을 인식할 수 있다.


나 역시 1970년대에 처음으로 윤이상의 음악을 들었을 때, 한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음악이 선사하는 새로움에 전율을 느꼈다.


서양의 음악 체계에서 동양적 전통에 기반한 음악이 새로움을 가치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당시 현대 음악의 한 주류 분야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시대에 걸맞은 그의 역량을 세계 음악계가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작곡가들에게 조언할 말을 구하는 물음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예술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의식을 가지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자기 이름 앞에 붙는 작곡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필요하다.


이런 그의 인식은 작곡가로서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살아갈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앞선 인터뷰에서 작곡의 거장들을 대하는 태도와 곡을 쓰기 위해 철저히 혼자임을 자각하는 상황은 그런 자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다. 이어 인터뷰어는 약간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열려있음’이란 무엇인가?


새로움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보다는 음악의 범주를 확장해 가는 것이다. 늘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은 이 범주의 확장을 위해 스스로의 틀과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그걸 체화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열려있음에 근거한 작업 수행을 위해 파스칼 뒤사팽은 철학자 들뢰즈를 소환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새로운 전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창작이다.


창작자로서 이런 인식의 근원을 살펴보면, 철학자의 사상과 농밀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예술적인 행위의 본질적인 측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유사한 의식적 멘토가 필요함을 역설(力說)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진 찍는 작곡가로서 그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음악과 사진을 찍는 행위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술회한다. 언뜻 보면, 청각과 시각을 각기 활용하는 감각의 이질성으로 그런 인식이 들지 않을 법도 한데, 예술이란 감각조차도 초월한 가치를 내포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작곡가의 시선을 보면, 어떤 예술이건 맥은 통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이 만나면서 영감을 주고받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창조하는 것, 문을 여는 것,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 예술가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파스칼 뒤사팽의 견해를 보면, 그가 추구하는 작곡이라는 음악 예술이 한 분야로만 국한된 전문 분야로서의 협의적인 예술의 가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예술이 인생의 가치를 더욱 빛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 또한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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