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 프로네시스
저자가 어느 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요즘 트렌드처럼 자리 잡고 있는 힐링, 즉 마음의 치유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다. 다소 묵직한 주제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아니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자면 욕망에 흔들리는 우리의 삶을 자본주의 체제와 결부시켜 해석한 일종의 인문학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책표지를 보면 책의 내용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달러 즉 화폐, 도박을 상징하는 주사위, 예쁜 바비 인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스타킹을 신은 섹시한 여인의 다리, 그 뒤로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상징처럼 보여주고 있는 마천루의 불빛, 이 어울리지 않은 조합들 속에 파랑새와 무지개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장면들을 담고 있는 금테를 두른 액자 위에 피곤에 쩐 모습으로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자의 몰골이 대비를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다시피,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 비밀은 ‘욕망의 집어등’이란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아니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이라는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치명적인 유혹이 에워싸고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인용한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질문처럼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하는 물음에서 우리는 과연 욕망의 주체가 누구인지 다시금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욕망의 실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다양한 양태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담고 있는 욕망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뜨고 있었던 철학자나 작가를 등장시켜 그에 대한 의문점을 파헤치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천재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모던보이 이상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은 <날개>라는 소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그 소설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속성에 대한 혐오와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가 함께 소개한 게오르그 짐멜 또한 이상처럼 독일 지성계의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면서 돈의 논리를 성찰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장에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나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이상과 짐멜을 비롯하여,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를 대비시켜 자본주의 속성에 길들여 있지만 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은 많다. 백화점의 욕망, 패션의 에로티시즘, 도박장, 매춘, 허영, 사치, 소비 등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철학적인 문제들은 그에 상응하는 철학자들의 등장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다.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에서는 취향의 차이가 어떤 계급을 자신과 다른 계급으로 구별 짓게 하는 원리라고 주장한다. 이 저작은 자본주의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들이 독특한 취향을 계발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원리를 통계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분석해 놓은 책이다. 일명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로도 알려져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진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만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많은 가치들이 돈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돈타령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시대의 흐름에 무작정 편승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가치들을 고수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그런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위기는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의 무분별한 남발에 있다. 미국이 통화의 가치를 금의 가치와 연계시키는 금본위제를 폐지한 이후로 그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소련의 패망 이후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자본시장의 금융공학이론 개발에 대거 투입됨으로써 파생상품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교란은 엔론 사태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라는 세계 경제적인 위기에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화폐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타파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보드리야의 <불가능한 교환>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폐해를 교환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주는 상처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그런 상처를 거부하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대안을 발굴하여 그에 맞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저자가 인용한 대로 가라타니 고진이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생산-소비협동조합’(에필로그 인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협의체의 구성이 비록 자본주의의 폐해를 종결지을 수 있는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대안 공동체의 긍정적인 가치를 수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노력들을 통해 거리의 무법자처럼 활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망령을 조금이나마 주춤거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자본주의 폐해라는 거대한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그것은 부르디외가 천명한 <구별 짓기>에서 주창한 대상의 구별에서 오는 아픔일 수도 있고,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물질적인 가치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는 고통일 수도 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아는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텍스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