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의 말들
한때 '나쁜 남자'라는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나쁜 남자라는 캐릭터는 이 시대에 걸맞은 캐릭터인지 모른다. 복잡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착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렇게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나쁜 남자는 어쩌면 진솔한 삶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뒷말을 남발하고 수군대는 것은 오히려 비겁하고 추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동안 착한 남자 콤플렉스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기분 나빠도 좋은 척, 성질이 나도 웃는 척, 모든 것을 다 포용한 듯한 허울을 쓰고 사느라고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지. 큰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들을 가슴속으로 스미게 했는지. 마음 깊숙한 곳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앙금의 잔해들은 간헐적으로 감정의 혼란을 부추겼으며, 그로 인해 고통을 되새김질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할 말은 하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생애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을 타인의 욕구만 충족시키느라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더 이상 주관 없는 삶으로 인해 타인을 원망하거나 하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되겠다.
시행착오가 많은 삶을 살다 보니 시련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은 스스로 감내할 몫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이젠 지쳐가는 느낌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힘겹게 살아가는 삶의 이면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착한 남자 콤플렉스가 아닐까 싶다. 올바로 된 가치관과 삶의 진정성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삶을 뒤죽박죽 혼돈스럽게 만든 것 같다. 착하다는 것은 순응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기존의 틀에 맞추어 간다는 것이다. 변화가 없다 보니 비판에 대한 생각은 차마 하기도 어렵다. 불만이 있더라도 참고, 주어진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비합리적인 틀 속에서도 삶을 개선할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자기를 표현하는 시대에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자기의 고유한 삶의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주관적이고 주체적으로 인생을 가꿔갈 수 있다. 그동안 그런 자기 방어의 기제도 없이 넋 놓고 삶을 방기한 것이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 같다. 이제 착한 남자 콤플렉스는 버려야 할 악습이 된 것이다. 표현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더 이상 꽁하지 말고, 거침없이 소리지르자. 착한 남자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좀 더 진솔한 삶을 향해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