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정교하며 언제나 새로운

진은숙

by 정작가


작곡가 진은숙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파이낸셜 타임스>가 ‘진은숙이 내놓은, 매혹적인 반짝임으로 가득한 보석이 세이렌처럼 모두를 홀렸다. 위대한 걸작이다’ 평한 것을 보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가임은 확실한 것 같다. 음악가 중에서 성악가들은 자주 접해 보았지만 작곡가는, 특히 클래식 분야에서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과거의 악성들을 제외하고 현대에도 이런 작곡가들이 있는지는 몰랐다. 이 장에서는 그런 작곡가와 이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인터뷰를 보면, 자기가 작곡한 작품을 지휘자와 단원들, 성악가가 어떻게 소화했는지에 대한 소회가 담겨있다. 다소 생경한 장면으로 볼 수 있겠다. 작곡자 진은숙이 자신이 작곡한 <세이렌의 침묵>을 설명하며, 작곡에 관한 평을 보면 대략적으로 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음악과 소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창작이 아닌 배설을 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대중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창작하는 사람들끼리는 대략 다 안다.


이런 진은숙의 평을 들어보면, 작곡가로서 과연 어떤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야 할지 많은 창작자들이 고민도 크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터뷰어의 질문 속에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가 진은숙의 연주를 듣고 평한 말이 있다. 이 말을 인용하며 인터뷰어는 당신의 음악관은 무엇인가,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언제나 새로우며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의 무언가를 작품으로 남기는데 목표다.


이런 그의 신념은 인터뷰어의 창작의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곡을 쓸 때면 지옥 불에서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진은숙의 이런 표현을 접하고 보면, 과연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이 대략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중에는 그는 한국인이고, 여자이고 동양인 외모를 가진 것에 대한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고 한다. 예술 분야에서조차 이런 비상식적인 고정관념은 더욱 창작자들을 불편하고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뷰의 질문을 유추해 보면, 그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에 의해 연주된 작품을 가진 세계적인 작곡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늘 창조성을 요하는 이런 작업에서 과연 어떻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그러기는 어렵다고. 그러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걸작들의 작품을 필사하며 작곡에 매진한 덕분에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곡을 쓰는 과정은 불가해한 추상 그 자체’라고 규정하는 작곡자 진은숙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연주자와 신뢰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긴밀하고도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비로소 음악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말속에서는 창작자의 독선보다는 협력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도 있다.

피에르 불레즈라는 음악가와 작곡가 진은숙을 비유한다는 질문에는 그런 무제한 예산 지원으로 탄생한 음악가와 자신의 처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진은숙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그 누구도 걸어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걸어왔으며, 오로지 용기와 믿음이 그런 현실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마지막 질문인 오페라인 <거울 속의 앨리스>에 대해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특히 근래 들어 인간이라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 앞으로 좀 더 어둡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주제로 인간의 본질에 질문을 하고 싶다.


한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는 과정에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곡가 진은숙의 모습을 보면, 예술가들에게 범인(凡人)을 뛰어넘는 사상의 발현을 필수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소 생경하고도 낯선 예술가에게 들었던 말들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포착하게 되면, 과연 이런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작곡가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전 07화고통과 고뇌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