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 / 책미래
우리의 속성 중에서 대표적인 폐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혈연, 지연, 학연이다. 특히 이 중에서 학연의 폐해로 지적되는 학벌은 우리 사회에서 안정된 기반을 쌓고 성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가 된 지 오래다. 강남 8 학군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도는 것은 그만큼 학벌의 중요성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라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역사학계에서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느 분야건 기득권은 존재한다. 역사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한국사는 기득권세력의 횡포로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인해 그나마 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과연 어떤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역사교육에 관심을 가져도 정작 텍스트가 부실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을 보면 재야사학계에서 나온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류사학과 재야사학을 비교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위주로 기술하면 – 특히 고대사의 경우가 그렇다 – 주류사학계이고, 다소 생소하거나 생경한 내용이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내용이 주가 되는 책이라면 재야사학계라고 단정해도 큰 오류는 없다. 최근에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몇 권의 책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의 주류사학이라는 정통사학이라는 것이 온통 식민사관이 일색이고, 단채 신채호 선생을 필두로 하는 민족지도자의 역사서들은 오히려 재야사학으로 폄하되어, 역사학계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건 주객이 전도된다고 해도 정도가 심하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재야사학계의 역사관이 무조건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민족의 긍지를 살리는 고서(古書), 이를 테면 ≪환단고기≫, ≪부도지≫ 등을 위서로 취급하고 엄연히 동이족 유물로 인정되는 홍산 문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책 표지에서 밝힌 내용처럼 ‘하필이면 가장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 고대사를 전공한’ 이유로 순탄하지 않았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죽하면 죽기 전까지 식민사학의 영향력을 밝혀놓는 것이 숙원사업이라고 밝힐 정도라면 얼마나 사학계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지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식민사학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식민사학 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민족 정서를 감안해 대놓고 식민사학을 주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식민사학을 비판하면서 교묘하게 민족정기를 흐리는 내용을 전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과연 식민사학의 이론인지 제대로 판가름하는 것도 사실은 힘들다. 아무튼 다양한 종류의 역사서를 읽고 연구해 나가는 것밖에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같은 책들이 있어 역사적인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 책에서는 식민사학의 뿌리인 황국사관, 고대 한일관계사 해석의 분기점으로 밝히고 있는 초기 기록 말살에 대한 견해를 다양한 사료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또한 사학계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학술논문을 무기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식민사관을 대변하고 있는 주류학자들의 야합과 패거리문화를 까발린다. 물론 이런 노력들은 기득권 세력의 유지를 위한 것 일뿐, 민족의 정기를 세운다거나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고자 하는 학자 본연의 자세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니 소위 한국사를 좌지우지하는 정점에 있는 이들의 정체성을 다시금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재야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왜곡된 역사가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자의 주장처럼 ‘식민사학은 분명히 존재하되 단지 왜곡되어 알려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좀 더 심층적으로 역사공부에 다가설 이유는 충분하다. 제대로 된 민족의 역사관을 정립하고 후손들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게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지속적으로 한국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관심을 통해 식민사학으로 점철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면 재야사학자들의 피 끓는 외침은 비로소 멈춰질 것이다. 그날을 고대해 본다.