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스피치의 말들

by 정작가

소금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성분이다. 소금이 없으면 짠맛을 느낄 수도 없고, 신체가 원활하게 작동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그런 만큼 소금의 섭취는 중요하다. 흔히들 세상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을 일컬어 '소금'에 비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금은 바닷물을 정제시켜 만든다. 그런 소금 또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야 밥상에 오를 수 있다. 이런 물질의 변화처럼 인간의 땀 또한 소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으로 등짐을 경험한 것이 고2 때였을 것이다. 인생에 경험을 쌓자는 취지로 인력시장에 나갔다. 그때만 해도 경기가 좋던 때라 나가기만 하면 하루 날품을 파는 것은 쉬울 때였다. 도대체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면 노가다, 노가다하는지 그 실상이나 한 번 경험하면 좋을 듯싶었다. 약간 긴장되기도 했지만 기왕마음먹은 거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봉고차를 타고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서 주로 하는 일은 등짐으로 벽돌이나 흙을 나르는 그런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일이 시간이 흐를수록 힘겨운 노동으로 다가왔다. 잠시도 짬을 주지 않았다. 등짐으로 벽돌을 나르면서 인생의 무게라는 것이 이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공사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벽돌은 반나절이 지나도 변화가 없어 보였다. 중노동이 이런 것이었구나. 매일 이런 일을 하는 분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해도 좋은 만큼 존경심이 느껴졌다. 그동안 참 고생 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지 얼마나 지났을까? 근처 어디론가 장소를 옮겨 새로운 일에 투입되었다. 이 계통이 서로 연계가 된지라 일처리의 효율성을 위해 인부의 운명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투입된 현장은 작은 건축물을 짓는 공사 현장이었다. 벽돌의 악몽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와중에서도 단연 행복한 시간은 새참 시간이다. 힘든 일을 한 후에 맛보는 새참은 세상의 어느 만찬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태양이 작렬하는 정오가 되면 아무 데나 스티로폼을 깔고 누워 잠시 낮잠을 잘 수 있는 오침시간이 주어진다. 이때의 달콤한 잠은 아방궁에서 자는 잠에 비견될 것이 아니다. 노동을 한 후에 느끼는 휴식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시원하게 다가온다.


오후의 노동은 오전보다 견디기 어렵다. 더위와 싸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위와 노동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한다. 평소에 잘 가던 시간은 왜 이리 안 가는지 상대성이론을 굳이 머리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반나절이면 시간의 개념이 달라진다. 그렇게 더위와 중노동과의 싸움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도 어슴프레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일당을 받는 시간. '체험 삶의 현장'에서 출연자들이 왜 전율하는지 이 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돈이 든 봉투를 받았다. 생전 처음으로 스스로 돈을 번 날이었다. 몇 만 원 되지는 않았지만 값진 노동의 결과로 얻은 수익이었기에 함부로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작업하던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에 문득 얼굴을 만지게 되었는데 흙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흙이 아니었다. 맛을 보니 짭짤했다. 한나절 동안 육체의 노동을 통해 흘린 땀방울의 결정. 소금이었다. 땀이 절여져서 소금이라는 결정체를 몸의 이곳저곳에 흔적처럼 새겨 놓은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생산된 소금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가 불쌍해 막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노동이구나 삶이구나 생각하니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나절의 노동이 주었던 값진 경험. 그것은 수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던 아주 소중한, 산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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