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

스피치의 말들

by 정작가

아무리 주변을 찾아봐도 멘토를 찾을 수 없고, 무언가를 배우긴 배워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을 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까지 이토록 고독한 상태를 유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까? 얼마 전까지 그런 고민을 해봐도 마땅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알아냈다.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과 내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그런 소통 과정을 통해 내면의 가치도 키울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한 일들을 보면 내적 가치를 키우기보다는 어떤 기법을 익히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려고, 노래를 잘하려고, 말을 잘하려고, 디자인을 잘해보려고 애를 쓰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책과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진력한 결과, 어느 한 분야라도 프로의 경지에 올랐던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채 시간만 소진한 꼴이 되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배웠던 교훈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살았던 세월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다양한 경험들을 하지 않고 간접 경험으로서 그저 독서만 했었다면 어쩌면 만년서생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쓴 작가와 영혼을 교류하는 일이다. 틈만 나면 책을 꺼내 읽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저자와의 대화 속에서 알토란 같은 지혜를 지속적으로 섭렵하다 보면, 무지에서 해방되고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간도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된다. 그렇다. 이제는 인생의 중심을 책 쓰기와 글쓰기로 정하고, 나머지는 오직 이를 위한 부수적인 일로 치부해도 좋을 것 같다. 서재에 수천 권의 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책을 사고 모았으니 이젠 하나 둘 책을 꺼내어 읽으며 작가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고, 그들의 생각과 지혜를 자기화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철학과 사상을 가꿔가는 일에 몰두할 때는 아닌가, 싶다. 뭔가 기법과 기능을 익히기에는 이미 감각도 둔해지고 했으니 이제는 독서와 명상을 통해 다양한 저자들의 생각과 가치를 간접적으로나마 체득하여 이를 세상의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인생은 새로운 행로를 걷게 될 것이다. 빈한한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독서를 통해 사유하고, 이를 사상적 궤적으로 연결시켜 새로운 철학적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될 때 가능한 일이다. 쓸데없이 시간을 소진하느라 자극적인 요소에 휘둘리기보다 고요한 침묵 가운데 책을 읽고 사색하며 고요한 명상 속에서 우주의 진리를 체득하겠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면, 인간 문명이 만들어 놓은 단편적인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내면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오히려 정체성의 측면에서 보면 인생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이상적인 가치에 부합된 적극적인 행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런 독서의 행위와 사유를 통한 글쓰기가 결합하여 새로운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고유의 철학으로 발전시킨다면 사상가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철학자가 모두 위대해질 필요는 없듯이 자기 만의 고유한 철학적인 인식의 틀에서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킨다면 이상주의자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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