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을유문화사

by 정작가


철학의 거장인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다룬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를 안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뿐더러 그가 지은 저서 또한 읽은 책이라고는 이 책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지적 쾌감과 호기심에 대한 충족을 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라면 이 책은 그런 효용성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지루하고 때로는 낯설기도 한 용어들을 대하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계속 읽었던 것은 그 어떤 사상 속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진리의 숨결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식적이지 않고 폐부를 찌르는 독설의 마력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 파격성이야 니체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여하튼 쇼펜하우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봐도 좋으니 잔뜩 긴장하고 이 책을 대하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의 원제는 소품과 부록이다. 무슨 이유에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식 번역으로 행복론과 인생처럼 읽는 것이 무난하다. 염세주의적인 철학자가 행복론을 말한다는 것이 다소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염세주의자는 아닐 것이니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그 본뜻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을 이해하려면 이 책 띠지에 있는 문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를 읽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쇼펜하우어를 읽어라’는 의미는 각기 그 분야의 거장으로 두 철학자를 지목한 맥락을 유추할 수 있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를 택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한참 골몰한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만하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염세적이라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목차를 보면 이 책을 읽기가 꺼려질 수도 있다. 생존의 허망함에 대하여, 세상의 고뇌에 대하여, 자살에 대하여. 이런 소주제를 접하게 되면 과연 인생을 살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 이 책에서는 인생 자체를 아름다운 천국보다는 슬픔과 절망, 혼돈과 비탄으로 가득 찬 어둠의 세계로 인식하는 쇼펜하우어의 가치관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은 그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니 그런 어둠의 가치를 인식하고 제대로 살라고 하는 일침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꼭 쇼펜하우어 때문은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보니 세상이 그리 밝은 곳이 아니더라는 이 철학자의 인식에 공감이 간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온통 푸른 희망이 넘실거리는 곳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태생적인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세파에 찌들다 보니 도저히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철학의 대가인 쇼펜하우어조차 세상을 염세적으로 해석하는 마당에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야 오죽하랴. 그렇더라도 희망은 있다. 비록 이런 세상에 살고는 있더라도 쇼펜하우어처럼 명철(名哲)의 도움을 받아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한다면 막연히 절망만 하고 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행복론과 인생론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측면이라면 행복론이 적합하다. 인간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대하여 등 주로 인간의 속성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 부분이다. 행복론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인생론에서는 삶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인생을 포괄할 수 있는 생각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앞서 언급한 다소 부정적인 생각에 일조할 수 있는 주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종교, 학자, 저술, 독서와 책, 여성, 교육 등에 대한 담론은 사유의 기치를 드높이는 데 한몫할 만한 주제들이다. 특히 여러 가지 중에서 지금의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주제라고 한다면 여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여성 상위 시대라고 할 만큼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때만 해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시대라서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충격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페미니즘에 입각한 관점으로 이 부분을 본다면 그야말로 쓰레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 부분만 제외한다면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막연히 염세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대한 속성과 인생에 대한 명쾌한 해석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상이라는 사실에 동조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제공한다고 봐도 좋겠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쇼펜하우어라는 위대한 사상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다. 다만 쇼펜하우어가 세간에 알려진 염세적인 철학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철학자를 대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가치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